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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카멘친트 2

헤르만 헤세 지음 | 고전문학


페터 카멘친트

헤르만 헤세 지음





제5장


내 삶에서 겉보기에는 가장 분주하고 화려했으나 실상은 삼류 연애 소설보다 못했던 시절이 시작되었다. 독일 신문사의 편집인. 거친 입담과 제멋대로 휘두르는 펜대. 훈계와 박해. 결국 나는 술꾼이라는 평판만 얻은 채 자리를 내던졌다. 통신원이 되어 찾아간 파리, 그 저주받은 소굴. 부랑자 같은 생활. 독한 담배와 허무한 방탕. 파리는 소름 끼치는 곳이었다. 그곳엔 오로지 예술, 정치, 문학, 그리고 천박한 여자들의 수다뿐이었다. 예술가들은 정치인만큼이나 허영심에 가득 차 있었고, 문학가들은 그보다 더했으며, 가장 참을 수 없이 천박한 이들은 여자들이었다. 인공적인 화려함 뒤에 숨은 인간들의 민낯은 구역질이 났다.

어느 날 저녁, 나는 홀로 불로뉴 숲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파리를 떠날 것인가, 아니면 이 구차한 생 자체를 끝내버릴 것인가. 아주 오랜만에 내 삶을 되짚어 보았으나 딱히 미련을 둘 만한 가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찰나, 오래전 잊고 있었던 고향 산골의 여름 아침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죽음을 앞두고 고통받던 어머니의 침대 곁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어린 나의 모습이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 아침을 잊고 살았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자살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건강하고 선한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결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으리라. 나는 다시금 어머니의 죽음을 보았다. 죽음은 어머니의 얼굴에 고귀한 품격을 입히고 있었다. 그것은 엄격해 보였으나, 길 잃은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는 인자한 아버지처럼 강력하고도 다정한 손길이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죽음은 적절한 때를 알고 찾아오는 영리하고 선한 형제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겪는 고통과 실망, 우울은 우리를 가치 없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정화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진리를 말이다.

일주일 뒤, 나는 짐을 바젤로 부치고 남프랑스를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파리에서의 그 불결한 기억들은 악취처럼 나를 따라다녔으나, 걷는 날이 길어질수록 안개처럼 희미해졌다. 나는 성에서, 물방앗간에서, 혹은 헛간에서 잠을 잤고 거무스름한 피부의 청년들과 햇살을 머금은 포도주를 나누어 마셨다. 두 달 뒤, 나는 바짝 마르고 검게 탄 채로, 그러나 내면이 완전히 바뀐 상태로 바젤에 도착했다.

바젤 변두리에 작은 방을 얻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를 아는 이 없는 조용한 도시에서 지내는 것은 처음에는 평온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자 지독한 우울이 다시 나를 덮쳤다. 내 영혼은 소름 끼치는 고독에 사로잡혔다. 나와 사람들 사이, 그리고 이 도시의 광장과 거리 사이에는 결코 메울 수 없는 거대한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사건도, 화려한 축제나 장례식도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나는 숲과 언덕을 배회했다. 들판의 풀과 나무들은 침묵 속에서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무언가 호소하는 듯했으나, 나는 그들의 슬픔을 이해할 뿐 그들을 구원할 힘이 없었다.

결국 나는 의사를 찾아가 내 고통을 상세히 기록한 종이를 건넸다. 의사는 진찰을 마친 뒤 말했다. “당신은 부러울 정도로 건강합니다.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결함이 없어요. 독서나 음악으로 기분 전환을 해보시지요.” 나는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직업상 매일 새로운 글들을 산더미처럼 읽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외 활동을 좀 하세요.” “매일 서너 시간씩 걷습니다. 휴가 때는 그 배를 걷지요.” 의사는 당혹스러운 듯 덧붙였다. “사람들 사이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가는 심각한 대인기피증에 걸릴 겁니다. 지금은 병이 아니지만, 계속 그렇게 수동적으로 방황하다가는 삶의 균형을 잃게 될 거예요.”

의사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안쓰럽게 여겨 자신이 잘 아는 학자의 집을 소개해 주었다. 어느 늦가을 저녁, 그곳에서 한 젊은 사학자와 마른 체격의 까무잡잡한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찻물을 준비하며 사학자에게 가시 돋친 말을 내뱉더니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당신의 풍자문을 읽어봤지만, 전혀 즐겁지 않더군요.” 영리해 보였으나 지나치게 영악한 사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술집을 전전한다는 소문이 학술계에 퍼졌다. 위선적인 도덕주의자들은 나를 구원하겠다며 달려들었다. 그들은 금주 위원회 모임에 나를 초대해 알코올의 저주와 사회적 책무를 설교했다. 종교적인 분위기가 섞인 그 모임은 역겹고도 우스꽝스러웠다. 끈질긴 설득에 진저리가 난 나는 어느 날 폭발하고 말았다. “제발 그 지겨운 소리 좀 집어치워 주십시오!” 그 소녀가 곁에서 내 말을 듣더니 진심 어린 어조로 외쳤다. “브라보!” 하지만 나는 너무 불쾌한 나머지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거창한 금주 축제가 열리던 날, 깃발을 들기로 고용된 일꾼 하나가 술을 참지 못하고 근처 선술집에서 만취해 나타난 것이다. 그는 푸른 십자가가 그려진 금주 연맹의 깃발을 마치 난파선의 돛대처럼 위태롭게 휘두르며 행렬의 맨 앞에서 비틀거렸다. 그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지켜보며, 우리 같은 죄 많은 구경꾼들은 비로소 유쾌한 조소를 터뜨릴 수 있었다. 결국 술 취한 일꾼은 쫓겨났지만 금주 연맹 내부의 허영과 질투는 남았다. 그들은 추잡한 암투를 벌이며 서로의 공적을 깎아내렸다. 역겨운 희극이었다. 나는 그 꼴을 비웃으며 생각했다. “보아하니 우리 같은 망나니들이 차라리 더 나은 인간들이군.”

라인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요한 방. 나는 홀로 침잠했다. 삶은 무미건조하게 흘러갔다. 어떤 강렬한 파도도 나를 휩쓸지 못했다. 초기 수도사들의 생애를 연구하는 일조차 갈증을 채워주지 못했다. 누군가는 세계 평화를 위해, 누군가는 민중을 위한 박물관을 위해 투쟁한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 모든 목표가 당장 이루어진다 해도 내 삶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강물 소리와 거친 바람 소리. 그것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는 깊은 슬픔의 언어였다. 밤구름이 겁먹은 새 떼처럼 하늘을 가로질렀다. 죽은 어머니와 리하르트가 떠올랐다. 알프스 장미를 꺾으려 절벽을 타던 소년 시절, 취리히에서의 흥분, 그리고 리하르트의 죽음 뒤에 찾아온 방황.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신이여, 이 모든 것이 그저 한 편의 연극이었습니까?” 지식과 아름다움, 사랑을 향한 그 치열했던 고통이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단 말입니까? 내 안의 이 뜨거운 갈망은 아무런 보답도 없이 나를 갉아먹고만 있었다.

램프를 끄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술집이다. 벨트리너 와인 한 잔이 목구멍을 타고 흐르면, 자비로운 신이 부드러운 손길로 내 영혼을 꿈의 나라로 인도했다. 나는 술집에서 무례하고 거친 손님이 되었다. 사람들을 쏘아붙이고 냉소하는 데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종업원들은 나를 무례한 투덜이라며 저주했다. 늙은 디자이너 하나와 말없이 마주 앉아 서로를 감시하듯 술병을 비워내던 밤들. 우리는 한때 축제 저녁에 서로의 수염을 쥐어뜯으며 싸운 뒤로 원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같은 술집에서 서로 다른 테이블에 앉아 같은 속도로 술을 들이켰다. 화해 따위는 없었다.

우울은 사람을 병들게 할 뿐 아니라 오만하게 만든다. 나는 세상의 모든 수수께끼를 혼자 짊어진 아틀라스라도 된 양 굴었다. 지독한 착각이었다. 그것은 그저 카멘친트 가문의 내력일 뿐이었다. 내가 겪는 고통이 특별한 것이라 믿었던 것은 지독한 오만이었다.

가끔 학자의 집을 찾았지만, 가식적인 사교는 고역이었다. 그들은 ‘사회적 인간’이라는 정형화된 틀에 갇혀 있었다. 문학과 예술에 대해 떠드는 그들의 말은 기만과 수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를 오가며 적당한 인사를 건네거나 피아노 연주에 집중하는 척하는 일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나 역시 그 비겁한 거짓말에 동참했으나 비참함만 더할 뿐이었다. 나는 메마른 목구멍과 권태를 씻어내기 위해 다시 술집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의 독한 와인만이 나를 이 지독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해방해주었다.

어느 사교 모임. 소란스러운 공기 속에서 그 검은 머리의 여자를 다시 마주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소음에서 도망쳐 구석진 램프 아래 자리를 잡았다. 화첩을 뒤적였다. 토스카나의 풍경들. 그중 산 클레멘테 계곡의 투박한 돌집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피에솔레 근처지만 누구도 찾지 않는, 메마르고 엄격한 아름다움을 지닌 곳. 그때 그녀가 다가와 내 어깨 너머로 그림을 훔쳐보았다. “왜 항상 그렇게 혼자 앉아 계세요, 카멘친트 씨?” 짜증이 솟구쳤다. 다른 남자들에게 소외당하니 만만한 내게 온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대답이 없으시네요?” “실례했습니다만,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나는 그냥 혼자 있는 게 좋아서 이렇게 앉아 있는 겁니다.” “그럼 제가 방해한 건가요?” “참 이상한 분이군요.” “고맙네요. 저도 똑같이 생각하거든요.” 그녀는 내 옆에 주저앉았다. 나는 고집스럽게 그림을 붙들고 있었다. “당신은 오버란트 출신이죠? 그곳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우리 오빠 말로는 당신 마을 사람들은 죄다 카멘친트라는 성을 쓴다던데, 정말인가요?” “거의 그렇습니다. 하지만 퓌슬리라는 빵집 주인이랑 니데거라는 여관 주인도 있긴 하죠.” “그 외에는 전부 카멘친트라고요? 다들 친척인가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렇다고 봐야죠.”

나는 그녀에게 그림을 건넸다. 그녀는 그림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손길로 그것을 받았다. 나는 산 클레멘테의 풍경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여름날의 열기 속에 침묵하며 타들어 가는 계곡. 피에솔레의 소란스러운 관광업과 대조되는, 역사가 잊어버린 가난하고 고독한 땅. 비틀린 소나무와 메마른 사이프러스 나무들. 나는 젊은 시절 친구와 그곳을 헤매며 느꼈던 슬픈 고독의 마법을 읊조렸다.

“당신은 시인이군요.”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에요. 시를 써서가 아니라, 당신이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나무나 산의 움직임 속에서 함께 살아 숨 쉬는 생명이 느껴지나 봐요.” 나는 누구도 자연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하려 할수록 수수께끼와 슬픔만 마주할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그녀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이름이 뭡니까?” “엘리자베트예요.” 그녀는 내 옆을 떠나 곧 피아노를 연주했다. 하지만 연주하는 그녀는 더 이상 조금 전처럼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집을 나서며 화가들의 수군거림을 들었다. “저 친구, 저녁 내내 예쁜 리스베트랑 붙어 있더군.” “조용한 물이 깊다더니, 안목은 있네.” 원숭이 같은 놈들. 내 내면의 소중한 기억을 낯선 여자에게 내뱉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그 후로 몇 달간 그 집을 찾지 않았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화가가 왜 오지 않느냐고 묻기에 나는 쏘아붙였다. “그 빌어먹을 소문들이 역겨워서 그렇습니다.”

한번은 미술관에서 엘리자베트를 보았다. 그녀는 세간티니의 그림 앞에서 넋을 잃고 서 있었다. 메마른 초원에서 일하는 시골 소녀들과 구름이 그려진 작품. 뭉게구름을 응시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숨겨져 있던 영혼이 드러나 있었다. 아이처럼 부드러워진 입술과 평온해진 미간. 위대한 예술 앞에서 그녀의 영혼은 진실하고 아름다운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잃게 될까 봐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 무렵부터 침묵하는 자연을 향한 나의 감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숲과 산, 과수원과 덤불들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나였고, 동시에 사랑이었다. 내 안에서도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두운 갈망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한다고 떠벌린다. 가증스러운 노릇이다. 들판을 짓밟고 꽃을 꺾어 시들게 하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사랑의 전부다. 인간이 자연의 정점이라는 오만한 착각 속에 빠져, 일요일에만 잠시 베푸는 값싼 동정일 뿐이다. 나는 사물의 심연을 더 깊이 파헤치고 싶었다. 나무 꼭대기의 바람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는 신의 언어였다. 낙원을 되찾는 유일한 길은 이 태고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 있었다. 성경은 이를 ‘피조물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 불렀다. 수많은 은둔자와 성자들이 이 침묵의 노래를 듣기 위해 세상을 등지고 고독을 택했다.

피사의 캄포산토에 가본 적이 있는가. 그곳의 바랜 벽화들은 기이한 평화를 내뿜는다. 그 앞에 서면 자신의 죄악과 불순함을 씻어내고, 거룩한 단절 속에서 영영 돌아오고 싶지 않은 갈망에 사로잡힌다. 티치아노의 그림 배경에 깔린 짙푸른 색채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순한 색채의 조화가 아니라, 영혼 속에 숨겨진 채워지지 않는 갈망에 대한 헌사였다. 예술은 이처럼 우리 안의 신성한 욕구에 언어를 부여하려는 시도였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이 모든 것을 가장 순수하게 실천했다. 그는 만물을 형제와 자매라 불렀다. 심지어 고문과도 같은 치료를 앞두고도 자신의 이마를 지질 인두를 “나의 사랑하는 형제, 불”이라 부르며 환영했다.

자연을 인격적인 동료로 대하면서 나의 우울은 치유되지는 않았으나 정화되었다. 생명의 심장 박동을 더 가까이서 듣고 싶었고, 언젠가 시의 언어로 이를 표현하여 타인들도 이 정화의 샘물을 마시게 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꿈에 불과했다. 나는 그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멸시하지 않으려 애쓰는 단계에 머물렀다. 말 없는 지속적인 사랑만큼 고귀한 것은 없으나, 나는 여전히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고통 속에서 욕망을 이겨낸 이들의 맑고 고요한 눈동자를 보라.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의 삶은 여전히 어두웠고 방황은 끝날 줄 몰랐다. 내 마음속의 이기적인 두 가지 본능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술을 사랑했고, 인간을 혐오했다. 와인에 대한 갈망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양심과 본능 사이에서 나는 비겁하고도 익살스러운 계약을 맺었다. 성 프란치스코의 찬가에 “나의 사랑하는 형제, 와인”을 슬쩍 포함시킨 것이다. 나는 여전히 길을 잃고 엉뚱한 벤치에 앉아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그래도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하느님의 총아들이 있다. 또한 지독한 고통 속에서 이를 배운 장애인과 불행한 이들도 있다. 그들은 욕망 없는 사랑으로 고통을 극복하고 초월했다. 나는 그들의 완벽함에 비하면 아직도 형편없이 먼 곳에 서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다는 믿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것이 이 어두운 시기를 지나가는 나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제6장


나의 또 다른 악덕은 훨씬 더 심각한 것이었다. 나는 인간에게서 거의 기쁨을 느끼지 못했고, 은둔자처럼 살며 세상만사에 늘 조소와 멸시를 보냈다. 그저 자연의 침묵하는 생명에만 나의 모든 애정과 헌신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믿었을 뿐이다. 밤이면 나는 오랫동안 찾지 않았던 숲의 가장자리나 나무 한 그루를 찾아 집을 나서곤 했다. 어둠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꿈꾸는 듯한 그들의 형체를 바라볼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 기이한 다정함이 솟구쳤다.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길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의 원대한 시적 구상이 구체화될수록 고민은 깊어만 갔다. 숲과 강물의 언어를 말하는 시인이 된다면, 그것은 결국 인간을 위한 일이 아닌가.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고 싶었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거칠고 냉소적이었다. 나는 이 모순을 극복하고 형제애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고독과 운명이 나를 완고하게 만들었기에 그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결국 나는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학자의 집을 다시 찾아가, 세상과 소통할 통로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곳을 떠올리자 에르미니아 이후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엘리자베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라면 나의 고독과 우울을 나누고 인간 세상으로 향하는 다리가 되어줄 것 같았다. 평생 독신으로 살 줄 알았던 내가 결혼과 가정을 꿈꾸는 연애에 빠진 멍청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우스웠지만, 당시에는 모든 것이 희망차 보였다. 나는 서둘러 그 집을 방문했고, 엘리자베트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나의 상상보다 훨씬 아름다웠으며, 나를 다정하고 친근하게 맞아주었다. 한 시간 동안 나는 그녀의 곁에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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