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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 지음 |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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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제1장1932년 초, 앙투안 로캉탱은 자신의 일상을 명확히 보기 위해 일기를 시작한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과 오브제의 미묘한 변화를 기록하며 자신을 탐구하려 한다. 가령, 평범한 잉크병이 담긴 상자나 거리의 풍경, 사람들의 표정, 그의 담배 케이스처럼 무심코 지나치는 물건들을 세심히 관찰한다. 그는 사소한 변화가 가져오는 낯설음을 정확히 기록하고자 하지만, 자신이 진짜 느낀 것을 과장할 위험을 경계한다.
“무언가”에 대한 불안토요일에 일어난 일에 대해 확실히 쓸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이미 그 순간과 멀어졌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건이라 부를 만한 일도 없었다. 그날 아이들이 돌을 물에 던지며 물수제비를 하고 놀았고, 나도 돌을 바다에 던지고 싶었다. 그런데 돌연 멈춰 서서 돌을 떨어뜨리고 돌아섰다. 아이들이 내 뒤에서 웃었고 나는 아마도 어리둥절했거나 집중을 잃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외적으로는 이런 일이었지만, 내면에서 일어난 일은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무언가가 역겨웠고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이유가 돌이었는지 바다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돌은 평평하고 한쪽은 마른 상태였고 다른 쪽은 습하고 진흙이 묻어 있었다. 손가락을 벌려서 가장자리를 잡았고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 했다.
엊그제는 더 복잡했다. 설명할 수 없는 일련의 우연과 혼동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알았더라면 큰 진전을 이뤘을 것이다. 가장 이상한 것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모든 변화는 사물에 관한 것이다. 어쩌면 일시적인 광기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변화와 소외감내 손길이 닿는 물건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문손잡이조차 무언가 생명력 있는 물체처럼 나를 의식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도서관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조차 나의 눈에 낯선 존재로 보였다. 나는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둘 이질감과 함께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며 혼란에 빠졌다. 나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감각이 병적으로 확산되는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이러한 이상한 감각들 속에서도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도시의 일상을 바라봤다. 나의 창문 밖에는 파리행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은 역을 빠져나가며 흩어졌다. 마지막 트램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밤마다 내가 묵는 곳에 들르는 상인이나 여행객들이 “정상”처럼 느껴지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저 평범한 일상과 반복이 주는 그 안정감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시 쓰인 첫 페이지며칠 후, 나는 마치 병처럼 나에게 스며든 어떤 이상한 감정이 이제는 명확히 나의 일부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이 변화는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점진적으로 스며들었고, 마침내 나는 이를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물건을 잡는 손의 감각마저 변하고, 주변의 사물들이 점점 살아있는 존재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기이한 경험을 겪게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익숙한 것들에서 낯설음을 느끼며, 나 자신이 무너져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품었다.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의 의지는 점차 불안으로 변해가고,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이 나에게 불안의 원인으로 떠올랐다.
제2장몇 주 새 나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이 변화가 나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사는 도시와 방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 나 자신이 변한 게 맞을 거다. 나는 대체로 별다른 생각 없이 살다 보니, 작은 변화들이 쌓여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혁명처럼 나를 덮치는 일이 종종 있다. 프랑스를 떠났을 때도, 6년 만에 돌아왔을 때도 사람들은 내가 변덕스러워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기억나는 건 인도차이나에 있을 때 메르시에가 나에게 벵골로 함께 가자고 한 거다. 나는 가고 싶었지만 무언가에 눌린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예전에 열정적으로 따라다니던 탐험의 열망이 완전히 사라진 걸 깨달았다. 갑자기 프랑스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틀 후 배를 타고 돌아왔다.
이번에도 어떤 변화가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두렵다. 새로운 변화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겠다. 만약 또다시 불안과 불확실 속에서 깨어난다면, 내 연구와 책은 미완성으로 남겠지. 진실을 명확히 보고 싶다, 너무 늦기 전에.
1월 30일 화요일별다른 일은 없다. 오늘 아침 9시부터 도서관에서 롤르봉의 러시아 시절과 관련된 자료를 정리했다. 나는 롤르봉에 대해 쓰기로 했다. 그는 내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인생은 혼란과 모순으로 가득 찼지만, 나는 그 속에서 어떤 질서를 찾아내려 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 평온한 카페, 마블리 카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무심하게 커피를 마시며 일상을 보낸다. 나는 이들과 다르게 혼자 산다.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어떤 것도 주고받지 않는다. 유일하게 대화하는 사람은 독학자 정도다.
자칭 ‘독학자(Self-Taught Man)’인 그는 독학으로 자신을 교육하려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늘 도서관의 한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작은 노트북을 꺼내 책에서 배운 내용을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어떤 열정이 깃들어 있었는데, 이는 책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강렬한 의지처럼 보였다. 그는 A로 시작하는 책을 모두 읽었고, 이제 B로 넘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읽고 쓰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조차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행동에는 어떤 자유나 창조성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나와 달리 이 카페에 모이는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자신들이 한 일을 또렷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내게는 그런 일이 없어진 지 오래다. 혼자 살다 보니 누군가에게 일상의 조각을 전달하는 일이 없어졌다. 그런 삶 속에서 나는 어쩌다 마주친 장면들, 예컨대 바다 옆에서 어떤 여인이 웃으며 손수건을 흔들고 있던 모습이나, 비 오는 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 같은 것들을 담담히 관찰하게 되었다.
가끔 나는 그런 사소한 장면들 속에서 나 자신이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오늘, 마블리 카페에서 보이는 맥주잔 하나에 시선이 닿았을 때, 강렬한 거부감이 밀려왔다. 맥주잔, 단순한 물건인 맥주잔 하나조차 내게 공포감을 주는 이 감각이 이해되지 않는다. 마치 내가 한층 더 고립된 깊은 바다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이 감각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니 괴롭다.
제3장
어린 시절의 기억어렸을 때, 룩셈부르크 공원에서 놀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곳에는 벽에 기대어 앉아 매번 무표정한 얼굴로 발끝을 바라보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검은 부츠와 슬리퍼를 번갈아 신고 있었고, 그가 ‘혼자인 것’이 어린 마음에도 느껴졌다. 우리가 그에게서 느낀 공포는, 고립된 존재가 가지는 어떤 섬뜩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도 그렇게 혼자가 될까 두렵다.
혼자만의 감각오늘 아침 호텔에서 나오는데 길가에 떨어진 종이를 보고 손을 뻗으려 했다. 늘 하던 대로 그것을 만지고, 구기거나 찢으며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엔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자유롭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종이를 만지려던 그 작은 시도조차 실패했다는 사실이 나를 깊이 찔렀다. 이제 사물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내게 닿는 것이 두려워졌다.
롤르봉에 관한 연구오후에 도서관에서 롤르봉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그에 대한 정보는 모두 그를 기이한 인물처럼 보이게 한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음모를 꾸미고, 스파이 활동을 하며 삶을 바쳐 온 듯했다. 그가 살아남은 이야기 속에는 비밀과 격렬한 감정이 얽혀 있다. 1820년에 70세의 나이로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했지만, 결국 반역자로 몰려 감옥에서 죽었다. 그의 삶은 기이하면서도 비극적이었고, 나 역시 그에게 매료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삶을 연구하며 내 안의 갈망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
제4장이 몇 줄의 노트로 처음 롤르봉 후작을 알게 되었던 순간을 되새긴다.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던지,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기록을 찾기 위해 파리나 마르세유가 아닌 이 부빌에 정착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곳의 도서관에는 그의 긴 프랑스 체류와 관련된 문서들이 모여 있다.
오랜만에 노트들을 다시 읽어보니 나의 필체도 변한 것 같다. 예전에는 더 작고 정교하게 썼던 기억이 난다. 그때 롤르봉에 대한 나의 애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기억한다. 어느 저녁, 만느 거리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가 네르시아트를 속였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그 후로 그를 연구하며 그의 얼굴을 종종 상상하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801년 이후 그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기록은 많지만, 일관성은 전혀 없다. 다른 역사학자들은 이런 단서들로 그를 연구해내지만,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이제 롤르봉이 아닌, 그와 관련된 책을 쓰고 싶은 욕망만 남아 있다.
그가 폴 1세의 암살에 깊이 관여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는 동시에 나폴레옹과 차르를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며 서로를 배신했을 가능성도 있다. 롤르봉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했으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거짓된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지만, 아무것도 확실히 증명되지 않는다. 그에 대한 연구는 어느덧 나의 상상력이 개입하는 작업으로 변해버렸다.
금요일지금 시각은 세 시다. 세 시는 무엇을 하기에도 너무 늦거나 이른 애매한 시간이다. 오늘은 더욱 견디기 힘든 날이다. 차가운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방 안에 황금빛과 함께 사방에 흐릿한 반사광을 비추고 있다. 그 빛이 모든 것을 퇴색시키고 있다. 마치 나의 손조차 아무것도 아닌 듯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어제의 먹구름 낀 하늘은 비록 어두웠지만 나를 포근하게 감싸줬다. 하지만 오늘의 햇빛은 매정하게 모든 것을 비추며 내 속을 들추어낸다. 자아성찰을 하기에 좋은 날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스스로에 대한 경멸을 키울 뿐이라 그만두고 싶다.
폴 1세의 암살에 롤르봉이 관여했을까? 그는 그날 밤 외출했으며, 여러 정황으로 인해 알렉산드르가 그를 의심하고 동방으로 추방했을 가능성이 있다. 롤르봉이 냉담한 인물이라는 건 확실하지만, 이 연구가 나를 지치게 만든다. 롤르봉은 기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음모를 꾸미고, 누군가를 배신하며, 그 어떤 대의도 없이 자신의 삶을 흘려보냈다.
내가 이 인물을 연구해야 할 이유가 과연 있는가? 롤르봉은 나에게 어떤 답도 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생애 속에서 아무런 질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나의 기대를 배반했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더 이상 써 내려갈 수 없었다. 나는 지루함에 몸을 일으키고, 날이 어둑해지길 기다린다. 어둠이 내리면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날 것 같다.
거울 속 얼굴나는 거울을 바라본다. 이 얼굴은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거울을 오래 바라보면 원숭이가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지금 내 얼굴은 원숭이보다도 더 하찮고 생명이 없는 듯 보인다. 특히 눈은 비늘처럼 흐릿하고 축축하게 빛난다. 거울에 가까이 다가가니 눈, 코, 입이 사라지고 그저 무의미한 주름과 점들만 보인다. 이 얼굴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리 보일까?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타인의 시선으로 익히지만, 나는 혼자이기에 이 얼굴이 나를 더욱 고립시키는 것 같다. 나는 그저 밤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5시 30분상황이 좋지 않다. 다시 ‘구역질’이 밀려온다. 이번에는 카페에서 나를 덮쳤다. 카페는 원래 사람들로 북적이며 나를 안전하게 느끼게 하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그러나 이제 그곳조차 나를 구할 수 없다. 그저 구역질의 소용돌이에 갇혀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이다. 카페의 종업원 마들렌은 내게 음료를 권했지만, 그녀가 얼굴에 바른 화장조차도 내게는 낯설게 보인다. 그녀의 얼굴에서 끊임없이 귀로 흘러가는 듯한 볼의 주름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모든 것의 변화카페 안의 모든 것이 구역질을 일으킨다. 파란색 셔츠에 보라색 멜빵을 한 남자가 바에서 어리숙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조차 나를 괴롭게 한다. 구역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 모든 것 속에 있다. 멜빵, 벽, 의자, 카페의 모든 것이 나를 질식시킨다.
주변에서 카드놀이가 시작되고, 그들의 손놀림이 희미하게 보인다. 나는 고개를 돌릴 수도 없고 그저 가만히 그들의 팔과 움직임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모든 게 흐릿하고 둔하게 돌아간다. 더 이상 내가 나를 벗어날 곳이 없다는 사실이 날카롭게 나를 찌른다. 나는 지겨워져서 종업원 마들렌을 불렀다. “마들렌, 좋아하는 곡 좀 틀어주겠나? ‘Some of These Days’로.”
마들렌은 카드놀이 중인 손님들을 보고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이내 허락을 받고 축음기 레코드를 돌렸다. 낡은 재즈곡이 시작되었다. 1917년 라로셸 거리에서 미군이 휘파람을 불던 곡이었다. 음악은 조용히 시작되었지만 이내 강렬하게 몰아쳤다. 한순간 한순간이 나를 찌르고 지나가며 소멸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것들이 곧 사라질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작고 단순한 행복이 속에서 퍼져나갔다. 그것은 기름얼룩처럼 넓어져 나가며, 내 시간 속에 오래된 듯 느껴졌다.
음악은 흐르며 세상을 꿰뚫었다. 문이 열리고 찬 공기가 들어와도, 수의사가 딸을 데리고 와도, 음악은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켰다. 한 소녀가 경청하며 눈을 크게 뜨고 탁자를 문질렀다. 잠시 후 흑인 여가수가 노래할 것이었다. 이 음악의 완벽함은 쉽게 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끊을 수 없고, 모든 것이 멈출 수도 있었다.
노래가 끝난 순간 나는 내가 변한 걸 느꼈다. 갑자기 강렬하고 반짝이는 느낌이 들며 구역질이 사라졌다. 음악이 방을 가득 채웠고, 나는 그 안에 녹아들었다. 맥주잔도 작아지고, 중요한 물건처럼 느껴졌다. 손을 뻗어 잔을 쥐려 하니, 내 몸짓이 마치 춤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게임은 계속되었다. 한 장 한 장 카드가 쌓이며 지나갔다. 나는 내 몸이 정밀한 기계처럼 안정되게 느껴졌다. 내게도 모험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어디로 날 이끌었는가? 그 순간, 나는 음악 속에 머물며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과 같은 시간 속에 있었다. 그러다가 음악이 멈추고, 달콤한 밤이 스며들었다. 플레이어들이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나도 일어섰다. 그저 서늘한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어졌다.
밖으로 나가니 공기가 상쾌했다. 그러나 아주 차가웠다. 아직 영화 시작까지 시간이 남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뒤를 돌아보니 대로가 도시의 불빛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때는 생동하는 모든 존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황량한 거리를 따라 걸어갔다. 그곳에는 움직이지 않는 돌과 흙뿐이었다.
기차역과 몇몇 카페들만 빛을 내는 이 거리의 끝에는 어둠이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이곳은 거친 기후와 척박한 땅으로 생명이 뿌리 내리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저 냉정하게 이어지는 벽과 가로등 없는 인적 드문 길이 펼쳐졌다. 도시는 이곳을 잊었다.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돌과 광물 같은 곳이었다. 이 황량함이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이러한 거리는 주로 베를린이나 런던 같은 대도시 외곽에서나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