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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지음 | 아이템비즈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지음

아이템비즈 / 2019년 10월 / 263쪽 / 11,500원



제1장


도매업자이자 중개상을 겸하고 있는 요셉 기벤라트 씨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 남자에게는 수년 전에 어머니를 여윈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제부터 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한스 기벤라트는 아주 총명한 아이였다. 학교 교장과 교사, 이웃 사람들, 교구목사, 동급생들 모두가 그의 총명성을 인정했고, 이로써 그의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슈바벤 지방에서 재능 있는 소년들에게는, 부모가 부자가 아닌 이상, 오로지 한 길밖에 없었다. 그것은 주(州)의 시험을 치러 신학교로 들어가고, 그 후 튀빙겐대학에 진학하여 목사나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몇 주 후면 해마다 지방의 인재를 뽑는 주의 시험이 치러지는데, 한스는 그 치열한 시험장으로 뽑혀 가는 슈바르츠발트 마을의 유일한 후보였다.

그런데 그것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매일 오후 4시까지의 수업에 이어 교장한테서 그리스어 보충수업을 받았고, 6시에는 목사로부터 라틴어와 종교과목의 복습지도를 받았다. 또 일주일에 두 번씩 저녁식사 후에 수학교사로부터 1시간 동안 수업을 받았다. 온종일 수업을 받고 나면 필기나 암기, 복습이나 예습 숙제가 산더미같이 쌓이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등잔불 밑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시험 날이 다가왔다. 한스는 교장을 찾아가서 작별인사를 고했는데, 여러 충고를 들을 줄 알고 긴장하고 있던 그는 의외로 교장의 친절한 말을 듣고 놀랐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교문 밖으로 나섰다. 그는 시청 건물과 시장 골목을 지나고 대장간을 거쳐 오래된 다리까지 왔다. 그리고 난간에 걸터앉았다. 한스는 옛날 생각이 났다. 여기서 얼마나 자주 시간을 보냈던가. 그는 오랫동안 푸른 물을 바라보며 슬픈 명상에 잠겼다. 아름답고 자유로웠던 어린 시절의 기쁨은 아득히 먼 옛일이 되어 버렸다.

‘시험은 잘 치를 수 있겠지!’ 그는 얼빠진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억센 손이 어깨를 잡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스, 잘 있었니?” 뒤를 돌아다보니 구둣방 주인 플라이크 씨였다. 예전에 한스는 가끔 저녁나절의 한 시간 정도를 그의 집에서 보내곤 했으나, 그런 지도 벌써 한참 되었다. 그는 한스가 치를 시험에 대해 이야기하며 진심으로 성공을 빌고 격려하여 주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의 핵심은 그런 시험 따위는 세속적인 것이라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시험에서 떨어진다 해도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으며, 절대로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에 대해 각기 다른 특별한 의도를 갖고 계시며 각각의 영혼이 자기 자신의 길을 걷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말했다.

시험 전 날 한스는 아버지와 함께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해 숙모 집에 숙소를 정했다. 다음날 아침, 두려운 마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시험장에 들어선 한스는 지도원의 지시에도 몸을 떨었다. 그러나 막상 시험 감독관이 들어와서 라틴어 문제 연습 텍스트를 받아쓰게 하였을 때는 이 정도면 누워서 떡먹기라고 생각되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는 수험자 가운데서 맨 먼저 답안지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이튿날에는 일정대로 그리스어와 독일어 작문 시험을 차례로 보았다. 그리스어 문제는 상당히 길어서 결코 쉽지 않았다. 독일어 작문 주제 역시 까다로워서 잘못 이해할 소지가 있었다. 한편 작문 시험 때 한스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 때문에 최대의 위기상황을 맞았다. 이 뻔뻔스런 친구가 종이쪽지에 질문을 적어 한스에게 들이밀고는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답을 재촉했다. 한스는 두려움에 떨면서 그 종이쪽지에다 ‘귀찮게 좀 굴지 마!’라고 써 보내고는 그 친구를 등지고 앉았다. 마침내 답안지를 제출했지만 기분이 엉망이었다. 오답만 잔뜩 써놓은 것 같았고 시험은 이제 물 건너간 것만 같았다.

가장 끔찍한 것은 두 시에 치를 구두시험이었다. 한스는 십 분 동안 책상을 사이에 두고 세 명의 시험관 앞에서 라틴어 문장 서너 개를 번역하고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또 십 분 동안 다른 세 명의 시험관 앞에서 그리스어를 번역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한 시험관이 그리스어 동사의 불규칙 과거형을 하나 물었는데, 한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시험관이 이제 가도 된다고 하여 문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그 불규칙 과거형이 떠올라, 한스는 발걸음을 멈추고 교실 안쪽을 향해 큰 소리로 과거형을 외쳤다. 그러고 나서 얼굴이 화끈거려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음날에는 모든 문제가 술술 잘 풀려 나갔다. 어젠 그렇게 주요 과목을 망치고 오늘은 이렇게 술술 잘 풀리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시험은 이제 모두 끝났다. 아버지는 하루만 더 머물고 싶어 했으나, 한스가 혼자라도 집에 가게 해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자 아버지는 이를 허락했다.

집에 돌아 온 다음 날, 한스는 슈투트가르트에서 본 시험문제를 생각하며 하나하나 점수를 따져 보았다. 몇 번을 따져 봐도 합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가슴이 답답해 왔다. 한스는 견딜 수 없어서 아버지에게로 달려가 물었다. “아버지! 만일 이번 시험에서 떨어지면 김나지움에 가도 될까 해서요.” 아버지가 말했다.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김나지움에? 이 아비가 갑부라도 되는 줄 아느냐?” 아버지가 너무도 심하게 화를 내며 어서 나가라고 손짓을 하자 한스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방을 나왔다.

월요일 아침에 한스는 학교로 갔다. 교장이 물었다. “시험은 어땠니?” 한스는 머리를 숙였다. “아니, 왜 그러니? 시험을 잘 못 본거야?” “그런 것 같아요.” “음, 기다려 보자! 오늘 오전 중으로 소식이 올 게야.” 하지만 점심때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한스는 서러움 때문에 점심을 먹을 수가 없었다. 오후 두 시에 교실로 들어가니 벌써 담임교사가 와 있었다. “한스 기벤라트!” 한스가 앞으로 나가자 담임교사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축하한다, 한스! 네가 이 등으로 합격했다는구나! 어서 집에 가서 아버지께 말씀드려라. 이젠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돼. 어차피 일주일만 있으면 방학이니까.” 집에서 한스에게서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무척 기뻐하며 “오, 세상에 이럴 수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제2장


여름방학이다! 방학 첫날 철도 둑에 도착한 한스는 호주머니에서 깡통을 꺼내어 메뚜기를 잡기 시작했다. 기차가 지나갔다. 기차 뒤에서 그 하얀 연기가 소용돌이를 치다가 햇살 가득한 이른 아침의 청명한 하늘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모습들을 못 보고 지내 왔던가! 다시 한 번 거리낄 것 없고 근심걱정 없는 작은 꼬마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잠시 후 한스는 메뚜기를 잡아넣은 깡통과 낚싯대를 손에 들고 수심이 가장 깊은 가울스굼펜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메뚜기를 바늘에 꽂아 강물 속으로 힘껏 던졌다. 그리고 차츰 고기 낚는 흥분과 열정에 빠져들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문법과 문체론, 수학과 암기, 1년 동안 끊임없이 몰아치던 시험의 불안도 이제는 모두 나른하고 졸린 따뜻한 시간 속으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렇게 방학을 보내던 어느 날 저녁, 교장이 한스의 집을 찾아와 말했다. “한스야, 아무래도 신학교에서는 배워야 할 과목이 많아서 틀림없이 예습을 해 가지고 오는 학생이 많을 거야. 그래서 말인데 이번 방학 중에 미리 공부해 두는 게 어떨까 싶다. 네 생각은 어떠니?” “저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교장선생님! 선생님께서만 도와주신다면…….” 그렇게 하여 다시 공부가 시작되었고, 다시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 많아졌다. 아버지는 이런 모습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야 한스는 벌써 몇 주일째나 플라이크 아저씨를 찾아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저씨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작별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스의 어깨 위에 두 손을 얹고 말했다. “잘 가라, 한스! 늘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하나님께서 한스를 축복하고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저씨의 엄숙한 기도와 작별인사는 한스의 마음을 아프게 옥죄었다. 교구목사는 한스와 헤어질 때 그런 식의 작별인사는 한 번도 건네지 않았었다.

제3장


주의 북서쪽, 숲이 우거진 언덕과 작은 호수 사이에 시토 교단의 마울브론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곳에 신학교가 있었다. 학생들이 배정받은 방의 이름은 ‘포룸’, ‘헬라스’, ‘아테네’, ‘스파르타’, ‘아크로폴리스’ 등이었는데, 한스는 9명의 동료와 함께 헬라스 방을 배정받았다. 다음날 엄숙한 입학식이 거행되었고, 우선 각 반의 학우들끼리 서로의 얼굴을 익히며 사귀기 시작했다.

한스와 함께 헬라스 방을 배정받은 9명의 학우 가운데 네 명은 특징이 있었다. 우선 슈투트가르트 대학 교수의 아들인 오토 하르트너라는 학생은 타고난 재능과 함께 침착하며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또한 보잘것없는 고장의 촌장 아들인 카를 하멜이란 학생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좀처럼 나오지 못했다. 또한 슈바르츠발트 출신의 좋은 집안에서 자란 헤르만 하일너란 아이는 시문학에 뛰어난 아이였다. 에밀 루치우스라는 아주 치밀한 구두쇠이자 이기주의자였다. 하지만 성실한 노력파였기 때문에 그런 교활함이나 잔꾀를 나쁘게 생각하는 친구는 없었다.

공동생활을 시작한 지 몇 주일 후에 학생들은 서로를 잘 알게 되자 서로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동아리가 생겨나고, 우정을 나누는 사이와 반목하는 사이가 뚜렷이 나타났다. 그와 함께 많은 소년의 내면에 잠자는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하나의 인격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싹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 볼 때 한스는 이런 현상들에 대해 무관심한 듯이 보였다. 하멜이 열렬하게 우정의 손길을 내밀며 다가서자 한스는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한스가 중요시하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책상 앞에 매달려 있었으나, 다른 학생들이 서로 우정을 쌓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질투심이 밀어닥치면서 자신도 그런 우정을 쌓고 싶은 마음에 괴로워했다.

한편 서정적인 하일너는 자신과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으려다가 헛고생만 하였다. 결국 그는 날마다 외출시간이면 혼자서 숲속을 헤매곤 했다. 특히 숲속의 호수를 좋아했다. 그러던 시월 하순의 어느 흐린 날 점심시간에 한스가 혼자 이곳에 왔을 때도 하일너는 시를 쓰고 있었다. 두 소년은 나무다리 위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이들은 차츰 공동생활에 적응해 갔다. 아무튼 수많은 친구 관계가 맺어졌다. 끝까지 외톨이로 남아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는데, 그 중의 한 명이 루치우스였다. 또 어울리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짝으로 꼽힌 친구는 역시 하일너와 한스였다. 이들 둘은 경박한 아이와 성실한 아이, 시인과 노력가의 결합이었다. 두 사람 모두 가장 영리하고 뛰어난 소질을 가진 사람으로 손꼽혔으나, 하일너는 천재라는 조롱 섞인 평판을 받고 있는 반면, 한스는 모범생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11월이 되었다. 요즘 들어 하일너는 침울해져서 음악 연습실에서 혼자 바이올린을 미친 듯이 켜대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곤 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하일너가 음악 연습실에 들어갔을 때 연습벌레 루치우스가 보면대 앞에서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일너는 화가 났다. 그래서 도로 나왔다가 삼십 분 후에 다시 연습실에 들어갔는데, 그때까지도 루치우스는 바이올린 연습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일너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거칠게 불만을 표시했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니? 다른 사람도 연습 좀 하자.” 하지만 그는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하일너는 화가 치밀어 보면대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보면대가 넘어지면서 루치우스의 얼굴을 쳤다. 그러자 루치우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교장선생님께 이를 거야!” “좋아, 그럼 일러바치는 김에 엉덩이도 얻어맞았다고 해!”

하일너가 행동으로 옮기려고 다가서자 루치우스는 문 쪽으로 달아났고, 하일너는 그를 뒤쫓았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곳에는 조용하고 우아한 교장의 관사가 있었다. 루치우스가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하일너는 그의 엉덩이를 힘껏 걷어찼고 루치우스는 문을 닫을 겨를도 없이 신성불가침의 공간으로 총알같이 뛰어 들어갔다. 이런 일은 수도원이 생긴 이래로 처음 있는 사건이었고 또 앞으로도 다시 보기 힘든 사건이었다. 이튿날 아침, 교장은 학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하일너의 잘못을 지적하며 일장 훈시를 했고, 하일너에게는 무거운 감금 처벌이 내려졌다.

훈화가 끝나고 하일너는 홀로 남겨졌고 마치 나병환자처럼 기피 대상이 되었다. 이후부터 하일너는 감시를 받게 되고, 누구든 그와 함께 어울리는 사람은 나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한스는 그런 때 하일너의 편이 되어 주는 것이 친구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한스는 자신의 비겁한 행동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결국 한스는 어느 틈엔가 배신자가 되어 있었다.

제4장


신학교 생활 4년 동안 각 학년별로 통상적으로 몇 명의 학생이 길을 잃는다. 한스의 학년에서도 몇 명이 모습을 감추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가 헬라스 반 아이들이었다. ‘힌두’라는 별명을 가진 작고 얌전한 ‘힌딩거’라는 아이는 호수에 빠져 익사했다. 그 슬픔 어린 호숫가에 오래토록 서 있던 아이들 가운데 하일너와 두 학생은 감기에 걸려 양호실에 누워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함께 누워 있던 두 명의 친구가 완쾌되어 퇴실하고 하일너 혼자만 양호실에 누워 있는데, 한스가 찾아갔다. 하일너는 불쾌한 듯이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한스가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그때는 내가 비굴했어. 어려움에 처한 널 내버려 두다니! 하지만 넌 나에 대해 잘 알잖아. 신학교에서 내 목표는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면서 가능하면 일 등을 하는 것이었어. 그런 나를 너는 성적에 목을 매는 공부벌레라며 비웃었지. 그 말이 맞긴 해. 하지만 그게 나의 꿈이었어. 그보다 더 나은 것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정말 미안해! 네가 다시 나와 친구가 되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용서해 줘. 부탁이야, 이렇게 네 주위에서 배회하느니 차라리 꼴찌가 되는 게 나을 것 같아. 너만 괜찮다면 또다시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그제야 하일너는 눈을 뜨며 한스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며칠 후에 하일너도 자리에서 일어나 양호실에서 나왔다. 수도원 안에서는 이 두 사람의 다시 찾은 우정에 대해 적지 않은 파장이 있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에게 놀라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결속되어 있다는 짜릿한 행복감과 무언의 일체감을 느끼며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한스가 행복해 하며 열렬히 우정에 매달릴수록 학교와는 점점 멀어져 갔다. 교사들은 모범생 한스가 의문투성이인 하일너에게 끌려가면서 문제아로 변해 가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학교의 규칙에 따라 두 소년 역시 그들에게서 위험이 감지되는 순간, 엄격한 징계가 가해졌다. 다만 히브리어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하는 한스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교장만이 그를 구하기 위해 시도를 했다. “요즘 하일너와 친하게 지내는 것 같던데, 맞는가?” “예, 친하게 지냅니다.” “그 애는 매사에 불만이 많고 정서도 불안한 아이야. 타고난 재능은 있지만 노력은 전혀 안 하지. 게다가 자네한테도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어. 그러니 앞으로 그 아이와 가까이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겠나?” “그럴 순 없습니다. 그 아이는 제 친구니까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친구를 못 본 체 할 순 없습니다.” “그렇군. 강요하지는 않겠네. 하지만 차츰 그 아이와 거리를 두었으면 좋겠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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