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이세욱 옮김
열린책들/2001년 6월/272쪽/8,500원
마야의 별점
중앙 아메리카의 마야 사회에는 공식적이고 의무적인 점성술이 있었다. 마야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생일에 따라서 장차 그 아이가 겪게 될 일들을 예측해서 적은 특별한 책력을 아이에게 주었다. 그 책력에는 아이의 미래가 다 나와 있었다. 언제 일거리를 찾게 되고 결혼은 언제 하며 언제 무슨 사고를 당할 것이고 언제 죽을 거라는 식으로 말이다. 누구나 갓난아기 때부터 어른들이 그것을 되풀이해서 읊어 주기 때문에 그 내용을 완전히 외우게 되고, 스스로 그것을 읊조림으로써 자기 자신의 삶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별점 노래들은 삶을 참으로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 제도는 별 문제 없이 원만하게 운용되었다. 마야의 점성술사들이 자기들의 예상이 어긋나지 않도록 그 사람의 주변에 그 예언에 맞는 상황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모든 게 아주 잘 돌아갔고, 그 제도는 저절로 공고해졌다. 전쟁조차 날짜와 전투의 내역이 예고, 숙지되었다.
마야인들의 별점은 세계의 종말이 오는 순간을 예언하는 데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세계의 종말은 세계의 다른 한쪽에서 그리스도의 기원이라고 부르는 이른바 서력 기원의 13번째 세기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자, 사람들은 그 재앙을 감수하기보다는 도시에 불을 지르고 가족을 제 손으로 죽인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얼마 안 되는 생존자들만이 불길에 휩싸인 도시를 떠나 평원의 떠돌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점을 들어 마야 문명을 고지식하고 어수룩한 사람들의 작품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오늘날, 스스로를 마야의 먼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인디오들이 남아있다. ‘라칸돈’이 바로 그들인데 이상하게도 그 라칸돈의 아이들은 인생의 모든 사건을 나열하는 옛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 노래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금파리의 선물
금파리들의 세계에서는 짝짓기 하는 동안에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다. 짝짓기의 격정이 암컷의 식욕을 불러일으키면서, 자기 옆에 있는 머리가 수컷의 머리일지라도 암컷에게는 그저 먹이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수컷은 교미는 하고 싶어도 암컷에게는 잡아먹히고 싶지는 않다. 사랑 때문에 죽어야 하는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를테면, 타나토스 없는 에로스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금파리의 수컷은 한 가지 책략을 찾아냈다. 먹이 한 조각을 ‘선물’로 가져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수컷이 고기 조각을 하나 가져오면 암컷은 허기를 느낄 때 그것을 먹게 되고, 수컷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교미를 할 수 있다.
이 파리들보다 훨씬 진화된 다른 집단에서는 수컷이 곤충 고기를 가져올 때 투명한 고치로 포장해서 가져온다. 그러면 수컷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다. 또 어떤 수컷들은 선물의 질보다는 선물을 개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고, 포장된 먹이를 가져오되 두껍고 부피만 클 뿐 속은 텅 비어 있는 것을 가져온다. 암컷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쯤이면 수컷은 이미 용무를 끝낸 뒤다. 수컷들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암컷들도 거기에 맞추어 자기들의 행동을 수정한다. 예컨대, 엠피스 속(屬)의 파리들의 경우에는, 암컷이 고치를 흔들어서 먹이가 들어 있는지를 확인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대응책이 있다. 수컷은 암컷이 고치를 흔들어 볼 거라 예상하고, 선물 꾸러미에 제 똥을 담는다. 그것이 무게가 꽤 나가기 때문에 암컷은 고깃덩어리로 잘못 알기 십상이다.
중국에 간 로마인들
기원전 54년, 시리아 총독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장군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에서 거둔 성공을 시샘하며 자기도 동방을 향해 대장정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파르티아 왕국이 그의 앞길을 막으면서 카레스(하란)전투에서 파르티아의 총사령관 수레나에게 패배를 당하고 크리수스가 살해되자 로마 제국의 동방 정벌은 종국을 맞게 된다. 그때 많은 로마 병사들이 파르티아의 포로가 되었는데 파르티아인들은 이 포로들을 받아들여 쿠샨왕국의 군대와 싸우게 했으나 파르티아의 왕국이 패배하여 로마병사들은 쿠샨군에 편입되었다. 당시 쿠샨왕국은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다시 전투가 벌어지고 쿠샨왕국이 패배, 중국이 이기면서 로마의 병사는 중국 군대로 가게 되었다.
이 백인들의 투석기나 노포(弩砲) 같은 포위 공격 무기의 제조에 관한 지식들은 중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중국인들은 곧 로마 병사들을 받아들여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읍락을 이루어 살게 하였다. 로마 병사들은 중국 여인들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고 몇 년 후, 로마의 상인들이 중국에 와서 그들에게 고향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중국에 사는 게 더 행복하다면서 거절하였다.
인체의 조성
당신은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이다. 당신에겐 하나의 사회사가 담긴 성과 이름이 있지만 그게 당신의 전부는 아니다. 먼저 당신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당신은 71%의 물과 18%의 탄소, 4%의 질소, 2%의 칼슘과 인, 1%의 칼륨, 0.5%의 나트륨, 0.4%의 염소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 한술 분량의 희유(稀有)원소, 즉 마그네슘, 아연, 망간, 구리, 요오드, 니켈, 브롬, 불소, 규소를 함유하고 있다. 또 소량의 코발트, 알루미늄, 몰리브덴, 바나듐, 납, 주석, 티탄도 지니고 있다. 이상이 당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다. 이 모든 물질들은 별들이 연소할 때 생겨난 것으로 당신 몸 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당신의 물은 흔하디 흔한 바닷물과 다를 바 없고, 당신의 인은 성냥개비의 인과 한 가지이며, 당신의 염소는 수영장물을 소독하는 데 쓰이는 염소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단순히 그런 물질들을 합쳐 놓은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하나의 화학적 구조물이면서 굉장한 건축물이다. 구성 물질들이 적절히 배합되고 안정되게 평형을 이루어 완벽하게 기능하고 있다. 그 메커니즘의 복잡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당신을 이루는 분자들은 다시 원자, 미립자, 쿼크, 진공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모든 것들은 전자기적인 힘과 인력과 전자적인 힘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 그 절묘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의 모든 것 중에서 쓸모 없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당신도 물론 쓸모 없는 존재가 아니다. 하루살이처럼 덧없는 당신의 삶에도 어떤 의미가 있다.
당신의 삶은 막다른 골목으로 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저마다 의미를 지니고 있다. 행동하라! 무엇인가를 행하라! 하찮은 것이라도 상관없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당신의 생명을 의미 있는 무엇인가로 만들라. 당신은 쓸모 없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당신이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발견하라. 당신의 작은 사명은 무엇인가? 당신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다.
동향
인류의 위대한 모험은 대부분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루어졌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불덩어리가 어디로 잠기는지 궁금해하면서 태양의 운행을 추적하였다. 율리시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아틸라 등 모두가 서쪽에 그 답이 있다고 믿었다. 서쪽으로 떠나는 것, 그것은 미래를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양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했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쪽으로 가는 것, 그것은 태양의 근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근원을 알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마르코 폴로, 나폴레옹, 빌보(톨킨의 ‘반지주인’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하나) 등은 동쪽으로 갔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하루가 시작되는 동쪽에 뭔가 발견한 만한 것이 있으리라고 믿었다. 모험가들의 상징 체계에는 아직 두 개의 방향이 남아 있다. 그 방향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북쪽으로 가는 것은 자신의 힘을 시험하기 위한 장애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남쪽으로 가는 것은 휴식과 평정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입맞춤
인간이 개미에게서 모방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럴 때 내가 가장 먼저 예로 드는 것은 입맞춤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입맞춤을 기원전 수백 년 경에 고대 로마인들이 생각해 낸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입맞춤은 개미들의 영양 교환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대 로마인들은 개미들이 서로 입술을 맞댈 때 개미 사회를 단결시키는 관용의 행위가 행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그 행위의 의미를 완전히 깨달은 것은 아닐지라도, 그런 접촉이 되풀이되어야만 개미 사회의 단결이 공고해지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인간이 서로 끌어안고 입을 맞대는 것은 개미들의 영양교환을 흉내 낸 것이다. 하지만 개미들의 영양 교환에서는 사회위(社會胃)에 갈무리된 먹이를 되돌려 굶주린 동료에게 주는 행위가 있지만, 인간의 입맞춤에는 그저 침의 교환이 있을 뿐이다.
차이의 이점에 대하여
사람들은 오랫동안 경쟁자들을 따돌린 가장 빠른 정자가 난자를 수태시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장 빠른 정자 하나가 아니라 수백 개의 정자가 동시에 난자의 주위에 다다른다. 거기에서 정자들이 편모(鞭毛)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 가운데 하나가 선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난자의 문 앞으로 몰려온 많은 청혼자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 승리자로 만들어 주는 것은 결국 난자다. 그렇다면, 난자는 어떤 기준으로 정자를 선택하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그 문제를 탐구한 끝에 최근에 답을 찾아냈다. 난자는 ‘자기 것과 가장 다른 유전적 특성을 보이는’ 정자를 낙점한다는 것이 그 답이다. 이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난자는 자기 위에서 서로 껴안고 있는 남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저 근친결합의 문제라도 생기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의 염색체는 자기와 유사한 것이 아니라 자기와 다른 것과 결합해서 더욱 풍부해지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다.
알
새의 알은 자연이 빚어낸 걸작 가운데 하나다. 먼저, 알 껍데기의 얼개가 얼마나 정교한지 살펴보자. 알 껍질은 삼각형의 금속염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결정들의 뾰족한 끝은 알의 중심을 겨누고 있다. 그래서 외부의 압력을 받으면 결정들이 서로 끼이고 죄이면서 알 껍질의 저항력이 한결 커진다. 로마네스크식 성당의 둥근 천장이나 입구를 이루는 아치처럼, 압력이 세면 셀수록 구조는 더욱 견고해지는 것이다. 반대로 압력이 내부로부터 올 때는 삼각형 결정들이 서로 떨어지면서 얼개 전체가 쉽게 무너진다. 이렇듯, 알 껍질은 밖에서 오는 힘에 대해서는 알을 품는 어미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안에서 오는 힘에 대해서는 새끼가 쉽게 깨고 나올 수 있을 만큼 약하다.
새의 알은 또 다른 특장(特長)들을 보여 준다. 새의 알눈이 완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노른자 위쪽에 놓여 있어야 하는데 어쩌다 알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알이 거꾸로 놓여도 노른자의 자리가 변하지 않게 하는 알끈이 있기 때문이다. 즉, 탄력성 있는 두 개의 끈이 노른자를 감아 알막의 양쪽 측벽에 이어 댐으로써 노른자를 매달고 있는 것이다. 알이 움직이는 데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이 알끈이 있기에, 알눈이 마치 오뚝이처럼 언제나 제 위치로 돌아올 수 있다. 새가 알을 낳을 때, 알은 따뜻한 어미 뱃속에서 갑자기 차가운 곳으로 나오게 된다. 그렇게 급격히 냉각되는 과정에서 붙어 있던 두 알막이 서로 분리되고 그 사이에 공기 주머니가 생긴다. 그 공기 주머니는 알이 부화하는 몇 초의 짧은 시간 동안 새끼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숨을 쉼으로써 새끼는 알 껍질을 깰 수 있는 힘을 얻고 위급할 때는 삐약 소리를 내서 어미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두더지
아프리카 두더지는 에티오피아와 케냐 북부 사이의 동아프리카에 서식한다. 이 동물은 앞을 보지 못하며 분홍색 살갗에는 털이 없으며, 앞니를 이용해서 수 Km에 걸친 땅굴을 팔 수 있다. 그러나 이 동물의 가장 놀라운 점은 다른 데 있다. 아프리카 두더지는 곤충과 똑같은 방법으로 모듬살이를 하는 유일한 포유류로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 두더지의 한 군체에는 평균 5백 마리의 개체가 모여 산다. 이 개체들은 개미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요한 세 계급, 즉 생식 계급, 노동 계급, 병정 계급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개미 세계의 여왕개미에 해당하는 한 마리의 암컷은 한 배에 30마리까지 모든 계급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유일한 출산자리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 암컷은 자기 오줌 속에 냄새나는 물질을 분비해서 굴속에 있는 다른 암컷들의 생식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을 억제시킨다. 아프리카 두더지가 거의 사막이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어떤 생물의 종이 군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프리카 두더지는 덩이줄기와 뿌리를 먹고산다. 이따금 덩치 큰 먹이가 걸리기도 하는데 대개 그 먹이는 아주 널리 산재되어 있다. 독립 생활을 하는 설치류 동물도 자기 앞으로 곧장 수Km의 땅굴을 팔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듬살이를 하게 되면 먹이를 찾을 기회가 훨씬 많아진다. 작은 덩이줄기 하나라도 발견하면 모두가 똑같이 나누어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두더지가 개미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수컷이 교미를 하고 나서도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유토피아
우리 몸의 각 부분은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움직인다. 우리의 세포는 모두 평등하다. 오른쪽 눈은 왼쪽 눈을 시샘하지 않고, 오른쪽 허파는 왼쪽 허파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 모든 기관, 모든 부분은 유기체 전체가 최상의 상태로 기능할 수 있도록 기억한다는 단 하나의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를 알고 있으며, 그런 체제를 성공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모든 세포가 평등하고 자유롭지만, 최상의 상태로 함께 살아간다는 공통의 목표를 지니고 있다.
정보는 호르몬과 신경을 통하여 몸 전체에 유통되지만, 그것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만 전달된다. 우리 몸에는 우두머리도 행정부도 화폐도 없다. 당분과 산소가 유일한 재산이고, 그 재산을 어떤 기관에 가장 많이 할당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유기체 전체의 일이다. 예를 들어, 날씨가 추울 때 손가락과 발가락이 가장 먼저 푸릇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우리 몸 안에서 소우주 규모로 행해지고 있는 것을 거시적으로 확대하면, 조직 체계의 한 가지 본보기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조직 체계의 진가는 이미 입증된 지 오래다.
어떻게
장애물이 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이 보이는 최초의 반응은 대개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거지?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잘못을 범한 사람을 찾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에게 부과해야 할 벌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똑같은 상황에서 ‘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라고 자문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일이 제대로 되게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현재 인간 세계는 ‘왜’라고 묻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어떻게’라고 묻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홀로그래피
인간의 뇌와 개미집은 둘 다 홀로그래피의 이미지로 상징될 수 있다. 홀로그래피란 무엇인가? 그래픽의 띠를 포개고 특정 각도에서 빛을 비추어 입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사실, 이 이미지는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동시에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픽 띠의 결합에서 다른 것, 즉 입체의 환각이라는 제3의 차원이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 뇌를 구성하는 모든 신경 단위, 개미집을 구성하는 모든 개미가 저마다의 정보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의식, 즉 ‘입체적인 사고’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결합되어야 한다.
반대로 하기
타성은 점차적으로 경화증을 가져온다. 때로는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과 반대가 되는 것을 해보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다. 자고 싶을 때 깨어 있어 본다든지, 자동차를 타고 싶을 때 걸어간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작은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느낌과 미지의 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관용
사람들은 이제껏 열등하다고 여겨 왔던 존재들이 자기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자기들의 ‘동류(同類)’ 개념을 확대하여 새로운 범주를 거기에 포함시킨다. 그럴 때, 어떤 한계를 뛰어넘은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온 인류가 진화의 한 단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실재
‘실재란 우리가 더 이상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아도 계속해서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라고 미국 작가 필립 K. 딕은 말한 바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인간의 모든 선입견과 도그마와 미신과 기계적인 해석을 초월하는 객관적인 실재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실재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19세기 말, 프랑스 브루타뉴 지방의 정어리 통조림 공장에는 쥐들이 우글거렸다. 그러나 그 쥐들을 없애 버릴 방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흔히 쓰는 방법대로 고양이들을 풀어놓는다는 것은 말도 안될 일이었다. 고양이들은 쥐보다도 정어리들을 먹어 치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참에, 어떤 사람이 살아 있는 쥐의 똥구멍을 굵은 말총으로 꿰매어 버리는 방안을 생각해 냈다. 그의 생각은 이러했다. 똥구멍을 꿰매어 버리면 쥐는 배변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계속 먹기만 하다가 결국엔 고통과 분노 때문에 미치게 된다. 그러면 그 쥐는 작은 야수와도 같은 무시무시한 존재로 변하여 다른 쥐들을 물어뜯고 쫓아낼 것이다.
생각은 그럴듯했으나 문제는 그 지저분한 일을 누가 맡느냐에 있었다. 다들 못 하겠다고 꽁무니를 사리는데, 한 여공이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 대가로 그녀는 사장의 신임을 얻어 봉급이 인상되고 반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그 통조림 공장의 다른 여공들은 그녀를 의리 없는 배신자로 여겼다. 그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쥐의 똥구멍을 꿰매겠다고 나서는 한, 그 혐오스런 일은 계속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비
2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 엘리자벳 커블러 로스 박사는 나치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소년을 보살피는 일로 부름을 받았다. 박사는 아직 수용소 막사에 누워 있던 아이들을 보러 들어갔다가, 나무 침대에 새겨진 어떤 그림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 다른 수용소들을 돌아다니면서도 박사는 똑같은 그림을 다시 보았다. 아이들의 그림에는 단 하나의 모티프가 있었다. 그건 바로 나비였다. 박사는 처음에 그것이 매맞고 굶주리던 아이들끼리 일종의 형제애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옛날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물고기를 공동체적 결속의 상징으로 삼았듯이 그 아이들도 나비를 통해 자기들이 한 집단에 속해 있음을 표현했을 거라고 믿은 것이다.
박사는 여러 아이들에게 그 나비들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대답을 거부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아이가 그 의미를 밝혀 주었다. “그 나비들은 우리와 같아요. 우리는 모두 이 고통받는 육신이 하나의 매개체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지금의 우리는 애벌레와 같아요. 어느 날 우리의 영혼은 이 모든 더러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날아오를 거예요. 나비를 그리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일깨우곤 했어요. 우리는 나비다, 우리는 곧 날아오를 것이다라고 말이에요.”
물결처럼
여자들의 마음은 파상적(波狀的)으로 움직인다. 그녀들의 기분은 잘 변한다. 여자의 기분이 저조해지면, 함께 있는 남자는 당황하면서 어떻게든 빨리 문제를 해결해서 여자의 기분이 더 저조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그런 남자들은 여자들이 맨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바닥을 차고 다시 올라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으로써, 여자들은 다시 올라오기 위한 발판을 얻지 못한 채 계속해서 심연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 사실 여자가 불평을 할 때는, 남자보고 자기가 추락하지 않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니다. 여자는 그저 자기 말을 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여자는 자기가 내려갔다가 바닥을 디디고 다시 올라오는 그 경험의 증인을 원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너무나 성급하게 군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겪는 그런 현상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람이 어찌 밀려드는 물결을 막을 수 있으랴! 남자가 여자의 자유 낙하를 막는 것은 진정한 재상승을 가로막는 것이기도 하다. 그건 우리가 열이 날 때 약을 먹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약은 한편으로는 발열이 그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몸이 세균을 태워 죽일 만큼 뜨거워지는 것을 방해한다. 하강과 발열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애를 태우며 걱정하지 않아도 대개의 경우 내려갔던 것은 다시 올라오고, 뜨거워진 것은 다시 차가워지게 마련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오히려 아무리 아파도 열이 나지 않는 몸, 그리고 기분이 언제나 한결같은 여자이다.
겹겹이 쌓인 카르마
문득 이상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시간은 어쩌면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층층이 겹쳐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요리 라자냐처럼 겹겹이 쌓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우리는 하나의 삶을 산 뒤에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삶을 동시에 살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미래와 과거의 각기 다른 시대에서 천 겹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퇴행을 통해서 만나는 것은 전생이 아니라 바로 그 평행한 삶들인 셈이다.
건배
건배는 프랑크족의 전통이다. 그들은 건배를 하면서 각자 자기 잔의 술 방울이 다른 사람의 잔에 떨어지게 했다. 그럼으로써 그의 술잔에 독을 넣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술잔을 세게 부딪힐수록 흘러 넘치는 술이 많아지므로, 서로의 술이 섞일 가능성도 높아진다. 따라서 술잔을 세게 부딪힐수록 더 정직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승리의 절제
전략 게임에서는 언제나 승리 속에 패배의 몫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진정한 승리는 근소한 차이가 날 때만 이루어진다. 예컨대 바둑에서는 반집 승부가 가장 이상적인 대국이다. 지나치게 압도적인 승리는 승자의 자랑거리가 되기보다는 게임을 벌이지 말았어야 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게다가 지나치게 압도적인 승리는 상대에게 모욕감을 줌으로써 다음 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설욕을 하고 말겠다는 욕구를 갖게 한다. 이미 게임이 시작된 뒤에야 상대가 적수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가 대등하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어떤 표본 조사
인간 세계에서는 매일 1억 건의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 중에서 91만 건이 임신으로 이어진다. 그 임신 중의 25%는 원하지 않는 임신이며, 50%는 예정되지 않은 임신이다. 한편 그 성 관계 중에서 35만 6천 건은 성병을 옮긴다.
음양
만물은 음과 양을 함께 지니고 있다. 선에는 악이 있고 악에는 선이 있다. 남성에는 여성이 있고 여성에는 남성이 있다. 강한 것 속에는 약한 것이 들어 있고 약한 것 속에는 강한 것이 들어 있다. 중국인들은 그 사실을 3천년도 더 된 아주 오래 전에 깨달았다. 상대주의의 선구자는 그들이라고 할 만하다. 흑과 백이 서로 보완하고 서로 섞이면서 가장 좋은 것을 만들기도 하고 가장 나쁜 것을 만들기도 한다.
태아
태아는 태어나기 전에 지구상의 생명이 경험한 모든 사건들을 요약하여 되풀이하는 듯하다. 처음에 태아는 짚신벌레와 같은 미미한 단세포 생물과 비슷하다. 그러다가 물고기처럼 되면서 아가미 형태의 호흡을 비롯한 물고기의 모든 특징을 보여 준다. 그런 다음에는 파충류가 되고, 마침내 포유류가 된다. 이건 마치 우리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이전의 에피소드들을 요약하는 것과 비슷하다. 뇌를 구성하는 막들도 생명이 발전해 온 단계들을 요약해서 보여 주는 것 중의 하나다. 최초의 뇌는 파충류의 뇌와 비슷하다. 그러다가 포유류의 뇌가 되고 인간의 뇌가 된다. 태아는 최초의 세포들 위에 그 뇌들을 모자처럼 포개간다.
암흑
우주 공간은 캄캄하다. 별빛을 반사시킬 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선은 무한한 공간 속에서 소진되고 만다. 언젠가 우리가 우주의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주의 경계가 되는 한 모퉁이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