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덕자
앙드레 지드 지음 | -
배덕자(L'Immoraliste)
앙드레 지드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미셸: 학자, 아버지 사망 후 마리슬리느와 결혼한다.
마르슬리느: 미셸의 아내
바쉬르: 요양지에서 미셸이 만나는 소년
목티르: 요양지에서 만난 소년으로 미셸이 아내를 간호할 때 다시 재회한다.
보카즈: 미셸의 농장 관리인
샤를르: 보카즈의 아들
메날크: 미셸이 건강을 회복하고 재회하는 친구
내 생애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겠네
미셸은 어느날,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했던 세 친구를 불러모은 뒤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미셸은 죽음에 임박한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별 애정도 없이 마르슬리느와 결혼을 했다. 그는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미셸은 겨우 스물네 살이고 마르슬리느는 스무 살이었다. 미셸은 그녀에게 조금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지만, 자애라든가 일종의 연민 또는 상당한 존경이라는 기분으로 그녀를 받아들였다.
미셸은 열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세상의 이치를 가르치면서 엄격한 것을 존중하는 취미를 남겨주었고, 그는 온통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아버지는 그를 뒷바라지하면서 교육에 정열을 쏟았다. 미셸은 그 당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제법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배워서 히브리어, 범어를 당장에 깨쳤고, 페르시아어와 아라비아어도 배웠다. 스무 살쯤에는 아버지 일을 거들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그는 고대 학문과 책 이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스물네 살이 되었다. 그는 단지 연구에다 비상한 정열을 쏟을 뿐이었다. 몇몇 친구들을 사랑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친구 자체보다는 오히려 우정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편이 옳았다. 그들에 대해서는 헌신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것은 고결한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는 자기 마음속의 아름다운 감정을 하나하나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다. 요컨대 자기 자신을 몰랐던 것처럼 친구들에 대해서도 몰랐던 것이다.
또 하나, 아버지와 그는 간단한 물건만으로 살았고 그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서야 상당한 재산이 있음을 알고 당황했다. 결혼 후 알게 된 사실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건강이 극히 좋지 않다는 사실도 그제서야 알게 됐다. 너무나도 평온하고 순조로웠던 생활은 그의 체력을 약화시킨 동시에 그를 보호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아내 마르슬리느는 건강해보였다.
결혼 후 튀니스 행 배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부친상 직후에 치른 결혼으로 미셸은 힘이 쑥 빠졌는데, 배를 타고서야 겨우 사물을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아내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두 집안이 가까이 지내온 덕에 그녀가 자라는 것을 보아왔던 그였는데,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그녀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것이다. 미셸은 튀니스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한 신비로운 젊음을 발휘하고 마르슬리느를 기쁘게 해주었다.
그러나 여행이 계속되면서 미셸은 피로를 느꼈고 계속 기침을 하면서 가슴 위쪽의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남쪽의 따뜻한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동하는 도중 마차 속에서 추위와 덜컹거림에 지치고 말았다. 더구나 기침은 갈수록 심해졌다. 마차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기침이 멈추는가 했더니 이제는 담이 나왔다. 속이 메스꺼워 손수건에 토하고 나서는 잠든 아내의 스카프로 입을 닦았다. 겨우 담이 그치고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보니 손수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처음에는 숨겼지만 혼자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미셸은 아내에게 피를 토했노라고 말했다. 여행 중이라 급히 연락할 수 있었던 군의관이 그를 진찰했는데 미셸은 상당히 중태였다. 그는 피곤에 지칠 대로 지쳐 될 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그렇게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르슬리느는 단호하게 그가 회복될 것을 믿고 침착하게 남편을 위로했다. 그녀는 열렬한 애정으로 남편을 보호하고 간호했다. 그녀는 출발 지시도, 숙소 예약도, 그밖의 모든 준비를 맡아 면밀하게 신경을 쓰면서 남편과 함께 비스크라로 향한다.
사는 거다! 나는 살고 싶다
미셸은 병세가 매우 심한 상태에서 마르슬리느의 지극한 간호로 소생해갔다. 생명의 희미한 빛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 생명이 뜻밖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곁에 있는 아내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그의 옆에서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편지를 쓰거나 했다.
이렇게 지내던 중에 아내는 어느날 바쉬르라는 아랍소년을 집에 데리고 왔다. 미셸의 무료함을 달래주려는 배려였지만 그는 처음에는 좀 귀찮았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서부터, 바쉬르의 존재가 전혀 마음에 걸리지 않게 되었을 뿐더러 다음날에는 그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 아이를 바라보면서 미셸은 그애의 건강함에 반했다. 그러나 이때도 여전해 각혈은 계속되었고, 입 안 가득 고인 피는 검고 끔직한 핏덩어리였다. 그는 몸이 떨리고 두렵고 울화가 치밀었다. 회복되고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전과는 달리 그는 삶에 애착을 느끼기 시작했다. 별안간 어떤 욕망이 그를 붙잡았다.
‘사는 거다! 나는 살고 싶다.’ 그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미칠 듯이 몸부림치면서 살기 위한 노력에 몸과 마음을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의학 팜플렛과 전문서적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치료법이 잘못되었음을 안다. 그는 일단 자신의 의지로 병을 고치기로 마음먹고 우선 식사부터 영양식으로 바꾸었다. 그날, 그는 새로운 용기가 생겨나는 예감에 도취되었고 ‘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한편 마르슬리느는 깊은 신앙심으로 그를 위해 기도했다. 아직 회복 단계에 이르지 못한 그는 자주 땀을 흘리고 한기를 느꼈다. 전반적인 신경 장애가 겹치기까지 했다.
이렇게 회복이 지지부진하던 병세는 맑은 공기와 최고의 식사로 영양섭취를 한 덕에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러 공원에도 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부드러운 대기, 흐르는 시냇물, 만발한 꽃들, 이 모두가 그의 기분을 한결 풀어주었고 거기에서 만난 아이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호흡도 편해졌다.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지고 그동안 잠자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그에 따라 사고도 건강해졌다. 몸 속에는 예상조차 못했던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고 마음은 행복에 젖어들었다.
마르슬리느는 미셸의 건강이 회복된 것에 기뻐하며 오아시스에 있는 멋진 과수원 얘기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그가 조금씩 산책을 늘려 병이 완전히 낫도록 했으면 바랐다. 그곳은 빛과 그늘로 채워진, 조용하고 시간의 흐름도 알 수 없는 그런 장소였다. 처음에는 아내가 따라와 시중을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혼자서도 산책을 나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었다. 외출하지 않을 때는 주변의 아이들이 찾아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곤 했다. 아내가 데리고 온 아이들 중에는 목티르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얌전하고 나약해보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주 건강하고 아름다웠고 미셸의 마음에 꼭 드는 유일한 아이였다. 특히 찬바람이 불면서 다시 악화된 병세 때문에 집안에서 우울하게 보낼 때는 아이들이 유일한 낙이 되어주었다.
2월의 우기가 지나면서 날씨는 갑자기 더워졌다. 하늘은 파랗게 개고 대기는 청명하고 아름다웠다. 미셸은 건강이 금세 회복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프리카의 대지가 겨울에서 깨어나 새로운 생기가 넘쳐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은 쇠약했지만 몸에서 상쾌한 열이 오름을 느꼈고, 이런 벅찬 감정으로 잠을 설쳤던 날 밤에는 성서를 펼쳤다.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젊을 때뿐이다.’
다음날 새벽에 그들은 출발했다. 아직도 싸늘한 바람을 만나면 금세 몸이 안 좋아지고 구름이 지나가도 두려워지곤 했지만, 적어도 폐는 나아가고 있었다. 설사 재발한다 해도 전처럼 오래가지 않고 가볍게 끝났다. 병이 조금씩 나아가자 미셸은 아내에게 애정을 쏟을 여유가 생겼다.
오오, 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병에 걸린 후로 한동안 그는 반성도 규율도 없이 짐승이나 아이들처럼 사는 것에만 전념해왔다. 이제 조금은 주의를 돌릴 수 있게 되자 미셸은 다시 자세를 바로잡아 뚜렷한 의식을 갖게 되었다. 시라큐스에서나 더 먼곳으로 나아감에 따라 그는 다시 연구를 시작하고, 이전처럼 면밀한 조사에 몰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서 뭔가가 변질되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현재에 대한 감각이었다. 이제 그의 눈에 과거의 역사는 언젠가 작은 뜰에서 본 밤 그림자의 움직이지 않는 자세, 그 끔찍한 부동의 자세, 죽음의 자세와 같은 것으로 보였다. 아직 그가 역사에 흥미를 갖고 있다면 그것을 현재와 결부시켜 상상하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해박한 지식이 그의 기쁨을 방해했다. 고대 그리스 극장의 유적을 보고는 고대에 행해지던 제전이 지금은 사라졌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는 죽음이 두려웠다. 폐허를 피하게 되었다. 전에는 자랑스러웠던 그러한 지식을 마음속으로 멸시하게 되었다. 죽음의 날개가 스쳐간 뒤에는, 아무리 중요하던 일도 이미 그렇지 않게 된다. 중요하게 보이지 않던 것, 또는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그때부터 그가 발견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인간, ‘참다운 인간’이었다. 이미 그는, 이전의 완고하고 편협한 학자도, 병약한 노력가도 아니었다. 이전에 공부에 쏟았던 근면함을 갖가지 섭생과 체력관리로 돌렸다. 그는 차츰 건강이 좋아져갔다. 모든 활동을 육체를 단련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변화가 있었다면, 그동안 길렀던 수염을 깎아버린 것이다. 이전의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고문서 학교 출신다운 모습이었으나 수염을 자른 후에는 가면을 벗은 듯했다. 아무 할 일이 없는 그로서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낸 것이기도 했다. 아내가 낯설음을 느꼈을 만도 했지만 그녀는 그를 끔찍이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건강이 나아짐에 따라 아내를 보살피고 사랑했다.
날이 갈수록 그는 생명에 대한 관심을 갖고 활기를 갖게 되었다. 언젠가 시내에서 마르슬리느를 만나기로 한 날, 미셸은 아내가 탄 마차가 미친 듯이 달리고 마부가 마구 후려치는 채찍에 말이 펄쩍 뛰어올랐다가 넘어지는 것을 보았다. 순간, 미셸은 분노가 치밀어 욕설을 퍼붓고 달려들어 마부를 후려갈겼다. 난데없는 공격을 당한 마부는 힘없이 내동댕이쳐졌다. 그에게 저만한 힘이 있었던가! 생각지도 못한 힘을 발휘한 것에 놀라 미셸과 마르슬리느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미셸은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그녀를 위해서 생명이라도 기꺼이 바칠 수 있을 것같이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갔다.
그들은 소렌토에서 온화하고 조용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미셸에게 이러한 방랑생활은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었지만 아내는 이를 임시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놀라긴 했지만 미셸 역시 아내의 생각이 옳음을 인정했다.
건강이 회복되고서도 빈둥빈둥하던 무위도식에서 슬그머니 공부하고 싶은 욕망이 되살아났으므로, 그는 아내와 진지하게 귀국 이야기를 상의했다. 마르슬리느는 매우 기뻐했다. 마르슬리느와 장래를 의논하는 데서 미셸은 새로운 기쁨을 발견했다. 여름을 어떻게 보낼지 분명히 결정하지는 못했으나 그는 조용한 곳에 가고 싶었다. 겨울에는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연구자로서 나폴리에 가기로 했다. 콜레즈 드 프랑스에서 강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르슬리느도 여러 가지를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그의 연구를 도왔다. 여행의 마지막 무렵, 그들의 행복은 실로 순탄하고 조용한 것이었다. 인간의 행복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걸까.
난 눈을 뜬 채로 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생을 사랑하고 있어
미셸 부부는 7월초에 라 모리니에르에 도착했다. 이곳은 미셸 선친의 재산인 목장이 있는 곳이다. 보카즈라는 늙은 소작인이 농장과 수확물을 관리하면서 그의 재산을 돌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미셸 부부는 옛날 집에 온 기분으로 편안히 지냈다. 지난일을 회상하면서 전혀 뜻밖의 감동을 받기도 했고, 그곳에 도착한 지 일주일 후에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의 고백을 듣고 난 뒤, 미셸은 한동안 하루 해의 전부를 그녀 곁에서 보냈다. 숲 가까이에 있는 벤치에서 아내와 보낸 시간들은 순간순간 유쾌했고 모든 것이 하나의 행복으로 엉켜 녹아들어 아침과 밤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는 서서히 일을 시작했다. 온화한 고장을 둘러보기도 하고 자연의 풍성함 속에 융합되어갔다. 그런데 소작인 보카즈는 그의 주위에서 부지런히 시중을 들고, 하인들을 지휘하고, 이제까지의 계산서를 설명하는 등 자신의 정직함을 과시하려는 태도로 미셸을 귀찮게 했다. 보카즈의 아들 샤를르는 수줍음을 띤 잘생긴 소년으로, 아버지와는 달랐다. 미셸은 웅덩이를 고친다거나 낚시를 하면서 그와 친숙해졌는데, 샤를르는 토지와 그 관리, 경영에 대해 미셸이 민망할 만큼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보카즈처럼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샤를르는 농사를 배우며 농업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미셸의 소유지는 넓었다. 샤를르는 땅이 제대로 경작되어 있지 않다, 손실이 있다, 경작인들을 관리해야 한다는 여러가지 조언을 주기도 했다. 정말 그러고 보니 수익이 신통찮고 가축 관리에서도 속임을 당하고 있음이 눈에 보였다. 뿐만 아니라 샤를르는 말을 다루는 기술도 좋았다. 미셸은 그를 신임했고 산책도 즐기고 유쾌하게 함께 지냈다. 그리고 샤를르의 의견에 따라 소작일을 검토하고 몇 명에 대해서는 계약을 취소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샤를르는 너무나 기뻐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연구는 거의 완성돼가고 그럼으로써 아내 곁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가닥 미풍이 가끔 잔잔한 수면에 잔물결을 일게 하듯 자그마한 감동이 그녀의 이마에 나타나곤 했다. 그녀는 자기 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새로운 생명의 고동을 느꼈다. 가을이 되자 아내의 몸도 그렇고 새 살림집도 걱정이 되고 첫 강의도 준비해야했으므로 미셸 부부는 파리로 서둘러 돌아갔다.
그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리에 와서 좀더 큰집을 구했고 강의와 저서, 농장의 새로운 수입까지 계산에 넣고는 지출을 주저하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물건을 사느라 시간을 보내고 이어서 연일 사람들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마르슬리느는 거의 녹초가 돼서 저녁때가 되면 기진맥진했다. 미셸은 이러한 피로의 원인을 알고 있었으므로 방문객을 거절하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 방문객을 접대하거나 답례 방문도 했다. 아내 곁으로 돌아오면 그는 사람들과의 교제에서 생기는 권태를 조금도 숨기지 않고 털어버렸다. 이때까지 그에게 미래는 분명 확실한 것이었다.
그후로 미셸은 강의를 시작했다. 주제에 끌려들어가 그는 첫 강의에 새로운 열정 전부를 쏟았다. 강의는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이들은 비난했고 또 다른 이들은 칭찬했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미셸은 옛친구 메날크와 재회했다. 그는 미셸의 강의를 좋게 평가했고 거만했던 모습과는 달리 강의에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미셸의 변화를 이미 알고 있던 그는 미셸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그는 미셸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비난했다. 그후 3주일쯤 뒤 메날크는 미셸의 집을 방문했다. 그날은 방문객을 위해 집을 개방하기로 한 날이었다. 마르슬리느는 얼굴빛이 파리하고 피로해보였다. 아직 메날크가 남아 있었는데, 그는 요즘 최근의 탐험으로 얻은 진기한 발견들로 국가와 전 인류에게 크게 공헌했다는 갑작스런 찬사를 받고 있었다. 그전과는 아주 다른 평가와 대우였다. 그러나 이런 반응에 무심한 메날크는 또 다시 여행할 계획을 밝힌다. 그리고는 출발 전에 자신의 집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미셸은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