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 나탄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지음 | -
현자 나탄(Nathan der Weise)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살라딘 왕: 예루살렘의 왕.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구상된 인물. 너그럽고 관용적인 성격의 소유자. 이슬람 교도
나탄: 부유하고 현명한 상인. 유대교도. 종교의 우위성을 비교하라는 질문에 현명한 답변을 한다.
레하: 나탄의 양녀. 원래는 기독교도인데 양친을 여의고 아기였을 때 나탄에게 맡겨져성장. 화재사건 때 젊은 기독교 기사의 구조로 목숨을 건진 후 그와 사랑에 빠진다. 젊은 기사기독교 기사. 전쟁 중에 포로로 생포되었다가 살라딘 왕의 은사로 풀려남. 레하를 화재 사건에서 구해주면서 나탄과 관계를 맺게 된다.
다야: 기독교인이지만 나탄 집안의 집사 겸 레하의 말동무 역할을 해준다.
예루살렘 기독교 대주교: 격식만을 중시하는 비인간적인 종교인
탁발승 알 하피: 이슬람교도 탁발승이지만 나탄과는 친구처럼 지낸다. 살라딘의 재무관역할을 잠시 하다가 다시 승려의 자리로 돌아간다.
나탄의 귀향 그리고 딸의 목숨을 구한 은인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긴 여정에서 유대인 상인 나탄이 돌아온다. 나탄을 반갑게 맞이하는 집사 다야는 주인이 부재 중 일어났던 화재사건에 대하여 상세하게 고한다. 나탄은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랑스러운 딸 레하가 화재사건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것을 알게 된다.
나탄의 딸 레하를 구한 젊은 기독교 기사는 며칠 전에 이곳에 포로로 끌려온 기독교도인데 예루살렘의 왕인 살라딘이 사면을 해준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이다. 아무리 휴전상태라 해도 지금은 어찌되었건 전쟁 중이었고 더구나 이슬람교도인 살라딘 왕이 포로로 잡혀온 하찮은 일개 기독교 기사의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사실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젊은 기사는 뜻밖에 다시 얻은 목숨을 주저하지 않고 레하를 구하는 데 내던졌던 것이다. 만약에 그가 없었더라면 사랑스러운 딸을 다시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탄은 진저리를 쳤다. 그렇게 훌륭한 선행을 행한 은인에게 값진 금은보화로 보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몹시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레하의 대답은 그를 당황하게 했다. “그분이 어디서 오셨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디로 가셨는지도 몰라요.”
단지 그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만을 나탄은 내심 바라며, 어떻게 해서든 은혜에 보답하겠노라고 결심했다. 더구나 사랑스러운 딸 레하 역시 그를 만나기를 간청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탄의 마음은 조급할 뿐이었다. 마침 레하의 말동무 겸 집사 일을 맡고 있는 기독교인 다야는 그 기독교 기사가 살라딘 왕의 면전에서 어떻게 목숨을 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나탄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살라딘 왕에게는 특별히 사랑했던 동생이 있었는데, 기독교 기사가 우연하게도 왕의 죽은 동생을 닮았고 그로 인해 목숨을 건진 것이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랜만에 딸과의 만남을 기뻐하고 있던 중에 나탄과 친하게 지내며 종종 장기친구가 되어주던 이슬람교 탁발승 알 하피가 나탄을 방문했다. 그는 최근에 살라딘 왕의 재무관이 되었다. 탁발승 알 하피는 왕실의 재정업무를 담당하지만 왕실의 재정이라는 것이 생각같이 넉넉하지가 않았다. 말 그대로 왕의 재산은 날마다 해질녘이 되면 완전히 바닥이 날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탁발승 알 하피는 재무관으로서 고충을 나탄에게 하소연했다. 그리고 재무관 일을 나탄에게 넘기려는 의도를 숨긴 채 넌지시 “영감님께는 큰 벌이가 될 수 있어요. 금고가 썰물이면 영감님이 수문을 열어 대신 지불하시고 마음내키시는대로 이자를 챙기시면 되니까요.” 하며 나탄을 유혹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탄은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이슬람교 탁발승인 알하피가 종교인으로서 원래 머물렀던 사막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권유했다. “이보게나, 탁발승인 자네가 세상에 섞여 들어갈수록 자네의 인간성을 잃어버릴 걸세.”라는 의미심장한 충고를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는 알 하피의 등뒤로 건네주었다.
탁발승 알 하피가 자리를 떠나자마자 다야는 급히 달려와 레하를 구해준 기독교 기사가 마침 종려나무 밑을 거닐면서 야자열매를 따먹고 있다고 전했다. 더구나 자기 딸 레하가 사랑의 열망이 담긴 눈빛으로 그 기사를 바라보고 있다는 말까지 전해들으니 나탄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나탄은 다야에게 얼른 달려가서 레하의 아버지로서 정중하게 만나기를 청한다고 전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다야의 대답은 너무나 단호했다. “그분은 유대인에겐 오지 않습니다.”
한편 종려나무 광장에서 야자열매로 허기를 때우고 있던 젊은 기독교 기사에게 한 수사가 접근했다. 그는 예루살렘 기독교 대주교의 명을 받고 온 수사였다. 그는 이 기사단원에게 대주교의 중요한 명령을 전달하고자 여기에 온 것이다.
대주교가 내린 중요한 명령이란, 전 기독교 세계를 위하여 현재 휴전 중에 있는 이 전쟁이 다시 전면적을 시작될 경우를 대비해 살라딘 왕을 배신하는 서신을 필립왕에게 전달해 달라는 것이었다. 젊은 기사단원은 살라딘 왕에게 은혜를 입은 몸으로서 자신이 할 만한 적합한 일이 아니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수사는 “인간 앞에서 비열한 짓도 하나님 앞에서는 비열한 짓이 아니다.“라는 말로 기사단원을 설득하려고 애써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수사를 내쫓은 젊은 기사 앞에 다가온 다야는 레하 아가씨의 부친 나탄이 오늘 많은 값진 물건을 싣고 도착했으며 정중하게 초대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탄에 대한 세상의 평판을 말해줌으로써 어떻게 해서든 젊은 기사를 나탄의 집으로 데려갈 작정이었다. “유대민족은 그분을 제후처럼 섬기고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분을 현자 나탄이라 부른답니다.” 또한 은혜를 입은 사람의 아버지로서 예의를 충분히 갖추고자 하는 나탄의 의도를 말해주지만 그의 마음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다야는 이제 최후의 방법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젊은 기사와 같은 기독교인인 자신의 과거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다야 역시 유대인이 아니며 기독교도로서 유대인 소녀인 나탄의 딸 레하를 기르기 위해서 이곳에 온 연유와 귀족출신인 자신의 남편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한 이런 설득도 소용이 없었다. 젊은 기사는 차갑게 대답할 뿐이었다. “앞으로는 성가시게 굴지 마시오. 유대인은 유대인일 뿐이오. 나는 무뚝뚝한 독일인일 뿐이오.”
조금씩 허물어지는 종교의 벽
예루살렘의 왕인 살라딘은 왕궁에서 누이동생인 시타와 내기장기를 두고 있었다. 살라딘 왕은 누이에 대한 사랑으로 장기에서 무조건 져주는 것은 물론 오빠로서 누이동생에게 훌륭한 신랑감을 구해 주고자 하는 맘이 간절했다. 살라딘 왕이 점찍어둔 신랑감은 바로 영국과 노르만디의 왕인 리처드 1세의 동생이었다.
이전에 리처드 1세는 살라딘의 동생인 멜렉과 자신의 동생을 혼인시켜서 예루살렘의 왕으로 삼으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기독교 측이 이슬람교도인 멜렉의 개종을 요구함으로써 이 혼인은 결렬되고 말았다. 시타는 그때 일을 떠올리며, 오빠의 그와 같은 바람과 기독교도들의 종교적 편견에 대해서 사뭇 비난조로 말했다. “조물주께서 남자와 여자에게 부여하신 사랑,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에게만 기대할 수 있다는 듯하더군요!”
하지만 살라딘 왕의 생각은 기독교인이나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의 잘못이기보다는 오히려 기독교 기사들로 인하여 그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쪽으로 더욱 기울어졌다. 기독교 기사들은 살라딘의 동생 멜렉에게 리처드의 누이동생이 지참금으로 가져오기로 되어 있던 아카 지방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고, 휴전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은 채 공격을 감행한 데 더욱 큰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현재로서 살라딘 왕의 마음의 평정을 가장 빼앗는 것은 다름 아닌 돈 문제였다.
때마침 재무관인 탁발승 알 하피가 등장했다. 살라딘 왕은 일단 누이동생 시타와 둔 내기장기에서 졌으니 그에 따른 내기 돈을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장기판을 자세히 살펴본 알 하피는 결코 진 장기판이 아님을 확인하고, 다시 두기를 종용했다. 그러나 살라딘 왕은 막무가내로 자기가 내기에서 진 걸로 하며 돈을 지불하라고 재촉했다. 왕실의 재무관인 탁발승 알 하피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시타와 그 사이에 몰래 맺은 약속을 이제는 살라딘 왕도 알아야 할 때가 왔음을 알 하피는 직감했다.
알 하피는 그 동안 왕실의 살림살이가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가를 서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로 살라딘 왕의 누이동생인 시타가 그 동안 살라딘 왕과 장기를 두어 딴 돈은 물론이거니와 생활비로 준 돈을 전혀 받지 않았으며, 궁전의 살림살이를 그녀가 도맡아 했으며, 왕의 지출을 완전히 혼자서 감당해 왔음을 고백했다. 살라딘 왕은 시타의 행동에 감동했지만, 이제 어딘가에서 다시 돈을 변통하지 않으면 안되는 급박한 상황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딘가 돈을 꾸어줄 만한 사람이 없겠는가?”
살라딘 왕의 급박한 질문에 시타는 그 동안 평판으로 익히 들어온 한 유대인을 추천했다. “그 유대인의 신이 이 세상의 보화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과 가장 귀한 것을 넉넉하게 주었다는 그 사람이구만. 그 유대인에게 가장 하찮은 것은 재물이요, 가장 귀한 것은 지혜라고 했던가.”
그러나 알 하피는 “그는 유대인 가운데에서 출중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는 합니다. 비록 그렇게 많이는 아닐지라도, 아주 흔쾌히, 전혀 거드름을 부리지 않고서요. 유대인과 기독교인, 이슬람교도와 배화교도, 모든 종교인들이 그에게는 차별되지 않습니다. 그는 그냥 나누어줄 뿐, 꾸어주지는 않습니다.”라며 그 유대인이 단지 가난한 사람에게만 너그러울 뿐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다른 사람을 찾아보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시타는 계속해서 유대인 상인 나탄의 고매한 인품에 대해서 살라딘에게 말하며, 나탄을 얽어맬 계책을 꾸며 보기로 했다.
한편 종려나무 밑을 거닐고 있던 젊은 기사에게 나탄이 천천히 다가갔다. “내 이름은 나탄이고, 당신이 아량을 베풀어 불 속에서 구해준 여자의 애비랍니다.” 나탄은 그에게 자신은 부자이며, 무엇을 원하더라도 은혜를 갚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젊은 기사는 유대인을 교만하고 독선적이라 생각하고 있어, 유대인인 나탄과는 그 어떤 관계도 맺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의사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나 나탄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우리는 꼭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내 민족을 마음대로 경멸하세요. 우리는 둘 다 민족을 선택하지 않았어요. 기독교인와 유대교인은 기독교인이고 유대교인이기 이전에 인간이 아닌가요? 아! 인간인 것으로 족한 사람을 당신에게서 하나 더 발견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탄의 이와 같은 설득에 젊은 기사의 마음도 서서히 열렸다. 젊은 기사는 편협했던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이제는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서로 친구가 되기를 나탄에게 청했다.
나탄과 젊은 기사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다야가 급히 다가왔다. 그녀는 살라딘 왕이 사자(使者)를 보냈다고 나탄에게 고했다. 나탄은 젊은 기사를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초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젊은 기사는 이제 한층 더 다정다감하게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의 이름은 쿠르트 폰 슈타우펜이고, 숙부와 부친의 유골도 이곳 예루살렘에 묻혔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말을 듣고 흠칫 놀라는 나탄의 눈길에 기사는 알 수 없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며 자기의 갈 길을 재촉하며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나탄은 젊은 기사가 자신이 알고 있던 볼프라는 사람과 너무나 닮아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살라딘 왕을 만나러 가려고 행장을 꾸리는데 마침 왕실의 재무관인 탁발승 알 하피가 나탄의 집을 방문했다. 알 하피는 나탄의 면전에서 살라딘 왕을 위하여 돈을 구걸하고 다니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살라딘 왕이 보낸 사자로부터 이미 입궁을 명령받은 사실을 나탄은 알 하피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탁발승 알 하피는 나탄이 앞으로 살라딘 왕의 돈 문제로 고통을 겪게 될 것을 우려하며, 자기와 함께 다시 종교로 귀의하자고 권유했다. 그러나 나탄은 이를 거절한다.
반지의 우화가 말해주는 진리
레하는 젊은 기사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기독교도인 다야는 레하에게 장차 기독교적인 힘에 이끌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레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평소에 많은 위안이 되긴 했지만 자신은 결국 유대인으로서의 길을 가겠다고 한다. 이때 레하의 생명의 구원자인 기사가 들어왔다. 그는 말을 멈추고 왠일인지 레하를 넋놓고 바라보았다. 그는 모세가 고뇌에 차서 오르내렸던 시내산에 다녀왔다면서 자신이 어떤 심적 고통 속에 휩싸여 있음을 암시했다. 그리고 레하의 음성과 레하의 눈빛을 은근히 바라보았다. 젊은 기사는 잔뜩 수줍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레하의 부친인 나탄은 그에게 레하를 사귀어보라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사라졌다. 눈치가 빠른 다야는 젊은 기사가 이미 사랑에 빠졌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왕궁에서 나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살라딘과 그의 누이 시타. 그들은 마치 중요한 전투에라도 임하는 듯, 나름대로 계략을 짜고 있었다. 말하자면 나탄이라는 자가 만약 근심 많고, 겁 많고 인색한 유대인이라면 올가미가 필요할 것이고. 만약 현명하고 선량하다면 쉽게 그들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남매가 대화를 하던 중 나탄이 궁정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예전부터 현자로서 나탄의 명성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나탄은 살라딘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먼 나라에서 사온 값진 물건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우선 물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살라딘 왕이 원하는 것은 뜻밖의 것이었다. “어떤 믿음이, 어떤 율법이 그대를 가장 승복시켰소? 나는 이슬람교도이고, 당신은 유대교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기독교인이 있소. 이 세 종교 가운데 어느 것 하나만이 참된 종교일 것이오. 그러니 그대의 식견을 알려주고 그 근거를 말해주시오.”
살라딘 왕은 이렇게 난해한 질문을 던진 채 사라져 버렸다. 나탄은 살라딘 왕이 분명 자신의 돈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곳 궁전에 들어왔는데, 오히려 그가 원하는 것이 ‘진리’라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자 나탄은 침착하게 ‘반지의 우화’라는 옛날 이야기 한편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 옛날에 동방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값어치를 지닌 반지 하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반지는 끼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과 인간의 사랑을 받도록 만드는 신비한 힘을 지녔습니다. 그는 반지를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물려주면서 그 아들도 다시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반지를 상속해 주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출생 순서와 관계없이 오직 그 반지의 힘만으로 집안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고 정했습니다. 그 반지가 그렇게 아들에서 아들로 전해져 오다가 마침내 아들 셋을 둔 아버지에게 넘어왔습니다. 세 아들은 모두 아버지에게 순종했으며, 아버지 역시 세 아들을 똑같이 사랑했습니다. 마음이 약한 아버지는 세 아들 모두에게 반지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진품과 진배없는 모조품을 만들라고 명했습니다. 완벽하게 똑같은 반지로 인하여 그 어느 반지가 진품인지 도저히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들은 저마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신념이 있었고, 그렇게 사랑하는 아버지가 가짜 반지를 주었다고 생각할 수조차도 없었습니다. 아들들은 서로를 고소했고, 재판관 앞에서 모두 직접 아버지에게 반지를 받았노라고 맹세했습니다. 이에 재판관은 그들이 아버지를 법정에 데려오지 못한다면 그들 모두를 법정에서 쫓아내겠노라고 선언하게 됩니다. 만약 그러고 싶지 않다면 누가 진짜 반지를 갖고 있는지 고백하라고 합니다. 재판관은 잠시 후 진짜 반지가 가지는 신통력, 즉 인간과 신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반지의 효력이 사실이라면, 세 형제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세 형제에게 재판관은 그들이 저마다 아버지로부터 반지를 받았으며, 자기가 진짜 반지를 받았다고 알고 있다면, 그것이 진짜 반지라고 믿으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아버지의 공평하고 편견 없는 사랑을 본받을 것을 최종적으로 판결합니다. 그 반지가 가지는 신통력을 각자 실현시키고, 더욱이 온유함과 진정한 화목과 올바른 행동과 신에 대한 진정한 복종으로써 그 반지가 가지는 신통력을 더욱더 높이도록 하라는 판결을 최종적으로 내려주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