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필립 클로델 지음 | 샘터
향기
필립 클로델 지음
샘터 / 2014년 10월 / 280쪽 / 12,000원
오랫동안, 오랫동안 맡게 해줘.
네 머리카락 향기를.
내 얼굴을 온통 그 속에 파묻게 해줘.
목마른 사람이 샘물에 얼굴을 푹 담그듯이.
그리고 내 손으로 네 머리칼을 흔들게 해줘.
마치 향기로운 손수건처럼.
공기 중에 추억들을 흔들어보기 위해서.
- 샤를 보들레르, <머리카락 속의 반구(半球)>
아카시아
이상 기후 현상일까. 6월 초에도 눈으로 덮인 나무들을 볼 수 있다니. 두껍게 쌓였으면서도 가벼운 솜뭉치 같은 이 눈을, 마치 사랑하는 이의 배를 애무하듯 저녁 바람이 스쳐 간다.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살고 있는 우리 마을 동발의 묘지 뒤에 파묻혀 움푹 팬 길을, 나는 자전거로 달려 내려간다. 이 길은 오래된 소메르빌레르 주경기장을 향해 있는데, 그곳은 우리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숨바꼭질, 피구, 전쟁놀이.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 노슈, 바게트 쌍둥이 형제, 에리크 쇼크나키, 드니 폴, 장마르크 세자리, 프랑시스 델 파브로, 디디에 시모냉, 디디에 포, 장마리 아르누, 프티장, 마르크 조네.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들이 맑은 하늘을 가리고 있어, 마치 정교하게 세공된 궁륭(穹?) 같아 보인다. 고대 화폐 모양의 나뭇잎. 이제는 사라진 사형수들을 위한 가시관.
나는 눈을 감고 페달을 밟는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젖혀 해마다 봄이 새롭게 가져다주는 달뜬 기쁨과 꽃잎들의 향기에 취한다.
우리의 삶처럼 드넓은 날들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는 새들과 개구리들의 새로운 노래를 들으며 저녁을 기다릴 것이다.
대지의 마지막 한기를 붙잡아 시원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으리라.
안개는 멀리 여행을 떠났다가 10월에야 돌아올 것이다.
오렌지색과 연한 푸른색으로 감싸인 장밋빛 석양이 하늘에 드리울 것이다.
3세기 전에 여기서 몇십 리 떨어진 곳에 태어난 클로드 즐레, 일명 로랭의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꿀과 앵초 향이 나는 아카시아 꽃들은 마치 털이 난 끈끈이대나물 같기도 하다. 꿀벌들이 달콤한 공기 속에 취해 비틀거리며 윙윙대고 있다.
꿀벌과는 달리 날개 없는 우리 작은 인간들은 가장 낮은 가지에서 연한 크림색의 무거운 송이들을 찾는다. 손목과 손가락에 입는 상처를 애써 무시하고 꽃을 따려 애쓴다. 방울진 피는 우리의 용기를 가리키는 것이니 말이다.
나는 죽은 여린 송이들을 천에 꽁꽁 싸서, 다리가 부러져라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간다.
모두가 잠이 든 도살장 앞을 지나친다. 냉장실에는 가죽이 벗겨진 소들이 갈고리에 꿰인 채 매달려 그들의 짧은 생애를 명상하고 있다.
어머니는 반죽을 치대놓았다. 우리는 거기에 황금빛 용암처럼 진한 꽃송이들을 집어넣는다.
이제, 아주 재빨리, 끓는 기름 속에 넣어야 한다. 그 깊은 향이 스러지지 않고 얇은 껍질 아래 갇히도록. 금빛.
바깥의 밤은 거대한 감청색 눈을 떴다. 화덕 가까이 있던 고양이가 우리를 지켜보더니 자문한다.
늦은 것인가, 이른 것인가.
나는 입술이 데는 것도 아랑곳 않고 두 눈동자를 빛내며 꽃과 미소와 바람으로 가득 찬, 바삭바삭한 송이를 베어 문다.
입속으로 봄이 한가득 들어온다.
호텔 방
나는 호텔 방을 많이 안다. 어쩌면 너무 많이 아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지게 했던 그곳은 이제 가벼운 불안의 원인이 되었다.
누군가 막 방 열쇠를 건네준다. 아직 조명도, 색상도, 가구도, 냄새도 모르는 이 호텔 방. 내 맘에 들까? 편안할까? 그리고 특히, 무엇보다도, 그 방에서 글을 쓸 수 있을까?
여러 해 전부터 호텔 방은 내 사무실이자 연구실이었다. 내 소소한 이야기들이 여기에서 탄생했다. 기차나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이동하건 이동하지 않건 틀어박혀 있으면서 집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
다섯 살 때, 일곱 살 때, 열 살 때. 호텔 방은 방학을 의미했다. 방은 넓고 온통 낯설었다. 집에서 나는 냄새와 전혀 달랐다. 똑똑히 기억난다. 티롤 산맥 외츠탈 계곡의 호텔 방 문턱을 넘을 때부터 나를 반긴 것은 화장실 비누와 수건의 향기였다.
방의 장식은 간소했다. 니스 칠한 목제 가구와 솜털 이불을 보니 며칠 묵은 이 방이 꽤 안락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호텔 방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그 방을 사용한 적도 없고, 이후에 내 물건도 전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기억이 없는 새로운 장소, 전적으로 몰개성적인 공간으로서의 호텔 방에 들어선다. 불편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와 반대로 여행자, 즉 순전히 이동하는 존재로서의 자질이 강화된다. 우리는 호텔 방에서 우리 삶의 은유들을 좀 더 발견해야만 한다.
새로 씌운 모켓, 모두 똑같이 무향이고 실용적인 제품을 쓰는 세탁업체에 맡겨 깨끗이 빨아 다린 침구(이 무취도 결국 하나의 냄새다). 살균소독한 욕실, 향기 없는 옷장. 때때로 꽃병에는 꽃이 꽂혀 있다. 물론 대개는 향기 없고 소박한 난초다. 목욕 용품만이 향기를 낸다. 샤워 젤, 수분 크림, 비누. 그 향이 다시 기억난다. 어린 시절의 인상도, 호텔 방은 집과 똑같은 비누를 쓰지 않는 곳이다.
때때로 나는 글을 쓰지 않는다. 그 장소가 거부되는 것인데,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내 삶도 시간의 흐름도 잊고서 몇 시간 동안 글을 쓴다. 그 공간이 일시적으로 내게 속한 것이다.
내 체취를 남길 것이다. 밤을 보낸 오솔길이나 덤불에 냄새를 남기는 동물처럼. 그렇지만 다음 날, 내가 그곳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전부가 지워질 것이다. 누군가 그 방에 들어가도 내가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주 재빨리 지워진다. 다시 은유다.
때때로, 침대 아래로 몸을 굽혀 방금 떨어뜨린 안경이나 펜을 찾다 보면, 양말 한 짝이나 단추, 껌 종이 등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 이런 징표들에 의해 그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방은 최소한 또 다른 한 명의 투숙객을 맞았다는 것을. 이런 사소한 물건들이 그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경찰도 고고학자도 아니다. 그러니 이 유물들을 알리지 않고 내버려둔다.
어떤 방에서는 누군가 담배를 피웠다. 양탄자에, 커튼에, 움푹 들어간 침대 밑판과 매트리스에, 옷장에 눌어붙은 차가운 담배 악취가 끈질기다. 비누와 담배. 이상한 혼합이다. 모든 담배는 역사 악취로 끝나게 마련이다.
담배는 누가 피웠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전날 누가 여기에서 잤는지.
호텔 방은 성이 없다. 아니, 양성이다. 사실 상관없다. 아랑곳하지 않는다. 돈만 내면 누구에게나 자신을 내준다. 눈을 감고 키스하지 않는 창녀와 같다. 방은 우리와 몇 시간 동안, 하룻밤 동안 결합하여 우리가 유일하다고 믿게 만든다. 더 잘 속이기 위해 우리 향기를 덧입는다. 그러고 나서 사냥감을 몰듯이 우리를 내쫓는다.
호텔 방의 진짜 향기는 우리의 간결성과 피상성의 향기인 것이다.
잠든 아이
현재의 우리 또는 과거의 우리에 대해, 깊이 잠든 어린 아이의 살냄새만큼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침대 속에서 입을 반쯤 벌린 채 두려움도 공포도 전율도 없이 쉬고 있는 어린 아이는, 늘 옆에 가까이 붙어 어둠을 쫓아주고, 필요하다면 그 어둠을 기꺼이 부정해버리는 우리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딸이 아주 어렸을 때, 한번은 그 아이의 방에 간 적이 있었다. 아이가 끙끙거리는, 아니 어쩌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였다. 꿈속이라 해도 아이가 괴로울지 모른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어, 나는 아버지로서 약한 밤의 장막을 뚫고 나가 아이 곁으로 갔다.
아이는 여전히 등을 대고 누워 자고 있었다. 두 팔을 얼굴 양쪽에서 위로 내밀고 있었는데, 작은 손이 느슨히 풀려 손가락이 펴졌다. 포동포동한 뺨과 보이지 않는 어여쁜 두 눈 위로 닫혀 있는, 연약하고 섬세한 긴 속눈썹이 보였다.
나는 믿을 수 없는 어떤 경이를 바라보듯이 아이를 보면서 오래도록 그곳에 머물렀다. 실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끈, 다른 모든 것을 잘라낼 수 있는 죽음이라도 결코 끊지 못할 끈으로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진실을 믿을 수 없어 하면서.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나는, 아이의 작은 가슴이 평온하게 올라갔다가 다시 평온하게 내려오고, 다시 또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생명을, 희망과 연약함을 상징하는 그 움직임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아이의 손에 손가락 하나를 대본다.
아이의 두 뺨과 이마, 비단결 같은 따뜻하고 가늘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만져본다. 그리고 소리 없이 목에 입을 맞추려 몸을 숙인다.
마치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름다운 그림 <여인의 세 시기> 속 잠든 아이에게 다가간 것만 같았다. 벌거벗은 아이가 역시 벌거벗은 엄마에게 기대어 있는, 친밀한 일상의 순간을, 고귀하고 풍요한 인간애를 그린 그림. 살갗과 땀의 달콤한 따뜻함을, 우리에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장 평안한 잠에 대한 숭고한 믿음을 담은 그림이다.
아이의 잠은 가장 자연스러운 향기 속으로의 눈부신 추락과도 같았다. 연약하기만 했던 때, 애무와 젖, 웃음과 노랫소리, 밤새 지켜주고 달래주고 보호해주는 손으로 키워졌던 요람 속 삶의 향기 속으로의 추락.
최초의 시간들의 향기, 부드러운 살결과 크림과 파우더의 향기, 달콤하게 재잘대던, 고요하고 평온하던, 늘 보호받았던 먼 유년기의 향기.
그리고 아아, 안타까워라. 우리가 길을 나서서 몸을 바로 세우고 홀로 걸어가자마자, 너무도 빨리 달아나버린 향기.
이제 과거 우리의 모습은 사라졌다. 우리를 낳아준 이들의 웃음과 팔 안에 믿고 맡겨져 몸을 흔들던 연약한 피조물이었던 우리의 모습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죽음
오랫동안 죽음은 집 안에 있었다. 사람이 집에서 죽으면 며칠간 집 안에 놓여 있다가 마지막으로 문턱을 넘는다. 임종을 맞이한 침대는 대개 그가 태어나 꿈을 꾸고 사랑을 하고, 하얗게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달콤한 밤을 보내기도 한 곳이다.
나는 열네 살 때 처음으로 죽음을 보았다. 실제 한 여인의 죽음,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친할머니다. 아마도 그래서, 입을 오므린 채 쭉 뻗어 누워 있는 마른 시신의 모습은 내게 거의 충격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흥미로웠다고 기억한다. 사물이 준 교훈이다. 일종의 입문이다. 하마터면 좀 더 가까이 몸을 기울여, 밀랍색 양피지같이 누런 피부에 돋보기나 현미경 렌즈를 들이댈 뻔했다.
양 볼에 입술을 댔을 때, 단지 그때에만 전율을 느꼈다.
죽음이 나를 붙잡는다.
얼굴이 딱딱하고 차갑다. 인간의 외양을 하고 있었지만 마치 광물 같은 무감각과 경도를 지니고 있다. 무서워서 얼마간 눈물을 쏟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분명 달리 해석했을 것이다.
얼마 전, 아버지의 뺨에 입맞춤을 남겼다. 나의 열네 살 시절은 아득하고, 죽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멈췄었다. 마찬가지로 두려웠다. 아버지는 영안실에 있었다. 요즘은 이렇게 부르지 않고 ‘장례식장’이라는 말로 에두르지만.
벨벳 벽지, 옅은 조명, 신중하고 낮은 음악, 꽃다발.
죽음의 향기는 임종을 맞이한 방의 냄새, 여전히 알아차릴 수 있고 맡을 수 있는 그 냄새와 다르다. 만개한 월하향, 쾌적한 공기, 화장품 냄새가 난다.
영안실에서 죽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가 된다.
아버지도 데데 삼촌같이 앞서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소련인이 되었다. 브레즈네프 같은.
나는 아버지를 겨우 알아봤다.
영묘에 둘 공식 초상화를 위해 화장한 인물.
노란색. 분칠. 윤기. 빗질 된 눈썹. 크렘린 궁과 붉은 광장. 요컨대 거대한 하나의 거짓말.
입맞춤을 하면서 아버지의 냄새를 전혀 찾지 못했다. 아버지는 여자들에게서 나는 냄새와 약 냄새를 풍겼다. 포르말린과 백분, 파운데이션과 장뇌 제품이 혼합된 기묘한 냄새.
장례식장은 제2제정 시대 정부의 응접실인 동시에 제약회사의 부속실이다.
죽음은 제가 카드를 섞는다. 심지어 선을 잡고 미리 예측하기도 한다.
우리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예비했다. 추가되는 비용 없이 3회 분납하는 조건이었다. 모든 세부사항들이 결정됐다. 최근에 한 직원이 전화해 꽃, 음악, 관, 시신의 보존 등에 대해 모두 설명해주었다. 어머니가 어떤 상태일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어머니는 옆에서, 물론 살아 계신 상태로, 미래의 자신의 시신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계셨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교통 체증 속에서.
두 사람은 샴페인을 마셨다. 성공적인 계약을 축하하려고 그가 한 병 가져온 것이다.
죽음은 정말이지 모든 것을 생각한다. 죽음은 살아남을 줄 안다. 죽음은 시간과 결혼했고 화장법을 바꿨다.
혁신.
우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죽음도 분명 권태로웠을 것이다. 항상 이기는 것, 그것은 정당한 게임이 아니다.
깨어남
살면서 깜짝 놀라 밤잠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평범해진 이 순간을, 반복적인 임시 사면장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밤이 끝나지 않을까, 어느 저녁 잠자리에 들어 불을 끄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키스를 하는 이 습관적인 동작들이 나도 모르는 새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죽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더는 살아 있지 않는 미지의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시 말해서 알지 못하는 길들 가운데 하나의 길로 접어들게 되리라는 공포, 즉 아무도 그 본질을 알 수 없는 죽음의 길, 아무 소용없는 감각과 돌이킬 수 없이 꺼져가는 의식이 방향을 제시해줄 수 없어 막다른 골목이 아닐까 어렴풋이 예상되는 죽음의 길로 접어들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에서 떨어져 나온 삶의 길, 이제는 불완전하게 될 존재로서의 삶의 길, 살아 있는 가운데 잘려나간 핏빛 존재로서의 삶의 길로 접어들게 되리라는 공포인 것이다.
또, 깨어나 아침 한가운데 빛이 움트는 가운데 마비된 세계에서의 내 자리를 조금씩 찾아갈 때, 자석 같은 내 손이 옆에 누워 있는 몸을 건드릴 때, 내가 그를 떠나지 않으리라 믿으며 계속 잠들어 있는 그 따뜻한 몸을, 그 느린 리듬의 호흡을 느낄 때, 나는 몸을 웅크려 바싹 붙이고 살갗과 살갗을 맞대어 침대 시트의 천과, 몸을 감싸고 있는 더 얇고 가벼운 잠옷에 돌돌 말린 밤의 온기를 마시고, 벗은 어깨, 팔, 가슴을 드러내 손가락을 갖다 대고 생명과 두근거리는 피를 느낀다.
이것이 바로 어떤 말도 필요 없는, 지고하고 내밀한 애정과 사랑의 순간들이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포개졌다가 안타깝게도 각자 고독한 잠에 의해 헤어진 이들의 몸의 향기. 밤의 시간들은 영원한 잠에 빠져 마비되어 있는 공주가 왕자의 키스를 기다리고 있는 동화 속에 흐르는 향기들과 연관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