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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 고전문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스완네 집 쪽으로




오랜 세월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다. 촛불을 끄자마자 잠결에도 방금 읽던 책의 내용이 이어져, 마치 내가 책 속의 성당이나 사중주, 프랑수아 1세와 카를 5세의 다툼이 된 듯했다. 한밤중에 깨어나면 내가 어디에 누워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럴 때면 몸의 기억이, 옆구리와 무릎과 어깨가 예전에 잤던 방들을 하나씩 불러냈다. 콩브레, 발베크, 파리, 동시에르, 베네치아. 그렇게 잠 못 드는 밤마다 나는 그 옛 콩브레의 나날을 되살리며 시간을 보냈다.

콩브레의 내 방에서 밤은 늘 고통이었다. 어른들이 나를 달래려 환등기를 가져다 놓아, 벽에 골로가 말을 타고 가엾은 주느비에브 드 브라방의 성을 향해 나아가는 그림이 비쳤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익숙한 방을 낯설게 만들어 나를 더 쓸쓸하게 했다. 저녁이면 어머니가 침대로 와 입맞춰 주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으나,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어머니의 입맞춤


손님이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아예 올라오지 않았다. 우리 집을 찾는 손님은 거의 스완 씨뿐이었다. 가족에게 그는 그저 주식 중개인의 아들로, 골동품과 그림을 좋아하는 괴짜였다. 가족은 그가 실은 조키 클럽 회원이자 파리 사교계에서 가장 환대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신분 낮은 여자와 결혼한 뒤로 그는 더 드물게, 그것도 혼자 찾아왔다.

그날 저녁 스완이 정원의 종을 울렸다. 나는 어머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따라다녔지만, 식사 종이 울리자 할아버지가 무심코 말했다. “꼬마가 피곤해 보이는구나. 어서 자러 가는 게 좋겠다.” 아버지도 거들었다. “그래, 올라가거라. 군말 말고.” 입맞춤도 받지 못한 채 나는 그 싫은 계단을, 마음을 거스르며 올라갔다. 방에 갇힌 나는 절박한 죄수처럼 어머니에게 쪽지를 썼다. 글로는 적을 수 없는 중대한 일이 있으니 올라와 달라고. 프랑수아즈는 한참 봉투를 살피더니 마지못해 들고 내려갔다. 그러나 어머니의 답은 한마디뿐이었다. “답장은 없어.” 나는 계단에 어머니의 촛불 빛이 보일 때까지 깨어 있다가, 무슨 벌을 받든 기어이 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가 촛불을 들고 올라오자 나는 그대로 어머니에게 몸을 던졌다. 어머니의 얼굴에 노여움이 어렸다. 아버지가 오는 기척에 어머니는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들어가. 아버지 눈에 미친 아이처럼 보이면 안 돼.” 그러나 나는 매달렸고, 아버지는 이미 우리를 보고 말았다. 나는 속으로 끝장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버지가 말했다. “애가 저렇게 힘들어하는 게 보이잖아. 우리가 간수도 아니고. 큰 침대를 펴게 하고 오늘 밤은 애 곁에 있어 줘. 난 자러 간다.” 어머니가 망설였다. “여보, 애를 이렇게 길들이면 안 돼요.” “길들이긴 무슨. 보면 몰라, 애가 불행한 걸.” 나는 차마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는데도 나는 기쁘지 않았다. 이것이 어머니가 처음으로 자신을 꺾은 양보임을, 내가 그녀에게 첫 주름과 첫 흰머리를 새긴 것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 눈물을 보다 못해, 할머니가 생일 선물로 마련해 둔 조르주 상드의 소설 한 권을 골라 읽어 주었다. 그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에 실려 흐르는 산문 속에서 나의 고통은 차츰 가라앉았다.

오랫동안 콩브레의 기억은 그날 밤 잠자리 드라마의 좁은 무대 하나로만 남아 있었다. 나머지는 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들렌


과거는 지성의 영역 밖, 우리가 짐작조차 못 하는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숨어 있다. 그 대상을 죽기 전에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는 순전히 우연에 달려 있다. 여러 해가 지난 어느 겨울날, 추위에 떨며 집에 돌아온 내게 어머니가 평소 마시지 않던 홍차를 권했다. 처음엔 사양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어머니는 가리비 껍데기 모양의 작고 통통한 과자, 마들렌을 가져오게 했다. 나른하게 마들렌 한 조각을 적신 홍차 한 술을 입에 가져간 순간, 부스러기가 입천장에 닿자 전율이 온몸을 훑었다. 까닭 모를 황홀한 기쁨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사랑이 그러하듯 어떤 귀한 정수로 나를 가득 채웠다. 아니, 그 정수는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곧 나 자신이었다. 삶의 재난은 무력해지고 그 덧없음은 환각처럼 느껴졌으며, 나는 더 이상 보잘것없고 죽을 운명인 존재가 아니었다. 이 강렬한 기쁨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두 모금째, 세 모금째를 마셨지만 처음만 못했다. 찾는 진실이 잔 속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잔을 내려놓고 정신을 가다듬어, 그 첫 모금의 맛을 되살리려 했다. 무언가가 깊은 곳에서 닻처럼 박힌 채 천천히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몇 번이고 그 심연 위로 몸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다 문득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맛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 레오니 고모의 방으로 인사하러 가면 고모가 보리수꽃 차에 적셔 건네주던 마들렌 조각의 맛이었다. 오랜 과거에서 사람들이 죽고 사물이 부서져 흩어진 뒤에도, 연약하나 더 끈질기게 냄새와 맛만은 영혼처럼 남아, 그 거의 만져지지 않는 한 방울 속에 추억의 거대한 건축을 떠받친다. 맛을 알아본 순간, 고모의 방이 있던 잿빛 옛집이 무대 장치처럼 솟아오르고, 정원과 마을, 비본강의 수련, 성당, 콩브레 전체가 내 찻잔에서 피어났다. 마치 일본 사람들이 물에 적신 종잇조각이 꽃과 집과 사람으로 피어나듯이.

콩브레는 멀리서 보면 성당 하나로 압축되는 도읍이었다. 생틸레르 성당의 종탑은 마을의 모든 시각과 풍경 위에 군림했고, 할머니는 그 종탑의 꾸밈없는 기품을 무엇보다 사랑했다. “얘들아, 웃어도 좋아. 멋지진 않아도 그 늙은 얼굴엔 뭔가가 있단다. 피아노를 칠 줄 안다면 정말로 연주를 할 거야.” 미사에서 돌아오는 길엔 르그랑댕 씨를 만나곤 했다. 귀족을 향한 격렬한 비난을 늘 쏟아내던 그가 내게 말했다. “꼬마야, 늘 네 삶 위에 한 조각 하늘을 남겨 두렴. 너는 예술가의 영혼을 지녔으니 그것을 굶주리게 하지 마.”

레오니 고모는 남편을 여읜 뒤 콩브레의 집 그 방, 끝내는 그 침대를 떠나지 않게 된 분이었다. 종일 누워 자신의 증세를 살피고 창밖 거리를 읽으며, 프랑수아즈와 더불어 마을의 사소한 일들을 끝없이 캐물었다. “프랑수아즈, 방금 그 종소리 못 들었어? 머리가 다 쪼개졌다니까.” 모르는 사람이나 개가 지나가면 그 정체를 알아낼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일요일이면 절름발이 독신녀 욀라리가 찾아와 미사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이 고모의 유일한 낙이었다. 욀라리는 고모가 스무 번 죽는 소리를 해도 스무 번 “백 살까지 사실 거예요” 하고 받아 넘겼다. 프랑수아즈는 말을 안 해도 고모의 마음을 꿰뚫었다. “마님은 다 아세요. 엑스선보다 더하시다니까요.”

파리에서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아돌프 종조부 댁을 찾았다. 독신 노신사로 살면서 배우나 화류계 여성들과 어울리는, 집안에서 보기엔 다소 “방탕한” 생활을 하던 인물이었다. 어린 나는 연극과 배우에 대한 동경 때문에 이 종조부를 통해 배우들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어느 날 허락받지 않은 날에 몰래 갔더니, 분홍 비단 드레스에 진주 목걸이를 두른 젊은 여인이 귤을 까고 있었다. 종조부가 “내 조카란다” 할 뿐 여인의 이름은 일러 주지 않았다. 여인은 나를 보고 “어머니를 꼭 닮았네” 하며 다정히 웃었다. 사진 속 여배우 같은 요염함은 없고 그저 곱게 차려입은 평범한 여인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그 삶의 부도덕함이 도리어 나를 어지럽혔다. 떠날 때 나는 무모하게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아 입을 맞추고 말았다. “어머, 벌써 신사로구나.” 그날 일을 부모님께 다 털어놓은 탓에 종조부와 식구들이 크게 다투었고, 나는 길에서 마주친 그에게 차마 인사하지 못했다. 종조부는 끝내 우리를 용서하지 않았다.

여름이면 나는 부엌 곁 정원에서 책에 파묻혔다. 임신한 부엌 하녀를 스완은 조토가 그린 ‘자애’에 빗대곤 했다. 햇살이 나비처럼 멈춘 방에서, 혹은 밤나무 그늘의 천막 안에서 나는 책을 읽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기쁨과 슬픔은 실제 사람의 그것보다 더 또렷이 내 안에서 일어났다. 생틸레르 종탑의 종이 울릴 때마다 오후가 한 방울씩 흘러내렸고, 더러 책에 빠져 한 시간을 통째로 놓치기도 했다. 그러다 정원사의 딸이 “기병대가 와요!” 하고 외치며 달려오면, 프랑수아즈는 줄지어 지나가는 병사들을 보며 눈물지었다. “가엾은 것들, 풀처럼 베일 텐데. 생각만 해도 끔찍해.”

베르고트라는 작가를 내게 처음 일러준 것은 블로크였다. 그는 내가 뮈세를 좋아한다고 하자 군나팔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 형편없는 취향을 버리라고 했고, 정말 아름다운 시구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베르고트만큼은 진심으로 추천했다. 블로크는 곧 우리 집 출입이 금지되었다. 약속에 한 시간 반이나 늦고 진흙투성이로 나타나 시계와 우산이야말로 가장 해로운 물건이라고 떠벌렸으며, 무엇보다 내 종조모가 젊은 시절 화류계 여자였다는 소문을 옮긴 탓이었다. 나는 그 말을 부모에게 전했고, 그 뒤 블로크는 길에서 나를 차갑게 대했다.

그래도 베르고트에 관해서만은 그의 말이 옳았다. 나는 그 문장 속 흐르는 음악, 오래된 표현, 슬픔 어린 거친 가락에 빠져들었고, 마치 잃었던 아버지의 품에 안기듯 그 책장 위에서 울었다. 어느 일요일 정원에서 책을 읽던 나를 스완이 찾아왔다. 그는 베르고트를 잘 안다며, 원한다면 그에게 책 속표지에 몇 자 적어 주도록 부탁해 주겠다고 했다. 배우 중 누구를 으뜸으로 치느냐 묻자 스완은 베르마를 모두의 위에 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베르고트가 자기 딸 질베르트의 가장 가까운 벗이라 함께 옛 도시와 대성당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그 말에 질베르트는 내게 신들 곁에 사는 존재처럼 추앙되었고, 나는 대성당 현관 앞에서 그녀가 조각상의 뜻을 설명해 주는 모습을 그리며 동경과 절망에 사로잡혔다.

콩브레의 나날은 레오니 고모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프랑수아즈와 욀라리, 그리고 어원과 성당 유리창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사제가 번갈아 고모를 지치게 했다. 고모는 침대에 누운 채 프랑수아즈를 의심하고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며 속내를 털어놓는, 끝없는 책략의 놀이로 무료를 달랬다. 토요일이면 한 시간 일찍 점심을 먹는 우리 집만의 풍습이 작은 축제처럼 온 식구를 들뜨게 했다. 5월의 ‘성모의 달’ 저녁이면 우리는 성당에 갔고, 나는 제단을 뒤덮은 산사나무 꽃과 처음 사랑에 빠졌다. 거기서 만난 뱅퇴유 씨는 작곡을 한다면서도 수줍어 악보를 감추곤 했고, 사내아이 같은 딸을 끔찍이 아꼈다.

분홍 산사나무와 질베르트


스완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우리는 처음으로 탕송빌 울타리 안을 거닐었다. 할아버지가 분홍빛 산사나무를 가리켰다. 흰 꽃보다 더 고운, 핏빛 얼룩을 머금은 분홍 꽃송이가 가지마다 빽빽이 매달려 마치 축일 차림을 한 듯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순간 재스민과 팬지가 늘어선 길에서, 붉은 기 도는 금발에 분홍빛 주근깨가 돋은 한 소녀가 손에 모종삽을 든 채 나를 바라보았다. 검은 두 눈이 빛났다. 나는 그 눈길을 붙잡으려 애썼으나 소녀는 무심하게 경멸하는 듯 돌아섰고, 손으로 무례한 시늉을 해 보였다. 그때 흰옷 입은 부인이 날카롭게 불렀다. “질베르트, 이리 와. 뭐 하고 있니?” 소녀는 모종삽을 쥐고 달아났다. 멀어지며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가엾은 스완, 아내를 샤를뤼스와 단둘이 저렇게 내보내다니, 게다가 저 어린것까지 그 속에 끼어 있네.” 그 질베르트라는 이름은 부적처럼 내 가슴에 새겨졌고, 나는 그녀가 사는 샹젤리제마저 사랑하게 되었다.

레오니 고모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누구보다 프랑수아즈가 사납도록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해 가을 나는 홀로 스완네로 가는 메제글리즈 쪽 산책길을 거닐었다.

몽주뱅의 두 여자


뱅퇴유 씨가 죽은 뒤 어느 무더운 날, 나는 몽주뱅 연못가 비탈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불 켜진 방 안에 상복 차림의 뱅퇴유 양이 보였다. 그녀는 벽난로 위에서 아버지의 작은 사진을 가져와 곁의 탁자에 세워 두었다. 곧 그녀의 여자친구가 들어왔다. 뱅퇴유 양은 덧창을 닫는 척하다가 말했다. “이대로 둬. 너무 더워. 하지만 끔찍해. 누가 우리를 볼지도 몰라.” 그러고는 황급히 덧붙였다. “본다고 해도 책 읽는 모습이지.” 친구가 비웃듯 받았다. “본들 어때? 차라리 봐 주면 좋겠는데.” 두 사람은 가구 위로 넘나들며 서로 쫓고 쫓겼다. 친구가 사진을 집어 들며 귓속말을 하자 뱅퇴유 양이 외쳤다. “어머, 그런 짓 못 할 거면서.” “저 늙은이한테 침도 못 뱉을까 봐?” 친구가 일부러 거칠게 소리쳤다. 그제야 뱅퇴유 양은 지친 듯 창가로 와 덧창을 닫았다. 나는 그렇게, 평생 딸 때문에 괴로워한 아버지가 죽어서 받은 보답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았다. 훗날 나는 이 광경에서 인간의 잔인한 정념, 곧 사디즘의 관념을 얻었다.

게르망트 쪽 산책길은 스완네 쪽 산책길보다 멀었다. 우리는 비본 강을 따라 걸었고, 수련이 흐드러진 물길과 한가로이 떠가는 뱃사공을 보았다. 끝내 비본의 수원에도, 게르망트에도 닿지 못했다. 그때까지 게르망트 공작 부부는 내게 성당 유리창 속 인물처럼, 메로빙거 시대의 안개에 싸인 신비로운 존재로만 남아 있었다. 게르망트 쪽 산책에서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에 매달렸지만, 막상 주제를 찾으려 하면 머릿속이 시계처럼 멎고 텅 빈 공허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말했다. “너 늘 게르망트 공작부인 얘기만 하더라. 페르스피에 선생 딸 결혼식 때 콩브레 성당에 오신다니까, 거기서 볼 수 있을 거야.”

혼례 미사 도중 나는 질베르 르 모베의 예배당에 앉은 한 부인을 보았다. 금발에 큰 코, 푸른 눈, 연보랏빛 비단 스카프. 붉은 얼굴에 코끝의 작은 뾰루지까지 보였다. 그토록 다른 시대 사람처럼, 태피스트리 속 인물처럼 그려 왔던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사제관 차림의 평범한 피부를 가졌다는 사실에 나는 처음엔 실망했다. 그러나 곧 그 실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능이 작동해, 나는 그 얼굴에서 오직 아름다움만을 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기둥과 신도들 사이를 떠돌다 내게도 와 닿았다. 햇살 같은 그 눈길에 나는 “분명 저분이 내 생각을 하고 있어” 하고 믿으며, 그 자리에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며칠 뒤 페르스피에 선생의 마차를 얻어 타고 마르탱빌을 지날 때였다. 석양 속에서 마르탱빌의 두 종탑이, 멀리 비외비크의 세 번째 종탑까지 더해져, 마차가 움직일 때마다 자리를 바꾸며 춤추듯 다가왔다 멀어졌다. 그 광경이 감춘 무언가를 붙잡으려던 나는 선생의 연필을 빌려 종탑에 관한 짧은 글을 단숨에 써 내려갔다. 다 쓰고 나니 알을 막 낳은 암탉처럼 목청껏 노래하고 싶을 만큼 후련했다.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 그 두 산책길은 그렇게 내 마음 깊은 곳의 지반으로 남았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실재는 오직 기억 속에서만 형성된다는 것을.

스완의 사랑과 뱅퇴유 소나타의 소악절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스완이 겪은 사랑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데트 드 크레시는 스완의 취향에 맞는 미인이 아니었다. 광대뼈가 너무 도드라지고 눈은 너무 커서, 그는 처음엔 일종의 거부감마저 느꼈다. 그래도 그녀의 손에 이끌려 베르뒤랭 부인의 살롱에 드나들게 되었다. 그곳에서 젊은 피아니스트가 뱅퇴유의 소나타를 연주하던 밤, 스완은 작년에 단 한 번 듣고 잊지 못했던 그 소악절을 다시 만났다. 음의 물결 속에서 솟아오른 그 짧은 악구는 그를 미지의 환희로 데려갔다. 거리에서 한 번 본 여인을 친구 집 응접실에서 다시 만난 듯, 그는 그 악구와 사랑에 빠졌다. 이후 그 소악절은 스완과 오데트, 두 사람만을 위한 사랑의 국가가 되었고, 오데트는 “우리 것은 그 한 토막이면 돼” 하고 나머지는 듣지 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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