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고
프란츠 카프카 지음 | -
선고(Das Urteil)
프란츠 카프카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게오르크 벤데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세계(아버지, 약혼녀, 친구)에 함몰되는 인물. 주인공
아버지: 마치 신처럼 아들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인물
친구: 게오르크의 친구로 러시아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프리다 브란덴펠트: 게오르크의 약혼녀
러시아로 간 게오르크의 친구
“화창한 봄날 일요일 오전이었다. 젊은 상인 게오르크 벤데만은 (...) 날림으로 지은 나지막한 주택 중 한 채의 2층 자기 방에 앉아 있었다.(...) 그는 외국에 있는 어린 시절의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장난하듯이 느릿 느릿 편지를 봉한 다음, 팔꿈치를 책상에 괸 채 창너머로 강과 다리와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건너편 둑 언덕을 바라보았다.”
게오르크의 친구는 조국의 현실에 불만을 품고 오래 전 러시아로 도망치듯 떠나가 버렸다. 그는 지금 페테르부르크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고향을 방문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보아, 그의 사업이 오래 전부터 부진한 듯하다. 그의 얼굴은 이상한 수염으로 뒤덮여 있고, 안색은 누렇게 떠서 무슨 병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그곳의 교민들과 사교적 모이도 갖지 않을 뿐더러, 고향의 친지들과도 이렇다할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혼자서 살아가는 삶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이다.
게오르크는 역경에 빠져 있는 이 친구에게 어떻게 편지를 써야 할지 생각한다. 그는 친구에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옛 친구들과 우정을 새롭게 다지며, 그들의 도움을 기대해보라고 조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게오르크가 그 친구를 아무리 도우려고 해도, 그가 오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애정어린 충고가 “자네 노력이 실패했으니, 이제 손을 떼고 돌아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친구도 고향 사정을 이제는 알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괜시리 섣부른 조언으로, 페테르부르크에 계속 머물 친구의 자존심만 상하게 해서 친구관계만 소원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 친구가 정작 조언을 받아 들여 고향으로 돌아온다 해도, 기가 꺾여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 수도 있다. 부끄러워하면서, 결국은 고향도 친구도 다 잃어버리는 신세가 될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처럼 러시아에 그대로 눌러 앉아 있는 편이 그에게 훨씬 나을 것이다.
친구는 삼 년이 넘도록 고향에 오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의 불안한 정치 상황 때문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세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친구는 러시아의 정치상황 때문에 소상인조차도 그 나라를 쉽게 뜰 수가 없다고 말한다.
친구가 고향을 떠나 있던 세월 동안, 게오르크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이후 게오르크는 나이 드신 아버지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친구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애도의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 내용은 딱딱했다. 오랜 동안 타향살이를 하다보니 어머니를 여읜슬픔이 어떤 것인지 잊은 듯한 편지였다.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게오르크가 사업을 도맡아 처리해 나가고 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는 억척스런 면이 있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사업을 아들에게 맡겨놓고 뒷전에 머물러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이 함께 했든지, 지난 이 년 동안 그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고 직원은 두 배로 늘었고, 매출도 다섯 배나 늘었다. 그야말로 사업은 창창대로다.
친구는 게오르크의 사업이 이처럼 번창하고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애도 편지의 말미에 게오르크에게 러시아로 건너와 함께 사업을 하자는 권유까지 했다. 그러나 그가 예상한 이익금은 게오르크가 지금 벌어들이고 있는 이익금에 비하면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게오르크는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는 것을 친구에게 알리려 하지 않는다.
게오르크는 친구가 품고 있을 고향에 대한 좋은 기억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다만, 지난 세 번의 편지에서 누가 누구와 약혼했다는 소식 정도만을 알렸다.
게오르크의 약혼녀 프리다 브란델펠트
게오르크는 자신이 유복한 가정의 딸인 프리다 브란델펠트와 한 달 전에 약혼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친구에게 알리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이 전했을 따름이다. 그는 가끔 약혼녀와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특별한 감흥에 젖는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도 당신 친구들에 대해 잘 알고 싶어요.” “오해할 것 없어요. 그 친구는 틀림없이 올 거요. 물론 강요당한 기분이겠지. 내 소식을 알면, 날 부러워하면서도 불만을 삭이지 못할 거야. 그 불만을 깔끔히 씻어내지 못하고 쓸쓸히 러시아로 돌아가게 되겠죠. 혼자서 말이요. 무슨 뜻인 줄 알겠소?” “알겠어요.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우리 결혼소식을 알릴 수는 없을까요?” “그의 사고방식으로 보아 불가능한 일이요.” “게오르크, 당신에게 그런 친구가 있었다면 차라리 약혼하지 않는 편이 좋을 뻔했어요.” “그렇다고 약혼을 무르고 싶지는 않아요.”
게오르크는 그녀에게 키스한다. 그는 친구에게 사실 그대로 모든 것을 써보내리라 생각한다. “친구와의 우정을 위해 지금의 내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어!” 일요일 오전, 그는 친구에게 약혼을 알리는 편지를 쓴다. “정말 좋은 소식은 맨 나중에 알려지는 법이지. 나는 프리다 브란델펠트라는 아가씨와 약혼했다네. 유복한 가정의 아가씨야. 그 집안은 자네가 떠나고 한참 후에 이곳으로 왔으니 자네는 알 수 없을 걸세. 기회가 되면 나중에 약혼녀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함세. 자네는 내 약혼녀와 허물없는 친구가 될 걸세. 그녀가 자네에게 안부를 전하네. 다음 번에는 그녀가 자네에게 직접 편지를 쓸 것이네. 자네가 여러 이유로 이곳을 방문하기를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내 결혼이야말로 자네가 이곳을 방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지. 하여튼 자네하고 싶은 대로 하게.” 편지를 손에 들고 게오르크는 창 밖을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앉아 있다.
게오르크의 아버지
마침내 그는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자기 방을 나와 작은 복도를 가로질러 몇 달째 들어간 본 적이 없는 아버지 방으로 들어간다. 실은 아버지 방을 일부러 그렇게 찾아갈 필요는 없다. 상점에서 아버지와 늘 마주치니까 말이다. 또한 두 사람은 같은 시각에 같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저녁시간은 각자의 계획에 따라 보내지만, 게오르크의 약혼녀나 친구가 방문하지 않을 경우 대개 두 사람은 잠시 거실에 나란히 앉아 신문을 읽곤 한다.
좁은 마당 건너편의 높다란 담이 그늘을 길게 던지고 있는 탓인지 맑은 날인데도 아버지의 방은 너무 어둡다. 방 한쪽 구석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유품들로 꾸며져 있다. 아버지는 그 창가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책상에는 아침식사 때 남긴 음식이 그대로 있다. “여긴 지독하게 어둡군요” “그래 어둡기는 하지.” “창문을 닫으셨나 보죠?” “난 닫는 게 더 좋단다.” “밖은 아주 따뜻해요.” 아버지는 아침식사 그릇을 치운다.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친구에게 제 약혼소식을 알리려고 합니다.” “페테르부르크에다?” 게오르크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핀다. 아버지는 상점에서와는 달리 이 방에서는 몸을 쭉 펴고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 “저도 처음에는 약혼소식을 그 친구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어요. 꽤 까다로운 친구니까요.” “그런데 왜 생각을 바꿨니?” “그가 제 절친한 친구라면 제 행복한 약혼도 그에게 큰 기쁨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편지를 우체통에 넣기 전에 아버님께 말씀드리는 거예요.” “게오르크, 그 일로 나에게 상의하러 왔다는 말이냐. 착하구나. 하지만 네가 속마음을 숨김없이 터놓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아니, 불쾌할 뿐이야. 네 착한 에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좋지 않은 일만 이어졌지. 상점에서도 내가 모르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런 일들을 숨기지 말았어야지. 난 이제 힘도 없고 기억력도 많은 일에 일일이 신경을 쓸 수가 없잖니. 나이 탓도 있고, 네 어미의 죽음에 따른 충격 탓도 있겠지. 하기사 네 어미의 죽음은 나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게오르크, 제발 부탁인데, 나를 속이지 말아라. 페테르부르크에 그런 친구가 있기나 한 거니?”
게오르크는 당황해서 벌떡 일어선다. “제게 수천 명의 친구가 있다해도 아버지 한 분을 대신할 수는 없어요. 제 말 알아들으시겠어요? 잘 아시겠지만, 아버지 없이는 상점을 운영할 수 없어요. 하지만 상점이 아버지 건강에 위협이 된다면 내일이라도 상점 문을 완전히 닫아 버리겠어요. 아버지, 아버지 자신을 위해서도 생활습관을 바꾸셔야 돼요. 이렇게 캄캄한 곳에 앉아 계시는데, 거실에서는 햇빛을 쬘 수 있잖아요. 아침식사도 드시는 둥 마는 둥 하고, 닫힌 창가에 앉아 계시는데, 제발 그러지 마세요. 맑은 공기가 건강에 이롭습니다.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방도 바꾸고요. 어쨌든 지금은 누워 계세요.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게오르크는 아버지 곁에 바짝 다가간다. 아버지의 하얀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다. 아버지는 머리를 숙인 채 아들을 부른다. “게오르크” 나지막한 목소리다. 게오르크는 아버지 곁에 무릎을 끊고 앉는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게오르크는 아버지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느낀다. “넌 페테르부르크에 친구가 없어. 늘 농담을 잘 하더니.” “아버지 잘 생각해보세요.” 게오르크가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를 의자에서 일으킨다. 아버지는 힘겹게 서 있다. 게오르크는 아버지의 잠옷을 벗긴다.
“제 친구가 우리 집에 다녀간지 곧 삼 년이 됩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버지께서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그 친구를 싫어하시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워낙에 개성이 강한 친구였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도 그 친구와 곧잘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잘 생각해보세요. 기억이 나실 거예요. 그때 그 친구가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게다가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자주 입에 올리시기도 하셨어요.”게오르크는 아버지를 다시 앉히고 바지와 양말을 조심조심 벗긴다. 아버지의 내의는 그다지 깨끗하지 않아, 게오르크는 아버지를 소홀히 했다는 자책감을 느낀다. 게오르크는 아버지를 장차 어떻게 모실지 약혼녀와 별로 말한 것이 없다. 그들은 아버지가 이 집에 그대로 남아 계실 것이라고 은연중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게오르크는 생각이 바뀐다. 아버지는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는 아버지를 안아 침대로 옮긴다. 몇 발자국을 침대로 옮기는 동안 아버지는 게오르크의 가슴에 달린 시계줄을 만지작거린다. 그때 게오르크는 전율감이 느껴진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다. 아버지는 침대에 눕자 손수 이불을 덮는다.
게오르크의 아버지와 페테르부르크의 친구
“그 친구가 기억나시겠죠?” “이불은 잘 덮었느냐?” “침대에 누우시니 기분이 좋으시죠.” “잘 덮었느냐?” “걱정마세요. 잘 덮었으니까.” “아니야!” 그리고 아버지는 이불이 박차고 일어나 침대 위에 똑바로 선다. “이놈아, 네가 이불을 덮어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이불이 잘 덮어지지 않았지. 너 정도 해치울 정도의 힘은 아직 남아 있다. 난 네 친구를 잘 알아. 그는 내 마음의 아들이나 다름없지. 그래서 너는 오랫동안 그를 속여온 거야. 내가 네 친구를 위해 울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넌 사무실에 처박혀 업무가 바쁘니 아무도 들어와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러시아로 거짓 편지를 쓰는 수작을 부렸지. 네 궁둥이로 그 친구를 깔고 앉았다고, 그가 잊혀진 것이라 생각했겠지. 그래, 그 친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 아들이 결혼할 결심을 했는데도 말이야.”
게오르크는 끔찍스레 변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본다. 아버지가 그 친구를 잘 안다고 뜬금 없이 말하는 바람에, 친구의 존재가 그의 가슴으로 스며든다. 그가 황량한 러시아 땅에 서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소리친다. “날 좀 보자꾸나” 게오르크는 모든 것을 알아내려고 얼빠진 사람처럼 침대로 달려가다가 멈춰선다. “그 년이 치마를 들어 올렸다고 ...” 그리고 아버지는 셔츠를 들어올리며 그런 흉내를 내본다. 넙적다리가 드러나고, 그 위로 전쟁 때 입은 흉터가 보인다. “그 년이 치마를 이렇게 치켜올렸겠지. 그래서 네 놈이 그 년에게 달라붙은 거야.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그 년과 재미를 보려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더럽히고 친구를 배반하고 이 애비를 꼼짝 못하게 가두려는 거지.”
그는 모든 비밀을 알았다는 듯이 희색이 만연하다. 게오르크는 아버지에게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려고 방구석에 서 있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배신당하지 않았어. 내가 이곳에서 대리인 역할을 확실히 해내고 있으니까.” “코미디 같군요!” “그래, 코미디다! 제대로 봤다. 늙은 홀아비인 이 애비에게 무슨 다른 위안거리가 있겠니. 말해봐라. 이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이나마, 진실된 아들이 되어다오.”아버지는 고꾸라진다. 게오르크가 다가가자 그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거기 그대로 있어. 난 네 도움이 필요 없어. 하지만 내 곁에 오고 싶지가 않겠지. 그래서 멈칫거리는 것이 아니냐! 착각하지 마라. 내가 훨씬 강하니까. 나 혼자라면 몰라도 네 어머니가 힘을 주고 있고, 또 네 친구하고도 힘을 더해주니까. 게다가 네 고객의 명단도 여기 내 주머니에 있다.”
게오르크는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면서 세상에서 그를 매장시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런 생각을 잊어버린다. “네 신부를 달고 나한테 나타나기만 해봐라. 쫓아버릴 테니.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면 알 거다.” 게오르크는 믿어지지 않는 듯이 얼굴을 찡그린다. “오늘 네 놈이 와서, ‘친구에게 약혼 소식을 알릴까요’라고 물었을 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를게다. 이 바보같은 놈아, 그는 다 알고 있어. 다 알고 있단 말이다. 내가 편지를 했으니까. 그는 몇 년 째 오지 않고 있지만, 모든 일을 너보다 수백 배는 더 잘 알고 있어.” 아버지는 신이 나서 한쪽 팔을 머리 위로 흔든다.
선고
“몇 년 전부터 나는 네가 이 문제를 언제나 들고 올지 지켜보고 있었다. 너는 내가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그냥 신문이나 읽고 있는 줄 알았겠지.” 그는 침대 속에서 신문 하나를 꺼내 게오르크에게 내던진다. 아주 오래된 신문이다. “네가 철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저를 염탐하신 거군요.” 불쌍하다는 듯이 아버지는 말했다. “진작부터 그런 말을 하고 싶었겠지. 넌 지금까지 너 밖에는 몰랐어. 정확히 말하면, 아주 순진한 아이였다. 더 정확히 말해볼까? 너는 악마같은 인간이었어. 그래서 나는 너에게 익사형을 선고하는 바다.”
게오르크는 쫓기듯이 방에서 나온다. 그는 아침 청소를 하려고 올라가던 하녀와 부딪힌다. 그녀는 “맙소사”라고 외치며 앞치마로 얼굴을 가려보지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는 문을 뛰쳐나와 차도를 건너 강으로 달려간다. 그는 다리 난간을 움켜쥔다. 어린 시절 그는 뛰어난 체조선수로 부모의 자랑이었다. 그는 그때 같은 체조솜씨로 난간을 훌쩍 뛰어 넘는다. 난간을 붙잡고 있던 손에서 점점 힘이 빠져간다. “부모님, 저는 언제나 부모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나지막히 외치며 다리에서 뛰어내린다. 강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 순간에도 다리 위로는 차량의 통행이 끊이지 않는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카프카의 작품은 불안하다. 카프카의 작품은 불가해하다. 그만큼 해석의 가능성도 다양하다는 말이다. 단편이건 장편이건간에 카프카의 작품은 한번의 독서로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카프카는 재독을 요구한다. 다중의 해석 가능성, 어쩌면 카프카는 독자에게 이런 것을 의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죄와 절망의 세계, 노이로제에 가까운 아버지와의 관계, 사회비판, 권력자와 그 대리인의 비인간성, 일상 속에 움트고 있는 폭력과 야만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