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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지음 | -
독일인의 사랑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나: 글을 이끌어 가는 화자. 마리아를 사랑하고, 그녀의 고통과 죽음까지도 사랑한 남자

마리아: 후작의 딸. 병에 걸려 죽을 때가지 침대에 누워지내지만 ‘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일깨워준다.

의사: 죽은 마리아의 어머니와 나누었던 사랑을 평생 비밀로 간직한 채 병든 마리아를 돌봐준다.



너의 것은 곧 나의 것

어린시절에 어머니와 함께 보던 밤하늘의 빛나던 별들과, 푸른 향기를 뿜어내는 오랑캐꽃 그리고 교회의 높은 첨탑들, 그 안에서 울려오던 성가들은 모두 안개 속에서 길을 되짚어 가듯 아련한 기억일 뿐이다. 그 아련한 기억들조차 아름다워지는 것은 그 속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직 나와 타인을 구분하지 못하던 그 시절, 나는 종종 후작의 성으로 가서 어린 공자들과 함께 어울려 놀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한 소녀가 우리의 놀이방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언제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두 명의 장정이 침대 채로 그녀를 우리 방을 옮겨왔고, 그녀가 피곤해 하면 다시 옮겨가곤 했다. 그녀는 새하얀 옷차림으로, 두 손을 다소곳이 앞으로 모은 자세였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온화하고 아름다웠고, 눈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이 그윽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에 잠겨 그녀 앞에 서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 여자도 타인에 속할까?”하고 자문해 보곤 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내 얼굴에 손을 얹었고, 그럼 무엇인가 내 온몸을 통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손길을 벗어나 도망칠 수도 없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게 꼼짝없이 사로잡혀, 그녀의 그윽하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눈망울을 들여다보았다.

그 당시 나는 그녀가 몇 살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너무도 무력한 모습에서 어린애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진지하고 조용한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이미 어린애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녀에 관해 말할 때면 사람들은 늘 소리를 죽여 말하곤 했다. 그들은 그녀를 천사라고 불렀다.

거의 언제나 그녀는 우리가 노는 모습을 아무 말도 없이 지켜보기만 했지만, 한결 나아진 날에서 우리와 어울려 얘기도 하고 진지한 얘기도 들려주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평생 걸을 수 없겠구나.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고, 아무 기쁨도 없겠구나. 그저 영원한 안식처로 갈 때까지 침대에 실린 채 사람들의 손을 빌려 이리저리 옮겨 다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녀의 고통을 일부라도 떼어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그날이 생일이라면서 준비해온 다섯 개의 반지를 보여주었다. “물론 나는 너희 곁에 오래 머물고 싶지만, 언제고 내가 너희를 떠나더라도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너희에게 반지를 주려고 해. 이 반지를 너희 검지 손가락에 하나씩 끼도록 하렴. 그리고 너희가 자라면서 반지를 차례로 옮겨 끼는 거야. 나중에는 새끼 손가락에나 겨우 맞겠지. 하지만 그렇게 해주면 평생 동안 나를 기억해줄 수 있지 않겠니?”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다섯 개의 반지를 차례로 뽑았다. 그러는 그녀의 모습이 다정하지만 왠지 너무 슬퍼보여 나는 울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4명의 동생들에게 차례로 반지를 끼워주고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리곤 마지막 하나가 남자, 다 끝낸 듯 침대에 몸을 기댔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당황했다. 그 반지는 나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반지와 그녀를 바라보면서 내 자신이 그녀에게 속하지 않은 타인임을 느꼈다. 이 뼈아픈 깨달음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사이 나를 지켜보던 그녀가 내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건 너희들을 떠날 때 내가 갖고 가려던 거야. 그렇지만 이건 네가 끼는 것이 좋겠어. 그래서 내가 세상에 없을 때 나를 생각해 주는 편이 더 나. 그 반지에 새겨진 말을 읽어보렴. <신의 뜻대로>라고 씌어 있단다. 너는 격하면서도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야. 살아가면서 그 마음이 거칠어지지 않게 잘 다스리렴.”

그러면서 그녀는 반지를 나에게 끼워주고 입을 맞춰주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이 솟아남을 느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이제 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 타인이 아니었다. 내 마음속 고통은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 반지를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 반지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반지를 나에게 준 것은 나를 위한 그녀의 희생이란 것을. 나는 반지를 그녀에게 내밀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 반지를 내게 주고 싶으면 그냥 네가 갖고 있어. 너의 것은 곧 나의 것이니까.” 그녀는 놀라 잠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반지를 받아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는 다시 한번 나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속삭였다. “너는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 하지만 크면 알게 될 거야. 그러면 너는 행복해 질 거고, 다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야.”



파묻힌 생명

유년시절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고향을 떠나온 나는 타지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청년시절 누구나 그러하듯 나도 삶의 고뇌에 빠져 방황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맹목적으로 걸어가는 길, 그 길을 걸으며 그저 나이만 먹었다는 서글픔.

그런 나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건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의 자잘한 기억 속에 선명한 단 하나 그것은 마리아였다. 내 내면의 모든 선한 것, 내가 추구하는 모든 것, 내가 믿는 모든 것은 내가 그녀에게 준 것인 동시에 내 천사인 그녀를 통해 받은 것이 아닌가.

나는 도시의 온갖 고뇌를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에 돌아와 그동안 잊고 있던 유년의 풍경들을 추억하고 있던 나에게 어느날, 그토록 그리워하던 마리아에게서 그녀를 방문해 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친애하는 친구여, 당신이 얼마동안 이곳에 와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참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군요. 괜찮으시다면, 옛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나는 단숨에 그녀에게 달려갔다. 두 사람의 장정에 의해 방으로 옮겨진 그녀, 여전히 야위고 창백했지만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는 헤어져 있던 시간의 어색함을 떨치고 오래된 친구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그녀의 손에 끼워진 반지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예전에 그녀가 나에게 주었고 내가 다시 그녀에게 주었던 그 반지였다. 나는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나는 매일 저녁 그녀를 찾아가 신과 사랑,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치 이미 오래 전부터 함께 지내온 것 같은 일체감을 느꼈다. 어느날 저녁 내가 막 집으로 돌아가려 할 무렵 그녀가 말했다.“내가 이렇게 오래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생일날 당신에게 반지를 드렸을 때는 곧 내 삶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오며 이렇게 아름다운 일들을 누려서 너무 기뻐요. 그래서 이제 정말 작별의 시간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한 시간, 일 분이 너무도 소중해요.”

우리는 매일 저녁 새로운 대화로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채워갔다. 그러나 그 대화를 통해 그녀와의 일체감을 느낄수록, 내 내면 속에 억눌렸던 삶에 대한 애정을 발견해 갈수록, 나는 그런 대화들이 공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외치고 싶었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내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시 한 편을 그녀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다. <파묻힌 생명>이라는 시였다.

우리 사이에는 가벼운 농담들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보라, 나의 눈이 눈물로 젖어 있음을!

이름 없는 슬픔이 나를 덮쳐오고 있음을!

진정한 사랑조차도

마음을 열어 사랑을 말하게 할 힘이 없단 말인가.

사랑하는 이들이 느끼는 것을 표현해 낼 힘이 없단 말인가.



다음날 마리아의 담당의사가 내 집을 방문했다. “내가 온 용건은, 다시는 마리아를 찾아가지 말라고 부탁하러 온 것일세. 나는 어제 밤새도록 그녀 곁을 지켜야 했네. 그건 다 자네 탓이야. 그러니 그녀의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다시는 그녀를 찾아가지 말게. 가능한 빨리 마리아를 시골로 가게 할 생각이네.”

의사는 말을 마치고 나에게 약속을 받으려는 듯 잠시 내 눈을 들여다보다가 돌아갔다. 나는 의사의 눈빛을 느끼며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은 당혹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제 그녀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그녀 곁에서만 살아있음을 느끼듯 그녀도 내 곁에서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 자신이 그녀를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지 말하지 못한 채 다만 그녀를 위해 먼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녀에게 가는 먼길

나는 티롤지방의 산과 계곡을 여행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푸른 산과 계곡과 세찬 폭포를 보며 생의 활력을 느끼겠지만 나에겐 그저 외로운 어둠뿐이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내 곁에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할 뿐이었다.

나는 사람들을 피해 낮에는 자고 밤에는 산 속을 헤매며 자연의 신비와 공포에 빠져들어갔다. 그러나 그녀를 향한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수 주일이 흘렀어도 그녀의 소식은 접할 수가 없었다. 혹시 그녀가 이미 영원한 안식처로 가버린 건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의사는 그녀가 심장병을 앓고 있으며, 매일 아침 그녀에게 갈 때마다 밤새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녀와 작별 인사도 못하고,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그렇게 그녀가 세상을 떠나 버린다면, 나는 그런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이렇게 그녀를 떠나오는 것만이 그녀를 위한 길이었을까? 이렇게 도망쳐 헤매는 것보다는 그녀 곁에서 그녀의 고통을 함께 감당하는 것이 진정 그녀를 위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그녀에겐 마지막 날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내가 할 일은 어서 빨리 그녀에게 돌아가 신이 주신 모든 것을 그녀와 함께 감당해내는 일뿐이었다. 나는 긴 방황을 끝내고 시골 성으로 그녀를 찾아갔다. 다행히도 그녀는 아직 거기에 있었고, 여전히 야윈 모습이지만 안식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녀는 내가 떠난 후의 일들을 나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의사 선생님에게 당신이 갑자기 여행을 떠난 이유를 들었을 때, 나는 당신들 두 사람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나는 병들고 외로운 여인이에요. 이 세상에서 내 삶이란 그저 죽어가고 있는 것에 불과해요. 그런 내게 만약 하늘이 나를 이해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주었는데, 그것이 어떻게 나와 그 사람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 될 수 있나요?”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우정으로 그녀 곁에 남아,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 있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사랑스런 모습과 신비스럽게 반짝이는 눈을 들여다보며, 그녀에게 말했다. 내 마음은 차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리아, 이처럼 내 마음이 깨끗해진 순간에 이대로 내 온 마음의 사랑을 고백하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초지상적인 것을 이처럼 가까이 느끼고 있는 이 순간에 우리의 영혼이 다시는 헤어지지 않도록 영혼의 결합을 이루게 해주십시오.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마리아,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느끼고 있습니다. 마리아,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눈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만 내 입술이 그녀의 손에 살며시 키스했다. 그러자 그녀는 처음엔 망설이더니 급기야 손을 빼버렸다. 나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고통스런 표정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오늘은 이만 됐어요. 당신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하지만 그건 내 탓이란 걸 알아요. 창문을 닫아주세요. 낯선 손이 건드린 것처럼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군요. 내 곁에 남아주세요. 아니, 안돼요. 당신은 돌아가야 하니까요. 하나님의 평화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기를 기도해 주세요. 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 내일 저녁에 다시 만나요. 기다리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작별을 고했다.

내 마음의 평온은 깨졌다. 나는 한동안 호숫가를 서성이며 그녀의 불켜진 창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녀의 방에 불이 꺼졌을 때,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 느낌에 빠졌다. 머리 속 뇌수가 기능을 잃은 듯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무덤 같은 검은 하늘아래 내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마리아는 내게 짤막한 편지를 보내왔다. 그녀의 주치의가 오늘 오니 이틀 후에나 방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노트에서 이틀이 찢겨져나갔다. 나는,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이틀동안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건 그녀와 내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시간에 대한 추억과 더 아름다울 앞날에 대한 희망의 기록들. 글을 쓰며 나는 그녀 곁에 갔고, 그녀와 함께 있었으며 그녀 안에서 살고 있는 내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녀의 손을 직접 잡고 있었을 때보다 더 가까이에서 그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신의 뜻대로...

이틀 후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다. 우리 사이에 긴 침묵이 흐른 후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의사 선생님한테서 편지 못 받으셨나요?” “아니오”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한참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몰라요. 내 입으로 직접 말하는 편이... 우리가 만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슬퍼하거나 화내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헤어지도록 해요. 제가 너무 많은 죄를 지었어요. 가벼운 미풍도 꽃잎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내가 당신의 생활에 너무 깊이 들어간 거예요. 나는 세상을 너무 모르거든요. 나처럼 병들고 가엾은 인간이 당신한테 동정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나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그렇지만 세상은 우리 사랑을 이해하지도 용납하지도 않아요. 의사 선생님이 알려주셨어요. 온 도시에 우리의 소문이 나돌고 있대요. 후작께서도 이미 아시고 내게 당신을 만나지 말라고 명령하셨어요. 나를 용서한다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친구로서 헤어져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눈을 감아버렸다.

그녀의 눈물을 보며, 나는 간절히 말했다. “마리아, 내게는 하나의 생명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당신과 함께 하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또 단 하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뜻이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나는 혼신을 다해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당신한테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신분으로도 품위로도 순결한 면에서도 당신은 나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감히 내 아내라고 부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그것밖에 없습니다. 마리아, 나는 당신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뜻이 정말 그렇다면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그러나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내게 속해있음을 느낀다면 세상의 소문 따위는 잊으십시오. 나는 당신을 팔에 안고 성찬대 앞으로 걸어나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것이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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