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트빌라의 로미오와 줄리엣
고트프리트 켈러 지음 | -
젤트빌라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und Julia auf dem Dorfe)
고트프리트 켈러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만츠: 잘리의 아버지. 증오심 때문에 사기꾼들에게 이용당하여 가산을 탕진한다.
마르티: 브레헨의 아버지. 만츠와 마찬가지로 작은 욕심 때문에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게된다.
잘리: 만츠의 아들로 브레헨을 사랑하지만 오히려 그 사랑을 그르치게되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브레헨: 마르티의 딸로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지만 사랑도 포기하지 못한다.
평온한 마을
젤트빌라에서 멀지 않은 어느 마을에 만츠라는 농부와 마르티라는 농부가 있었다. 이들은 겉모습도 성격도 비슷한 전형적인 농사꾼들이었다. 이들의 밭은 황폐한 임자 없는 밭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위치해 있었다. 두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할 때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일을 시작해서 거의 똑같은 모습의 두 사람이 밭의 중간쯤 되는 언덕에서 만나, 다시 엇갈려 가는 모습이 주위의 자연과 더불어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이야기를 한다거나 서로에게 눈길을 주는 일은 드물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밭을 따라 쟁이질을 하다가 가끔 말을 모는 머슴에게 명령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돌이나 방해가 되는 것들이 나오면 옆에 있는 버려진 밭에 거리낌없이 버리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해서 버려진 돌과 쓰레기들이 너무 많아 넘칠 정도였다.
이른 아침이 지나고 출출할 때가 되자 두 집의 아이들이 새참을 내왔다. 그제야 두 농부는 마주앉아 인사를 나누고 가져온 음식을 먹었다. 저 멀리서 젤트빌라에서는 식사를 준비하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만츠가 먼저 젤트빌라의 사람들에 대해 툴툴거렸다. 그러자 마르티도 어제 관청에서 사람이 나왔던 이야기를 했다. 관청에서는 두 사람 모두에게 양쪽 집의 밭 사이에 버려진 황무지 밭을 사용하고 사용료를 낼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이를 거절했다. 그들은 밭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 밭을 경매해서 그 대금을 관청에서 확실한 주인이 밝혀질 때까지 관리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두 농부는 간단한 식사가 끝나자 다시 밭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버지들의 오전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두 아이는 황폐한 밭에서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남자 아이의 이름은 잘리였다. 한 7살쯤 되어 보이는 건강한 아이였다. 그보다 두 살쯤 어려 보이는 여자 아이의 이름은 브레헨, 역시 발랄하고 예쁜 소녀였다. 둘은 한참을 뛰어다닌 후 힘이 들자 그늘 아래에 누워 잠시 쉬었다. 브레헨은 가져온 인형을 꺼내 인형놀이를 했다. 그러자 잘리는 짓궂게도 인형을 빼앗아 엉망으로 망가뜨리고 말았다. 브레헨은 화가 나서 울음을 터뜨렸다. 마음이 약해진 잘리는 후회하는 마음으로 브레헨을 바라보았다. 잘리의 마음을 안 브레헨은 잘리를 그저 몇 번 때리고는 기분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함께 어울렸다. 다시 심심해진 아이들은 하늘을 바라보고 누웠다. 그리고 서로의 입을 크게 벌리고 이빨의 수를 세는 놀이를 했다. 그것이 오늘의 놀이 중 가장 멋진 놀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두 아이는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 만츠와 마르티는 밭 가는 일을 다 끝냈다. 그러나 머슴들도 일을 끝내려 하자, 두 농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한 바퀴를 더 돌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양쪽에서 가운데 땅을 한 줄씩 한 줄씩 자기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다른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작은 욕심이 두 집안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아무도 몰랐다.
증오의 시작, 그리고 파멸
몇 년의 세월이 지났다. 아이들은 이제 커서 같이 뛰어 다니는 일도 없어졌다. 단지 일 년에 한번 정도 추수 때가 되면 얼굴을 보곤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바뀐 것이 있다면 두 집안의 밭 사이에 있는 황무지가 아주 좁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 대신 양쪽 집안의 밭은 훨씬 넓어지면서 서로 아주 가까워져 있었다. 물론 지나다니는 사람들 모두가 그런 변화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에 대해 아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그 버려진 밭을 경매하고 그 돈을 관청에서 관리하기로 결정되었다. 그 땅에 얽힌 두 사람의 신경전을 알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아예 그 일에 끼여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 만츠와 마르티만이 입찰에 참가했다. 그 결과 그 땅은 만츠의 소유가 되었다. 땅의 임자가 정해지자 이때부터 두 사람의 이해가 엇갈리게 되었다.
“이제 이 땅은 내 것이 되었으니 그 동안 자네가 조금씩 떼어간 땅을 돌려주어야겠네.” 만츠의 이런 주장에 마르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대꾸했다. “자네는 바로 지금 모습의 땅을 산 것이니, 앞으로도 전혀 변화는 없을 것이네.” 만츠는 어떻게든 자기 밭을 과거의 모습대로 만들어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만츠는 실제로 사람들을 동원해서 줄어든 땅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결코 가만히 있을 마르티도 아니었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소송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과연 누구를 위한 소송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거의 이성을 잃었다. 집안 일이나 농사도 등한시하면서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했다. 상대방을 파멸시키는 것!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원래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도 잊어버린 채 자신의 아집과 체면이라는 틀에 갇히게 되었다. 또한 주변의 악한 손길들이 그들을 이용했고, 오로지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가능하다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럴 때마다 두 농부의 집은 점점 기울어져 갔다.
한편 마르티의 아내가 이런 삶을 참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만츠의 아내는 달랐다. 그녀는 남편과 더불어 못된 본성을 더욱 드러내면서 날이 갈수록 악해져갔다. 물론 아이들도 희망을 잃어갔다. 특히 브레헨은 어머니가 안 계신 집에서 고집불통이며 포악해진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기 때문에 생활이 더욱 힘겨웠다. 그녀는 이제 열 여섯 살이 되어 어여쁜 아가씨로 변해 있었다. 가끔씩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질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선천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가난해질 대로 가난해진 살림을 맡아 하면서도 검소하고 단아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잘리도 외모상으로 모자람이 없는 멋진 청년이 되었다. 그러나 잘리는 브리헨에 비하면 훨씬 호강스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집도 더 나을 것이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재산을 탕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허세를 부려 아들이 원하는 것만큼은 뭐든지 다 해 주었던 것이다. 잘리는 아버지가 가고 있는 잘못된 길을 그저 무감각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에게는 과거의 어질고 부지런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현재의 아버지를 보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의 욕망을 무작정 채워주면서 그의 판단과 사고를 마비시켰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채 뚜렷한 희망도 없이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청춘 남녀는 결코 그들의 부모처럼 서로에게 적대감을 느끼지 않았다. 단지 브레헨이 초라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잘리를 피할 뿐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지 못하면서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결국 만츠는 집과 논밭을 다 날리고 마을을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의 집안이 먼저 이렇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르티의 집에서는 오로지 마르티만이 재산을 낭비했고 그의 딸은 절약하여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츠네 식구들은 각자가 돈을 쓰는 데 한몫을 했으니 재산이 남아날 턱이 없었다. 만츠는 어쩔 수 없이 젤트빌라에 있는 허름한 술집으로 옮겨야 했다. 그나마 이 술집은 고약한 집주인에게 속다시피 하여 임대받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벌써 여러 명이 이 술집에서 망해 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몰랐던 만츠의 부인은 자신의 능력과 미인계를 이용해 이 술집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던 집과 마을을 떠나는 만츠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했다. 이 모든 불행이 마르티의 탓이라고만 여기며 그를 저주했다. 그들이 도착한 술집은 정말 형편없는 곳이었다. 처음 며칠은 사람들이 재미 삼아, 혹은 구경 삼아 들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만츠의 아내가 하는 행동이나 모습이 너무 촌스럽고 천했기 때문에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그야말로 문을 열 수도 닫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다 못해 만츠와 그의 아들은 고기잡이를 가기로 했다. 무엇이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
한편 마르티의 형편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밭도 거의 돌보지 않아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농사일에 흥미를 잃은 마르티 역시 고기잡이를 하러 다녔다. 브레헨은 그런 아버지를 쫓아다니느라 모든 일을 내팽개 쳐야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무렵이었다. 마침내 만츠와 마르티는 시냇물을 따라 오다가 서로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그동안 쌓였던 분노와 증오를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이 나쁜 놈아!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네 놈 때문이란 말이다.”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이 놈아!”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심한 욕을 해가며 으르렁거렸다.
그런데 이런 두 사람의 옆에 있던 잘리와 브레헨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정말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브렌헨은 그저 초라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창피하여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잘리는 너무도 아름답고 우아한 아가씨로 변한 브레헨의 모습에 감탄했다. 그러는 사이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면서 천둥과 번개가 치고 있었다. 하지만 만츠와 마르티의 묵은 감정들은 전혀 식을 줄을 몰랐다. 서로 멱살을 쥐고 몸싸움을 하였고, 두 사람은 물과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잘리와 브렌헨은 아버지들을 말리려고 함께 애를 쓰다가 한순간 두 사람의 몸이 닿았다. 그리고 추억 속에 잠겨 있던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찼다. 한참 만에야 두 노인을 겨우 떼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데리고 갔다. 만츠는 아직도 치를 떨면서 분노를 삭히지 못했지만 잘리는 달랐다. 아버지의 해묵은 증오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방금 전에 본 브레헨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사랑과 불행은 너무 가까운 곳에
잘리는 다음날까지도 계속 브레헨을 향해 달려가는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을 접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심조심 자신의 고향 마을이자 브레헨의 집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마을로 가던 중 그만 마르티와 마주치고 말았다. 그는 순간 찔끔했다. 하지만 마르티는 날카로운 눈으로 잘리를 죽 훑어보더니 그냥 지나쳐갔다. 비로소 안심한 잘리는 곧장 브레헨의 집으로 갔다. 잘리는 황무지로 변해버린 주변의 경치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예전의 비옥하고 풍요로웠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낡아빠진 집 한 채 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때마침, 브레헨이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잘리는 그녀릏 향해 다가갔다. 둘은 두 손을 잡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버지 때문에 불안해진 브레헨은 나중에 조금 떨어진 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잠시 후 그들은 집에서 떨어져 있는 밭에서 다시 만났다. 그곳은 바로 그들이 어린 시절 같이 뛰어다녔던 장소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들이 이 짧은 사랑의 밀회를 제대로 끝내기도 전에 마르티가 나타났다. 그는 아까 마을로 들어서던 잘리를 보고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서둘러 돌아왔던 것이다. 마르티는 분노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뜨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잘리에게 달려들었다. 잘리가 살짝 몸을 피하자 이번에는 딸의 따귀를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그것을 보고 있던 잘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던 돌을 들어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노인은 비틀거리며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두 사람은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마르티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잘리, 당신이 우리 아버지를 쓰러뜨린 거예요?” 브레헨이 몸을 떨며 물었다. 그들은 서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다행히도 마르티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빨리 마을로 가서 사람들을 불러주세요. 그렇지만 당신은 아무 것도 모르는 거예요. 제게 맡기고 다시 이곳에 오지 마세요.”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키스를 나누었다. 잘리는 마을로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절망적인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그는 마르티가 살아 있지만 의식 불명이라는 사실을 얻어들을 수 있었다.
브레헨은 그 사건과 관련하여 잘리의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을 뿐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가 술에 취해 넘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르티는 거의 6개월 동안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었고 그 모든 수발을 브레헨이 혼자 해냈다. 그때서야 마르티는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지만,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아무 때나 허허거리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다녔다. 그러던 중 그나마 남아 있던 손바닥만한 땅과 집마저 팔아야 했다. 결국 브레헨은 아버지를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그녀도 집을 떠나 어디론가 가야했다.
이틀 후에는 정들었던 집을 영원히 떠나야했다. 그때 너무도 그립던 잘리가 그녀를 찾아왔다. 두 사람은 깊은 포옹과 키스로 참았던 그리움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들은 같이 길을 떠나기로 약속했다. 잘리는 어차피 이곳을 떠나야 하는 브레헨을 동행해주고 싶었다. 또한 다음날, 근처의 마을에서 헌당식이 열리기 때문에 두 사람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마음껏 춤이라도 추어보고 싶었다.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었다. 잘리는 약간의 돈과 브레헨을 위한 구두를 사 가지고 약속된 시간 보다 일찍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 역시 벌써 준비를 끝내고 잘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고향을 벗어나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브레헨과 잘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화창한 일요일의 햇빛을 받으며 논과 밭, 그리고 숲 속을 하염 없이 걸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을을 다니면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브레헨과 잘리를 잘 어울리는 신혼부부로 여겼다. 두 사람은 행복감에 젖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행복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루지 못할 그들의 꿈을.
점심때쯤 닿은 마을에서는 헌당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벌써 장터에는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브레헨과 잘리도 어울려 춤을 추었다. 그들은 이렇게 함께 춤을 추고 싶어서 이곳까지 왔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유, 세상에! 저기 잘리와 브레헨 아니야? 도대체 어쩌려고 저런 사이가 되었지?”
정신없이 춤을 추던 잘리와 브레헨은 사람들이 모두 멈춰 서서 그들을 보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챘다. 그들은 당황하여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 가련한 연인들은 사람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갔다. 춤을 추는 것조차 이들에게는 사치스러운 행복이었을까? 그때 잘리가 춤을 출 수 있는 곳을 안다며 다른 곳으로 브레헨을 데려갔다. 그곳은 폐가를 주막으로 개조한 곳이었다. 허름하고 낡은 이곳에는 여러 명의 남루한 옷을 입은 유랑자들이 모여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잘리와 브레헨은 주위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직 서로를 바라보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결코 한순간도 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느꼈다.
밤이 되었다. 잘 곳을 찾아야 했다. 그들은 악사들의 무리를 따라 어딘지도 모른 채 오다보니 어느새 그들이 자란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어린 시절 함께 뛰어다녔던 밭을 찾아갔다. 잘리는 생각다 못해 브레헨에게 자기를 잊고 어디론가 떠나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레헨은 강하게 거부했다. 어디선가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이제 분명히 알고 있었다. 서로를 너무도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그들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