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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제인 오스틴 지음 | 고전문학


에마

제인 오스틴 지음





제1부 해리엇과 엘턴



에마의 중매벽과 해리엇 길들이기


에마 우드하우스는 아름답고 총명하며 부유한 처녀였다. 안락하고 유복한 보금자리와 명랑한 기질까지 두루 타고나, 인간 세상의 온갖 복락을 한 몸에 누리는 듯했다. 스물한 해의 생애를 살아오는 동안 그녀의 심기를 어지럽힐 만한 고통이나 슬픔은 실상 거의 없었다. 일찍이 여읜 어머니의 빈자리는 테일러 선생이 메워 주었는데, 십육 년의 긴 세월 동안 가정교사라기보다는 다정한 벗이자 헌신적인 언니처럼 에마를 감싸 안았다. 다만 에마의 복된 앞날에 도사린 진짜 위험이란 제 고집대로 휘두를 수 있는 지나치게 너그러운 환경과, 스스로의 분별력을 다소 과하게 신뢰하는 자부심에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에마 자신에게 그 은근한 결함이 불행의 씨앗으로 여겨질 리 만무했다.

이윽고 하트필드의 고요한 일상에 잔잔한 상실의 그늘이 드리웠다. 테일러 선생이 흠잡을 데 없이 온화한 신사 웨스턴 씨와 혼인을 맺은 것이다. 축복 속에 화려한 예식이 끝나고 하객들이 썰물처럼 물러가자, 대저택에는 오직 에마와 늙은 아버지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습관처럼 안락의자에서 졸음에 빠져든 사이, 에마는 십육 년간 쌓아 올린 정든 세월을 떠올리며 잃어버린 온기를 홀로 곱씹었다. 비록 벗이 새로이 둥지를 튼 랜들스 저택이 겨우 반 마일 남짓 떨어진 곳이라 할지라도, 한 지붕 아래 숨결을 나누던 테일러 선생과 반 마일 밖의 ‘웨스턴 부인’ 사이에는 실로 메우기 어려운 일상의 간극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차를 마실 시각이 되어 눈을 뜬 아버지는 어김없이 처량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 가엾은 테일러 선생! 웨스턴 씨가 대체 무슨 영문으로 그 착한 사람에게 마음을 두었는지,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구나!” 에마가 부드러운 미소로 응수했다. “아버지, 저는 그 탄식에 동의할 수 없어요. 웨스턴 씨는 그토록 다정하고 유쾌한 신사이니 그만한 훌륭한 아내를 얻을 자격이 충분하답니다. 테일러 선생이 어엿한 제집의 안주인이 될 기쁨을 마다하고, 제 변덕이나 받아내며 평생 우리 곁에 얽매여 있기를 바랄 수는 없잖아요?” 그러자 아버지는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으로 혀를 찼다. “제집이라니! 우리 하트필드가 그곳보다 세 배는 더 널찍하거늘. 게다가 얘야, 너는 평생 변덕 따위는 부려본 적도 없는 착한 아이잖니.”

바로 그때 나이틀리 씨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서른일곱여덟쯤 된 그는 사려 깊고 결단력 있는 인물로, 에마의 언니 이저벨라의 시아주버니이자 우드하우스 가문과 오랜 신의를 다져온 귀한 벗이었다. 런던에서 막 돌아온 그를 향해 아버지가 또다시 “아, 가엾은 테일러 선생!” 하고 넋두리를 늘어놓자, 나이틀리 씨는 특유의 명쾌한 어조로 일침을 놓았다. “허락하신다면 차라리 ‘가엾은 우드하우스 씨와 에마 양’이라 부르는 편이 온당하겠지요. 저는 도저히 ‘가엾은 테일러 선생’이라고는 부를 수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비위를 맞추어야 할 상대가 둘인 것보다는 하나인 편이 훨씬 수월한 법이니까요.”

옆에서 에마가 재치 있게 말을 받았다. “특히나 그 둘 중 하나가 이토록 까다롭고 성가신 존재일 때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그것이 나이틀리 씨의 솔직한 속내잖아요.” 사실 하이버리 온 동네를 통틀어 에마의 허물과 결점을 똑바로 꿰뚫어 보고 가차 없이 지적해 주는 사람은 오직 나이틀리 씨 한 사람뿐이었다. 에마는 또 다른 승리감을 은근히 과시했다. “하지만 이 훌륭한 혼사를 맺어준 장본인이 바로 저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무려 사 년 전에 제가 점찍어 둔 일이었답니다. 다들 웨스턴 씨는 결코 재혼하지 않으리라 단언했지만 결국 제 예상이 옳았으니, 이보다 더 달콤한 위안이 어디 있겠어요?”

아버지가 다정스레 만류했다. “아가, 제발 중매도 예언도 이제는 그만두려무나. 네가 하는 말은 모조리 들어맞아 두려울 지경이로구나.” 그러나 나이틀리 씨는 냉소 어린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어느 한가한 오후에 ‘웨스턴 씨가 테일러 양과 맺어지면 좋겠다’고 혼자 중얼거린 것을 두고 무슨 중매의 공을 논한단 말입니까? 그저 운 좋게 얻어걸린 추측일 뿐이지요.” 에마는 결코 지지 않았다. “운 좋은 추측이라 할지라도 그 바탕에는 언제나 번뜩이는 재능이 깃들어 있는 법이에요. 제가 웨스턴 씨로 하여금 하트필드를 자주 찾도록 은근히 부추기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진전도 없었을걸요?”

나이틀리 씨는 단호하게 못 박았다. “웨스턴처럼 솔직담백한 남자와 테일러 선생처럼 분별 있는 여인이라면 타인의 참견 없이도 제 앞길을 찾아가는 법입니다.” 그럼에도 에마는 호기로운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아버지,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이번에는 가엾은 엘턴 씨를 위해서예요.” 나이틀리 씨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맞받았다. “그 젊은 목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 제일 좋은 생선 요리나 권하시고, 아내를 고르는 일은 본인의 분별에 맡겨 두시지요. 스물예닐곱 살이나 먹은 장성한 신사라면 제 앞가림쯤은 스스로 해내야 마땅합니다.”

웨스턴 씨는 하이버리 토박이로, 젊은 날 요크셔의 세도 있는 명문가 출신인 처칠 양과 열렬한 연애 끝에 혼인했으나 겨우 삼 년 만에 사별의 아픔을 겪은 처지였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 프랭크는 자식이 없던 외가 처칠 부부의 양자로 들어가 가문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후계자로 자라났고, 성씨마저 처칠로 바꾸었다. 홀로 남겨진 웨스턴 씨는 사업에 매진하여 탄탄한 재산을 모았고, 늘 동경하던 고향의 랜들스 저택을 매입한 뒤 마침내 지혜로운 테일러 양을 새 안주인으로 맞이한 것이었다. 처칠 가문의 상속자가 된 프랭크 처칠은 하이버리 주민들의 한결같은 자랑거리이자 호기심의 대상이었으나, 정작 이곳에 발걸음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매사에 변화를 병적으로 꺼리고 신경증에 시달리던 노신사 우드하우스 씨는, 랜들스의 안락하고 풍요로운 보금자리에 둥지를 튼 옛 친구의 복된 처지를 눈앞에 보면서도 어김없이 “아, 가엾은 테일러 선생!”을 읊조리며 깊은 탄식을 토해내곤 했다.

* * *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마을의 기숙학교를 운영하는 고더드 부인이 스미스 양을 하트필드로 데려가도 좋겠느냐는 정중한 쪽지를 보내왔다. 해리엇 스미스는 어느 무책임한 작자의 사생아로 학교에 맡겨져 가문의 내력이라곤 전혀 밝혀진 바가 없는 처녀였으나, 눈처럼 뽀얀 살결과 청명한 푸른 눈을 지닌, 그야말로 에마의 심미안을 단숨에 사로잡을 만한 열일곱 살의 어여쁜 미인이었다.

그날 저녁의 만남이 끝나기도 전에 에마는 해리엇과 깊은 교제를 맺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비록 총명한 구석은 없었으나 수줍은 태도로 예의를 지킬 줄 알았고, 하트필드의 고상한 풍경에 천진난만한 찬사를 보내는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저토록 순결한 눈망울과 자연스러운 기품을 지닌 소녀가 하이버리의 변변찮은 계층들 사이에 묻혀 빛을 잃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리엇이 긴 여름을 보내고 막 돌아왔다는 마틴 일가는 나이틀리 씨의 농지를 임대해 일구는 성실한 요먼들이었으나, 에마는 그들의 투박함이 장차 해리엇의 품격을 떨어뜨리리라 단정하고, 자신이 직접 이 순진한 소녀를 갈고닦아 우아한 사교계의 숙녀로 이끌어 주겠노라 결심했다.

“베이츠 부인, 이 정갈하게 삶은 달걀을 하나 들어보세요. 알맞게 반숙으로 익힌 달걀은 위장에 전혀 해롭지 않답니다. 우리 설리만큼 달걀을 부드럽게 삶아내는 요리사도 드물지요. 베이츠 양, 에마한테 사과 타르트를 아주 조금만 덜어 드리라고 이르겠소. 고더드 부인, 포도주는 그저 반 잔만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맑은 물을 넉넉히 탄 작은 반 잔으로 말입니다.”

에마는 건강 염려증에 사로잡힌 아버지가 손님들의 접시를 사사건건 참견하도록 점잖게 내버려두면서도, 손님들에게는 은밀히 풍성하고 흡족한 대접을 베풀었다. 하이버리 사교계에서 우드하우스 양이란 감히 우러러보아야 할 대단한 귀공녀였기에, 그녀에게 초대받았다는 설렘은 해리엇에게 벅찬 기쁨이자 가벼운 두려움이기도 했다. 그러나 순박한 소녀는 우드하우스 양이 저녁 내내 베풀어 준 다정한 눈길과 작별의 순간 손을 꼭 쥐어 주던 배려에 깊이 감격하여 붕 뜬 마음으로 돌아갔다.

해리엇과 하트필드의 교제는 순식간에 돈독해졌다. 해리엇은 영리하지는 못했으나 온순하고 고분고분했으며, 자신이 우러러보는 우월한 존재에게 온전히 이끌리기를 바라는 유순한 성품이었다. 만일 웨스턴 부인이 평생 감사와 존경을 바쳐야 할 스승 같은 벗이었다면, 해리엇은 자신의 뜻대로 돌보고 가르칠 수 있어 더욱 사랑스러운 피후견인이었다. 웨스턴 부인을 위해서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순진무구한 해리엇을 위해서는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은혜와 손길이 무궁무진했던 것이다.

해리엇은 애비밀 농장의 마틴 일가와 함께 보낸 두 달간의 목가적인 추억을 즐겨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그저 한가로운 시골 이야기로 흘려듣던 에마였으나, 해리엇의 입에서 마르지 않는 찬사를 받는 로버트 마틴 씨가 아직 미혼의 청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가련한 벗에게 닥쳐올 치명적인 불상사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에마가 은근슬쩍 유도 신문을 던지자, 해리엇은 거리낌없이 마틴 씨의 친절함을 털어놓았다. 그가 자신이 호두를 유독 좋아한다는 말을 기억하고는 일부러 삼 마일이나 먼 길을 돌아 호두를 따다 주었다는 둥, 세상에 그토록 싹싹한 청년이 없다는 둥의 칭찬이었다. 심지어 마틴 부인이 얼굴을 붉히며 “세상에 이처럼 착한 아들도 없으니, 장차 아내에게도 더없이 훌륭한 남편이 될 게다”라고 귀띔했다는 대목에 이르자, 에마는 속으로 냉소를 머금었다. ‘참으로 훌륭한 수작이군요, 마틴 부인. 당신네 속셈이 무엇인지 손바닥 보듯 훤하답니다.’

마틴 씨가 지적인 독서를 즐기는 인물이냐고 묻자, 해리엇은 에마가 권해주었던 고상한 소설들의 제목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외모를 묻는 말에도 “결코 잘생긴 얼굴은 아니에요”라는 솔직한 답이 돌아왔다. 그러자 에마는 차갑게 쐐기를 박았다. “말을 탔든 흙탕길을 걸어가든, 젊은 농부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류랍니다. 흙을 일구는 요먼 계층은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지요. 농부들이란 내 도움을 필요로 하지도 않거니와, 따라서 내 우아한 관심 밖의 존재들일 뿐이에요.”

마틴이 이제 겨우 스물네 살이라는 말에 가정을 꾸리기엔 너무 미숙하다고 나무라자, 해리엇은 “하지만 육 년만 지나면 서른인걸요!” 하고 순진하게 맞받았다. 에마는 단호한 눈빛으로 경고했다. “해리엇, 장차 그가 어느 촌부와 혼인하거든, 당신이 그 무식한 여인과 어울려 격을 떨어뜨리는 일은 결코 없기를 바라요. 당신처럼 출생의 비밀을 품은 불행한 처지일수록, 곁에 둘 교제 상대를 극도로 가려야만 고귀한 신분을 인정받는 법이랍니다.” 해리엇은 황망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고, 에마는 아직 소녀의 가슴에 위험한 연정의 불씨가 당겨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바로 다음 날, 두 처녀는 던웰 길의 호젓한 오솔길에서 우연히 마틴 씨와 마주쳤다. 흙 묻은 작업복 차림의 그는 에마에게는 깍듯한 경의를 표하면서도, 해리엇을 바라볼 때는 감추지 못할 진솔한 반가움과 설렘을 눈빛에 가득 담아냈다. 에마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훑어본 로버트 마틴은 제법 단정하고 분별 있는 청년이었으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일 그를 품격 있는 신사들과 나란히 세워둔다면, 해리엇의 마음속에 차지했던 투박한 호감 따위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릴 것이 자명했다. 마틴이 지나가자마자 해리엇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 “어떠신가요, 우드하우스 양? 그이가 정말 그렇게 못생겨 보이시나요?”

“틀림없이 아주 볼품없는 외모지요. 하지만 그 촌스러운 생김새조차 신사다운 기품이라곤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는 치명적인 결함에 비하면 사소한 흠일 뿐이랍니다.” 해리엇이 풀이 죽어 “확실히 진짜 신사분들처럼 우아하지는 않지요” 하고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하자, 에마는 소녀를 몰아세우며 하트필드의 응접실에서 보아온 진짜 신사들과 견주어 보라고 다그쳤다. 해리엇이 “분명 나이틀리 씨 같은 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요. 하지만 나이틀리 씨는 워낙에 고결하고 훌륭한 분이시니까요!” 하고 변명하자, 에마는 마틴 역시 웨스턴 씨의 나이가 되면 오직 손익계산에만 눈이 먼 천박하고 완고한 늙은 농부로 전락할 뿐이라고 단언했다. 권해주었던 고상한 책의 이름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 바로 그 천박한 정신의 증거라는 힐난에, 해리엇은 “어째서 그 책을 기억하지 못했을까요” 하며 시무룩하게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이윽고 에마는 교구 목사인 엘턴 씨야말로 세상 모든 젊은이가 본받아야 할 신사의 표상이라며 은근히 운을 띄웠다. “만일 그 싹싹한 신사가 누군가의 환심을 사려 애쓰는 중이라면, 해리엇, 그 눈길은 틀림없이 당신을 향한 것이 분명해요.” 그러고는 일전에 엘턴 씨가 해리엇의 빼어난 미모를 두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찬사를 다정하게 전해주었다. 해리엇은 뺨을 발갛게 물들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실상 에마가 그 순박한 시골 농부를 해리엇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기 위해 점찍어 둔 완벽한 대안이 바로 젊은 목사 엘턴이었다. 그는 어엿한 신사이면서도 가문이 지나치게 오만하여 해리엇의 불분명한 출생을 탓할 처지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가 해리엇을 눈부신 미인으로 우러러보고 있다는 사실을 에마 자신이 이미 똑똑히 확인해 두었기 때문이다.

한편, 나이틀리 씨는 랜들스를 찾아가 웨스턴 부인에게 사뭇 불편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부인께서는 에마와 해리엇 스미스의 이 유별난 밀착을 어찌 보실지 모르겠으나, 내 눈에는 더없이 위태로운 결합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백해무익한 일이 될 테니까요.” 웨스턴 부인이 깜짝 놀라 에마가 그 순진한 아이에게 독서와 교양을 지도해 주지 않겠느냐고 변호하자,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에마의 독서벽을 단칼에 일축했다.

“에마는 열두 살 적부터 매년 책을 진지하게 읽겠노라 결심해 온 아이입니다. 알파벳순으로 정갈하게 정리된 훌륭한 독서 목록을 수첩마다 숱하게 적어두었지요. 그러나 그 아이가 끈기 있게 독서를 완수하리라는 기대 따위는 진작에 접었습니다.” 나이틀리 씨는 에마가 온 집안에서 가장 총명했던 탓에 지나치게 오만해졌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해리엇이야말로 에마의 허영심을 부추길 최악의 짝패라고 꼬집었다. “그 아이의 순진한 무지는 매 순간 에마의 분별력을 치켜세우는 달콤한 아첨이나 다름없습니다. 해리엇이 그토록 달콤한 열등감을 무릎 꿇고 바쳐대는데, 에마가 어찌 제 부족함을 돌아볼 수 있겠습니까?”

웨스턴 부인은 애정 어린 고집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에마는 한 번 그릇된 판단을 내릴지언정, 백 번은 옳은 아이랍니다.” 나이틀리 씨는 크리스마스에 제 동생 존과 이저벨라 내외가 방문하면 제 주장이 옳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며 진심 어린 우려를 내비쳤다. “나는 에마라는 아이에게 지극히 진실한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아이가 장차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지 늘 염려스러울 뿐이지요.” 그는 에마가 마땅히 존경할 만한 훌륭한 상대에게 넋을 잃고 빠져들되, 제 오만한 마음이 온전히 받아들여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애를 태워보는 것이야말로 그 허영을 다스릴 유일한 명약이 되리라고 덧붙였다. 웨스턴 부인은 부드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랜들스 저택의 안주인으로서 에마의 장래를 두고 남편과 함께 품고 있는 또 다른 은밀한 염원만은 차마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마침내 에마는 해리엇의 고운 미모를 화폭에 담는 초상화 작업에 착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분께서 이토록 간곡히 청하시니, 엘턴 씨, 제가 붓을 들어볼까 봐요.” 곁에 서 있던 엘턴 목사는 황홀경에 빠진 듯 양손을 모으며 열렬히 매달렸다. “부디 청하옵건대, 우드하우스 양, 그 눈부신 예술적 재능을 사랑하는 친구분을 위해 아낌없이 발휘해 주십시오!” 에마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참으로 순진하고 충직한 청년이로군. 하지만 그토록 황홀하게 타오르는 눈빛은 내가 아니라 해리엇의 어여쁜 얼굴을 위해 아껴두는 편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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