수레바퀴 아래서 1
헤르만 헤세 지음 | 고전문학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지음
제1장요제프 기벤라트는 중개업자로, 슈바벤의 여느 소시민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튼튼한 신체와 적당한 장사 수완, 그리고 돈에 대한 진심 어린 숭배심을 갖춘 그는 내면이 속물근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신보다 가난한 자는 무시하고 부자는 시기했으며, 자신보다 뛰어난 지성이나 감수성을 지닌 사람을 본능적으로 불신했다. 상공회의소 회원으로서 매주 금요일 ‘독수리’ 여관에서 볼링을 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이쯤이면 충분하리라. 그러나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 소년은 훨씬 더 주목할 만한 존재였다.
한스 기벤라트는 의심할 여지 없는 천재였다. 평범한 혈통과 오래된 마을 분위기 속에서, 섬세하고 지적인 외모를 지닌 그가 태어난 것은 마치 하늘에서 불꽃이 떨어진 듯한 기적이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 한스의 비범함을 인정했다. 슈바벤에서 가난한 집안의 수재가 출세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비좁고 험난한 길뿐이었다. 주(州) 장학생 선발 시험에 합격하여 마울브론 신학교에 들어가고, 튀빙겐 신학 대학을 거쳐 목사나 학자가 되는 코스였다. 국비로 공부하는 대신 평생 국가에 봉사해야 하는 이 안전하고도 숨 막히는 궤도에 한스 역시 올라타게 된 것이다.
시험이 몇 주 앞으로 다가오자, 마을의 유일한 후보인 한스에게 온갖 기대와 압박이 쏟아졌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오후 4시부터는 교장 선생님과 그리스어 특강을, 6시에는 목사님과 라틴어 및 종교 수업을 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수학 선생님에게 복잡한 문제 풀이 지도를 받았다. 그리스어 불규칙 동사와 라틴어 운율, 난해한 수학 공식들이 어린 한스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지적 과로를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아침 견신례 수업 참석이 허락되었지만, 한스는 그 시간마저 몰래 숨겨둔 단어장을 외우는 데 썼다. 부제님이 호명할 때마다 가슴이 뛰고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는 언제나 완벽한 정답을 내놓았다. 낮 동안 쌓인 과제는 밤늦게 집에서 해결해야 했다. 고요한 램프 불빛 아래서 공부는 밤 10시, 때로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요제프 기벤라트는 등유 값을 아까워하면서도, 늦은 밤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한스는 산책 시간마저 공부에 쏟아부었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걸었지만, 얼굴은 밤새 시달린 흔적이 역력했고 눈은 피로에 젖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합격 가능성을 묻자 교장 선생님은 기쁘게 확신했다. “그 녀석은 반드시 합격할 걸세. 저 아이를 보게. 진정한 ‘지성의 화신’ 그 자체야.” 깊게 패인 눈과 이마의 주름, 보티첼리의 그림 속 인물처럼 힘없이 늘어진 앙상한 팔다리는 소년의 지적 고통을 증명하고 있었다.
슈투트가르트로 떠나기 전날, 교장 선생님은 평소의 엄격함 대신 이례적인 온화함을 보였다. “오늘 저녁에는 책은 생각조차 하지 마라. 약속해다오. 푹 자고 맑은 정신으로 가야 한다.” 학교를 나선 한스는 오랜만에 마주한 마을 풍경이 낯설도록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는 다리 난간에 앉아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시험 준비를 위해 금지당하기 전까지 그가 수영을 하고 낚시를 즐기던 장소였다. 보리수와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느꼈던 낚싯대의 떨림, 펄떡이는 물고기의 서늘한 감촉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한스는 주머니의 빵을 떼어 잉어와 누치들에게 던져주며, 자유롭고 거칠었던 소년 시절의 기쁨이 영원히 과거 속으로 멀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심지어 견신례 날조차 머릿속으로 그리스어 동사 변화를 암기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그는 씁쓸해했다.
멍하니 서 있던 한스의 어깨를 누군가 억센 손으로 잡았다. 구두장이 플라이크였다. 그는 시험은 겉치레일 뿐이며, 설령 떨어지더라도 수치가 아니라고 위로했다. “신께서는 각자의 영혼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니, 그분의 인도하심을 믿으렴.” 그러나 교사들의 총애를 받으며 다소 오만해졌던 한스는, 뼈아픈 진실을 말하는 플라이크를 그동안 피해 왔기에 그의 진심 어린 조언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그때 목사님이 나타나자 경건주의자 플라이크는 짧게 인사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목사님은 한스의 손을 잡고 라틴어 성적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한스가 수줍게 물었다. “하지만 만약 제가 떨어지면 어쩌죠?” 목사님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떨어지다니?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거라.” 한스는 멀어지는 구두장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음만 올바르고 신을 믿는다면 라틴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플라이크의 말은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하필이면 목사님까지 마주치고 나니, 만약 시험에 떨어진다면 다시는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우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한스는 정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때 토끼를 길렀던 낡은 오두막이 서 있었다. 지난 가을, 시험 준비를 위해 토끼들을 빼앗긴 이후 정원에도 발길을 끊은 지 오래였다. 부서진 물레방아를 보며 그는 기계공 견습생이 된 친구 아우구스트와 함께 놀던 시절을 떠올렸다. 소년은 땅바닥에 엎드려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대신 그는 헛간에서 손도끼를 꺼내 앙상한 팔을 휘둘러 토끼장을 부숴버렸다. 판자가 쪼개지고 녹슨 못이 튀었다. 그것은 토끼와 아우구스트, 그리고 어린 시절의 놀이들을 향한 그리움을 박살내는 몸짓이었다.
창문에서 요제프 기벤라트가 물었다. “거기서 대체 뭘 하는 거냐?” 한스는 짧게 대답했다. “장작을 패고 있어요!” 한스는 도끼를 내던지고 강가로 달려갔다. 뗏목 위에 누워 물살을 타고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상상을 하며 잠시 현실을 잊으려 애썼다. 저녁 식사 시간, 아버지는 슈투트가르트행 때문에 잔뜩 들떠 있었다. 책은 챙겼는지, 검은 예복은 꺼내 두었는지 수십 번도 넘게 물었다. 한스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잘 자라, 한스. 푹 자야 한다. 6시에 깨워주마. 단어장은 잊지 않고 챙겼겠지?” “네, 사전 챙겼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아버지.”
어둠 속에서 그는 자신의 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시험 공부가 가져다준 유일한 위안은 바로 이 독방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피로와 싸우며 카이사르와 크세노폰을 파고들었고, 친구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었다는 오만하고도 달콤한 승리감에 취하기도 했다. 소년은 옷도 벗지 못한 채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교장 선생님이 이례적으로 역까지 배웅을 나왔다. 검은 예복을 입은 아버지는 흥분과 자부심으로 안절부절못하며 우산과 가방을 번갈아 들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고향 마을이 멀어지자 두 사람에게 여행은 고역이 되었다.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대도시의 활기에 고무되어 명랑해졌지만, 한스는 위압적인 건물들과 소음에 주눅이 들었다. 이모네 집의 낯선 풍경과 쏟아지는 수다, 그리고 아버지의 끝없는 격려의 말들은 소년을 더욱 짓눌렀다. 한스는 마치 아주 오래전에 집을 떠나온 것 같았고, 그토록 힘들게 배운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모두 사라진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오후에 마지막으로 공부를 하려 했지만, 이모는 산책을 제안했다. 한스는 푸른 숲을 기대하며 따라나섰으나 도시는 전혀 달랐다. 계단에서 마주친 화려한 차림의 뚱뚱한 부인이 이모와 수다를 떠는 동안, 한스는 난간에 붙어 서서 사나운 애완견의 으르렁거림을 견뎌야 했다. 부인이 안경 너머로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을 느끼며 한스는 비참함에 빠졌다.
이모가 상점에 들어간 사이 한스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행인들에게 치이며 쭈뼛거리고 서 있었다. 돌아온 이모는 초콜릿을 건넸고, 그는 단것을 싫어했음에도 예의 바르게 감사 인사를 했다. 붐비는 전차를 타고 도착한 공원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벤치에 앉자 이모는 초콜릿을 먹으라고 재촉했다. “어머, 부끄러워할 것 없다. 어서 먹으렴.” 한스는 억지로 한 입 베어 물었다가, 이모가 아는 사람을 보고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초콜릿을 풀밭에 던져버렸다.
다리를 흔들며 불규칙 동사를 암기하려 했지만, 공포스럽게도 머릿속이 하얘져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일이 바로 시험인데 말이다. 돌아온 이모는 올해 118명이 응시해 고작 36명만 합격한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소년의 마음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두통이 심해져 저녁도 거른 채 이상하게 행동하자 아버지는 따끔하게 야단을 쳤고, 이모조차 그를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그날 밤 한스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시험관은 산더미 같은 초콜릿을 먹으라고 강요했고, 눈물을 흘리며 꾸역꾸역 먹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합격해 나가는 환영을 보았다.
다음 날 아침, 고향에서는 많은 이들이 한스를 생각했다. 구두장이 플라이크는 아침 식사 전 기도에 한스를 위한 구절을 더했다. “주여, 오늘 시험을 치르는 한스 기벤라트를 지켜 주소서. 그가 당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굳건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반면 목사는 아내에게 자신이 라틴어를 가르친 덕에 한스가 출세할 것이라며 으스댔고, 담임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한스의 우수함을 자랑했다. 멀리서 전해지는 기운을 느끼며 한스는 떨리는 가슴으로 시험장에 들어섰다. 거대한 고문실에 갇힌 죄인 같은 기분이었으나, 막상 라틴어 작문 문제가 나오자 안도했다. 너무나 쉬운 문제였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답안을 작성해 가장 먼저 제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잃고 두 시간이나 헤맸지만, 아버지와 이모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그 시간은 오히려 달콤했다. 집에 돌아오자 질문이 쏟아졌다. “어땠냐? 잘 썼느냐?” 한스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더 이상 쉬울 순 없었어요. 5학년 때 배운 수준이던걸요.”
오후에는 시험이 없었지만 아버지는 그를 이끌고 친척 집을 전전했다. 그곳에서 그와 같은 시험을 치른 괴핑겐 출신의 수험생을 만났다. “라틴어 시험 어땠니? 쉽지 않았어?” 한스의 물음에 그 소년은 비관적으로 답했다. “바로 그게 문제야. 쉬우면 방심하게 되고 함정에 빠지기 마련이거든. 교수님들이 그렇게 멍청할 리가 없어.”
그는 괴핑겐에서 온 열두 명 중 세 명은 천재라며, 자신은 떨어지더라도 울름의 학교에 갈 것이라 말했다. 그 말에 한스는 크게 위축되었다. 자신에게는 불합격 이후의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숙소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그리스어 문법을 들여다보았다. 크세노폰을 읽을 때의 생동감과 자유로움은 좋았지만, 문법과 작문으로 넘어가면 미로처럼 복잡한 규칙들이 그를 짓눌렀다. 처음 알파벳을 배우던 때처럼 낯선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음 날 치러진 그리스어 시험은 꽤 길고 어려웠으며, 독일어 작문 주제는 까다로운 데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펜촉마저 말을 듣지 않아 종이를 두 장이나 망쳤고, 설상가상으로 옆자리 아이가 답을 알려 달라며 쪽지를 건네고 옆구리를 찔러 댔다. 부정행위로 간주되어 쫓겨날까 봐 공포에 질린 한스는 떨리는 손으로 ‘나를 좀 내버려둬’라고 적어 보여 주고는 등을 돌렸다.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그는 두꺼운 견진 성사 예복을 입은 채 땀을 흘리며 두통에 시달렸고, 결국 답안지를 제출했다. 실수투성이일 것이라는 확신에 그는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 한스는 죄인처럼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가 결과를 캐묻자 그는 풀이 죽어 대답했다. “잘 못 봤어요.” 아버지가 화를 내며 다그쳤다. “왜 좀 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느냐? 맙소사, 정신만 똑바로 차렸어도 좋았을 것을!” 아버지가 저주를 퍼붓기 시작하자 한스는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아버지께서는 그리스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잖아요.”
오후 2시에 치러진 구술 시험은 더 끔찍했다. 현기증과 두려움 속에서 그는 세 명의 시험관 앞에 앉았다. 마지막에 불규칙 부정 과거 시제에 대한 질문을 받았으나 대답하지 못했다. 나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 문가에 이르러서야 답이 떠올랐다. “어서 나가게!” 면접관이 그를 향해 말했다. “어서 나가라고! 아니면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 건가?” “아니요, 방금 그 부정 과거 시제가 생각났어요.” 그가 정답을 외치자 시험관 중 한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스는 달아오른 얼굴로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왔다.
그는 자신이 시험에 떨어졌다고 확신하며 거리를 배회하다 숙소로 돌아와 앓아누웠다. 다음 날 아침 수학과 종교 시험은 아이러니하게도 술술 풀렸지만, 한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는 이모에게 말했다. “시험은 다 끝났어요. 이제 우리 집에 갈 수 있어요.” 아버지는 슈투트가르트에 더 머물며 칸슈타트의 온천 정원에서 커피나 마시고 싶어 했으나, 한스가 간곡히 애원한 끝에 혼자 먼저 귀향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기차에 몸을 싣고 멍하니 앉아 있던 소년은 차창 밖으로 검은 전나무 숲이 보이자 비로소 안도감과 기쁨을 느꼈다. 다행히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 집에 도착했다.
“슈투트가르트는 좋았니?” 늙은 하녀 안나의 물음에 한스가 대답했다. “좋았냐고요? 시험이 좋을 리가 있나요? 집에 와서 기쁠 뿐이에요. 아버지께서는 내일 오실 거예요.” 그는 우유 한 그릇을 마시고 수영복을 챙겨 마을 외곽의 깊은 강가로 달려갔다. 차가운 물속에 몸을 던지자 지난 며칠간의 공포와 땀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그는 물살을 가르며 기분 좋은 피로감과 서늘함을 만끽했다.
해 질 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골목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유령처럼 떠올랐다. 서리하던 자두나무, 미끼로 쓸 지렁이를 잡던 목재소, 그리고 한때 짝사랑했던 엠마 게슬러의 집. 리제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던 때나 일요일에 몰래 낚시를 하던 기억들이 아득히 먼 곳에서 생생하게 밀려왔다. 한스는 이 작고 소박한 세계가 자신에게서 영원히 상실되었으며, 그 빈자리를 채울 생동감 넘치는 무언가는 아직 찾지 못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다음 날 정오, 그는 역으로 마중을 나갔고 아버지는 여전히 슈투트가르트에서의 경험을 신나게 떠들어 댔다.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마.” 아버지가 기분 좋게 웃으며 제안했다. “잘 생각해 보거라.” 한스는 자신이 분명 떨어졌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조심스럽게 소원을 말했다. “방학 동안 다시 낚시를 하고 싶어요.” “좋다. 합격만 한다면야 얼마든지.”
다음 날,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한스는 지난 시험을 곱씹으며 절망에 빠졌다. 두통과 불운 탓에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점차 공포로 변해갔다. 그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아버지에게 다가가 만약 시험에 떨어지면 김나지움(독일의 전통적 중등 교육 기관)에 보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 화를 내며 소리쳤다. “뭐라고? 김나지움? 누가 네 머릿속에 그런 헛바람을 집어넣었느냐? 내가 무슨 은행장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아버지의 단호한 거절에 한스는 절망하며 밖으로 나갔다.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평범한 가게 점원이나 서기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그가 가장 경멸하는 운명이었다. 분노와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그는 라틴어 시집을 벽에 집어 던지고 빗속으로 뛰쳐나갔다.
월요일이 되자 교장 선생님은 시험 결과를 물었지만 한스는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결과는 오지 않았고, 한스는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후 2시, 교실에 들어선 선생님이 큰 소리로 한스의 이름을 불렀다. “한스 기벤라트! 축하한다. 주 선발 시험에서 2등을 차지했어.” 교실이 엄숙한 침묵에 잠긴 사이 교장 선생님이 들어와 축하를 건넸다. 한스는 놀라움과 기쁨에 마비된 듯 멍하니 서 있다가 불쑥 외쳤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1등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교장 선생님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께 기쁜 소식을 전하라며 그를 놓아주었다. 거리로 나온 한스는 보리수와 광장이 햇살 아래 빛나는 것을 보았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지만 훨씬 더 아름다워 보였다. 합격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왔고, 이제 지긋지긋한 상점이나 사무실로 끌려갈 필요 없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