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 -
▣ 독서 나침반Ⅰ - 개관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사람이 해충이 되어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변신』은 이런 이상한 사건을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건조한 문체로 보고하듯 시작된다. 변신과 그 이후의 과정이 매우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감이 몸에 밴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얼른 일어나 출근해야겠다는 생각만 다급한데, 가족은 오히려 그가 변신한 상황에 차츰 적응하며 자구책을 마련해 간다. 시간이 가면서 주인공은 가족의 짐이 되고 그러다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썩어 주인공은 어느 새벽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들이 가는 가족의 모습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사람이 동물로 변하는 모티브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카프카 글의 특징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자연적 차원의 해석이다. 그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었을 때 자신이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쓰고 있다. 엄청난 사실이 너무나도 간명하게 서술된 그의 대조법에 독자는 혼란을 느낀다.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어떠한 해명이나 재전환도 작품의 끝까지 언급되지 않는다. 이런 부정적인 긴장감이 독자의 주목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독자는 작품의 전개를 따라가는 동안 주인공이 한 마리 해충이 될 수밖에 없던 참담한 상황을 스스로 읽어내게 된다. 그의 생활은 가족의 부양을 위해 철저히 일로 짜여 있었다. 결국 그는 변신을 통해 그 억압으로부터 도피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를 다시 인간으로 변신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모티브는 아마도 가족의 관심일 것이다. 그러나 가족은 그를 철저히 외면한다.
여기서부터 무수한 해석의 가능성이 열린다. 사회학 관점에선 시민 가족 이데올로기가 허상이라는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개인은 결국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 산업사회에서 극한의 소외란 상황에 놓인다. 기계 속의 한 부품처럼 되어버린 개인이 버러지같이 느껴지는 감정을 이 글은 아예 한 마리의 버러지로 변해버린 인간을 덤덤하게 서술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특히 부각된 부자(父子) 문제는 아버지에 대한 개인적인 억압의 경험과 위계질서, 익명의 힘에 근거한 사회 전체에 대한 통찰이 교차된다. 이 문제는 심리학적인 초자아와 자아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선택의 여지도 없는 인간의 실존을 조명하며 실존주의적 해석을 가능케 한다. 조용히 숨을 거두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사회적 조건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자유'의 의미로 죽음을 읽을 수 있다. 누이가 켜는 바이올린 소리에 "이렇게 음악이 마음을 울리는데도 내가 한 마리 벌레란 말인가"라는 절실한 물음, 또 '미지의 양식'에 대한 주인공의 강한 이끌림은 근원적인 존재론적 추구와 맞닿아 있어 신학적, 해석학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는 아무런 해석이 담겨 있지 않다. 이야기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접합점도 없이, 결코 사실이 아닌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지극히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놓기만 했다. 본문에서는 어떤 미약한 희망조차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독자는 이 막막한 이야기에서 존재론적 인식을 얻게 되고, 결코 이러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을 모색하게 되는 기이한 힘을 얻는다. (글쓴이 -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 독서 나침반 Ⅱ소설 『변신』은 벌레로 변한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그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사회, 특히 가족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비참하게 죽어간다. 한마디로 그로테스크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작품에 나와 있는 묘사로 볼 때 변신한 그의 몸은 벌레 중에서도 갑충의 형상을 하고 있다. 단단한 등껍질, 각질의 칸들로 나뉜 둥그런 배, 수없이 많은 가느다란 다리들... 소설 후반부에 등장하는 파출부 할멈의 입을 통해서는 그에게 '말똥구리'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아무튼 그와 유사한 모습의 '벌레 인간' 그레고르, 그는 어쩌다가 이와 같은 벌레로 '변신'하게 된 것일까? 작품을 읽는 동안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이다.
우리는 이미 동화나 신화, 영화와 만화를 통해 무수히 많은 변신 이야기를 알고 있다. 거기서는 대개 마법이나 초능력, 신적인 능력에 의해 변신이 이루어진다. 변신의 명수인 제우스 신을 비롯해 개구리 왕자, 늑대 인간, 미녀와 야수,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등. 우리는 그들의 변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에서는 초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의 세계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그러한 힘에 의해 수시로, 그리고 결국에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러나 카프카의 변신 이야기에서는 주인공 그레고르가 처음부터 이미 변신한 벌레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내내 벌레의 몸으로 살다가 끝내 벌레의 존재로 숨을 거둔다. 변신 전의 본래 모습은 회상을 통해 그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어떻게 변신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신했다는 비현실적인 사실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사실적인 공간과 현실적인 토대 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따라서 거기에는 도저히 인간을 벌레로 변하게 한다든가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를 초래할 만한 어떤 초월적인 힘의 개입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서사적 토대의 이러한 현실성은 결국 변신이라는 비현실적 전제 위에 성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바로 카프카 문학 특유의 부조리성 또는 파라독스 구조가 놓여 있다. 『변신』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소설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그 이야기 속을 따라 걷다보면 다분히 현실적인 풍경이 전개되는 듯하나 어느 순간 딛고 있는 바닥이 갑자기 꺼져버릴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러한 구조에서 연유하는 특성일 것이다.
소설 『변신』에서는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과장된 제스처와 희극적인 동작 묘사가 두드러지게 구사되고 있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모습에 놀라 다들 혼비백산하는 장면, 아버지 잠자 씨가 아들 그레고르에게 사과 폭탄 세례를 퍼붓는 장면, 여동생 그레테의 바이올린 연주 때의 소동 장면 등등. 이러한 희극적 요소들은 지극히 사실적인 정밀 묘사를 통해 견고하게 구축된 가상적 현실을 희화적으로 드러내거나 그로테스크하게 일그러뜨리는 효과를 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실적 묘사와 희화적 묘사는 이 작품의 주된 문체적 특성을 이룬다. 카프카는 아마도 이러한 서사적 수단을 통해 실제의 현실세계 자체를 문제시하고 있는 듯 하다. 너무나도 견고한 현실세계 속에서 너무나도 무력한 개인, 현실생활의 중압감에 짓눌려 해방적인 틈을 갈구하는 개인, 그에게 현실 그 자체는 악몽이다. 그 악몽과도 같은 현실은 곧 우리 자신도 속해 있는 자본주의적 현실이다.
출장 영업 사원이라는 주인공 그레고르의 직업은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적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늘 일과 시간에 쫓겨야 하고 식사시간도 불규칙하며 지속적인 인간관계도 맺을 수 없는 그의 직업생활은 그에게 사적인 영역을 포기하고 오직 회사라는 조직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를 요구한다. 그러한 요구에 충실하여 실제로 그는 일벌레가 되고 돈 버는 기계가 된다. 그가 기꺼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책임감과 무엇보다도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곧 그의 그러한 역할에 익숙해져 그를 돈 벌어오는 존재로만 여길 뿐 가족간의 따뜻한 교감이나 인간적 대화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삶은 황폐화, 기계화, 비인간화 되어갈 뿐이다. 그레고르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일벌레로,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레고르의 변신은 이와 같이 자본주의 아래 소시민적 가정의 물화된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변신'의 원인을 짚어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서술대로라면, 인간에게 비인간이 되기를 강요하는 폭압적 현실 자체가 곧 변신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반대로 그러한 비인간적 현실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강렬한 (무의식적인) 소망이 변신을 초래한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그레고르를 벌레로 변신시킨 것은 현실 자체인가 아니면 현실로부터의 탈출 충동인가? 그러할 때 '벌레'의 의미는 각각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전자의 경우라면, '벌레'는 현실의 폭압적 힘에 의해 인간적 알맹이를 상실하고 비인간적 껍데기만 남게 된 동물적 인간 존재를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변신'은 현실 반영적 의미로 이해된다. 반면 후자의 경우라면, '벌레'는 비인간적 현실에 의해 아직 훼손되지 않고 물질과 돈의 힘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인간의 고유한 부분, 즉 그레고르의 본래적 자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그 동안의 폭압적 삶에 의해 겉모습이 심하게 일그러져 벌레와도 같은 몰골을 하게 된 자아이다. 이 경우 변신은 일종의 해방적 의미로 읽혀진다.
이와 같이 변신의 원인을 외적 요인(=현실 자체)에 의한 것으로 볼 것인가, 내적 요인(=현실로부터의 탈출 충동)에 의한 것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변신의 의미는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변신의 의미는 결코 어느 한 가지로만 고정될 수 없으며, 그 한가지의 의미도 이야기의 맥락과 상황에 따라 변화를 겪을 수 있다. 가령 변신의 해방적 의미는 벌레라는 새로운 몸을 얻게 됨으로써 현실의 파괴적 영향으로부터 고유한 인간성을 지켜낼수 있다는 점에서 처음엔 탈현실의 긍정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으나, 세상과의 소통불능, 가족들의 몰이해, 변신의 고착화 등으로 인해 점차 동물의 몸 안에 갇힌 고립된 해방으로 의미가 축소되고 희미해지다가 결국엔 무의미한 죽음과 함께 완전히 소멸된다고 할 수 있다.
『변신』은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를 주제로 하는 일종의 현대적 우화로도 읽혀진다. 예컨대 이 소설은 실직이나 사고 등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삶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현대인의 상황을 벌레의 형상을 빌려 우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벌레의 형상은 인간의 경제적 능력이라는 알맹이를 빼버리고 남게 된 껍데기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변신한 그레고르의 언어에 주목하여 그의 벌레 언어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독한 언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따라서 작품 전체는 진정한 의사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현대인의 소통단절 내지 대화부재 상황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변신』은 벌레의 몸이라는 새로운 육체적 실존 상황 속에서 인간의 의식이 여러 곡절과 굴절을 거치며 오디세이적 체험을 해나가는 실험적 심리 드라마의 측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작품에는 또한 부자 갈등이라는 저자 자신의 오랜 자전적 테마가 아버지 잠자 씨와 아들 그레고르 간의 관계 변화에 대한 묘사를 통해 부분적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그레고르의 변신 전 아버지 잠자 씨는 무기력하고 거세당한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그레고르의 변신 후 그는 -그 자신도 변신(?)하여- 그 동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서 대신 가장 역할을 해온 아들 그레고르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급기야는 폭력을 행사하기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사과 폭탄 장면은 다시 권력을 되찾은 아버지와 권력을 빼앗긴 아들의 대결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변신』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무의식의 은밀한 차원에서 권력관계의 역전과 반전의 드라마를 펼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밖에 그레고르가 액자와 액자 속 여인을 사수하는 장면에서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인간 그레고르의 관능적 본능이 불쑥 솟아오르기도 하고, 여동생 그레테의 바이올린 연주 장면에서는 음악에 감동하여 새롭게 눈을 뜬 인간 그레고르의 마지막 자존심이 죽음을 앞두고 고개를 쳐든다. 그러나 그의 모든 인간적 제스처는 벌레의 허울을 쓰고 행해지는 외로운 동작들이다. 인간의 언어를 상실한 그는 오직 행동으로 말할 뿐이나 그의 행동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변신 전 그와 가장 가까웠던 혈육인 여동생마저도. 나중에는 오히려 그녀가 앞장서서 그의 죽음을 재촉한다. 20세기 초 세계 문학의 지평 위에 홀연히 등장한 그레고르라는 이름의 이 벌레는 과연 무엇인가? 끊임없이 다시 처음 의문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 정체를 밝히고자 이제껏 수많은 글들이 씌어지고 나름의 답들도 제출되었으나 이 괴물 같은 존재는 어떠한 답도 거부한 채 우리의 의식 너머에 수시로 출몰하여 조롱하듯 어른거릴 뿐이다. 소설 속에서 결국 그는 숨을 거두었으나 소설 밖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영원히 살아 있을 모양이다. (글쓴이 - 이재황)
『변신』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들어보니 불룩하게 솟은 갈색의 배가 보였고 그 배는 다시 활 모양으로 흰 각질의 칸들로 나뉘어 있었다. 이불은 금방이라도 주르륵 미끄러져 내릴 듯 둥그런 언덕 같은 배 위에 가까스로 덮여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은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다소 작기는 해도 사람 사는 방으로 손색이 없는 그의 방은 낯익은 사면의 벽들로 둘러싸여 조용히 놓여 있었다. 옷감 견본들이 풀어헤쳐진 채 어지럽게 널려있는 책상 위로는 -잠자는 출장 영업사원이었다- 그가 얼마 전 어느 화보 잡지에서 오려낸 금박의 예쁜 액자에 끼워넣은 그림이 걸려 있었다. 모피 모자를 쓰고 모피 목도리를 두른 채 꼿꼿이 앉아 있는 한 여인의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그녀는 그를 향해 팔뚝을 완전히 가린 두툼한 모피 토시를 쳐들어 보이고 있었다.
그레고르의 시선은 이어서 창 쪽으로 향했다. 칙칙한 날씨가 그를 온통 울적한 기분에 젖게 했다. 빗방울이 후둑후둑 창문의 함석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을 조금 더 자서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모두 잊어버리는 게 어떨까?' 하고 그는 생각했으나 그건 결코 실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버릇이 있었는데,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그런 자세로 누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려고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그는 번번이 등을 대고 누운 자세로 되돌아와 흔들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기를 아마 백 번쯤 해보았을 무렵, 옆구리에서 이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가볍고 둔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그는 그러기를 그만두었다. 그는 버둥거리는 다리들을 보지 않으려고 두 눈을 감았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아아, 세상에! 나는 어쩌다 이런 고달픈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허구한 날 여행만 다녀야 하다니. 회사에 앉아 실제의 업무를 보는 일보다 스트레스가 훨씬 더 심하다. 게다가 여행할 때의 이런저런 피곤한 일들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기차를 제대로 갈아타기 위해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일, 불규칙하고 형편없는 식사, 상대가 늘 바뀌어 결코 오래갈 수 없는 만남과 결코 진실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인간적 교류 등등. 악마여, 제발 좀 이 모든 것들을 가져가다오.'
자세를 틀어보려 시도하였으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잠자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너무 일찍 일어나는 건 사람을 아주 멍청하게 만든단 말이야. 사람은 잘 만큼 자야 하는데. 다른 출장 영업사원들은 다들 하렘의 여자들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가령 내가 주문받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