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알베르 까뮈 지음 | 고전문학
전락
알베르 까뮈 지음
제1부선생님, 제가 잠시 끼어들어 도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 가게 주인인 저 ‘고릴라’와 말이 통하지 않아 곤란해하시는 것 같군요. 사실 그는 네덜란드어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손님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으르렁거릴 뿐이죠. 문명화된 언어를 거부하는 그의 침묵은 원시림의 그것처럼 위압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가끔 저런 단순 무식한 존재들에게 향수를 느낍니다. 적어도 그들에겐 숨겨진 저의(底意) 따윈 없으니까요. 다행히 제 중재 덕분에 당신은 무사히 진(토닉 워터나 과일 주스를 섞어 마시는 독한 술)을 한 잔 받아 들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안도하는 틈을 타 자연스럽게 제 잔을 당신 곁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수다쟁이입니다, 슬프게도. 그리고 고백하건대, 훌륭한 화술과 가정법의 우아함을 사랑하는 사람이지요. 당신은 제 말투에 미소를 지으시는군요. 네, 저는 말투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비단 속옷을 즐겨 입는 것이 발의 더러움이나 피부의 습진을 감추기 위한 것일 수도 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말투 역시 때로는 치부를 가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죠. 그건 그렇고, 당신은 파리에서 오셨군요? 아, 파리! 그곳은 거대한 무대장치입니다. 4백만 명의 그림자들이 그 위에서 두 가지 열정에 사로잡혀 살고 있죠. 바로 ‘사상’과 ‘간음’입니다. 훗날 역사가는 현대인을 이렇게 한 줄로 정의할 것입니다. “그들은 간음하고 신문을 읽었다.” 그게 전부입니다.
반면 이곳 네덜란드는 어떻습니까? 저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몽유병자들입니다. 금빛 안개와 네온사인의 향(香) 속에서 그들은 꿈을 꾸며 페달을 밟습니다. 그들의 머리는 구릿빛 구름 속에 있고, 그들은 여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자바 섬, 그들의 조상이 식민지로 삼았던 그 먼 열대의 바다를 떠돌고 있는 것입니다. 암스테르담의 운하들은 마치 지옥의 동심원과도 같습니다. 바깥 원에서 안쪽 원으로 들어올수록 삶은, 그리고 죄악은 더욱 짙고 어두워지죠. 우리는 지금 그 마지막 원,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인 술집 ‘멕시코 시티’ 바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제 이름은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입니다. 전직 변호사였고, 현재는 ‘판사-참회자’입니다. 당신은 제 직업에 흥미를 보이고, 제 말투와 매끄러운 손을 보며 저를 경계하면서도 호기심을 느끼는군요. 당신도 저처럼 교양 있는 부르주아, 일종의 ‘사두개인’이시군요? 가진 것은 있지만 가난한 자들과 나누지 않는… 아, 너무 정색하지 마십시오. 우리 사회라는 게 원래 그렇죠. 마치 브라질 강가의 피라냐 떼처럼,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순식간에 인간을 뼈만 남기고 발라 먹어 버리니까요. “깨끗하고 좋은 삶을 원해? 좋아, 우린 너를 깨끗하게 해 줄게. 직업도 있고, 가족도 있고, 조직된 여가 활동도 있어….” 그리고 남는 건 하얀 뼈다귀뿐입니다.
우리는 다리 앞에서 헤어졌습니다. 저는 밤에는 절대 다리를 건너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키고 있었으니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 물에 뛰어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차가운 물속으로 따라 뛰어들어 그를 구하거나, 아니면 그를 버리고 도망치거나. 어느 쪽이든 끔찍한 선택입니다. 뛰어드는 것을 억눌렀던 것은 때로 기묘한 후유증을 남기는 법이니까요. 저 창문 뒤의 여자들이요? 꿈입니다, 선생님, 값싼 꿈. 인도 항해를 떠나는 것이죠! 그녀들은 향신료로 몸을 치장합니다. 들어가면 커튼이 쳐지고 항해가 시작됩니다. 신들이 벌거벗은 몸 위로 내려오고, 섬들은 표류하며… 한번 시도해 보시죠. 내일 뵙겠습니다.
제2부판사-참회자가 무엇이냐고요? 아, 그 수수께끼는 천천히 풀도록 하죠. 그전에 제 과거를 먼저 이해하셔야 합니다. 몇 년 전, 저는 파리에서 꽤나 잘나가는 변호사였습니다. 제 전문 분야는 이른바 ‘과부와 고아’를 위한 고귀한 사건들이었죠. 저는 피고인에게서 아주 미세한 희생자의 냄새만 맡아도 태풍처럼 격정적으로 변론에 뛰어들었습니다. 법정에서의 내 목소리는 정의감에 떨렸고, 청중들은 내 억제된 분노와 따뜻한 인간애에 감동하곤 했습니다. 사실 저는 두 가지 감정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법대(法臺)의 ‘올바른 쪽’에 서 있다는 안도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재판관들에 대한 본능적인 경멸이었습니다. 저는 심판하는 자가 아니라 구원하는 자라는 사실에 무한한 긍지를 느꼈습니다. 저는 법정의 바닥이 아니라, 마치 기계 장치를 타고 내려온 신처럼 공중에서 그들을 굽어보며 사건을 좌지우지했습니다.
제 삶은 도덕적으로 완벽했습니다. 저는 뇌물도, 비열한 수단도 거부했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마저 우아하게 거절했습니다. 그 거절이야말로 진정한 보상이니까요. 저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료 변론을 해주며 그 사실을 자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특히 ‘예의 바름’에서 오는 쾌락을 사랑했습니다. 맹인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게 해주는 일,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일, 비 오는 날 택시를 다른 이에게 양보하는 일…. 그 사소한 친절들이 제게는 매일매일의 축제였습니다. 법원 복도에서 가난한 부인이 제 손에 입 맞추며 감사를 표할 때, 저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당연한 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은 단순한 보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저속한 야망을 가진 자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 그리고 ‘미덕은 그 자체로 보상이다’라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황홀한 자기애였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높은 곳을 사랑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닫힌 공간보다는 테라스를 좋아했습니다. 산의 정상, 배의 갑판, 비행기 조종석…. 저는 언제나 사람들 머리 꼭대기에서 홀로 숨 쉬기를 원했습니다. 반대로 동굴 탐험가들처럼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자들은 혐오스러웠습니다. 그들이 진흙탕 속에서 무엇을 찾든, 그것은 저와는 상관없는 범죄적인 행위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인간 개미들보다 훨씬 높은 곳, 햇살이 비치는 천연 발코니에서만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높은 곳에 있으면 타인에 대한 적의도 사라집니다. 저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관대하게 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삶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건강한 육체, 뛰어난 지성, 사회적 성공, 그리고 여자들. 저는 모든 것을 누렸고, 그 모든 것이 제게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었지만, 제가 선택받은 인간, 신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슈퍼맨’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범죄와는 거리가 멀었고, 어떠한 심판도 저를 건드릴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에덴동산의 빛 속에 잠겨 자유롭게 군림했습니다. 중재자도 필요 없었고, 삶을 배우는 과정도 필요 없었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저는 매일 밤 축제 속을 떠다녔습니다. 춤을 추고, 술에 취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했습니다. 때때로 피로가 극에 달한 순간, 저는 제가 세상의 비밀을 터득했다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피로와 함께 그 비밀도 사라졌고, 저는 다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달려 나갔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 음악이 멈추고 불이 꺼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선생님, 친구들이 매일 밤 전화를 걸어 당신이 자살할 생각은 없는지, 외롭지는 않은지 물어봐 줄 거라 기대하십니까? 천만에요! 그들은 당신이 혼자가 아닐 때, 삶이 아름다울 때만 전화를 겁니다. 우리가 자살하려 한다면,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부추길지도 모릅니다. “자신에게 진 빚을 갚으라”는 명분으로 말이죠. 사실 우리는 친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죽음만이 우리의 감정을 진정으로 일깨웁니다. 입안 가득 흙을 문 채 말이 없는 죽은 친구,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우리는 칵테일 파티와 정부(情婦)와의 만남 사이에 잠시 짬을 내어 그들을 추억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장례식은 그저 우리의 작은 초월이자, 무료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아페리티프(식사 전에 마시는 술)일 뿐입니다. 인간은 두 얼굴을 가졌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남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죠.
제가 혐오하던 아파트 관리인이 죽었을 때, 저는 가장 화려한 꽃을 들고 장례식에 갔습니다. 미망인의 감사를 받으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인가? 아페리티프일 뿐이다.’
그날 밤은 유난히 아름다운 가을밤이었습니다. 파리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하러 들어갔고, 거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저는 센 강변을 걸으며 먼지 낀 노란 낙엽들을 밟았습니다. 별들이 하나둘 켜지는 하늘 아래, 저는 세상과
저 자신에 대한 완벽한 만족감에 취해 있었습니다. 저는 ‘예술의 다리’ 위로 올라가 시테 섬을 내려다보며 일종의 권력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허리를 펴고, 그 충만한 만족감을 기념하기 위해 담배에 불을 붙이려 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선가, 분명히 강물 위에서 들려오는 듯한 웃음소리. 그것은 조롱하는 것도, 비웃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기분 좋고, 씩씩하며, 어딘가 친근하기까지 한 웃음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배도, 사람도 없었습니다. 웃음소리는 강물을 따라 멀어져 갔지만, 제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멍해진 채 난간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 웃음에는 전혀 신비로운 구석이 없었지만, 저는 왠지 모를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으나, 창밖에서 또다시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다보니 젊은이들이 인사를 나누는 소리였습니다. 안도하며 욕실로 들어가 물 한 잔을 마시고 거울을 보았습니다. 제 미소는 여전했지만, 어딘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제 미소가 이중적으로 보였습니다.
뭐라고요?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했네요. … 아, 저기 저 구석에 앉은 곰 같은 사내가 보이십니까? 경찰은 그를 살인범으로 의심하지만, 사실 그는 그림 도둑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모두가 튤립 아니면 그림 전문가죠.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도난 그림 중 하나를 훔친 장본인입니다. 나는 그들의 법률 고문 노릇도 하고 있습니다. 포주와 도둑들이 죄다 감옥에 가면, 선량한 시민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무죄라고 착각하게 될 테니까요. 그건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우스갯소리가 될 테니까요.
내일 다시 뵙죠, 친애하는 친구여. 저는 이 다리를 건너지 않겠습니다. 밤에 다리를 건너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거든요. 누군가 물에 뛰어든다면 구해야 할 텐데, 물은 너무 차갑고… 뛰어드는 것을 억눌렀던 것은 때로 기묘한 후유증을 남기니까요. 저 창문 뒤의 여인들이 보이십니까? 싸구려 꿈, 인도로 가는 여행! 그녀들은 향신료 냄새를 풍깁니다. 들어가 보십시오. 커튼이 쳐지고 항해가 시작될 겁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제3부그 웃음소리에 대해 며칠 동안 생각했지만, 이내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망각의 천재였거든요. 하지만 선생님, 무언가가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나는 더 이상 파리의 센 강변을 걷지 않게 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그곳을 지날 때면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초조해졌고, 강을 건너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설명할 수 없는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찾아왔습니다. 의사들은 자극제를 처방했지만, 나는 흥분과 우울 사이를 오갈 뿐이었습니다.
삶이 예전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시들어갔습니다. 나는 제가 그토록 잘 안다고 자부했던, 그리고 한 번도 배울 필요조차 없었던 ‘삶’이라는 기술을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네, 바로 그때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 겁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하죠. 그 웃음소리 이후, 나는 내 완벽한 기억의 창고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잊고 싶었던 사건 하나를 끄집어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사소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어느 날 운전 중에 신호 대기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앞을 가로막은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정중하게 비켜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지옥에나 가라”는 욕설이었습니다.
뒤차들의 경적 소리에 초조해진 저는 차에서 내려 그 무례한 자를 훈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군중 속에서 ‘달타냥’ 같은 사내가 튀어나와, “오토바이 탄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며 저를 비난했습니다. 제가 그를 돌아보기도 전에, 오토바이 운전자는 다시 시동을 걸고 제 귀를 세게 후려치고는 도망쳐버렸습니다. 멍해진 저는 ‘달타냥’에게 한마디 대꾸도 못 한 채, 쏟아지는 경적 소리와 군중의 비웃음 속에서 도망치듯 차에 올라타야 했습니다.
사소한 일이라고요? 아마 그렇겠죠. 하지만 그 사건은 내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나는 내가 용감하고 고귀한 인간, 세르당(전설적인 복서)과 드골을 합친 듯한 완벽한 인간이라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비겁하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습니다. 파란색 고급 정장을 입고 우아한 척하던 내가, “불쌍한 멍청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쥐구멍으로 숨어버린 것입니다. 나는 며칠 동안이나 복수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이를 갈았습니다. 상대를 두들겨 패고 무릎 꿇리는 상상, 그를 추격하여 도로변에 처박는 상상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지성이나 관용, 정의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단순히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고 지배하는 것,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그를 짓밟는 것을 원했습니다. 모든 지식인은 갱스터가 되어 사회를 지배하는 꿈을 꾼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겁니다. 나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내 기분을 거스르는 자를 짓밟고 싶은 성마른 주인님이었을 뿐입니다.
비가 다시 내리는군요. 이 처마 밑으로 피합시다. 명예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두죠. 이제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 말입니다. 나는 여자들에게 늘 성공적이었습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그들은 내게 매혹되었죠.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포장했지만,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내 감정은 언제나 나 자신만을 향해 있었으니까요. 나는 여자를 정복하고, 이용하고, 잊어버렸습니다. 나는 원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친구의 아내는 신성하다는 원칙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며칠 전부터 그녀의 남편에 대한 우정을 끊어버리곤 했습니다. 간단하죠? 나는 나의 이런 기질을 ‘장애’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랑에서 오직 육체적인 것밖에 보지 못하는 선천적인 장애 말입니다. 나는 여성들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녀들에게 “당신만이 나를 이해할 수 있다”거나 “내 인생은 엉망이지만 당신이라면….” 같은 낡아빠진 대사를 읊어대며, 그녀들이 스스로를 구원자라고 믿게 만들었죠.
그녀들이 내게 맹세하고, 헌신할수록 나는 자유로워졌습니다. 나는 오직 내가 필요할 때만 그녀들이 존재하기를 원했습니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물건처럼 말입니다. 그녀들이 나를 떠나려 하면 나는 비굴하게 매달렸고, 다시 돌아오면 흥미를 잃었습니다. 나는 내 감정의 주인이 아니라, 허영심의 노예였습니다. 나는 오직 내 쾌락과 자존심을 위해 타인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끄럽냐고요? 아마도요. 수치심, 네, 그건 톡 쏘는 감정이죠. 그리고 이 수치심은 내가 기억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바로 그 사건 이후로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가식과 연극 뒤에 숨겨진, 내가 그토록 잊고 싶어 했던 진실 말입니다. 비가 그쳤군요. 내 집까지 걸어갑시다. 이제 내 모든 가식적인 연설을 비둘기 떼처럼 날려 보내고, 벌거벗은 동상처럼 진실을 드러낼 시간입니다.
그날은 11월의 어느 비 오는 밤이었습니다. 내가 그 웃음소리를 듣기 2~3년 전이었죠. 자정이 넘은 시각, 나는 정부(情婦)의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몸은 나른했고, 핏줄을 타고 흐르는 피는 내리는 비처럼 부드러웠습니다. 나는 ‘왕립 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다리 난간에 검은 옷을 입은 날씬한 여자가 기대어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빗물에 젖은 그녀의 목덜미가 내 눈길을 끌었습니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그냥 지나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