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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프랑수아 라블레 지음 | -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프랑수아 라블레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그랑구지에: 가르강튀아의 아버지로 선량하고 덕이 있는 왕



가르강튀아: 이 소설의 주인공. 올바른 교육을 통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완벽한 인물이 된다.

포노크라트: 가르강튀아의 스승으로 가르강튀아에게 바른 교육을 하려 애쓴다.



장 데 장토뫼르: 수도원의 수사로 피클로콜 군대를 전멸시키는 용맹하고 완벽한 수사다.



피클로콜: 이웃 나라 왕으로 가르강튀아의 나라를 침공하나 무참히 패배한다.





가르강튀아의 탄생

그랑구지에는 낙천적이고 누구보다도 술을 잘 마시는 왕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 팔파이오 왕국의 가가멜이라는 천하일색의 공주와 결혼하여 훌륭한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얼마 전 그랑구지에 왕은 큰 소 36만 7천 14마리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낙천적이고 인심이 후한 왕은 모든 국민을 모이게 하여 잔치를 벌였다. 왕은 여왕에게 내장 요리는 그다지 썩 좋은 것이 아니니 가급적 먹지 말라 하였으나 여왕은 소 내장으로 만든 요리를 어찌나 많이 먹었던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설사를 했다.

이렇게 잔치가 무르익어가고 있을 무렵, 가가멜은 서서히 산통을 느끼기 시작한다. 보통의 경우 아이가 태어나면 “응애응애”하고 울기 시작할 텐데, 가가멜이 낳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마시자! 마시자!”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마치 천하 만 백성에게 한 잔 하라는 듯 말이다. 이런 출생이 이상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원래 술과 축제의 신 바쿠스(디오니소스)는 주피터(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났으며, 지의 여신 미네르바는 주피터의 귀에서 태어났음을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술을 좋아하는 그랑구지에 왕은 아들이 태어나던 순간에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때 “마시자! 마시자!”하는 우렁찬 소리를 듣고는 “맙소사, 주량이 참 세군!(Que grand tu as!: 크 그랑 튀 아)”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아들의 탄생을 맞아 최초로 아버지가 한 말대로 이름을 정하는 히브리인들의 전례에 따라 아들의 이름을 ‘가르강튀아 Garguantua’라고 정하도록 권한다. 그는 이 권고를 흔쾌히 받아들였으며, 산모도 흡족해하였다. 어쨌든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들은 아이에게 포도주를 먹인 다음 예수님의 초상 앞에서 세례를 주었다.



가르강튀아의 잘못된 교육

한 해가 지나갔다. 그 동안 가르강튀아는 어찌나 살이 쪘는지 턱이 열여덟 개는 되어보였고 좀체로 울지도 않았다. 비만 때문에 대소변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였으면서도 술을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고 마시는 재주를 가졌다. 자, 그렇다면 그렇게 뚱뚱한 아이는 어떤 옷을 입고 있었을까? 가르강튀아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재단사들이 당시 유행인 옷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속옷을 만들기 위해서 사텔로 천 500m, 양복 조끼를 만들기 위해서 흰 나사지 813m, 양복 바지를 만들기 위해 흰 나사지 1,105m, 허리띠를 만들기 위해서 1,509마리의 개가죽이 필요했다. 또 팬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흰 나사지 16m가 필요했는데, 그 모양은 보기에도 화려한 두 개의 아름다운 황금 고리에 멜빵이 끼여 있었고, 그 멜빵에는 일곱 가지 보석이 반짝이는 금으로 만든 고리가 달려 있었다. 팬티 앞부분에는 금실, 은실로 된 자수에다가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진주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기절할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구두를 만드는 데에는 눈이 시원해질만큼 파란 비로드 천 406m와 101장의 소가죽이 쓰였다. 외투용으로도 파란 비로드 천 108m가 쓰였으며 군데군데 진주를 박은 황금빛 무늬가 화려하게 외투를 장식하고 있었다. 모자를 만들기 위해 흰 비로드 천 302m 가량이 쓰였고 진귀한 새의 깃털로 장식을 마무리했다.

세 살에서 다섯 살 때까지 가르강튀아는 부친의 명령대로 적당한 규율에 따라 양육되었다. 그 시기는 여느 아이들이 그러하듯 마시고, 먹고, 자고, 흙탕 속에서 뛰어노는 때였다. 하지만 가르강튀아는 보통 아이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술을 마시는 것도 그랬고, 방문객을 재치 있게 골려주는 것도 그러했다. 아들의 영특함에 놀란 아버지 그랑구지에는 아이를 교육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명망 있는 당시의 대 궤변학자들에게 맡겨진 가르강튀아는 여러 가지 책을 공부했으나 그랑구지에가 보기에는 아들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아니라 오히려 머리가 이상해지고 뒤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그랑구지에는 귀가 솔깃할 만한 이야기를 듣는다. 포노크라트라는 선생에게서 배운 한 젊은이가 그리도 영특할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유데몽이라는 그 젊은이를 시험해 본 그랑구지에는 그의 영특함과 총명함에 질투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포노크라트를 가르강튀아의 스승으로 삼기로 하고 가르강튀아의 파리 유학을 위해 포노크라트, 유데몽을 동행시켰다.



가르강튀아, 파리로 유학을 떠나다

한편 때마침 이웃 나라의 왕이 아프리카산 암말을 그랑구지에에게 보내왔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만큼 훌륭하고 거대하였다. 원래가 아프리카에서는 항상 무엇인가 진귀한 것이 생기는 바, 그 암말의 크기는 코끼리 여섯 마리를 합쳐놓은 크기였으며 가공할 만한 힘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꼬리의 힘에 대해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파리로 향하던 가르강튀아 일행이 오를레앙을 지날 때였다. 그 곳에는 길이 15km, 폭 7km 넓이의 큰 숲이 있었다. 이 숲에는 쇠파리와 말벌 종류가 우글거려서 보통 말이나 당나귀들에게는 사람으로 치자면 산적을 만나는 것과 같은 셈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일행이 숲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말벌떼가 암말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암말은 그 꼬리로 말벌떼를 쫓고는 뒤따라가 닥치는 대로 꼬리를 휘둘러 숲 전체의 나무를 쓸어버렸다. 가르강튀아의 암말은 그 동안 다른 말들이 당했던 일들을 기발한 방법으로 복수했던 것이다. 나무가 사라지자 말벌도 쇠파리도 사라지고 그 숲은 논밭으로 변해 버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가르강튀아는 일행을 향해 “굉장하군(Je trouve beauce).”라고 말하였으며, 여기에서 기원하여 그 지방은 후에 보스(Beauce)라 불리게 되었다. 그 주인에 그 짐승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굉장한 주인과 굉장한 말, 그리고 그들의 일행은 파리로 향했다. 가르강튀아 일행이 파리 시내를 구경할 때에 모든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는 감탄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이 귀찮았던지 가르강튀아는 “이 녀석들은 여기서 피로연이나 환대에 대한 답례를 하라는 것이로군. 그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어디 술값을 좀 주도록 할까. 그냥 줄 수는 없겠고, 장난으로만 주도록 하지.”하더니 갑자기 사람들을 향해 오줌을 누는 것이었다. 이때 가르강튀아의 오줌에 빠져죽은 사람은 무려 26만 418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원래 이름이 뤼테스에서 지금의 파리(Paris)가 된 것이다.

가르강튀아는 한숨 돌릴 요량으로 한적한 곳을 찾았는데, 큰 성당이 그의 눈에 띄었다.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탑 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가르강튀아의 눈에 종이 들어왔다. 그는 종을 쳐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더니 자기 말 목에 걸면 안성맞춤이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난 김에 가르강튀아는 종을 숙소로 가져와 말 목에 걸었다. 당시 성당의 종은 지금처럼 울리는 기능만 한 것이 아니라 시계 역할까지 했기 때문에 만일 종이 없으면 사람들의 일과는 엉망이 될 것이 뻔하였다. 놀란 파리 시민들은 회의를 열어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지만 가르강튀아의 체구를 보면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결국 신학대학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박학다식한 인물을 가르강튀아에게 파견해 종을 돌려달라 부탁하기로 했다. 가르강튀아 일행은 자기를 찾아온 대학자들을 상대로 실컷 장난을 친 다음에야 종을 돌려주었다. 이전까지 파리 시민들에게 존경만 받아오던 학자들이 얼마나 곤혹스러웠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만하다.



거듭나기 위하여

이제 짓궂은 장난은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아 가르강튀아는 서서히 파리 유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부에 전념한다. 그는 스승인 포노크라트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공부하려 했으나 포노크라트로서는 지금까지 해 오던 가르강튀아의 오랜 습관을 고칠 필요를 느꼈다. 이전의 스승들이 가르강튀아를 바보로 만들어 왔기 때문에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 밑바닥부터 다시 다져야 하는 것이었다. 잠자는 습관, 밥 먹는 습관, 공부하는 방법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제대로 뜯어고친 후에 드디어 가르강튀아의 공부는 시작되었다.

가르강튀아는 아침 4시에 눈을 떴다. 몸을 추스리는 동안 성서의 몇 페이지를 큰 소리로 낭독했다. 가르강튀아는 성서의 내용을 잘 받아들여 대자대비의 신을 숭상하고 기도하기도 했다. 그런 후에는 화장실에서 밤중에 쌓인 나쁜 물질을 배설하였고, 그러는 중에도 스승에게 난해한 문제들을 질문하고 풀어나갔다. 하루일과의 시작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그 날의 하늘 상태를 살펴 일기를 가늠했고, 그런 후에는 몸단장을 하고 몸에 향료를 뿌리면서 전날의 수업을 복습하곤 했다. 그리고는 세 시간 정도 책을 낭독한 후, 밖으로 나가 좀 전에 읽은 책에 대해 토론했다. 토론이 끝나면 운동을 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심신을 연마해 나갔다. 운동 후에는 땀을 완전히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점심을 기다리며 조용히 산책하면서 스승 포노크라트와 함께 좋은 명언을 암송했다.

식사 초에는 포도주가 나올 때까지 옛날 무사들의 위훈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 내용이 마음에 들 경우에는 모두 외워버렸다. 빵이나 술, 소금, 식물 등 식탁에 나온 일체의 것들의 특질, 효능 등에 대해서 토론하였고, 혹 막히는 부분이나 애매한 부분이 있을 경우에는 여러 서적들을 식탁으로 가져오게 해 검증하는 작업을 거쳤다. 가르강튀아는 배운 것은 반드시 무엇이든 외워버렸기 때문에 그가 알고 있는 것의 절반을 아는 사람도 드물 정도였다.

식사 후에는 트럼프가 나왔다. 이는 승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수학적인 사고방식과 계산능력을(예를 들어 확률 같은) 기르기 위해서였다. 트럼프를 하면서 가르강튀아는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고 매일매일 점심이나 저녁을 먹은 후에는 트럼프를 하곤 했다. 그 결과 수학이라는 학문을 이론적으로나 실제 면에서나 정말 잘 외우고 이해하게 되어서 대수학자조차 가르강튀아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수학이라는 학문은 그 자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리에 입각한 다른 학문, 예를 들어 기하학, 천문학, 음악 등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가르강튀아는 전투용 말, 짐 싣는 말, 경주용 말 등 모든 종류의 말을 거침없이 다루었으며 마장마술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단숨에 마장을 백 번이나 돌고, 공중으로 도약하기도 하고, 큰 웅덩이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기도 하고, 둥근 원을 만들어 그 안에서 기술을 부리기도 했다. 승마뿐만이 아니었다. 사냥을 나가면 모든 종류의 짐승이 가르강튀아의 몫이었으며, 수영할 때에는 평영, 배영, 접영 등 전신을 사용하는 수영법이나 오늘날의 특공대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전투용 수영, 예를 들어 손에는 무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두 발만을 사용하는 수영법 등에도 능하였다. 이는 로마 제국의 율리우스 시저가 창안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물에서 나와 곧이어 산으로 오르는가 하면 어느새 산에서 내려와 다시 다른 산으로 올라가곤 했다. 산에서는 고양이처럼 나무에 기어오르기도 하고, 다람쥐처럼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기도 하였다. 가르강튀아는 검술도 능했는데 단검, 장검, 투창, 엽창, 도끼창, 활, 돌 등 다루지 못하는 무기가 없었다. 이처럼 승마, 수영, 산악, 무기 같은 모든 종류의 육체적 힘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의 기본은 바로 기초 체력인 바, 가르강튀아는 기초 체력을 기르는 데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커다란 납덩이 두 개를 만들게 했는데, 그 각각의 무게는 무려 8,700근이나 되었다. 가르강튀아는 그것을 아령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신체를 단련한 뒤에는 몸을 마찰하고 땀을 닦은 후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어떤 목장이나 풀이 무성히 자란 곳을 지나면 가르강튀아 일행은 돌과 나무를 조사하여 초목에 관해 기록해놓은 책을 펴서 대조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 준비가 될 때까지 전에 읽은 내용을 복습한 후에 식탁에 앉았다. 저녁식사 동안에는 점심시간에 했던 것과 같이 적당한 공부가 진행되었고, 남은 시간은 문학이나 예술에 관한 토론으로 채워졌으며, 신에게 감사를 드리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트럼프나 주사위 놀이를 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학식 있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외국 문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깊어지면 각자 잠자리에 들었는데 가르강튀아는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가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면서 혹 유성이라도 나타나면 그 소재와 성좌의 모양, 위치 등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그런 후 잠자리에 들기 전 가르강튀아는 스승을 상대로 그날 하루 동안 읽거나, 보거나, 듣거나, 행한 일들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며 복습했다. 이렇게 해서 창조주이신 신께 기도를 드리고 신에 대한 신앙이 깊음을 맹세한 후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피클로콜 왕의 침공과 장 데 장토뫼르의 용맹함

가르강튀아의 고향은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양치기들은 포도밭을 감시하며 까마귀가 포도를 따먹지 못하게 쫓고 있었다. 때마침 이웃 나라의 밀가루과자 장수들이 과자를 싣고 지나가고 있었는데 배가 고픈 양치기들은 자기들에게 과자를 좀 팔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그전까지는 서로 사이가 좋아서 과자와 포도를 서로 바꾸어 먹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정색을 하며 과자를 팔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 중 한 명은 계속 과자를 요청하던 양치기의 허벅지를 때리기까지 하였다. 이에 화가 난 그 양치기는 몽둥이를 던졌는데 그 몽둥이에 맞아 과자장수는 말에서 떨어져버렸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근처 농부들(가르강튀아의 국민)이 무슨 일인가 하고 달려왔다. 전후사정을 들은 그들은 과자장수들에게 달려가서 과자를 빼앗고 그에 상응하는 값보다 훨씬 많은 값을 치뤘다. 과자장수들은 놀라 도망을 갔는데, 이 일이 전쟁의 화근이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과자장수들은 그 길로 피클로콜 왕에게 달려가 양치기들에게 당한 일을 부풀려 이야기했다. 왕은 앞뒤 가리지 않고 과자장수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는 군사를 모아 진격했는데, 그 군대는 질서나 절도도 없어 혼란스러웠고, 가난한 자나, 부자나, 성스러운 지역이나, 성스럽지 않은 지역이나 전혀 상관하지 않고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살육했다.

그렇게 약탈강도를 자행하는 피클로콜 군대가 어떤 마을에 이르렀을 때 그 마을의 수도원에는 장 데 장토뫼르라는 품행이 방정한 수사가 있었다. 그는 젊고 원기왕성하며, 활달하고, 매우 두뇌가 명석해 두려움이라곤 몰랐다. 한 마디로 여태까지 보아오던 수사와는 전혀 다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자라는 구석이 없는 그런 수사였던 것이다. 이 수사가 수도원의 포도밭 일대에서 적군의 소음을 듣고 무슨 소란인가 하고 밖으로 나가보니 적군이 포도를 모두 따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수도원장과 다른 수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우리들의 포도밭에 적병들이 침입하여 포도나무와 열매를 깨끗이 약탈하는 것은 신께서도 보고 계실 것입니다. 앞으로 4년 동안 포도 찌꺼기라도 주우려 해도 주울 것이 없을 것임을 모르시겠습니까? 만일 거짓이라면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도 좋습니다.”

수사 장 데 장토뫼르의 일장 연설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장과 나머지 사람들은 숨을 궁리만 하였다. 장 데 장토뫼르는 긴 법의를 벗어버리고 곤봉을 들었다. 그야말로 용감한 수사였던 것이다. 그 길로 그는 포도밭으로 나가 적군의 머리를 깨뜨리고, 어느 틈엔가는 저쪽으로 가서 팔다리를 부러뜨렸으며, 또 어느 틈엔가는 구석에 있는 적군의 척추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코를 으깨고, 모든 이빨을 뽑았으며, 대퇴골에 허벅다리뼈가 으스러지게 하였고, 만일 도망가는 적군이 보이면 뒷머리통을 으깨버렸다. 이렇게 장 데 장토뫼르가 전멸시킨 적군의 수는 13,622명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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