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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마리 드루베 지음 | 윌컴퍼니
내가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마리 드루베 지음

윌컴퍼니 / 2013년 7월 / 224쪽 / 15,000원





악몽이 된 동화

쉰여섯 살에 나는 폐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16개월 후, 내 병에 어떤 치료법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아직 너무나 젊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늘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운명의 배신은 웬 말인가? 차라리 지독히 불행하고 고독에 몸부림치는 인생이었다면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더 쉽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늘 수많은 계획과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현하느라 분초를 다투며 살았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몸이 여러 개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던 2004년 8월, 내가 살던 파리의 골동품가게에서 베르트랑을 만났다. 우리는 첫눈에 반했다. 2005년에 결혼한 우리는 함께 하고 싶은 일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중에 가장 먼저 이루기로 한 꿈은 바로 시골에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프랑스 전국을 샅샅이 뒤졌고, 마침내 욘 지역의 템플기사단 영지였던 곳에서 솔스성을 찾아냈다.

성은 많은 부분이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우리는 성을 보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눈에는 우리 둘 다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겠지만, 둘이 함께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 집은 내 작업을 위한 공간인 동시에 우리 둘만의 사랑과 꿈이 담긴 쉼터였다. 또 온 가족이 함께 주말과 여름휴가에 찾아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명백한 사실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행운은 저 멀리 있었다. 전에는 그토록 가까이 있던 행운이었는데, 아름다운 동화는 이제 악몽으로 변했다.



“혹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2009년에 시작되었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 나는 아메리칸 종합병원 이비인후과에서 간단한 검진을 받았다. 몇 주 전부터 코피가 났기 때문이다. 검사는 아주 순조로웠다. 그런데 의사가 이런 질문을 했다. “담배 피우세요?” “네.” “목 안이 아기처럼 깨끗하네요. 뭐…… 코 점막에 작은 염증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담배를 피우신다고 하니, 폐 사진을 한번 찍어보죠.” 그래서 방사선과에서 사진을 찍었고, 무뚝뚝한 방사선과 의사는 “폐 오른쪽에 10센티미터 가량의 혹이 있습니다. 양성 여부를 판단하려면 지금 당장 단층촬영을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MRI를 촬영했고, 방사선 전문의는 말했다. “폐암입니다, 부인. 앞으로 치료를 담당하실 호흡기 담당 선생님을 불러드리죠.” 호흡기 담당의사는 별로 친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태도가 꽤 불쾌했다. 그는 진료실에서 폐암 진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며, 가능한 한 빨리 외과의사와 진료예약을 해야 한다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오열을 터뜨렸다. 한참 후 휴대전화가 울렸다. 남편이었다. 그도 충격을 받는 것이 느껴졌다. “내일 첫 비행기로 갈게.” 남편이 말했다. 우리 둘 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기야, 그날 이후로는 거의 매일 그랬지만.

하나씩 계획을 세워야 했다. 우선 만나야 할 의사들에게 진료예약을 하고, 수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도 해야 했다. 모든 정보를 조사한 결과, ‘흉강절개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끔찍한 통증이 오랫동안 지속되며 장애를 남기기도 하는 후유증을 호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흉부외과의 교수 C씨에게 진료예약을 했다. 교수 C씨는 수술 과정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내 상상이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가슴을 반으로 가르고 흉곽을 열어젖혀 늑골을 사등분한 채 꼼짝없이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핏빛 폐포에서 도려낸 폐는 정육점 도마 위의 고기처럼 잘리고 해부되어 일부가 제거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흉곽에 주머니처럼 꿰매어질 것이다. 혼란 속에서 나는 인터넷의 토론모임에도 참여해 보았다. 나랑 메일을 주고받은 한 사람은 1차 수술을 받은 후 몇 달이 지나서 반대쪽 폐에 종양이 전이된 것이 발견되어 연거푸 두 번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전이종양? 이 단어가 자꾸 맘에 걸렸다.

여전히 수술받는 것을 망설이던 나는 몇몇 외과의사에게 내 촬영 기록을 보여주었다. 병의 진단과 위험성에 대해 의사들마다 조금씩 견해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위험하지 않은 부위에 자리 잡은 암으로 결론을 지었다. 결국 수술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덜 고통스러운 수술방법은 없을까 하고 인터넷을 뒤져서 다른 방도를 찾아냈다. 미국에서 고안되어 최근에 프랑스에 소개된 ‘흉강경수술’이라는 방법이었다. 이 수술은 흉강 내로 일종의 비디오카메라를 삽입하여 모니터를 보면서 수술하는 방식이었다. 안심이 되는 점은 앞에 하나, 등에 둘, 모두 세 군데만 조금씩 절개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메리칸 종합병원에서는 이 방법을 시행하지 않았다.



수술의 고통과 모르핀중독

흉강경수술은 몽수리병원에서 특히 많이 시술되고 있었다. 나는 흉강경수술의 권위자로 알려진 의사 Ph씨와 상담을 했다. 수술 날짜는 2010년 1월 25일로 잡혔다. 수술 전날 밤 간호조무사는 힘내라고 응원해주었다. 면회는 여기까지였다. 베르트랑이 코트를 입더니 다시 한 번 나를 꼭 안아주었다. 이것이 마지막일까?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잠시 후 간호사가 베타딘 병을 나에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인, 머리와 몸 전체를 잘 씻고, 매니큐어도 지우세요. 깨끗이 닦으셔야 해요! 규정이에요. 나중에 다시 확인하러 오겠습니다.” 나는 베타딘 소독제로 몸을 꼼꼼히 문질러 닦고, 머리도 감고 나서 바로 드라이어로 말렸다.

병실로 돌아오자 약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취 전에 강력한 진정제를 먹어두어야 했다. 자기 전에 200밀리그램의 알약 두 개를 먹고, 다음 날 아침에도 같은 용량을 먹어야 했다. 나는 예전에 이 약의 부작용으로 거의 일주일 동안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알만 먹기로 했다. “제가 50킬로그램이니까, 85킬로그램의 남자랑 같은 양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이건 규정이에요. 거부하신다면 담당 선생님께 말씀드리겠어요.” 간호사가 냉랭한 어투로 말했다.

2010년 1월 25일, 나는 오전 7시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그 후 통제구역에서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아타락스(항히스타민 화합물인 신경안정제의 상표명) 절반 용량의 주사를 맞고, 침대에 실려 수술실에 도착했다. 이윽고 힘센 팔이 나를 들어올리더니 수술대 위로 옮겨놓았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결국 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한 남자가 몸을 숙여 눈물을 닦아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될 거예요. 염려하지 마세요.” 그 후 모자를 씌우고 마취제를 놓았다…….

오후 3시쯤 나는 병실에서 정신이 들었다. 베르트랑이 곁에 있었다. 아직 마취가 덜 풀려서 반 혼수상태인 나는 넋이 나간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오후 5시가 되자 인턴과 간호사들과 함께 담당 외과의사가 눈을 부라리며 들어왔다.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베르트랑이 물었지만, 의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수술은 예정대로 잘됐습니다. 암이 맞아요,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자, 이제 분명히 해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인께서 제 처방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수술하지 않았을 겁니다.” 베르트랑은 깜짝 놀랐다. “무슨 말이에요! 이 사람은 오늘 아침에 통화할 때도 약을 먹었다고 했어요.” (사실 그건 신경안정제에만 해당하는 말이다.) “네, 하지만 간호사들이 일일이 설명해드릴 시간이 없어요. 처방은 반드시 따르셔야 합니다. 예외는 없어요! 게다가 심지어 제 개인적인 의료경력까지 조사해보셨더군요!” 정확히 말하면 베르트랑과 나는 흉강경수술에 대해 조사한 것이다. “어쨌든 큰 병에 큰 수술이었으니, 말싸움은 그만하죠!”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수술경과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이 요란스레 발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마리는 이른바 ‘전문가들’에 대한 자신의 정보수집이 불쾌하게 받아들여진 것에 충격을 받았다. 마리는 다만 심사숙고했을 뿐이고, 몇 가지를 비교한 것뿐이다. 이러한 마리의 태도가 몇몇 의사한테는 격분할 만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날 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마리는 의사가 한 말을 다 들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마리는 죽을 때까지 그 일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밤에도 그 일을 이야기했다. 마리가 피하고 싶어 한 것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나 의료체계의 덫, 그리고 몇몇 의료진들의 비인간적인 태도……. - 베르투랑 드루베

대체 어떤 의사가 방금 수술을 마친 환자한테 이렇게까지 모욕을 줄 거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더 어이없는 일은, 다음 날 베르트랑이 자리에 없을 때 또 같은 짓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내 눈에서 눈물이 나고야 말았다. 나는 특히 밤이 싫었다. 두 시간마다 찾아오는 간호사들이 성가시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통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화학요법으로 항암치료를 받다가 해골처럼 말랐다는 환자 이야기 따위를 늘어놓았다. 그 환자의 병이 재발했다는 설명까지 보탰다. 나는 문득 저 간호사가 어떻게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병원의 밤은 정말 아수라장이었다! 사람을 오싹하게 하는 비명이 복도 끝에서 들려오고, 오른쪽 병실의 환자가 역하게 각혈하는 소리가 얇은 칸막이 벽을 넘어서 들려왔다. 온갖 장비에서 울리는 기계음만 빼면 흡사 지옥의 소리 같았다.

매일 밤이 정말 악몽 같았다. 결국 내가 모르핀 사용을 받아들이자 간호사는 이렇게 권했다. “통증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버튼을 누르세요.” 그리고 모르핀이 투약되는 주사기를 나에게 내밀었다. 작은 버튼만 누르면 1회분의 모르핀 1밀리그램이 투약되는 주사기였다. 간단하지만 또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용량에 제한이 있어요. 상한선을 넘으면 더 이상 투여할 수 없어요.” 간호사들이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심한 통증으로 종일 버튼을 눌러댔는데도 모르핀은 계속해서 충전되었다!

그 후로 나는 끔찍한 환각에 시달렸다. 병실에 벌레 수십 마리가 우글대는 것 같았다. 제일 심각한 증세는 희뿌옇고 어두침침한 연기가 병실을 가득 뒤덮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증세들은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병원에서는 더 늦기 전에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을 중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중독 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며칠을 더 고생해야 했다. 아무튼 폐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드디어 퇴원 조치가 내려져 보름 동안의 입원이 끝났다. 석 달쯤 지나자 내 몸은 거의 회복되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행복한 마지막 밤

“이제 다 지난 일이 되었네요. 부인께서 얼마나 건강한지 보세요! 완치되었습니다!” 의사가 남편을 돌아보며 확신에 차서 말했다. 베르트랑과 나는 완치를 확신했다. 폐암은 1기였고 수술도 성공적이었는데, 어떻게 뇌 속에 전이종양이 자라고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느 날 베르트랑이 해외출장을 가고, 나는 여자들만의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1년에 몇 번씩 돌아가며 서로의 집에 모여 즐거운 파티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당시 나는 한창 연극 연습을 하고 있었다. 7월 4일에 파리에 있는 짐나즈 극장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첫 공연을 펼칠 예정이었다. 여자들만의 저녁은 마침 타이밍이 아주 좋았다. 나는 그때를 이용해서 연극 연습을 하려고 했다. 장면번호 9, 클라리스와 남편 방트루의 커플 장면이었다. 미셸이 상대역을 맡아주었다. 나는 내가 맡은 역할에 몰입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 다리의 힘이 빠지면서 넘어졌고, 친구들이 달려와 나를 부축해 일으켰다. 나는 등이 조금 아팠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다

시간이 지나도 다리의 이상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무언가 심각한 일이 나한테 일어나고 있다는 불안감이 마음속에 가득 차올랐다. 2011년 4월, 류머티즘 전문의 S씨에게 진료를 받았다.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의사는 아메리칸 종합병원의 신경과 의사를 만나보라고 했다. 바로 거기서 ‘착한 의사 선생 G씨’를 만났다. 정밀검사를 하고 반사신경과 일반신경을 테스트한 후 의사 G씨는 척추 MRI 촬영을 권했다. 다행히 검사 결과 이상이 없어 의사는 ‘재활치료 13회’라는 처방을 내렸다. 다시 걷는 연습을 해야 한다니! 감각적으로 중추신경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하게 뇌졸중이라도 온 것일까? 나와 똑같은 의심을 한 의사는 뇌 MRI도 찍어보자고 했다.

다시 MRI 촬영을 했고, 사진을 검토한 후 방사선과 의사가 말했다. “걷는 데 문제가 생긴 건 뇌의 이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 “종양인가요?” “네. 신경과 의사를 만나보시죠.” 베르트랑과 나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의사 G씨를 찾아갔다. 그는 방사선 촬영 기록을 모두 판독하고 나서 종양은 여섯 개라고 했다. 나는 울먹이며 착한 의사 선생에게 이제 나는 끝이라고 말했다. 내 앞날은 이제 정해졌다. 나는 주저 없이 벨기에로 가서 안락사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안됩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의사 G씨는 아주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말렸다. 다행히 나는 이 모든 일을 미리 준비해두었다. 폐수술을 받은 후 나는 벨기에의 존엄사권리보호협회에 가입했다. 서류 절차가 이미 진행 중이었다.



벨기에로 탈출!

벨기에 브뤼셀의 보르데 암센터에서 진료를 받던 초반의 일이 생각난다. 그 일이 있은 후 벌써 넉 달이 지났다. 그날 우리는 암 전문의인 B씨와 상담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의사 B씨는 말을 아끼는 편이 아니었다. 치료를 위한 사항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그는 나에게 화학요법은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방사선치료는 아직 여러 번 남아 있었다. 의사로서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저를 그렇게 힘들게 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마지막’은 대체 어디에 있나요?” 의사에게 물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지 아름다운 마지막이다. 내 집, 내 방에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떠나고 싶다.

상담이 끝나자 암 전문의는 나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말을 아주 분명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부인, 항암치료는 언제든 거절하실 수 있습니다.” 의사의 이 말이 아주 색다르게 들렸다! 프랑스에서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벨기에에서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의사를 만난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생각해볼게요.” 사실 더 생각해볼 것은 없었다. 나는 병원치료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모두 제출할 것이다. 그 무엇도 내 결심을 바꿔놓을 수 없다. 그날이 되면, 주사 세 대가 나를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안락사를 위한 서류들

브뤼셀에서 열리는 두 번의 고미술품 박람회 사이에 나는 ‘안락사 서류’를 작성했다. 하지만 ‘평화롭고 안락한 죽음’에 대해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의사를 찾기란 그다지 쉽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벨기에 존엄사권리보호협회조차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의사윤리 규정의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나는 벨기에 국적도 아니고, 벨기에에 체류 중인 외국인도 아니었다. 설사 브뤼셀에 연고가 있더라도 그들에게 내 안락사를 시행해줄 의사의 주소를 알아봐달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웹서핑을 하던 중에 의사 R씨를 알게 되었다. 내과 전문의이자 가정의학 전문의로 브뤼셀 도심에서 가톨릭 재단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의사 R씨는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이해해주었다. (의사 R씨 또한 불치의 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직접 해주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단번에 제대로 된 분을 찾아서 두드린 것이다. 일주일 후, 나는 그의 진료실을 찾았다. 그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먼저 내 차트에 자기 소견을 상세히 기록해두기 위해서 나에게 많은 것을 질문했다. 상담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안락사에 대한 내 생각을 두고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는 우선 브뤼셀에서 치료받은 기록이 반드시 필요하고, 적어도 1년에 한 번 진찰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분명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내 병이 회복 가능성이 없는 불치이며, 내 의지로 안락사를 결정했다는 것을 확증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참고로 벨기에에서는 2002년 9월에 몇 가지 세부조항을 조건으로 안락사가 합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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