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城)
프란츠 카프카 지음 | -
성(城)
프란츠 카프카 지음
도착
K가 도착한 것은 밤이 깊어서였다. 마을은 눈 속에 깊이 파묻혀 있었고, 성(城)이 있는 산은 어둠에 잠겨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성의 집사 아들이 여관에서 잠든 K를 깨웠다. 이곳 ‘베스트베스트’ 백작의 성에서 숙박 허가서 없이 머무는 것은 위법이므로 만일 허가서가 없다면 백작령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규칙을 설명했다. K는 자신이 백작의 부름으로 오게 된 측량사이며, 조수들도 내일 도구를 차에 싣고 도착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쉬바르쩌라는 이 젊은이는 성으로 전화해서 프리츠에게 형편없는 누더기를 걸친 삼십 가량 되는 수상한 남자가 백작님의 위임을 받은 측량기사인지 조회하여 회답을 즉시 달라고 부탁했다.
중앙사무국에서 곧 전화가 왔다. 쉬바르쩌는 벌컥 화를 내며 전화기를 내동댕이쳤다. 그는 K를 비천한 불량배라고 단정했다. 농부들, 주인, 안주인과 함께 그가 K를 덮칠 것 같았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로 긴 설명을 듣고 난 쉬바르쩌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무착오라니 정말 불쾌합니다. 어떻게 측량사님에게 해명해 드리라는 겁니까?”
아침 식사 후 K는 맑게 갠 겨울 아침 햇빛 속으로 나갔다. 성은 K의 기대와 대체로 일치했다. 탑이라곤 하나밖에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작은 도시였다. 학교 앞을 지나다 아이들을 인솔하던 선생을 만났다. K는 그에게 백작에 대하여 잘 아느냐고 물었으나 그는 모른다며 프랑스어로 “철없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못해 K의 주소를 받아들고는 황급히 자취를 감추었다. K는 심한 피로를 느끼며 산책 코스를 성 입구까지 연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방문객들을 만났다. 이 고장에 자신 이외에 다른 방문객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들의 이름을 묻자 아르투르와 예레미아스라고 대답했는데 서로 얼굴이 비슷하여 구분하기 힘들었다. K가 길동무를 하자고 권유했으나 못들은 채 바쁘게 지나쳐버렸다. K는 마부 케르스태커의 썰매를 타고 여관으로 향했다. K가 오늘 중으로 도착하게 되기를 희망했던 어둠이 깔린 성은 당분간은 못 만나 보리라는 작별의 표시이기라도 한 듯 멀어져갔다. 여관에 돌아오자 아르투르와 예레미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자네들에게 맡겨둔 도구는 어디에 두었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형편없는 친구들! 측량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나?”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모릅니다.” “자네들이 전부터 나와 함께 일해온 조수들이라면 측량을 잘 알고 있을 텐데.”하고 K가 말했다. 두 사람은 잠잠했다.
K는 그들이 마치 두 마리의 뱀처럼 꼭 닮았기 때문에 혼란이 오므로 두 사람 모두 아르투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정했다. 그들은 유쾌하지 않다고 했지만 K는 명령을 변경하지 않았다. 이방인인 셋은 단결하여야 한다고 주의를 주고 내일 아침 여섯 시까지 성으로 타고 갈 썰매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조수 하나가 타지방 사람은 성으로 들어갈 수 없으므로 허가증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K가 조수들에게 집사에게 전화를 걸도록 지시하자 둘은 전화기로 뛰어갔다. 조수들이 집사에게 내일 성에 K와 같이 가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안돼.”라는 말이 K가 앉아 있는 테이블까지 들려왔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좀 더 자세한 말이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 “내일도 또 그 다음날도 절대로 안 돼.” K는 직접 전화하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기에서는 소음이 들렸다. “누구십니까? 그쪽은?” 상대방이 물었다. K는 갑자기 결심을 한 것처럼 “나는 측량사의 조수 요제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등뒤에서 농부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K가 진짜 이름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요제프?” 상대방이 반문했다. 누군가에 물어보더니 “아르투르와 예레미아스인데요.”라고 말했다. K는 즉시 그들은 새 조수들이라고 말했다. 상대가 다시 말했다. “아니, 옛날부터의 조수요.” K가 “그건 새 사람들입니다. 나는 옛날부터의 조수인데, 측량사님의 뒤를 따라 오늘 왔습니다.”라고 말하자 상대방은 “아니오”라고 소리쳤다. “그럼 나는 누구란 말입니까?” K가 침착하게 물었다. 잠시 후 같은 목소리가 발음을 틀리게 하면서 말했다. “너는 옛날 조수다. 용건은?” K는 전화기를 내동댕이치고 싶었지만 그저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주인이 언제 성으로 찾아갔으면 좋겠습니까?” “절대로 안 돼.” 이것이 대답이었다.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K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바르나바스라는 사나이가 심부름을 왔다며 봉투를 건넸다. 클람이라는 X청 장관의 서한에는 바르나바스가 K의 직속상관이 될 면장(面長)과의 업무연락을 담당하게 될 것이고, K는 면장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으며, 자신도 항상 K의 언동을 주시할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또, 단순히 겉으로만 성과의 관련을 맺고 있는 마을의 노동자가 되려고 하는가, 아니면 실제로는 모든 일을 바르나바스가 가져오는 통지에 의해서 결정지으면서도 단순히 겉으로만의 마을 노동자가 되려고 하는가에 대한 선택이 K에게 허용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었다. K는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다. 성 안의 양반의 무리들과 멀리 떨어져 마을의 노동자로 머물 때에만 성안의 그 무엇엔가 도달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방금 여관을 나간 바르나바스가 보이지 않자 K는 큰 소리로 힘껏 불렀다. 아주 먼 곳에서 희미한 대답이 들렸다. 두 사람은 여관에서는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마주쳤다. K는 바르나바스의 팔짱을 낀 채 여관을 등지고 계속 걸었다. 침묵은 깨지지 않았다. 한참을 걸은 후 바르나바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K는 성의 입구에 도착한 줄로 알았다. 그 동안 언덕을 오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성에 도착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가 도착한 곳은 바르나바스의 집 앞이었다. 그가 양친과 누이인 올가와 아말리아를 소개했다. K는 바르나바스가 성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데려온 이유를 물었다. 그는 K가 무엇인가 심부름시킬 일이 있음에도 여관에서 말하는 것을 꺼리는 것 같아 부모님 집으로 데리고 왔다고 설명했다. K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바르나바스의 생각은 오해였다. K는 혼자서 여관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장 출발했을 것이다. 아침 일찍 바르나바스와 함께 성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도 그는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가족들이 앉아 있는 식탁으로 오라고 했지만 K는 의자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올가가 K를 가까운 여관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K는 이 집의 가장 좋은 침대보다 여관의 잠자리가 나을 것 같았다. K는 조금 전 바르나바스에게 했던 것처럼 올가의 팔에 매달려 ‘헤렌 장(莊)’으로 걸었다.
여관 주인은 성에서 온 사람들의 전용여관이기 때문에 만일 발각된다면 모두 처벌을 당한다며 K에게 방을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K가 주인의 재량으로 방을 달라고 재차 부탁하자 주인은 융통성을 보이며 다행히 머물고 있는 손님이 ‘클람’ 혼자이므로 K가 판단하라고 떠넘겼다. K는 자신의 상관이 머물고 있다는 사태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클람에 대해서는 성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확실히 자유로운 기분을 가질 수 없었다. 자신이 노동자 신분이라는 결과가 드러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중압감을 느꼈다.
클람의 애인 프리다
헤렌 장의 주점에서 K가 맥주를 따라주는 젊고 수수한 금발의 처녀 프리다에게 클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녀는 왼쪽 문의 조그만 구멍으로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중간 키에 뚱뚱보 신사인 그는 맥주컵이 놓여 있는 책상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프리다는 자신이 클람의 애인이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K는 프리다의 옆으로 다가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지 않고 언젠가 조용히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리다가 물었다. “선생님은 나를 클람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거지요?” “당신은 클람을 버리고 내 애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 프리다가 나지막히 속삭였다. “여기 손님들을 내쫓을 테니 올가와 함께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세요.”
K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목로 밑에 몸을 감췄다. 여관 주인이 측량사님이 어디에 있는가 물었다. 이미 나갔다는 프리다의 말에 그는 K가 나가는 걸 본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쾌활하게 웃으며 “틀림없이 이 밑에 숨어 있을 거예요.”라고 말하고는 K 위로 몸을 구부려 재빨리 입을 맞추더니 잡아채듯 몸을 다시 일으켜, 이번에는 얼굴에 수심을 띄우며 말했다. ”여기에도 없군요.“ 주인이 나가자 프리다는 전등을 꺼버리고 목로 밑에 있는 K의 옆에 드러누웠다. 두 사람은 껴안았다. 조그만 몸이 K의 두 팔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정신을 잃은 사람들처럼 뒹굴었다. 이렇듯 얽힌 채 몇 시간을 보냈다. ”프리다!“하고 클람이 불렀다. 그러자 프리다는 큰 소리로 ”나는 측량사님 옆에 있어요. 나는 절대로 가지 않겠어요!“라고 소리쳤다.
목로 위에 그의 두 조수가 충실히 의무를 마친 데서 오는 즐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선생님을 찾아 바르나바스의 집에 갔다가 마침 여기서 만나게 된 겁니다. 둘이 밤새껏 여기 앉아있었는 걸요. 근무하는 것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자네들이 필요한 건 낮이지 밤이 아니야. 썩 꺼져!” 그러자 두 조수가 동시에 말했다. “지금은 이미 낮입니다.”
분명히 낮이었다. 손님들이 올가와 함께 떼지어 들어왔다. K를 발견한 올가는 눈물을 글썽였다. “왜 우리 집으로 가지 않으셨어요? 더구나 저런 여자 때문에!”하고 두세 번이나 되풀이했다. 프리다가 보따리를 들고 나서며 가자고 K를 이끌었다. ‘쭈르 브뤼케 관(館)으로 가려는 게 뻔했다. K와 프리다, 그를 따르는 두 조수. 이들이 일행이었다. 여관에 도착하자 그는 곧바로 자기 방에 가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프리다는 침대 옆 방바닥에 잠자리를 만들었다. 조수들은 K에게서 내쫓기자 이번에는 창문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는 지쳐있었으므로 더는 내쫓을 기력이 없었다. 프리다는 여주인, 하인들과 금세 친밀해졌다. 방은 매우 소란스러웠으나 K는 하루종일 잤다. 다음날 아침에야 아주 상쾌한 기분이 되어 일어났는데, 마을에 도착한 지 벌써 나흘째가 되었다.
K는 프리다와 단둘이 있고 싶었지만 조수들이 방해가 되었다. 그들은 비록 쭈구리고 앉아 있는 모양이 큰 실뭉치 같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매우 주의 깊은 관찰자, K만을 응시하고 있는 관찰자였다. K는 간신히 그들을 내쫓고 프리다와 침대에 누웠다. 그들은 포옹하고 육체를 서로에게 내맡겼지만 무언가를 요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욱 되살아날 뿐이었다. 절망한 개가 땅바닥을 후비듯이 그들은 서로의 가슴팍을 후볐다. K가 잠에서 깨자 방에는 조수들과 여관집 안주인이 있었다. 프리다가 이방인인 K로 인하여 클람 씨와의 관계도 끊어진 만큼 유감스럽지만 이제 K는 그녀와 결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안주인이 말했다. K는 대답 대신 클람과 이야기하기를 원한다고 했지만, 안주인은 그가 성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림없는 일이라고 했다. K가 조수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려 하자 안주인은 그에게 어디를 가든 이 고장에서는 가장 무지한 인간임을 잊지 말고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사환이 된 K
면장은 이 성에는 측량사가 필요 없으며, 사소한 행정적인 착오였다고 설명했다. K는 가져온 클람의 편지를 보여주며 이미 측량사로 채용되었다는 사실을 면장에게 알렸다. 면장은 K가 측량사로 채용되었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내용이 편지에는 없으며 K가 백작을 위해서 채용되었을 경우, 클람이 개인적으로 돌봐주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편지 내용을 해석했다. K는 면장에게 쉬바르쩌와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프리츠가 측량사로 채용되었음을 확인했던 사실을 일러주었다. 그러나 면장은 전화 받은 상대와 일면식도 없는데 그를 프리츠라고 믿을 수 있느냐고 따졌다. K는 만사를 불명확한 미결 상태로 두고 추방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불평했다. 그러자 면장은 이제껏 애매모호하게 일을 처리한 것은 K에게 가장 예의바른 대우를 보증해주려고 했기 때문이며, 누구도 K를 붙들어 두지 않지만 역시 누구도 K를 추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K가 안주인의 방에 들어서자 그녀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며 방안의 다른 사람들을 나가게 했다. 조수들은 마당으로 나가 두 발을 교대로 껑충껑충 뛰며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보려고 애썼다. 안주인은 클람이 자신에게 보냈던 사환의 낡은 사진을 K에게 보이며 20여 년 전 그와의 세 번에 걸친 만남에서 자신이 간직하게 된 숄과 나이트 캡을 보여주며 추억에 잠겼다. 안주인의 고백은 결혼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K에게 걱정을 안겨주는 불쾌한 일이었다. K는 프리다가 그와 결혼한 이후에도 클람에 대하여 정조를 지킨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안주인은 프리다는 바람이 난 경우이고 자신은 클람이 더 이상 부르지 않았던 것이므로 분명 차이가 있다고 K를 힐난했다.
안주인은 K가 클람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어했다. K는 이제껏 진짜 관리를 만나본 적이 없으므로 그를 만나 신상의 문제를 물어볼 셈이었다. 안주인은 자신의 주선으로 K가 클람을 만나게 될 때까지 독단적인 행동을 삼가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K는 거절했다. 면장과의 면담이 신통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안주인은 면장의 능력 없음을 탓하고 모든 것은 그의 아내가 다룬다고 일러주었다. K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자 안주인은 K는 이 지방에서 모든 것을 잘못 보고 있다고 불평했다.
선생이 K를 찾아왔다. 그는 만나자마자 존경받을 만한 면장에게 무례하게 했던 행동을 질책하더니 면장과 K와의 대화에 대한 조서를 작성해두었다고 말했다. K가 반발하며 기록을 조서라고 부르는 이유를 따졌다. 선생은 엄밀한 질서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며 면장이 선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K에게 학교사환 자리를 제공하기로 했음을 전했다. K는 추호도 그 자리를 맡을 생각이 없다고 거절했다. 선생은 화가 나서 방을 나가 버렸다. 잠시 후 프리다가 선생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안주인은 K에게 그녀와 클람과의 관계를 고백한 것과 그녀의 요구를 K가 냉담하게 거절한 데 대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K를 내보낼 결심을 했다고 프리다가 알려주었다. 프리다는 K에게 사환자리를 맡으라고 간곡히 설득했다. 그가 오늘 안으로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잠자리도 구하지 못하게 될 처지가 되므로 선택을 망설이지 말라고 거듭 재촉했다. K는 마지못해 사환직을 수락한다고 선생에게 말했다. 선생은 두 개의 교실 청소, 비품의 수선, 선생의 심부름 등 근무상의 의무를 설명하며 잠자리는 두 개의 교실 중 하나를 사용하도록 했다. 그리고 조속히 프리다와의 관계를 합법화할 것을 요구했다.
프리다가 보수에 대해 묻자, 한 달 동안 지켜본 후 지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측량사나 사환이 필요치 않은 실정이어서 마을 사람들이 경비를 지급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선생은 면장의 아량과 보살핌으로 결정된 것이므로 K는 면장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는 선생에게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을 채용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 B가 자신이 채용되는 것을 승낙한다면,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B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은 쓸데없는 공상을 버리지 않는 한, 쓸모 있는 사환이 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프리다는 오늘 당장 학교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 선생이 떠난 후 K는 외출 준비를 마친 후 따라나오는 조수들에게 이사를 도우라고 억지로 떼어놓고 여관을 나왔다. 프리다는 문 앞까지 K를 배웅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소? 그런데 왜 만류하지 않소?” “여러 가지 곤란을 겪으시겠지요. 그렇지만 내가 말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프리다는 돌아올 때는 이곳으로 오지 말고 학교로 직접 오라고 주의를 주고 K에게 작별 키스를 했다.
클람은 만나지 못하고 신문을 당하다
헤렌 장의 주점에서 K는 클람을 들여다보던 문의 손잡이를 돌렸으나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열쇠구멍도 찾을 수가 없었다. 프리다의 후임인 페피가 프리다의 안부를 물었다. 만일 그녀가 무엇이든 성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녀를 통하여 성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K는 불현듯 페피에게 품게 된 욕정을 지우고 클람이 타고 갈 마차가 세워져 있는 현관으로 갔다. 클람을 기다리던 마부 케르스태커가 마차 안에 있는 꼬냑을 마시라고 권했다. K는 안락한 마차 안에서 꼬냑을 마시다가 주위가 소란해지자 꼬냑을 엎지른 채 마차 밖으로 뛰어나왔다. 기다리던 클람은 없고 건강하고 혈색이 좋은 젊은이가 K를 발견하고 어떻게 이곳에 있느냐고 물으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일렀다. K가 사람을 기다려야 하므로 갈 수 없다고 거절하자 그 청년은 “여기에서든 아니면 나를 따라오든, 당신은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며 마부에게 말을 풀어줄 것과 썰매를 치울 것을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