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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 더스토리


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더스토리 / 2020년 3월 / 430쪽 / 13,800원



제1부


이 연대기의 소재가 되는 기이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발생했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이곳은 일상에서 약간 벗어난 이 사건들이 발생하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었다. 사실 오랑은 일견 평범한 도시이고, 알제리 해변가에 있는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에 불과하다.

4월 16일,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진료실을 나와 계단 중간에서 죽은 쥐 한 마리에 발이 걸렸다. 그 순간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 짐승을 옆으로 치우고 계단을 내려왔다. 하지만 거리로 나왔을 때, 그는 쥐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수위에게 알려 주려고 발길을 돌렸다. 수위 미셸의 태도는 완강했다. 건물 안에는 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 리외는 집으로 올라가기 전에 건물 복도에서 피를 뱉으면서 쓰러지는 쥐를 보았다.

4월 17일 8시, 수위는 지나가는 리외를 불러 세웠다. 그러더니 그는 못된 장난꾼들이 죽은 쥐 세 마리를 복도 한복판에 던져 놓았다고 비난했다. 얼마 후, 리외는 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요양소로 보내기 위해 기차에 태웠고, 승강장에서 예심판사 오통 씨와 마주쳤다. 이윽고 기관차가 기적을 울렸다. 그때 판사가 말했다. “쥐들이…….” “예, 별일 아니겠죠.”

그날 오후, 리외는 신문기자의 방문을 받았다. 그의 이름은 레몽 랑베르였다. 그는 파리에 있는 큰 신문사를 위해 아랍인들의 생활 여건을 취재하고 있는데, 따라서 그들의 보건 상태에 대한 정보를 얻기를 원했다. 리외는 그에게 그들의 보건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또 그와 작별 악수를 하며 요즘 시내에서 발견되는 수없이 많은 죽은 쥐에 대한 특별 취재를 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오후 5시, 리외는 다시 왕진을 나가면서 계단에서 장 타루와 마주쳤다. 그는 의사 쪽을 바라보며 인사를 하고는 쥐들의 출현은 기이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튿날 4월 18일 아침, 의사는 역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오는데, 지하실에서 다락까지, 계단마다 십여 마리의 쥐들이 널려 있었다. 리외는 시청의 구서과(驅鼠科)에 전화를 했다. 메르시에 과장은 그런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 뒤로 며칠 사이에 상황이 악화되었다. 랑스도크 통신이 라디오방송에서 4월 28일에 약 8천 마리의 쥐를 수거했다고 보도하자 시의 불안은 절정에 달했다. 사람들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하며 당국을 비난했고, 바닷가에 집을 갖고 있던 몇몇 사람들은 이미 그곳으로 피난 가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정오, 리외는 집 건물 앞에 차를 세우다가 길 저쪽 끝에서 수위가 고개를 숙인 채 팔다리를 벌리고 허수아비 같은 자세로 힘겹게 오는 것을 보았다. 수위는 의사도 알고 있는 파늘루 신부의 팔에 의지하고 있었다. 의사는 미셸의 목 아래쪽을 만져 보았다. 거기에는 나무옹이 같은 것이 있었다. 리외는 말했다. “가서 누우시고 체온을 재세요. 오후에 보러 가겠습니다.”

점심 식사 후, 리외가 아내의 도착을 알리는 요양소의 전보를 읽고 났을 때 전화가 울렸다. 그의 예전 환자 중 한 명인 시청 서기인 그랑으로부터 온 전화였는데, 그가 말했다. “이웃집에 일이 발생했습니다.” 몇 분 후, 리외는 페데르브가에 있는 나지막한 집의 문을 넘어섰고, 계단 중간에서 그를 마중하러 내려오던 그랑을 만났다. 그는 오십쯤 되는 나이에 몸이 마른 남자였다. 마지막 층인 3층, 왼쪽 문 위에서 리외는 붉은 분필로 쓴 글씨를 읽었다. ‘들어오시오. 나는 목을 맸소.’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엎어진 의자 위로 밧줄이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탁자는 구석으로 밀쳐져 있었다. “제때에 내가 풀어 줬어요. 마침 밖으로 나가다가 소리를 들었어요. 그 글을 봤을 때, 허풍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 사람이 신음 소리를 내는 거예요.” 그랑이 말했다.

몸이 땅딸막한 작은 사내가 구리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고, 충혈이 된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리외는 침대 쪽으로 갔다. 그 사람은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어서 척추는 말짱했다. 물론 약간의 질식 증상은 있었다. 의사는 장뇌유 주사를 한 대 놓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다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리외가 경찰서에 신고했느냐고 묻자, 그랑은 “아뇨. 아! 안 했어요.” “그럼 제가 신고할게요.” 그 순간 환자인 코타르는 자기는 괜찮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항변하면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말했다. “다시는 안 그럴 것이고, 내가 지금 흥분해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리외는 처방전을 써주며 말했다. “알았어요, 이 일은 그냥 덮어 두기로 하죠.”

그날 저녁, 수위는 헛소리를 했고, 열이 40도가 되자 쥐를 원망해 댔다. 그다음 날인 4월 30일, 아침에는 열이 38도로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정오에는 열이 대번에 40도로 올랐고, 수위는 끊임없이 헛소리를 했으며, 구토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 구급차 안에서 수위는 운명했다.

수위의 죽음은 당황스러운 징후들로 채워진 한 시기를 끝내고, 초기의 뜻하지 않은 놀라움이 점차 공황으로 변해 가는,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다른 한 시기의 시작을 보여 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서술자의 생각으로 새로운 사건들을 상술하기 전에 방금 기술된 시기에 대한 다른 사람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도 유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 만난 바 있는 장 타루는 몇 주 전에 오랑에 정착했고, 그 이후로 시내의 한 대형 호텔에서 지내고 있다.

타루의 수첩들 또한 이 힘든 시기에 대한 일종의 연대기를 이룬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무의미한 선택에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특이한 연대기라는 것이다. 그는 무질서한 상태에서 이야깃거리가 없는 것을 기록하는 역사가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가 작성한 수첩들은 그 시대의 한 연대기로서 꽤 많은 세부 사항들을 제공해 주는데, 이것들은 부차적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며칠 사이에 죽은 자들의 수가 배가되었고, 따라서 이 기이한 병에 주의를 기울여 온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전염병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바로 그즈음 리외의 동료 의사이고 그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카스텔이 그를 보러 왔다. “리외, 자넨 당연히 이게 뭔지 알고 있지?” “분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난, 그 결과를 알고 있네. 그리고 분석할 필요도 없어. 난 중국에서 의사 생활을 한 적도 있고, 파리에서도 몇몇 사례를 겪어 보았소. 20년 전이었지. 리외, 자네도 나처럼 이게 뭔지 잘 알고 있지.” “그렇습니다.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만, 페스트인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리외가 말했다.

며칠 후 적절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고집을 피워 리외는 도청으로부터 보건위원회 소집 허가를 얻어 냈고, 토론에서 동료의사들은 이 병을 페스트라고 생각했다. 토론회 다음 날, 열병의 기세는 약간 더 세졌다. 어쨌든 토론회 이틀 후에 리외는 도청에서 가장 이목을 끌지 않는 시의 길모퉁이에 신속하게 붙이도록 한 작은 흰색 벽보를 볼 수가 있었다. 벽보에는 개괄적인 대책들이 공고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하수구에 독가스를 분사하는 과학적 쥐잡기, 수돗물의 철저한 감독 등과 같은 조항들이 들어 있었다. 다른 한편 환자의 가족들은 의사의 진단이 내려진 경우, 이를 의무적으로 당국에 신고하고, 환자들을 병원의 특별 병실에 격리하는 데 동의해야 했다. 그다음 날, 랑스도크 통신은 도청의 조치들이 차분하게 수용되었고, 벌써 30여 명의 환자들이 자진 신고했다고 보도했다.

도청에서는 의사 리샤르를 통해 리외에게 수도에 보내게 될 지시 요청 보고서를 작성해 줄 것을 의뢰했다. 같은 날, 사망자 수는 약 40명에 이르렀다. 도지사는 자기 책임 아래 그다음 날부터 해당 조치들을 더 강화하기로 했다. 의무적 신고와 격리가 계속 이루어졌다. 환자의 집은 폐쇄되고 소독되어야 했고, 주변 사람들은 격리 보호에 따라야 했으며, 매장은 추후 정해질 조건에 따라 시에서 하기로 했다. 하루가 지나 혈청이 비행기 편으로 도착했다. 현재 치료 중인 사람들에게 충분한 양이었다. 전염병이 확산되는 경우라면 이 혈청만으로는 부족했다. 이후 며칠 동안 사망자 수가 감소했다. 그러다가 단번에 다시 급상승했다. 사망자 수가 다시 30명에 도달한 날, 베르나르 리외는 도지사가 내민 공식 전보를 받아 읽었다. 전보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페스트 사태를 공표하라. 도시를 폐쇄하라.’

제2부


그 순간부터 페스트는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일단 관문(關門)들이 폐쇄되자 서술자를 포함해 그들 모두가 같은 자루에 들어 있는 처지였고, 또 거기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관문 폐쇄로 인한 가장 뚜렷한 결과 중 하나는 이 병에 대해 준비를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처한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아울러 시행령에 따라 모든 우편물을 주고받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또 전염병 발병 이전에 시를 떠난 사람들의 귀가는 자유이지만 다시 떠날 자유는 없었다. 페스트가 우리 시민들에게 맨 먼저 가져다준 것은 귀양살이였다.

시민들이 난데없는 귀양살이와 타협하려고 애쓰고 있는 동안, 페스트로 인해 관문마다 보초들이 서게 되었고, 오랑으로 오던 선박들이 우회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의 폐쇄 이후, 한 대의 차량도 시내로 들어가지 못했다. 페스트 발병 후 3주 만에 사망자 수가 302명에 달하고, 다섯째 주에는 321명, 여섯째 주에는 345명이었다. 그리고 관문 폐쇄 후 셋째 주에, 병원 출입구에서 리외는 그를 기다리는 한 젊은 남자를 만났다. “이 사건이 터지기 전에 찾아뵈었지요. 제 이름은 레몽 랑베르입니다.” 상대방이 말했다. “아! 그랬었지요. 그래, 좋은 취재거리를 찾은 거네요.” 리외가 말했다.

랑베르는 이 사태가 어느 정도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추천을 받아 도지사의 비서실장과 접촉할 수가 있었다. 랑베르는 그에게 자신은 오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우연히 여기에 있게 되었으며, 따라서 밖으로 나가면 일단 격리 수용된다고 해도 자기가 이곳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 주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그런데 비서실장은 사태를 잘 이해하지만 예외를 둘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랑베르는 리외를 찾아왔다.

랑베르가 말했다. “저는 그저 제가 그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증명서를 써 주실 수 없는지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리외가 말했다. “그런 증명서를 발급해 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당신이 그 병에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안다고 해도 내 진찰실을 나가는 순간부터 도청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당신이 감염이 안 된다고 증명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또 내가 문제의 증명서를 발급해 준다고 해도 그건 당신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왜 그렇죠?” “이 시에는 당신과 같은 경우가 수천 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밖으로 나가게 두지 않으니까요.”

그달 말경에 시의 성직자들이 공동 기도 주간을 정해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페스트에 대항하기로 결정했고, 파늘루 신부에게 연설을 부탁했다. 파늘루 신부가 설교단에서 “형제님들, 여러분은 불행을 겪고 계십니다. 형제님들, 여러분은 그래야 마땅합니다.”라는 한 구절을 내뱉자 성당 앞뜰에 있는 청중까지 동요했다. 이어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와 관계된〈출애굽기〉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재앙이 역사 속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신의 적을 치기 위해서였습니다. 파라오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에 대항하자 페스트는 그의 무릎을 꿇게 합니다. 모든 역사의 시작부터 하느님의 재앙은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그 발 아래에 뒀습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하시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모든 청중이 곧 무릎을 꿇었다. 그때 파늘루는 더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오늘 페스트가 여러분의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성찰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사람들은 이 일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악인들이 떠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불행은 하느님이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무 오랫동안 이 세상은 악과 타협했고, 너무 오랫동안 신적 자비에 의지했습니다. 회개하는 것으로 충분했고, 모든 것이 허용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이 도시의 사람들 위에 연민의 얼굴을 드리우고 계셨던 하느님께서 기다리다 지치시고 당신의 무궁한 희망이 무너져 막 시선을 돌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의 광명을 잃고 오랫동안 페스트의 암흑 속에서 지내는 겁니다!”…(중략)… 그리고 신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설교를 마무리 했다.

“오래전에 아비시니아의 기독교도들은 페스트에서 하느님이 그 기원이신 영생을 얻는 효과적인 수단을 보았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은 자들은 확실하게 죽을 목적으로 페스트 환자들이 사용했던 홑이불을 몸에 감고 있기도 했습니다. 분명 구원에 대한 이와 같은 격정은 바람직하지 않을 겁니다. 하느님보다 더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궁극적으로 세운 불변의 순서를 앞당기려고 하는 것 모두가 이단에 이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예에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예는 사물을 예리하게 뚫어 보는 정신의 소유자들에게 오직 모든 고통의 바닥에 놓여 있는 영생의 황홀한 미광을 돋보이게 해 줍니다. 이 미광은 어김없이 악을 선으로 바꾸는 하느님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오늘도 역시 이 빛은 죽음, 고뇌, 비명의 길을 통해 본연의 침묵과 모든 생명의 원칙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형제님들, 이것이 바로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었던 커다란 위안입니다.”

한편 랑베르는 역시 막 시작된 이와 같은 공황의 분위기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더 많은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더 끈기 있고 수완 있게 노력했다. 랑베르는 우선 공식적인 절차를 계속 밟았다. 그는 평상시에는 두말없이 능력 있는 사람들에 속하던 수많은 관리들과 인사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시를 빠져나가는 이 문제에서만큼은 이런 능력이 그들에게 전혀 쓸모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리외에게 타루가 만나자고 요청했는데, 타루는 이 사실을 그의 수첩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타루가 대뜸 말했다. “내가 알기론 당신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리외는 침묵으로 동의를 표시했다. “두 주나 한 달 안에 당신은 이곳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될 겁니다. 당신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리외가 말했다. “사실입니다.” 타루가 말을 이었다. “보건위생과의 조직이 허술합니다. 당신에겐 사람과 시간이 부족하고요. 건강한 사람들을 구조 작업에 강제로 참가시키려고 도청에서 일종의 시민 의무 봉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지 않는 거요?” “해 봤지만 결과가 빈약했어요.”

“별다른 믿음 없이 사무적인 방식으로 했겠죠. 그들한테 부족한 것은 바로 상상력입니다. 만일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그들은 죽을 것이고, 우리도 그들과 함께 죽을 겁니다.” “그래서요?” “내게 자원 보건위생대 조직을 위한 방안이 있습니다. 내가 그 일을 맡도록 승인해 주고, 행정 당국은 일단 제쳐 둡시다. 친구들이 거의 모든 곳에 있어서 그들이 첫 번째 구심점이 되어 줄 겁니다. 나도 당연히 거기에 참여할 겁니다.” “이 구상을 도청에서 받아들이도록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리외가 말했다.

그다음 날로 타루는 일에 착수해서 제1조를 모았고, 다른 많은 조가 그 뒤를 이어 조직되었다. 보건위생대에 헌신한 사람들이 아주 대단한 자질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이 그것임을 알고 있었고, 또 그때는 그런 결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 믿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뿐이었다. 보건위생대는 시민들이 페스트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 병이 거기 있는 까닭에 그들이 이 병과 싸우는 데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부분적으로 납득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페스트는 몇몇 사람의 의무가 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페스트는 사실상 실체로서, 즉 모든 사람이 관련된 문제로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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