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페리온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 -
히페리온(Hyperion)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히페리온: 멸망한 조국 그리스를 그리워하는 청년. 우연히 운명적인 사랑 디오티마를 만나 애달픈 사랑을 한다.
벨라르민: 히페리온이 조국 그리스를 떠나 독일에 망명했을 때 우정을 맺은 독일인
디오티마: 히페리온의 운명적 사랑
우정의 그루터기
조국을 잃은 청년, 그가 고뇌하고 있는 것들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조국의 풀과 땅, 꽃과 하늘... 그것들이 주는 향수에 괴로워하는 청년, 히페리온. 그는 독일로 망명했을 당시 친하게 지냈던 친구 벨라르민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벨라르민에게
사랑하는 조국 땅은 나에게 또 다른 기쁨과 번민을 안겨준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코린트 지협의 고지(高地)로 산책을 하러 간다.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꿀벌처럼 내 혼은 가끔 바다와 바다 사이를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내가 딛고 서 있는 햇볕에 이글거리는 산과 산은 양쪽에서 그 소맷부리를 시원스럽게 바다에 씻기고 있다. ‘만약 내가 천 년 전에 이곳에 서 있었더라면…….’ 이제야 과거를 회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폐허가 된 고대의 돌더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타인이 내 조국의 일을 물어볼 때, 나는 늪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과연 내 조국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느날 그의 정신적 지주이던 스승 아다마스가 우연히 그리스 땅에 오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스승은 만나자마자 이별을 약속하지만 그 뒤에 남겨진 스승의 소중함은 히페리온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된다.
벨라르민에게
자네는 플라톤과 스텔라(플라톤의 제자)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있는가? 나도 그를 그렇게 사랑했고, 또 그렇게 사랑받았었다. 오오, 나는 분명 행복한 청년일 것이다. 대등한 자끼리 친구가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인물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클 수 있도록 끌어올리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일일 것이다.
내 스승, 아다마스는 인간을 낳은 근원의 힘을 찾기 위해 이곳 폐허가 된 땅, 그리스에 왔었다. 아직도 그가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로 다가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직도 나는 그의 인사말과 그의 질문 하나하나가 뒤에서 들리는 듯하다.
나는 아다마스와 함께 스인루스 산상에 갔었다. 우리가 산상에 닿았을 때는 아직 새벽이었다. 우리가 멀리 주위를 내다보고 있었을 때 태양은 벌써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태양은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와 함께 황폐해진 우리 국토와 신전과 그 신전의 원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신과 같아지도록 해라.” 아다마스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고 태양신 쪽으로 향했다. 그때 아다마스가 내게 들려준 한마디, 한마디를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은 지금까지 슬프면서도 즐거워진다. 인간이 이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안 있어 우리는 헤어졌다. 난 허전한 마음을 꾹 참으면서 마지막으로 그를 껴안았다. “저에게 축복의 말을 한마디만, 아버지시여.”라고 그를 바라보며 나는 속삭였다. 그는 너그러운 얼굴로 미소지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외쳤다. “이 사람을 지켜주소서. 보다 나은 시대의 신령들이여, 그리고 당신의 불사의 경지로 이 사람을 끌어올려 주소서, 당신들 하늘과 땅의 모든 다정한 힘이여, 이 사람과 함께 있어 주소서…….”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마음에는 신이 있단다. 그 신은 물의 흐름처럼 운명을 인도하고 지배한다. 그리고 만물은 그 신의 영역에 있다. 그 신이 특히 너와 함께 있기를…….”
하나이기에 아름답다
하늘이 파랗게 갠 4월 어느날, 어느 한 지인(知人)이 칼라우레아로 히페리온을 초대하게 된다. 배에 오른 히페리온은 육지에서 맡아보지 못했던 바다 내음과 공기를 온몸으로 맡으며 항해하기 시작한다. 도착한 그 곳은 소나무 골짜기의 흐름 속에서 레몬 숲과 종려나무와 가련한 풀과 성스런 포도로 무성했다. 히페리온은 말할 수 없는 동경과 평화로 가득 차 있다. 어떤 기이한 힘이 히페리온을 점령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런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히페리온은 그곳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는데…그 이야기는 친구 벨라르민에게 띄우는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벨라르민에게
나는 한때 행복한 적이 있었다. 벨라르민이여. 그렇다면 지금도 행복한 것이 아닐까? 그녀와의 만남이 한순간으로 그쳤다 해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그리고 내가 죽은 다음에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이 내 눈앞에 나타났던 것을.
그녀의 이름은 아름다움이다. 자네는 원하는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 있는가? 지금도 나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느낌으로 알 수는 있다.
과연 그녀와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강물이 바다로 순리대로 흘러가듯이 난 그녀의 손을 잡고 넓고 넓은 바다로 흘러가려 한다. 그리고 그 길을 안내해 주는 사람은 바로 내 운명적인 사랑, 디오티마… 당신과 함께 내 삶은 시작한 것이다. 내가 당신을 몰랐을 때의 나날은 삶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
오오, 디오티마여, 디오티마여, 그대 숭고한 사람이여!
벨라르민에게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잊도록 하고, 하루하루를 헤아리는 것을 그만두자. 두 개의 영혼이 이처럼 서로를 예감하는 순간에 비하면, 몇 세기의 세월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도 나는 노트라가 처음으로 나를 그녀의 집으로 안내해 주던 그때의 저녁을 그려본다. 그녀의 모친은 사려 깊고 부드러운 여인이었고, 그녀의 동생은 솔직하고 쾌활한 청년이었다. 그 두 사람의 태도와 말투에서, 그들이 디오티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녀가 내게 다가와, 내 귀볼에 그 깨끗한 숨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나는 그때의 그 심정을 말로 다 형언할 수가 없다. 그때 나는 떨리는 마음을 조아리면서 어떤 말도 그녀에게 건넬 수가 없었다. 그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황혼은 우리의 이별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난 그녀에게 “편히 쉬십시오, 천사의 눈이여!” 라는 말만 남긴 채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운명의 그날, 가슴 떨린 마음을 간직한 채 살고 있다네. 아니 난 영원히 그 마음 그대로 살 거라네.
어느날 디오티마가 아프다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유는 어려서부터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했다. 히페리온이 간직할 수 있는 행복도 잠시였던가. 그녀와 영원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의 심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벨라르민에게
그녀는 내 것이 아니었던가? 운명의 여신이여, 그녀는 내 것이 아니었던가? 깨끗한 샘물이여, 그것을 증언해 주지 않으련가!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다소곳이 듣고 있던 나무들과 햇빛과 에덴이여, 그녀는 내 것이 아니었던가? 생의 온갖 음조 속에서 그녀는 나와 하나가 된 것이 아니었던가?
나만큼 그녀의 가치를 안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그리고 나만큼 그녀의 빛을 모은 거울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가 내 기쁨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찾아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장려함에 대해 놀라지 않았을까. 아아, 내 마음처럼 언제 어디서나 그녀 곁에 있었던 마음이 어디 또 있을까. 내 마음만큼 그녀를 채워 주고, 또 그녀에 의해 채워지고, 눈썹이 눈을 위해 존재하듯이 다만 그녀의 마음을 포옹하기 위해 존재한 마음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 두 사람은 하나의 꽃이 되었고, 우리 혼은 하나로 융합된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 나아질 곳 없는 전쟁터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던 알라반다에게서 소식이 오게 된다. 러시아가 조국의 불법 통치자 터키에 선전포고를 했으니 그것을 기회 삼아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러 같이 나가자는 것이다. 그러자 히페리온은 디오티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 전쟁터에서 그는 디오티마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전한다.
디오티마에게
나는 이제야 당신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에피디우로스 산맥의 정상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저 멀리 아래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디오티마, 당신의 섬입니다. 그리고 그 앞쪽에 내 결전장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내가 승리할 것인가 전사할 것인가가 결정됩니다.
내 혼은 행위의 기쁨과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그리스의 계곡들을 멀리 바라보는 내 눈은 마치 마술을 걸려는 듯 빛나고 있습니다. 또다시 일어서라 신들의 도시들이여…….
알라반다와 히페리온은 주민들을 지휘하면서 예상 밖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하지만 승리감에 도취된 주민들은 나쁜 짓을 자행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도적으로까지 변해 버린다. 지휘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로부터 심한 경멸과 멸시를 받게 된 히페리온은 삶에서 많은 회의를 느끼게 된다. 자신 앞에 놓여진 모든 것들이 덧없게 생각되었다. 심지어 디오티마에게 이별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디오티마에게
비록 소규모전이지만 우리는 세 번을 거듭해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양군의 병사들이 뒤섞인 채 안타깝게 죽어가긴 했지만.
나바린은 우리 것이 되었으며, 우리는 지금 고대 스파르타의 폐허, 미시스트라의 성지를 우리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나는 알바니아 군대에서 빼앗은 군기를 교외의 폐허에 세웠고, 승리의 기쁨으로 쓰던 터키풍의 터번을 에우로타스 강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후로는 그리스의 투구를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무척이나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을 만나, 당신의 손을 잡아 이 가슴에다 꼭 대고 싶습니다. 기쁨으로 터질 것 같은 이 가슴은 주체할 길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곳에 와 내 자랑스러운 모습을 본다면 더없이 행복할 텐데... 나의 무리한 욕심이겠지요.
디오티마에게
모든 것은 끝났습니다. 디오티마여! 내 부하가 분별없이 약탈하고 살육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동포까지 죽이고 있습니다. 미시스트라의 그리스인은 아무 죄도 없었는데, 겨우 죽음을 면한 자들도 갈 곳을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사색이 된 그들의 우는 얼굴은, 천지를 향해 야만인에 대한 복수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야만인의 선두에 서 있던 자가 바로 나였습니다.
당신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요? 나는 명예로운 부상을 입었습니다. 충실했던 부하 하나가, 내가 잔학 행위를 말렸다고 내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내가 미쳤다면, 이 상처에서 붕대를 뜯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내 피는 그 피의 고향, 이 슬퍼하는 대지로 돌아가겠지요.
나는 지금 다시 고독해졌습니다. 알라반다와 나는 조국을 살릴 수 있는 희망도, 승리에 대한 기쁨도 잊은 지 오래됐습니다.
앞으로 어찌 되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운명은 나를 방향도 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나는 죄를 받는 듯합니다. 당신을 생각하면 몸이 타는 듯이 부끄럽습니다. 이 고행이 언제까지 계속되려는지…….
아아, 나는 당신에게 새로운 그리스를 약속했는데, 이제 당신이 듣고 있는 것은 이 탄식의 노래뿐이군요.
디오티마에게
나는 이것저것 생각하며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았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나를 저주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는 당신에게 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단념해 달라고!
나는 당신에게 있어서 이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정한 사람이여, 당신을 생각하는 내 마음은 말라 버렸습니다. 내 눈은 이제 생명이 있는 것을 볼 수 없으며, 내 입술은 바싹 말라 버렸습니다. 사랑의 향기로운 숨결도 이젠 가슴에서 솟아나지 않습니다.
아아, 나는 마지막 기쁨조차 부숴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슴에서 솟는 탄식 소리가 무슨 소용일까요. 나는 당신에게 죄를 진 몸입니다. 나는 돌아갈 고향도, 쉴 곳도 없는 몸입니다.
안녕, 사랑하는 사람이여, 안녕.
영원히 작열하는 생명
한 장의 이별 편지만 남긴 채 히페리온은 러시아 함대의 승무원이 되어 해전에 참가하게 된다. 그러나 운 나쁘게도 중상까지 입게 되는데 알라반다의 지극한 간호 덕분으로 회복한다. 히페리온은 병상 중에서도 늘 잊지 못하던 사랑하던 디오티마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날아온 것은 디오티마가 그를 그리워하다 병에 걸려 죽었다는 소식뿐... 또 한 번의 시련을 겪게 되는 히페리온, 그는 그 심정을 친구 벨라르민에게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벨라르민에게
그 접전이 끝난 뒤에도 나는 엿새 동안이나 단말마의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 병상 생활은 어둔 밤과도 같았다. 때때로 고통이 번개처럼 번쩍거려 그 어둠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겨우 의식을 차렸을 때 나는 곁에서 지쳐 쓰러져 있는 알라반다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거의 혼자 나를 간호해 주었다고 한다. 이제까지의 그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눈을 뜰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기쁨의 눈물을 글썽대는 친구를 볼 수 있다니 …더 이상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벨라르민에게
벨라르민, 난 이제 다친 곳도 어느 정도 나아가고 기분도 전보다는 한결 좋아진 것 같다.
이렇게 빨리 회복하게 된 것은 아마 계절 탓이 아닌가 싶다. 바람은 몽롱한 듯한 살랑살랑 불어오고, 밝은 햇빛은 꽃비처럼 부드럽게 내리비추고…….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와 공기와 햇빛을 만끽할 수 있다니 절로 눈물이 난다.
그런데, 그런데 이 아름다운 자연을 나 혼자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 내 곁에 그녀가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녀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난 궁금했다.
이때 알라반다가 “이것저것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좋아. 자네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는가”라며 내게 말을 건넸다. 난 알라반다에게 내 심정을 털어놓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녀에게 다시 편지를 써서 그녀가 내 곁에 올 수 있도록 하기로 말일세. 그녀가 내 고백을 다시 받아줄지 그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어쩔 수 없네. 난 결심했다네.
벨라르민에게
난 지금 무척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네.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네. 내가 그렇게 사랑하던, 내 곁에 영원히 두고 싶었던 그녀… 디오티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네.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었지. 그런데 노트라가 대신 편지를 보내왔다네. 그녀가 쓴 마지막 편지와 함께 말일세.
“히페리온, 그녀는 아름답게 죽었네. 그녀는 땅에 묻히기보다는 화장을 했으면 좋겠다 하여, 자네와 처음 만난 숲에다 뿌려주었다네.” 벨라르민, 난 더 이상 숨쉴 수 있는 안식처를 영원히 잃어버린 듯하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 거겠지. 하지만 그녀에게 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아무리 내가 운다고 해도 디오티마는 돌아오지 않겠지. 벨라르민, 나에게 가르쳐 주게나. 내 피난처가 어디 있는지. 칼라우레아의 숲인가? 그곳의 어두운 나무 그늘, 우리 사랑을 친절하게 보아 주었던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저녁노을처럼 낙엽이 디오티마의 유골 함 위에 내려져 아름다운 수관이 만들어진 곳, 이윽고는 그 나무들도 재 위에 쓰러져 엎어지는 곳, 그곳이라면 내가 다시 내 마음에 드는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