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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교향곡

앙드레 지드 지음 | -
전원교향곡(La Symphonie Pastorale)

앙드레 지드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목사: 교인들을 돌보며 신앙을 인도. 사망한 노파의 친척 제르트뤼드를 맡는다.

아멜리: 목사의 부인. 생활이 힘들어 제르트뤼드를 부담스럽게 여긴다.

제르트뤼드: 눈먼 소녀, 할머니가 사망한 후 목사의 집에서 보살핌을 받는다.

쟈크: 목사의 맏아들. 신학도. 제르트뤼드를 사랑하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포기한다.

마르텡: 의사. 제르트뤼드의 지능 교육과 개안 수술을 권한다.





“아니, 또 무슨 짐을 맡아오는 거유?”

라브레베이느 교회를 섬기는 목사는 어느날 불쌍한 노파가 죽어가고 있으니 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노파는 그가 도착했을 때 이미 숨을 거두었고 그 보잘것없는 집에는 눈먼 가여운 소녀만이 남아 있다. 노파가 귀머거리였으므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던 소녀는 아무런 표정도 없는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더러운 얼굴에 몸에는 이가 우글거렸다. 아무도 목사에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는 고아가 된 장님 소녀를 차마 두고 올 수 없어 집으로 데려온다.

막상 신앙과 자선심으로 보살펴주기로 마음먹었으나 목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 아멜리로부터 핀잔을 듣는다. 아내는 덕성이 있고 자선심도 있지만 현실적이고 알뜰한 여자라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나 의무 이상의 것을 하는 것이나 똑같이 싫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음 한동안 집안은 뒤죽박죽이 되고 소녀의 부르짖음은 사람의 소리라기보다는 작은 개가 울부짖는 슬픈 소리 같아, 아무튼 아내에게 짐을 짊어지게 했다는 비난에 그는 어쩔 줄을 모른다.

장님 소녀의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소녀도 자신의 이름을 모를 뿐만 아니라 알아낼 수 있는 방법도 없어 목사의 어린 아들 샤를로트는 제르트뤼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르트뤼드는 열다섯 살 정도로 목사의 딸, 사라보다 어려 보였다. 그녀는 하루 종일 방어태세를 갖추고 불 옆에 움츠리고는 누가 그 옆으로 가까이 가거나 하면 얼굴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리곤 했다. 주의를 끌어보려고 하면 짐승처럼 웅웅거리고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이 심술이 멈추는 것은 오로지 식사 때뿐이었다. 목사는 한동안 절망에 빠져 이 아이를 데려온 것을 후회했다.

어느날 주변에 사는 의사 마르텡이 환자를 회진하던 도중 방문했다가 제르트뤼드를 눈여겨보았다. 그는 단지 눈이 멀었다는 것만으로 지능이 그처럼 발달하지 않은 것을 이상히 여기고, 보다 근본 원인은 귀먹은 노파가 돌봐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는 그녀를 교육시킬 것을 권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목사는 제르트뤼드를 교육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아주 초보적인 교육에도 정말 힘들었던 것은 제르트뤼드를 위해 시간을 바친다고 탓하는 아내 아멜리의 성화였다. 아내는 목사의 수고가 어떤 성과를 거두리라고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제르트뤼드를 돌볼 때마다 누군지도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그를 기다리는 것이 있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어야 할 아까운 시간을 제르트뤼드를 위해 써버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목사는 성경에 있는 ‘길 잃은 양의 비유’처럼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고 싶었고, 찾는 기쁨을 느꼈다. 그는 점점 나아지는 제르트뤼드의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 불가능할 것 같던 그녀에게서 미소, 활기, 천사와 같은 표정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성과를 얻기 어려웠지만 그 뒤의 진보는 점점 빨랐다. 목사는 그녀의 방치되고 뒤엉켜 있는 두뇌를 처음부터 하나하나 정돈하여 제자리를 찾도록 했다. 더운 것, 찬 것, 거친 것, 부드러운 것, 다음은 움직임, 멀리했다, 가까이했다, 흩어놓았다, 모았다 하는 등등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목사는 그녀가 진도를 따라오는지 염려하지 않고 천천히, 마음대로 물어보도록 재촉하고 자극하면서 그녀와 이야기하기에 이른다.

그런 한편, 노파처럼 제르트뤼드를 계속 집안에만 가두어두었다가 그녀가 쇠약해지지 않을까 염려하여 밖에 내보내기 시작한다. 진척을 보이긴 했지만 그녀는 매우 놀라고 무서워했는데 목사에게 말을 할 수 있기 전까지는 밖에 나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었을 때, 햇빛이 자기 볼과 손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새소리란 열과 같은 순전히 빛의 작용인 줄로 상상하였다고 말했다. 목사가 새소리와 같은 그 작은 소리는 자연의 기쁨을 느끼는 살아숨쉬고 있는 것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을 때 그녀는 몹시 기뻐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그날부터 ‘나는 새처럼 즐거워요’라는 말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새들의 노래가 그녀는 볼 수 없는 찬란한 경치를 이야기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우울해져서 정말로 이 세상이 새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아름다운지를 묻는다. “정말로 땅은 새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아름다운가요?”

제르트뤼드의 질문은 목사로 하여금 그때까지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제 목사는 점자로 된 알파벳을 배워 그녀에게 글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치기 시작한다.



“제르트뤼드를 음악회에 데려간 것 때문에 화가 났구료”

제르트뤼드가 혼자서 글자를 읽게 되자 목사는 좀더 시간을 내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돌볼 수 있었다. 이 무렵 신학대학에 들어간 쟈크는 집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던 중에 스케이트를 타다가 팔이 부러진다. 집에 머물게 되면서 자크는 이제까지 통 거들떠보지 않던 제르트뤼드에게 갑자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목사를 도와 읽기 공부를 돌봐준다. 비록 3주일 동안이었지만 그의 협력 덕택에 제르트뤼드는 눈에 띄게 진보했다. 어떤 열의가 그녀를 북돋우는 것 같았다. 아직 잠자고 있던 지능은 첫걸음을 배우기 전에 뛰기 시작하는 듯 보였다. 이제 제르트뤼드는 전혀 유치하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먼 사람에게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빛깔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어려웠다. 복음서에조차 색깔에 대한 것은 아무곳에도 씌어 있지 않았다. 목사는 프리즘을 통해 볼 수 있는 무지개 색깔을 차례대로 말해주지만 그녀의 머리속에는 색과 빛의 혼동이 생긴다. 그녀의 상상력이 색조의 차이와 그 색의 짙고 연함의 정도를 분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사는 빛깔 하나하나가 짙을 수도 엷을 수도 있다는 것과 색깔들이 얼마든지 서로 섞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듣도록 하려고 애썼다.

그러는 중 제르트뤼드에게 음악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목사는 교향악의 각 악기가 맡은 역할에서 암시를 얻어 빛깔 문제를 연관지어 설명했다. 금관악기, 현악기, 목관악기의 음색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과, 또 그 악기 하나하나가 가장 낮은 음에서 가장 높은 음까지의 모든 음계를 강하게도 약하게도 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와 같이 자연계에서의 붉은 빛과 오렌지빛은 호른과 트럼본의 음색과 비슷하고 노랑과 초록은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의 음과 비슷하고 플루트, 클라리넷, 오보에 등은 이 경우에 자주와 파랑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그때부터 그녀의 의혹은 풀리기 시작하고 내면적 기쁨 하나가 마음에 깃든다. 그녀는 목사가 정말로 들려주고 싶었던 전원교향곡을 음악회에서 들었을 때 황홀경에 잠겼으며 목사가 보는 세상이 음악처럼 아름다운지 물어본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원교향곡의 그 미묘한 화음은 현실 그대로의 세계를 그린 것이 아니라, 악과 죄가 없으면 그러할 수 있었을, 앞으로 그럴 수도 있음 직한 세계를 그렸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사는 아직까지 악과 죄와 죽음에 관한 것을 알려주지 않았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르트뤼드는 비록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으로 보지는 못해도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음악회에 다녀오자 아멜리는 남편에게 자기를 조금도 위해줄 줄 모른다고 비난했다. “당신은 그 애를 위해서라면 어떤 자식들에게도 하지 않은 일을 하죠.” 목사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제르트뤼드는 빰을 만져보지 않고도 목사가 우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절대 불행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울먹인다. 목사는 행복의 일부가 그녀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걸 말없이도 깨닫게 하려는 듯이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어준다.

이처럼 제르트뤼드는 그동안 많이 진보해서 정확한 표현력과 올바른 추리력도 갖추게 되었다. 목사는 그녀의 빠른 습득 능력에 번번이 감탄했다. 잠자던 지능이 발달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바깥 세상에 정신이 쏠려 여러가지 쓸데없는 걱정에 많은 주의력을 빼앗기는 대부분의 소녀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지혜를 보여주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제 보니 그녀는 처음에 목사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이가 든 것 같았다. 또한 그녀는 눈이 안보인다는 사실까지도 도리어 그녀에게는 이로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제르트뤼드는 책읽기에 몹시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제르트뤼드를 사랑합니다

음악회에 다녀오고 나서 목사는 늘 루이즈 양이 맡아 연주하던 교회의 작은 풍금 앞에 그녀를 앉히고 건반을 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 해보고 싶다면서 사양한다. 목사는 교회라는 거룩한 곳에 대한 두려움과 사람들의 뒷말들이 두렵고, 그녀와 단둘이 들어가 있기에는 알맞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해 그녀의 곁을 떠난다. 오후에 어떤 미망인을 위로해주러 갔다 오던 길에 교회로 제르트뤼드를 데리러 간 목사는 뜻밖에도 그녀 옆에 있는 쟈크를 본다. 그들은 풍금소리 때문에 목사가 여는 문소리를 듣지 못했다. 엿듣는 게 나쁜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제르트뤼드에 관한 일이므로 무슨 일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목사는 몰래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목사에게 도움을 받지 않겠다던 것과는 달리 제르트뤼드는 쟈크가 손가락을 건반에 안내해주도록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목사는 스스로도 인정하기 싫을 만큼 놀랍고 고통스럽다. 더욱이 자크가 나간 후 그 뒤에 들어온 척하는 목사에게 제르트뤼드가 아무 말도 않자 목사의 마음에는 큰 슬픔이 가득 차오른다.

이 일을 알아보고 싶어서 목사는 얼른 자크를 만나려 했다. 하지만 목사는 가슴이 벅차고 감정이 복잡해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 자크가 먼저 방학 내내 집에서 보내겠다는 결심을 알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알프스산으로 여행할 계획을 말하지 않았는가. 목사는 이러한 변화가 조금 전 목격한 광경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읽는 것이 더 보람 있을 것 같아서라고 핑계대는 아들에게 목사는 풍금 가르치는 게 더 관심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자 예상과 달리 자크는 오히려 침착하고 또렷하게, 자신의 마음을 숨길 생각은 없으며 아버지가 제르트뤼드를 아끼는 만큼 자신도 그녀를 아끼고 있음을 믿어달라고 고백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목사는 제르트뤼드의 영혼을 어지럽히거나 순진하고 깨끗한 그녀를 농락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말한다. 또한 앞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만지거나 보는 것까지 금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자크는 자신의 사랑을 아주 차분히 표현한다.

“저는 제르트뤼드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만큼 그녀를 아끼고 있습니다. 그 애의 순진함과 약점을 악용한다는 것은 아버지께나 마찬가지로 제게도 나쁜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친구가 되고 남편이 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자크는 아직 이 결심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고 아버지께 먼저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순수한 사랑을 놓고 무어라 할 말도, 막을 이유도 없었으나 목사는 정신이 얼떨떨하였고 양심의 본능만큼이나 확실한 어떤 본능이 이 결혼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만 된다고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들이 다 자란 청년이고 그 사랑이 아주 자연스럽고 떳떳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목사는 그런 이유 때문에 다음날 다시 자크를 만나 제르트뤼드에게 사랑 고백을 금지시켰다. 제르트뤼드는 어리고 아직 종교적으로 성체도 받지 않았다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로.

묵묵히 자기 말을 듣는 자크에게 목사는 예정대로의 여행을 권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만약 제르트뤼드가 장님이 아니어서 자크를 만났다면 부드럽고 훤칠한 몸, 주름살 하나 없는 이마, 맑은 눈길,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긴 하나 갑자기 점잖은 빛이 도는 것 같은 얼굴을 보며 황홀해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자기 말 때문에 얼굴이 핼쑥해져 입술까지 핏기가 가신 듯하면서도 이의 없이 순종하는 자크를 보고, 아들의 사랑은 생각처럼 그다지 열렬하지 않은 것이리라 가볍게 넘겨버렸다. 하지만 목사는 이 일을 바로 아내에게 얘기하면서, 더 이상의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자크가 여행에서 돌아와도 다시 만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동의를 구했다. 제르트뤼드를 신앙심과 자선심이 있는 루이즈 양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아내 아멜리는 자신은 그 일을 벌써 알고 있었다면서 남자들은 그런 걸 잘 눈치채지 못한다, 그런 건 나이를 먹었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라는 둥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목사는 불쾌해한다.



“우리의 사랑이지요”

루이즈 양에게 제르트뤼드를 보낸 후로도 목사는 그녀를 위해 얼마 동안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형편이 될 때마다 그녀를 찾아가곤 했다. 한가해진 틈을 타서 목사는 제르트뤼드를 데리고 쥐라산맥의 한 기슭까지 갔다. 제르트뤼드는 자신은 비록 못 보지만 앞에 펼쳐져 있을 아름다운 경치에 대해 물어보면서, 자크가 정말 떠나는지, 목사에게 걱정을 끼칠까봐 그의 얘기를 안했다고 말한다. 그의 사랑을 느끼고 있었지만 자크보다는 목사가 자신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또한 자신도 목사를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목사님, 제가 사랑하는 건 목사님이라는 걸 잘 아시면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겠어요? 저는 자크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전 사람들에게 행복만을 주고 싶어요.” 그러면서 자크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목사는 나중에 가서야 아멜리의 말을 듣고도, 그리고 제르트뤼드의 순진한 고백을 듣고도 어떻게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것은 아마도 목사 자신이 결혼을 떠나서는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기도, 또 그렇게 열렬히 그녀에게 끌리던 감정에 거리낄 만한 것이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의 순진함과 솔직함에 안도하면서, 참된 사랑이 아니라면 어떻게 머뭇거리지도 않고 얼굴을 붉히지 않은 채 자신에게 고백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뿐만 아니라 그 애를 향한 사랑은 장애아를 보살피듯 돌봐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것은 도덕적 의무라고 여겼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오해했다.

자크는 이제 그녀를 멀리했다. 제르트뤼드의 성체 배수식에 자크와 아멜리가 참석하지 않아 목사는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는 제르트뤼드에게 종교를 가르치면서 복음서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고 자크와도 자주 토론했다. 성서에서 계명이나 위협이나 금지를 발견하지 못하는 목사에게 아들은 그리스도 교리 가운데에서 마음에 드는 것만을 가려낸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목사가 보기에 자크는 마음에서 넉넉한 양식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전통주의자, 독단주의자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다른 한편으로, 제르트뤼드에 대한 사랑이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만큼 자크는 목사에게 순종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복종 뒤에는 반드시 많은 번민과 내면적 싸움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자크에게 마음을 놓을 즈음, 의사 마르텡은 제르트뤼드의 눈을 수술할 수 있다는 검사 결과를 전한다. 이 소식에 목사는 한편으론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그리고 가족과는 점점 거리를 느꼈다. 그가 아무리 다정하게 대해도 아내는 늘 자신이 장님으로 태어나지 않았음을 빈정대면서 제르트뤼드에 대한 그의 배려를 비난했다. 딸 사라마저 엄마를 닮아 다정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점점 서재에 틀어박히게 되었다. 반면에 제르트뤼드는 루이즈 양의 배려와 사랑 속에서 그녀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마음과 신앙심이 돈독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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