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카멘친트 1
헤르만 헤세 지음 | 고전문학
페터 카멘친트
헤르만 헤세 지음
제1장태초에 신화가 있었다. 인도의 신이나 그리스와 게르만의 신들이 인간의 영혼 속에서 표현을 갈구하며 시를 읊었듯, 신은 매일 모든 아이의 영혼 속에서 다시금 시를 짓는다.
어린 시절 나는 고향의 호수와 산, 시냇물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햇살 아래 작은 빛들이 수놓인 청록색 호수와 그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싼 험준한 산들, 봉우리 사이의 하얀 눈과 가느다란 폭포, 그리고 산기슭의 비탈진 초원에 놓인 오두막과 회색 암소들을 보았다. 나의 작고 텅 빈 영혼이 고요히 기다리고 있을 때, 호수와 산의 정령들이 그 위에 아름답고 대담한 업적들을 새겨 넣었다. 가파른 바위벽과 절벽들은 자신들이 겪어온 세월에 대해 완고하고 경외심 서린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그것은 대지가 뒤틀리고 신음하며 봉우리와 능선을 뿜어내던 창조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였다. 바위산들은 서로 부딪히고 솟구치며 자리를 다투었고, 승리한 자는 형제를 밀쳐내고 부수며 올라섰다. 산들은 층층이 꺾이고 부서진 상처를 드러낸 채 외쳤다.
“우리는 무시무시한 고통을 겪었으며, 지금도 겪고 있다.” 그들은 마치 불굴의 노병처럼 자부심 강하고 엄격한 태도로 그 말을 내뱉었다.
나는 초봄의 밤마다 사나운 푄 바람이 산들의 머리 위에서 울부짖고 폭포가 바위의 옆구리를 찢어발길 때 그들이 물과 폭풍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산들은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완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폭풍에 맞서 온 힘을 응축했다. 산기슭의 풀과 꽃, 이끼들은 산의 자손으로서 평화롭게 살아갔지만, 나무들은 내게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무들은 산에 더 가까운 고독한 투사들이었다. 특히 높은 곳에 선 나무들은 바람과 날씨, 바위와 싸우며 각자의 짐을 지고 견디느라 저마다 독특한 형상과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어떤 소나무는 폭풍 때문에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었고, 어떤 붉은 줄기는 바위를 뱀처럼 휘감아 서로를 지탱했다. 그들은 마치 전사처럼 보였고 내 마음속에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마을의 남녀들 또한 그들을 닮아 딱딱하고 엄격하며 말이 적었다. 나는 사람들을 나무나 바위처럼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소나무를 대하듯 그들을 존중하되 그 이상의 사랑을 주지는 않았다.
나의 마을 니미콘은 호숫가 두 산줄기 사이에 끼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비탈진 땅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의 집들은 고색창연한 목조 양식으로, 새로 짓는 법 없이 필요할 때마다 낡은 부재를 덧대어 수리하며 유지된다.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각자 맡은 역할을 다하다가 쓸모없어지면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타지에서 수년 만에 돌아와도 변한 것은 거의 없다. 노인들이 떠난 자리에는 그들과 똑 닮은 얼굴과 행동을 하는 다른 노인들이 같은 오두막에 살며 같은 성씨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을 뿐이다.
마을 주민의 4분의 3은 카멘친트라는 성을 가졌으며, 이 이름은 교회 장부와 묘지의 십자가, 집 벽면과 마차, 배 위에까지 가득하다. 우리 집 문 위에도 “이 집은 요스트와 프란치스카 카멘친트가 지었노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으나, 그것은 나의 아버지가 아닌 증조할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이 단조로운 공동체 속에서도 선과 악, 귀함과 천함은 존재했으며, 크레틴(크레틴병 환자)들을 제외하고도 꽤 흥미로운 광인들이 모여 있었다. 자연의 힘에 순응하며 고된 노동을 이어가는 삶은 우리 종족에게 우울한 기질을 심어주었기에, 사람들은 오히려 마을의 광인들을 보며 즐거워했다. 누군가 엉뚱한 짓을 저지르면 갈색으로 그을린 얼굴들에 화색이 돌았고, 사람들은 그들을 비웃으며 자신의 우월함을 만끽했다. 나의 아버지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광인들의 기행에 열광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결점 없음을 뽐내며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콘라드 외삼촌도 그 광인들 중 한 명이었으나, 결코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영리함과 끊임없는 발명가적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그가 시도하는 일마다 실패로 끝났을 뿐이다. 외삼촌은 실패 앞에서도 고개를 떨구는 대신 늘 새로운 일을 시작했으며, 자신의 시도가 지닌 비극적 희극성을 즐길 줄 아는 특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를 무보수 광대로 여겼다.
아버지는 그런 외삼촌을 존경과 멸시 사이에서 저울질하곤 했다. 외삼촌이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마다 아버지는 호기심에 들떠 아이처럼 굴었다. 외삼촌이 원대한 포부를 설파하며 “이보게, 이번에야말로 온 세상이 경탄할 원대한 발명품이 탄생할 것이네! 이 설계도를 보게나. 이것은 단순한 기계적 장치가 아니라 하나의 숭고한 예술이라네!”라고 호기롭게 떠벌리면, 아버지는 그 열정에 전염되어 마치 동업자라도 된 양 굴었다. 그러나 필연적인 실패가 찾아오면 외삼촌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말았지만, 아버지는 분노하며 그를 조롱하고 모욕했다. 그러고는 몇 달 동안 외삼촌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시하곤 했다.
우리 마을에 처음으로 돛단배라는 경이로운 구경거리를 선사한 이는 바로 콘라드 외삼촌이었다. 그는 달력에 실린 목판화를 토대로 아버지의 배를 개조하여 돛과 밧줄을 정교하게 설치했다. 배가 돛단배로 쓰기에는 지나치게 좁았으나, 그것은 결코 외삼촌의 잘못이 아니었다. 온 마을이 이 전대미문의 계획으로 들썩였고, 바람 부는 늦여름 어느 아침에 마침내 출항의 날이 밝았다. 아버지는 재앙을 예감한 듯 나에게 배를 타지 못하게 엄명을 내렸고, 결국 제빵사 퓌슬리의 아들만이 외삼촌과 함께 배에 올랐다. 차가운 북동풍이 시원하게 불어오자 배는 돛을 한껏 부풀리며 당당하게 나아갔고, 마을 사람들은 비웃던 마음을 거두고 외삼촌을 승리자로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밤이 되어 돌아온 배에는 돛이 사라져 있었고, 선원들은 반쯤 죽은 몰골이었다. 퓌슬리의 아들은 “자칫하면 일요일에 장례식을 두 번이나 치를 뻔했지 뭡니까”라며 투덜댔다. 그 후로 외삼촌이 서두를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콘라드, 돛을 달아야지!”라고 조롱하곤 했다. 아버지는 이 일을 가슴에 묻어두었으나, 훗날 외삼촌이 원대한 포부를 담아 설명했던 화재에 안전한 오븐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다시금 속아 4탈러를 날린 뒤로는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아버지는 속상해하는 어머니 앞에서 “차라리 그 돈으로 일요일 하루 동안 다 술로 마셔버렸더라면 좋았을 것을”이라며 한탄하곤 했다.
겨울의 끝자락이면 어김없이 깊은 울림을 동반한 푄이 불어온다. 푄이 오기 몇 시간 전부터 산과 들, 짐승과 사람들은 그 기운을 미리 감지한다. 평온하던 호수는 순식간에 잉크처럼 검게 변하고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해안을 때린다. 안개 속에 멀게만 느껴지던 산봉우리와 마을의 지붕들이 마치 겁에 질린 가축 떼처럼 가깝게 다가선다. 어린 시절 나는 이 바람을 두려워했으나, 소년의 야성이 깨어나면서 그 생동감 넘치는 투쟁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은 남쪽의 온기와 아름다움을 실어 나르는 봄의 전령이었다. 이 감미로운 푄 열병은 산악 지방 사람들의 잠을 뺏고 감각을 자극한다. 푄이 지나간 뒤 호수가 다시 푸른 빛을 되찾고 눈 덮인 봉우리들이 초원 위로 정결하게 서 있을 때면, 그것은 인간의 입술로는 결코 전할 수 없는 신의 언어를 들려준다. 산에서 자란 이들에게 이 소리는 평생토록 달콤하고도 무시무시한 메아리로 남는다.
우리 집 옆에는 어머니가 정성껏 가꾸던 보잘것없는 정원이 있었다. 그곳에서 장미와 달리아가 힘겹게 꽃을 피우곤 했다. 정원 옆 자갈 마당에는 아버지의 배가 묶여 있었는데, 초여름 햇살 아래 배에 타르를 칠하는 날이면 온 마당에 진한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아버지는 드물게 휘파람을 불며 기분 좋아 보였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날 저녁 선술집에 가지 않기를 바라며 맛있는 음식을 차리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김없이 집을 나섰다.
부모님은 내 교육에 큰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그저 몇 주에 한 번씩 나를 건초 더미로 데려가 말없이 매질을 하셨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잘못에 대한 처벌이라기보다,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신 네메시스에게 바치는 제물과 같았다. 나는 그 매질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몇 주간의 평화를 얻은 것에 만족했다. 나는 건장한 체격을 가졌음에도 지독하게 일하기를 싫어했다. 억지로 노역에 끌려가야 했던 헤라클레스에게 깊이 공감하며, 그저 산과 물가를 떠돌며 빈둥거리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행복이었다.
산과 호수, 폭풍과 태양은 나의 오랜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나는 인간의 운명보다 그것들을 더 잘 알았고 더 깊이 사랑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꼈던 것은 구름이었다. 구름은 갓 태어난 영혼처럼 부드러운 평화를 보여주다가도, 때로는 죽음의 사자처럼 무자비한 위엄을 떨쳤다. 그것은 지상의 더러워진 영혼이 순수한 하늘에 몸을 비비는 꿈이자, 방랑과 그리움의 영원한 상징이었다. 나 또한 구름처럼 일생을 떠돌며 어디서나 이방인으로 살아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구름에게서 눈의 공주 이야기를 배웠다. 공주가 높은 곳에서 내려와 산골짜기에 머물 때면, 심술궂은 바람이 나타나 검은 구름 조각을 던지며 공주를 쫓아내려 한다. 때로 공주는 조용히 물러나지만, 어떤 날은 위엄 있는 얼굴을 드러내며 그 괴물을 물리친다. 안개가 걷히면 산등성이는 순결하고 부드러운 햇눈으로 덮여 반짝였다. 이 고귀한 아름다움의 승리는 내 어린 심장에 비밀스러운 기쁨을 선사했다.
열 살이 되던 해, 마을 뒤편의 젠알프슈토크 정상에 올랐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산의 공포와 경이로움을 목격했다. 깊게 파인 빙하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앞에서, 우리 마을 니미콘은 그저 작은 점에 불과했다. 나는 세상이 이토록 광대하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저 멀리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침반 바늘처럼 떨리는 내면의 갈망을 느꼈고, 그제야 구름이 왜 그토록 먼 곳으로 떠나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벅찬 기쁨에 황소처럼 포효했으나, 그 소리는 고요한 허공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후 나는 염소치기가 되어 산의 비밀을 더 깊이 탐구했다. 코발트빛 에델바이스와 연붉은 돌제비꽃이 흐드러진 나만의 비밀 장소에서 나는 구름을 감상하며 요들송을 부르곤 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길 잃은 염소를 찾으려다 협곡으로 추락했고, 염소는 죽고 나는 머리를 다쳤다. 아버지의 매질을 피해 도망쳤으나 결국 붙잡혀 돌아왔다. 만약 그때 사고로 죽었거나 평범한 삶을 택했다면 이 글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운명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수도원에 소식을 전해야 했을 때, 나는 이웃에게 종이와 펜을 빌려 정중한 편지를 써서 보냈다. 며칠 뒤 수도사가 찾아와 내 편지를 칭찬하며 공부를 시키라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마침 다시 기세가 등등해진 콘라드 외삼촌이 옆에서 거들었다. “이 아이는 반드시 학문을 닦아 위대한 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아이의 운명이자 나의 확신입니다!” 외삼촌은 특유의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며 아버지를 설득했다. 결국 나의 미래는 외삼촌의 화재 방지 오븐이나 돛단배 계획처럼, 또 하나의 원대하고도 위험한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라틴어와 성서 역사, 식물학과 지리를 배우는 거창한 공부가 곧바로 시작되었다. 생소한 외국 학문들이 나의 고향과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나는 그저 배움이 즐거웠다. 사실 아버지가 나를 농부로 만들지 않고 이곳으로 보낸 결정적인 이유는 내 본성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정복할 수 없는 게으름 때문이었다. 나는 일할 기회만 생기면 산이나 호수로 달아났고, 구석진 곳에 숨어 책을 읽거나 꿈을 꾸며 빈둥거렸다. 아버지는 그런 나의 본질을 간파하고 결국 멀리 보내버린 것이다.
나의 부모님에 대해 말하자면, 어머니는 크고 억척스러우며 조용하고 지혜로운 분이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소박한 삶의 지혜와 신뢰, 그리고 말수 적은 성품을 물려받았다. 반면 아버지는 작고 섬세한 체구에 고집스러운 분이었는데, 나는 아버지에게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함과 돈 관리의 무능함, 그리고 근거 없는 우울함을 물려받았다. 우리 고장 사람들은 긴 겨울과 고립된 생활 탓에 마음속에 늘 옅은 우울함을 품고 살았는데, 아버지 역시 그런 기질을 지니고 계셨다.
이 모든 유산은 내가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학문과 세상을 접한 후에도 여전히 삶의 기술자로서는 부족했다. 어린 시절 흙과 식물, 동물들과만 일방적으로 어울린 탓에 사회적 능력은 키우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바닷가에 누워 있는 물개 같은 동물이 되는 꿈을 자주 꾼다. 잠에서 깨어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았음을 깨달을 때면 기쁨보다는 오히려 아쉬움을 느낄 정도다.
김나지움 시절은 고향에 대한 향수와 미래에 대한 오만한 꿈, 그리고 학문에 대한 경외심 사이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나의 게으름은 여전히 문제를 일으켰지만, 새로운 열망들이 그 자리를 채우곤 했다. 그리스어 선생님은 나를 보며 “페터 카멘친트, 너는 고집불통에 외톨이라서 언젠가 그 단단한 머리가 깨지고 말 것이다.”라고 혀를 찼다. 수학 선생님은 나를 게으름의 천재라 부르며 “0점보다 낮은 점수가 없다는 게 한탄스럽구나. 네 실력은 마이너스 2.5점이다.”라고 조롱했다. 반면 역사 선생님은 내가 게으르지만 큰 것과 작은 것을 구별할 줄 안다며 좋은 역사가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나는 선생님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존경했다. 학교 공부가 불충분한 조각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 너머에 있을 순수한 정신의 세계를 고대했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강렬한 갈망이 있었다. 처음에는 카스파 하우리라는 갈색 머리의 소년을 멀리서 우러러보았지만, 신분과 학년의 차이 때문에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그 대신 약하고 보잘것없는 소년 하나가 나를 보호자로 삼아 다가왔으나, 그가 병으로 학교를 그만두자 나는 곧 그를 잊어버렸다. 마침내 나는 금발의 재주꾼이자 어릿광대 같은 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나는 그의 그리스어 숙제를 도와주었고 그는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나 어느 날 오후, 나는 그가 복도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나를 조롱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나의 서툰 태도와 거친 사투리, 책을 읽을 때 왼쪽 눈을 깜박이는 습관까지 비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말 대신 분노를 담아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그것이 나의 유일했던 우정의 비참한 끝이었다.
“누가 너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느냐?” “카멘친트입니다.” “카멘친트, 앞으로 나와라! 사실이냐?” “네.” “왜 때렸느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유가 없었느냐는 물음에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결국 나는 엄한 벌을 받았고, 부당하게 고통받는 자의 쾌감을 느끼며 스토아학파처럼 묵묵히 견뎌냈다. 하지만 나는 성자도 철학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기에, 벌을 다 받은 후 원수 놈을 향해 혀를 길게 내밀어 보였다. 경악한 선생님이 내게 다시 달려들었다. “부끄럽지도 않으냐!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저 녀석은 비열한 인간이고 저는 저놈을 경멸한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저놈은 겁쟁이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그 광대 같던 친구와의 우정은 끝이 났다. 그 후로 소년기가 끝날 때까지 내 곁에는 친구가 없었다. 삶과 인간에 대한 나의 시각은 그 후로도 여러 번 변했지만, 그날의 따귀만큼은 지금 생각해도 깊은 만족감을 준다. 그 금발의 친구 역시 그 일을 잊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열일곱 살 무렵, 나는 법률가의 딸인 뢰지 기르탄너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나는 평생 아름다운 여인만을 사랑해 온 내 안목이 자랑스럽다. 당시 내 몸 안에는 미처 쓰지 못한 청춘의 기운이 들끓고 있었다. 동료들과 거친 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권투와 달리기, 노 젓기에서 최고라는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우울했다. 그것은 사랑 때문이라기보다 초봄의 달콤한 우울함에 가까웠다. 나는 죽음이나 비관적인 생각들에 빠져들었고, 하이네의 시집을 탐독하며 텅 빈 시 구절 속에 내 가슴의 열망을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