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
에밀 졸라 지음 | -
제르미날(Germinal)
에밀 졸라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에티엔 랑티에: 전직 기계노동자. 반항적인 인물. 몽수에 들어와서 노동자들을 위해 광산 파업을 주도한다. 파업 동안 야망과 좌절 속에 끊임없이 고뇌한다.
마외: 광부. 에티엔에게 일자리를 주고 파업에 함께 동참하며, 끝까지 그와 함께 파업을 진행해나간다.
카트린느 마외의 딸: 에티엔을 사랑하지만 샤발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다. 파업상황에서 가족을 위해 갱도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성적인 인물
라마외드 마외의 부인: 모든 것에 적극적이며 굶주림 속에서도 파업을 옹호한다. 가족이 붕괴되는 상황에서도 의연히 대처하는 여인
샤발: 광부. 탐욕스럽고 야비한 기회주의자.
* 제르미날Germinal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공화력에서 3월22일부터 4월19일까지의 ‘싹트는 달’을 의미한다.
밑바닥 공기의 탁함을 느끼지 못함은 위의 맑은 공기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는 에티엔 랑티에라고 합니다. 기계공이죠...... 여기서 일자리 좀 구할 수 없을까요?” 불꽃에 비친 그는 스물한 살 정도 되어보였고, 팔다리는 호리호리했지만, 강한 인상을 풍기는 진한 갈색머리의 미남이었다.
릴르의 철도 작업장에서 기계공으로 일하던 에티엔 랑티에는 그곳 작업장의 상관을 폭행하고 해고된 뒤,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일주일 가까이를 헤맨 뒤, 모든 것이 어둠으로 덮인 밤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바로 밤의 어둠을 압도할 만큼 검은빛의 석탄 광산 몽수였다. 거기에서 그는 일생을 광산에서 보내고 남은 것은 몸 속 가득 석탄가루뿐인, 연신 검은 가래를 뱉는 본모르 영감을 만난다. 그와의 대화에서 에티엔은 광산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읽는다. 그때까지는 전혀 생각지 못한 그런 비참함이었다. 그곳에서 일자리를 수소문하며 돌아다니던 에티엔은 우연히 그곳 광부이자 본모르 영감의 아들인 마외의 조수가 되고, 광산의 깊은 갱도로 향한다.
높고 습한 온도, 석탄가루와 뒤섞인 탁한 공기, 타박상 흉터투성이로 만드는 좁은 갱도, 짜증과 푸념으로 가득하지만 살기 위해 한푼이라도 벌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광부들, 이 모든 비참함이 에티엔의 눈에 들어온다. 또한 광산일 역시 처음인 에티엔에게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마외와 그의 딸은 많은 도움과 조언을 해주고, 그는 가까스로 다시 갱도 밖으로 나온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일을 마친 에티엔은 과연 자신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의구심에 빠진다. 마외는 그를 라스뇌르라는 전직광부가 운영하는 선술집으로 데리고 간다. 에티엔은 거기에서 기거할 수 있게 된다. 마외의 친절함, 따뜻하게 다가온 카트린느에 대한 관심, 또한 마음 어딘가에서 점점 커지는 반항심이 뒤섞이며 그는 다시 탄광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이 세상에는 악이라는 것이 있어, 정말이야. 보아하니 당신은 착한 아낙네 같은데, 그러나 노동자들은 정말 현명하지 못하다고 말해야겠어. 농부들처럼 푼돈을 저축하기는커녕 광부들은 술 마시고 빚이나 져서 결국은 제 가족을 먹이지도 못하고 말지.”
몽수광산 노동자의 비참한 모습과는 달리 이 광산을 소유한 부르주아들은 그들의 고통을 모른 채,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광산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그레그와르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그들의 게으름, 과소비, 문란한 성생활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마외의 부인인 마외드가 돈이 없어 먹을 것을 사지 못해 도움을 청할 때도 약간의 옷가지나, 빵 몇 조각만을 줄 뿐이다. 그는 절대 돈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부르주아의 차단된 시각은 광부들의 생활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부르주아들이 노동자를 위해 무언가 해줄 것이라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위의 공기를 느끼려면 전적으로 노력이 필요하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에티엔은 수갱에서 일을 계속했다. 그는 일에 익숙해졌고, 처음에는 너무나 힘들게 보였던 수갱일과 이 새로운 습관에 따라 그의 생활은 맞춰져갔다.
에티엔은 마외와의 우정을 돈독히 해나가고, 광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조수에서 채탄부로 승진된다. 더불어 광산 생활에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이후 선술집 다락방에서 마외의 집으로 이사하면서, 에티엔은 이전부터 관심을 두었던 카트린느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품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샤발이라는 남자에게 유혹받고 있었고 언제나 수동적으로 남자에게 이끌려가는 이곳 광산촌의 여인들처럼 그녀도 그렇게 이끌려간다. 이전부터 샤발을 좋아하지 않았던 에티엔은 그런 사람에게 카트린느가 간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소심한 탓에 그저 그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카트린느에 대한 애정의 한계와 그의 위치에 대한 공고함이라는 상반된 상황 속에서 에티엔은 부르주아에 대한 반항심과 분출만을 기다리는 야망의 싹을 키워나갔다. 그는 파업을 주도했다가 해고당한 뒤 선술집을 차려 돈을 번 중도파 라스뇌르와, 선술집에 자주 드나드는 수바린이라는 무정부주의자와 대화하면서 서로의 노선에 대한 논쟁을 벌여나가는 한편, 저녁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당시 노동자들의 원죄라고도 할 수 있는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동자에 관한 여러 책을 탐독한다. 그와 동시에 당시 국제노동자연맹(인터네셔널)의 임원으로 있는 플뤼샤르와 편지왕래를 해나가며 광산의 낙후성, 광부들의 비참한 삶을 극복해나갈 방도를 계속 모색한다. 이러한 변화의 노력이 내부에서 조금씩 표출되는 동안, 다른 한편으로 광산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걱정해봐야 나아질 게 하나도 없어.” 마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막다른 골목은 아닐 거야.” 포석을 응시하던 에티엔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상상에 잠긴 눈으로 중얼거린다. “그래 지금이다. 지금이 할 때야!”
광산소유주들은 석탄값 하락으로 생기는 석탄 재고량을 처리하기 위해 걸핏하면 휴업을 하고, 또한 갱도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고의 책임을 광부들에게 돌리면서 그럴 때마다 벌금을 부과한다. 무엇보다도 광부들을 압박하는 것은 새로 정해진 임금지급 방식이었다. 이 방식에 의해 광부들은 이전보다 적은 임금을 받게 되고, 그것은 곧 생존을 위협한다. 무지한 광부들이 그저 불만만을 터뜨려나갈 때 에티엔과 라스뇌르, 수바린 등 참여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그 방식은 다르지만 불공평에 대한 저항으로 빼앗긴 권리를 다시 찾기 위해 파업을 결의한다. 마외는 아들이 갱도 붕괴사고로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카트린느는 샤발과 함께 가출하게 된 상황이어서 파업에 동참한다.
파업 준비를 위한 작업은 계속 진행된다. 조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진행방식을 논의하는 가운데, 노동자들은 과격한 폭력 방식보다는 에티엔이 주장했던 협상에 의한 방식을 우선 선택한다.
‘의욕’이라는 단어는 고통을 참는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갑자기 이날 오전 네 시에 파업이 일어났다. 12월1일, 회사가 새로운 임금안을 제시했을 때, 광부들은 조용했었다. 보름 후 임금이 지불되던 날 또한 아무런 요구도 없었다. 사장에서부터 경비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임금안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날 아침부터 시작된 선전포고와 전술, 그리고 통일된 행동 앞에서의 놀라움은 큰 것이었다.
광산책임자인 엔느보의 집에서는 그레그와르 집안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광부의 갑작스런 파업소식이 전해진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파업이었다. 전날 라스뇌르의 집에서 이루어진 회합에서는 다음날 엔르보 사장의 저택을 방문할 대표자를 선출했다. 대표자들에는 가장 충실하게 일해온 마외가 포함돼 있었다. 대표자들은 엔느보 사장 집을 방문했는데 그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결렬로 끝났다. 마외와 에티엔을 위시한 대표자들은 새롭게 결정된 임금지급 방식의 철회, 광산설비에 대한 회사의 투자확대, 광부들의 임금인상을 주장한다. 그러나 엔느보 사장은 그들의 비참한 삶을 외면하고, 회사 사정을 거론하면서 회사는 광부의 구세주라는 것을 부각시킨다. 엔느보 사장은 이러한 파업을 모든 노동자들에게 불어닥치는 페스트라고 말하며, 협상자체를 거부한다.
회사의 계속된 협상거부와 함께 파업은 장기화로 돌입했다. 임금을 못 받은 광부들은 굶주림과 추위를 함께 겪어야만 했다. 광부들은 참았다. 그들의 동조 아래 에티엔은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도자 위치에 있는 만큼, 지도자로서의 경험이 만무한 에티엔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다가오고 있었다. 국제 노동자 연맹의 플뤼샤르는 그곳에 방문하겠다는 편지를 계속 보내왔지만, 그는 순수하게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투쟁으로서의 파업에 이데올로기를 가미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동시에 수바린의 폭력에 의한 파업 진행은 그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파업투쟁이 단지 에티엔 자신의 권력욕에서 기인한다는 라스뇌르의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마외의 가족에게 먹을 것을 갖고 오는 카트린느에게 다가갈 수 없는 고뇌는 깊어가고, 그런 만큼 샤발에 대한 증오는 커져만 간다.
결국 에티엔은 국제노동자연맹에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하고 플뤼샤르에게 편지를 보낸다. 플뤼샤르는 몽수에 방문하여 광부의 의욕을 북돋워준다. 에티엔은 플뤼샤르의 연설이 광부들의 침체된 분위기, 비틀거리는 파업상황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또다시 보름이 지났다. 1월 초순에 접어들자, 차가운 안개가 거대한 평원을 마비시켰다. 비참함은 더 한층 심해졌고, 광부촌은 점점 가중되는 궁핍 속에서 시시각각 빈사상태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인터네셔널을 통해 런던에서 보내온 4천 프랑은 겨우 사흘치 빵값을 충당할 수 있을 뿐이었다.
노동자연맹을 굳건히 믿던 광부들은 그들의 물적, 정신적 지원이 끊기자 더욱 의기소침해진다. 어느덧 광산전체는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광부들은 더 이상 내다팔 것이 없는, 말 그대로 기아상태로 돌입하고 있었으며, 회사는 기계가 녹슬고 여기저기 갱도가 붕괴되는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곳 광부들이 해고되고 벨기에에서 새 광부들이 오게 될 것이라는 등등의 여러 소문은 난무한다. 또 파업을 주도했던 사람들과의 분열도 생겨났다. 라스뇌르는 참고 파업을 계속해나가자는 에티엔의 생각에 반대하고, 회사의 권리를 인정하자는 중도적 입장을 역설하다가 많은 노동자들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조직에서 물러난다.
또한 카트린느와 함께 몽수를 떠나 장-바르 광산에서 일하던 샤발 역시 배신자로 몰리는데, 그는 장-바르도 파업에 동참시키겠다고 약속하는 약삭빠른 술수로 위기를 벗어난다. 결국 파업은 에티엔 중심으로 전개된다. 또한 인근 광산으로까지 파업의 물결은 퍼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안개로 자욱한 파업의 길에서 그 끝을 보기란 쉽지 않았고, 깊이 들어갈수록 그 끝을 예측하기란 더욱 힘들어보였다.
인간은 배신당할 때 가장 처절해지고, 그때의 증오가 가장 독하다
“사장님!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절반이나 되는 광부들이 작업을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수갱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마침내 장-바르 광산에서도 파업이 시작되었다. 샤발은 동료들을 선동하면서 몽수의 광부들처럼 임금인상을 요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샤발의 이러한 선동에 카트린느는 조용히 파업중단을 요청한다. 카트린의 봉급으로 자신은 물론 샤발의 생활비까지 충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샤발은 그런 카트린느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고, 계속 급진적 파업을 주장해나갔다. 장-마르 광산의 노동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파업동참을 다짐한다.
이때 탄광의 사장 드뇔랭의 회유가 시작된다. 그는 샤발과 밀담을 나누면서 그에게 반장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샤발은 부지런히 머리를 굴린다. 최초의 파업은 본시 몽수 광부들에게서 빠져나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함이었고, 거기에서는 파업을 고집해도 결국 에티엔의 참모밖에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몽수의 광부들은 헌병들에게 막혀 이곳으로 올 수 없으리라는 생각들이 계속 교차한다. 오만함과 탐욕으로 가득 찬 그는 결국 사장의 회유를 승낙한다. 샤발을 비롯한 장-바르의 광부들은 다시 갱도로 내려가 작업을 개시한다. 그 와중에서도 카트린느는 샤발에게 계속 모욕과 폭행을 당한다.
이미 샤발을 배신자로 낙인찍은 광부들은 카트린느에게 해소하고 있었다.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카트린느에게 그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졸도한다. 그녀의 몸을 탐할 대로 탐한 샤발이고 그녀에게 더 이상의 애정도 없지만 그래도 샤발은 쓰러진 그녀를 잠시나마 돌본다. 바로 그때였다.
다른 반장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몽수의 광부들이 케이블을 끊고 있다! 모두들 밖으로 나가라!”
에티엔이 이끄는 몽수 광산의 노동자들이 이곳으로 온 것이다. 에티엔과 광부들은 장-바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이르러 그곳을 보다가, 탄광의 광부들이 모여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의아해하다가, 광부들이 갱도 밑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큰 배신감을 느낀다. 몽수 노동자의 출현으로 당황한 샤발은 카트린느를 팽개치고 다른 광부들과 함께 사다리를 통해 갱도를 빠져나온다. 그런데 이미 광부들은 케이블을 끊고 유일한 출구인 갱도의 환기통에 집결해 있다. 나오는 이들에게마다 그들은 폭언을 퍼붓는다. 그리고 마침내 환기공의 문턱 위로 올라선 샤발을 본 에티엔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든다. “오! 하나님! 네놈이 약속했던 회합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나?”
샤발은 광부들에게 돌로 맞고 주먹으로 폭행당하고, 기어서 똥물을 받아먹는 등의 모욕을 당하며 이러 저리 끌려다닌다.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들은 “빵! 빵!”을 외치며 다른 광산으로 이동한다. 이미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할 정도에 이른 그들은 광산의 기물을 파괴하는 난폭함까지 나타내 보인다. 그들의 흥분은 샤발의 목숨을 장담 못할 정도에 이르렀고 모두 그를 죽이라고 외쳐댄다. 그 순간 카트린느는 에티엔의 뺨을 갈긴다. 그리고는 샤발 앞에 버티고 그를 보호한다. 너무나 당황해서 그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던 에티엔은 샤발을 보내준다.
노동자들은 다시 몽수로 발길을 옮긴다. 이제 그들의 분노는 부르주아들과 탐욕스런 상인들로 향한다. 보이는 것은 모두 파괴했다. 이제 에티엔의 말에 복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만은 에티엔의 손을 떠난 무질서의 상태였다. 그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폭력성은 극에 달했다.
마침 그때 엔느보 사장 집으로 향하던 그레그와르의 딸 세실이 그들의 목표가 된다. 데모를 하는 광부들의 모습을 본 부르주아들은 그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데려온 광부들은 순진하고 폭력을 쓸 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느껴왔으며, 또한 감히 그들에게는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세실은 영문도 모른 채 위협을 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데모행렬을 따라오던 본모르 영감은 갑자기 차가운 두손으로 세실의 목을 조른다. 다행히 마외 부부가 그것을 보자마자 그를 말리는 바람에 소녀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르주아들은 광부들을 너무나 몰랐음을 깨닫게 된다. 그들이 더 이상 순수하게 광산에서 일만 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바로 짐승과도 같은 폭도들이라고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결코 에티엔이나 마외 부부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광부들이 차례차례로 그들을 괴롭히던 사람에게 복수하고 있을 때 도망가라는 속삭임이 에티엔의 귀에 스친다. 카트린느였다. 변장을 한 그녀는 헌병이 이리로 오고 있으며 모두 샤발의 고발 때문이라고 말해준다. 이때 멀리서부터 지축을 뒤흔드는 헌병들의 무거운 발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군중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헌병들이다! 헌병들이다!” 군중들은 빙산이 무너지듯 정신없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길은 텅 비었다. 마치 폭풍이라도 휩쓸고 지나간 듯 깨끗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