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 지옥으로부터의 자유
삐에르 쁘띠피스 지음 | 홍익
랭보 지옥으로부터의 자유
삐에르 쁘띠피스 지음/장정애 옮김
홍익출판사/2001년 7월/549쪽/18,000원
1. 첫 발걸음, 꼴레쥬
1853년 1월 3일, 프레데릭 랭보와 비딸리 뀌프는 결혼하여 프랑스 북부 샤를르빌에 정착한다. 그로부터 1년 후, 1854년 10월 20일, 쟝 니꼴라 프레데릭 랭보에 이어 미래의 시인 쟝 니꼴라 아르뛰르 랭보가 태어난다. 랭보의 부모는 1860년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연대가 이동하면서 성격상의 불화로 별거를 시작하였으며, 랭보는 신앙이 깊고 무뚝뚝한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하에 자라게 된다.
7살이 된 랭보는 로사 학원에 입학하고, 라틴어 문법, 라틴어 작문, 역사, 고전 암송 등에서 특출한 재능을 발휘해 많은 상을 받는다. 하지만 무엇으로 유혹해도 산수공부는 하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하는 말을 안 듣는 일이라면 의기투합이 잘 되던 형과 함께-벌로 마른 빵을 먹고 후식을 거르는 일이 있더라도-하지 말라는 일은 기어이 저지르고야 마는 반항적인 성격으로 자라났다.
복수심에 차 있으면서 생기가 넘치는 시 <일곱 살짜리 시인들>에서 아르뛰르는 비상한 방법으로 부르봉 거리 주변 환경을 우리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이 시에는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 ‘자신만만하고 만족해하는’, ‘거짓말하는 푸른 눈을 가진’ 어머니, 그리고 초라한 이웃들이.
이사 후, 랭보는 학교를 샤를르빌의 꼴레쥬로 옮기고 이 곳에서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교장선생님의 후원을 받지만, 그의 불성실하고 반항적인 태도로 인해 실질적인 이득은 얻지 못한다. 첫 영성체를 받은 랭보는 이 시기에는 열광적인 신앙의 소유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영성체를 받은 황태자에게 라틴시를 바치기도 하였다.
「두에 아카데미 공식 회보」에 랭보의 라틴시 숙제가 실리고, 두에 아카데미 콩쿠르에서 라틴시를 지어 수상하며, 이 시 또한 공식회보에 실렸다. <고아들의 새해 선물>을 「모두를 위한 잡지」에 기고, 실리게 되었다. 랭보는 책읽기와 시 쓰기, 친구들과 어울려 시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신학학교의 신부들이나 모든 어른들에게 반항적인 랭보였지만, 수사학 선생 이장바르만은 믿고 따르려 했다. 그 당시, 이장바르가 많이 격려를 한 덕택에 시에 대한 이 어린 학생의 관심은 더욱 고양되었고, 그것은 랭보에게 허락된 유일한 도피처였다. 이장바르는 이후 전쟁과 함께 학교가 문을 닫는 동안 랭보가 감행한 여러 번의 가출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유일하게 의지했던 사람이었다.
2. 빠리 그리고 환멸, 샤를르빌에서의 유배생활, 대출발 전에 빠리로 귀환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랭보는 무작정 빠리로 갔다가 다시 붙잡혀 오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하지만 집에 있는 동안에도 한 순간도 빠리에 가겠다는 결심은 변함이 없었고, 어머니의 통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그 결심은 더욱 굳어갔다. 그러다 결국 빠리행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시인 베를렌느였다. 랭보는 베를렌느에게 자신의 시 몇 편을 동봉한 편지를 보내고, 베를렌느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가 함께 살고 있던 자신의 집에 랭보를 불러들였다. 당시 랭보는 17세, 베를렌느는 28세였다.
베를렌느 가족은 투시자가 되기 위해 빠리에 왔다는 이 청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랭보가 일부러 씻지도 않고 제멋대로 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를렌느가 랭보에게 빠져 임신한 아내를 돌보지 않고 술만 마시고 다니는 날들이 계속되자 부인과 베를렌느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어 간다. 베를렌느는 자신의 문학 친구들에게 랭보를 소개하고 그들은 이 방탕아 같은 젊은 시인에게 흥미를 느끼면서도, 랭보의 괴팍한 성미 때문에 좀처럼 가까워지지는 못한다.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랭보는 빠리에 대해 가졌던 환상을 버리고 점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시기에 랭보가 쓴 새 작품에는 내용이 명석해졌다는 것과 시의 형태가 바뀌었다는 변화가 뚜렷이 나타난다. 놀라운 산문가 랭보가 태어난 것도 바로 이때이다. 랭보는 아르덴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인생을 재발견하듯 글을 써나갔다.
말썽꾸러기
아이, 너무 바보 같아.
잠시도 쉬지 않고 속임수를 쓰고 배반하네.
바위산의 고양이처럼
어디에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네!
랭보는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베를렌느의 편지를 받고 다시 빠리로 돌아간다. 랭보는 진정한 투시자가 되기 위해 베를렌느에게 그를 얽매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라고 하지만 베를렌느는 아내와 랭보 모두를 붙잡으려 애쓴다. 빠리에는 베를렌느와 랭보의 관계에 관한 수상스러운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3. 벨기에에서의 자유 그리고 영국에서의 타향살이
랭보의 갑작스런 제안에 베를렌느는 빠리꼬뮌의 처벌에 대한 도피를 핑계삼아 함께 빠리를 떠나기로 한다. 아내 마띨드와 어머니가 끈질기게 베르렌느를 붙잡았지만 그는 랭보를 선택하고, 둘만의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출발할 때만 해도 너무나 행복했다.
오! 계절이여! 오! 성이여!
어느 영혼이 결점이 없단 말인가?
나는 어느 누구도 피하지 않는 행복에 대한 마술적 연구를 했다네.
골족의 수탉이 노래한다
행복 만세!
랭보는 런던에서 베를렌느 친구들의 도움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하며 다시 글을 쓰기도 하지만, 현실은 곧 닥쳐왔다. 베를렌느의 부인이 이혼소송 제기를 하고 그 탓을 랭보에게로 돌린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겨울이 다가오고 돈까지 떨어져 가는 데다 이런 충돌까지 빚어지자 처음의 즐겁던 도약은 느슨해졌고 그런 분위기는 문학 창작을 하기에는 적당하지 못했다. 랭보는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갈지 모르는 이 소송에 대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선수치기로 결정했다. 랭보 부인은 그 소식을 가문의 명예에 대한 타격으로 받아들이고 랭보를 샤를르빌로 불러들인다.
4. 막간을 보낸 샤를르빌과 드라마가 벌어지기 전에 다시 들른 로슈, 7월 10일의 드라마 고향집에서 감옥에서와 같은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랭보는 베를렌느와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유배지 같은 고향, 미래에는 농부의 생활만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을 떠나기 위해 랭보는 자신의 정신적인 모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어머니한테 부탁하거나 베를렌느에게 구걸하지 않더라도 그곳을 뜰 여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쓰던 책의 제목은 당시에는 ‘이교도의 책‘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었다.
아내의 이혼소송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베를렌느와 랭보는 몰래 영국으로 다시 떠난다. 하지만 이미 그들에 대한 소문은 런던의 꼬뮈나르들의 좁은 사회에 퍼져 있었고, 둘의 ‘수상한 성격의 관계’는 빠리 경찰국에까지 보고되었다. 베를렌느와 랭보의 분노는 엄청났다. 런던에서 얻은 평판이 어디서나 그를 따라다닐 것이고, 문학가로서의 생명도 끝나고 말 것이다. 그들은 서로 자기 신세를 망쳤다고 상대의 면전에 대고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우정에 메워질 수 없는 금이 갔다.
“며칠 밤, 그의 악마가 나를 사로잡았어. 우린 틀렸네. 나는 그와 다투었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7월 초 베를렌느는 랭보와 끝장 낼 결심을 하고, 평소처럼 랭보가 비아냥거리는 것을 보자마자 기회라는 듯 재빨리 가방을 싸고 배를 타고 떠나 버린다. 당황한 랭보는 그를 쫓아가고 배를 타고 멀어져 가는 베를렌느를 향해 돌아오라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배는 사라지고 이제 끝났다. 랭보는 돈 한푼 없이 그 거대한 도시에 남겨진 것이다.
베를렌느는 무작정 아내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 페인군에 지원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처럼 우유부단하게 하지 않고 자기의 태도를 확실히 하면 아내도 돌아올 것이고 더 이상 불행을 없을 것이라고 자신을 타이른다. 더불어 랭보를 자기의 욕심 때문에 그냥 버려 두고 왔다는 죄책감에 랭보를 만나기로 하고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랭보의 태도에 둘의 귀머거리들의 대화 같은 싸움은 다시 시작된다. 베를렌느는 대낮에 술에 취한 채 호텔방에 들어갔을 때 급기야 떠나겠다는 랭보를 향해 총을 겨눈다. 그는 함께 있던 베를렌느의 어머니와 함께 손목을 부상당한 랭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베를렌느는 랭보를 따라 가기로 한다.
하지만 떠나기 전 베를렌느는 랭보를 쏜 것 때문에 붙잡혔다. 이 사건을 판사에게 설명하면서 마띨드의 소송관계, 랭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 사실 등 베를렌느의 죄는 남색과 관련하여 발전하고 결국 수갑을 찬 채 형무소로 인도되었다. 자, 이제 랭보는 홀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브뤼셀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랭보는 로슈행 열차를 탔다.
5. 영국에서 제르맹 누보와 함께
베를렌느를 떠나 고향에 다시 돌아온 랭보는 그 동안 계획했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다. 그는 가족의 집단생활과 노동에서 도피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더 펜에 의지했다. 그는 모든 노동을 증오했으며 '인생이 노동으로 꽃핀다는 말은 낡은 진리'라고 했다. 혼자 글을 쓰면서 때로 울기도 하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에 대한 당시의 비평이 대부분 그로 하여금 앙심을 품게 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떨쳐 버리려는 몸부림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 작품의 결론은 다음 세 마디로 끝난다. '내 인생은 허송세월이었다.' 번뜩이는 기지와 불꽃이 튀는 이 놀라운 텍스트는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꼽히는 구절들을 지니고 있다.
때로 나는 해변이 기쁨에 찬 나라들로 끝없이 덮인 채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본다. 커다란 금빛 배가 내 위에서 아침의 미풍 아래 정자들을 뒤흔든다. 나는 온갖 파티와 승리, 그리고 모든 드라마를 창조했다. 나는 새로운 꽃들, 새로운 별들, 새로운 육체들, 새로운 언어들을 발명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초자연적 능력을 획득했다고 믿었다. 음 그래, 난 내 상상과 기억들을 묻어 버려야만 한다! 예술가와 이야기꾼의 찬란한 영광은 끝난 거다! 나! 모든 윤리를 벗어난 마술사나 천사라고 자부하던 나는 추구해야 할 의무와 포옹해야 할 껄끄러운 현실을 지닌 채 흙으로 돌아왔다! 농부!
몇 번이고 고친 끝에 원고가 완성되었다. 1872년 4월부터 8월까지에 걸쳐, 그도 이제 수확을 마친 것이다. 랭보는 책을 출판해 줄 인쇄업자를 찾았고 책은 1프랑 가격으로 500부가 팔렸다. 랭보는 감옥에 있는 베를렌느에게 책을 보냈고 그는 그 책을 소중히 간직하여 아들에게까지 물려주었다. 랭보는 잠시 의기양양하여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곧 베를렌느와의 추문 때문에 예전의 인간관계들은 깨지고 사람들은 그가 책보다 그 추문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랭보는 계속되는 불운에 진이 빠졌고 한동안 문학이나 문학가들과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랭보는 제르맹 누보라는 젊은 시인과 조우하게 되고 베를렌느와의 소문에 대해 운명에 맞서 도전하는 용기를 보았다고 말하는 그와 함께 영국으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랭보는 다시 문학과 가까워지고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한 것 같다. 하지만 곧 누보마저 랭보를 떠나게 되는데 이는 그 주변 사람들이 랭보와 함께 있으면 문학인으로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그에게 돌아올 것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출감한 베를렌느가 빠르나스에 시 몇 편을 보내려 했지만 ‘작가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일까지 있었던 것이다. 혼자 남겨진 랭보는 용기를 내서 역경과 싸우려 했으며, 신문에 광고를 내어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함께 세계 여행할 가족을 찾아 여행도 한 것으로 추정된다.
6. 여행, 베를렌느와의 절교
20살이 된 랭보에게 징집 영장이 나와 그는 고향 샤를르빌로 돌아왔다. 하지만 형이 5년간 지원하고 군복무를 했기 때문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을 찾아내 청원하여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영어도 웬만큼 익혔고, 영국에서의 기억이 좋지 않은 랭보는 이번엔 상업이나 산업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독일어를 배우기로 결심한다. 그가 원했던 것은 삶에 대해 단단히 무장하고, 외국어에 통달함으로써 대학시절에 했어야 하는 의무의 결손을 보상하는 것이었다.
독일에서 랭보는 미친 듯이 독일어 공부에 전념했다. 그 사이 베를렌느는 완전히 석방되고, 감옥 생활을 겪고 가족도 돈도 명예도 잃게 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가 쓴 신의 은총을 통해서 랭보의 ‘타락한’ 영혼이 구제되기만을 바라는 내용의 편지는 들라에에 따르면, ‘예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합시다.’로 요약할 수 있다.
얼마 후 베를렌느가 랭보를 찾아오고 구원이니, 은총이니 하는 말만 하는 베를렌느와 이를 비웃는 랭보 사이에 심한 말다툼이 벌어진다. 그 후,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선 랭보는 용기를 내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도움을 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베를렌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베를렌느는 답장에서 돈 요청에 발끈하며 거절한다. 얼마 안 있어 랭보는 다시 베를렌느가 술에 취해 쓴 독설로 가득한 편지를 받는데, 바로 완전한 절교 선언이었다. 하지만 그 후 들라에나 다른 친구들을 통해 서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여전히 끊이지 않는 인연을 맺는다.
7. 긴 여행 동방의 발견
1876년, 랭보는 오랫동안 갖고 싶어하던 피아노를 갖게 된다. 아르뛰르를 집에 붙잡아 놓기 위한 수단으로 어머니가 마침내 동의하게 된 것이다. 랭보는 동생을 병으로 떠나보내고 집안에서 피아노를 치거나 옷장에 들어가 공부나 글쓰기에 열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4월 초 랭보는 외국어 사전을 내팽개치고 중부 유럽으로 날아간다. 랭보가 관심을 갖고 있던 근동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마부에게 도둑을 맞는 등 한 차례 우여곡절을 겪고 프랑스로 송환된 랭보는 곧바로 다시 떠난다. 모험을 위해서라면 군대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식민지 징병군에 자원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만 모색하다가 마침내 파당(수마트라)의 정박지 근처에 다다랐을 때 탈영에 성공하게 된다. 다시 붙잡혔을 때 랭보는 교수형은 모면하고 1년 구류형만 선고받았다.
1876년 12월 9일까지도 랭보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아무도 그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동생 이자벨의 말 등을 근거로 짐작해 보면 자바의 밀림을 통과해 선원 등으로 생활한 것으로 추측된다. 다시 돌아온 랭보는 살아 있는 언어 연구에 골몰한 채 1876~77년의 겨울을 집에서 얌전히 보내다가 다시 떠났다. 그 뒤 함부르크에서 순회 곡마단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유랑했으며, 스톡홀름과 코펜하겐 등에서도 랭보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장티푸스 등의 사정으로 인해 고향에 다시 돌아오는 일이 있었지만 랭보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라르타카의 채석장에서 인부들을 감독하는 일도 하고 험악한 산악지대를 넘기도 한 여정을 랭보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친구 들라에가 아직도 문학에 생각이 있는지 용기를 내어 물어보면 약간 성가시다는 듯이 ‘그런 건 집어치웠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키프로스에서 더더욱 미지의 세계인 아프리카를 향해 발을 딛는다.
아프리카 대륙행 배에 몸을 실었을 때 그에게는 아껴 모은 돈 400프랑이 있었는데, 그는 그 돈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앞에는 희망으로 가득 찬 새로운 삶이 펼쳐져 있었다. 아라비아, 아비시니아, 수단, 잰지바르... 이 전설적인 지역들이 지도 위에서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아덴과 지부티, 제일라와 하라 사이에 자신이 쳐 놓은 거미줄에 빠져 버린 랭보가 죽음을 만나고서야 그 지옥을 떠나는 것을 우리는 이제 곧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