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저 무시무시한 힘 1

C. S. 루이스 지음 | 고전문학


저 무시무시한 힘

C. S. 루이스 우주 3부작 3

C. S. 루이스 지음





제1장 대학 재산의 매각



1.


“혼인은 셋째로, 서로의 동반자적 관계와 도움과 위로를 위하여 정해진 것이니라.” 제인 스터독은 혼자 그렇게 되뇌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 이후 교회에 가지 않다가 여섯 달 전 결혼식을 위해 갔을 뿐인데, 예식의 말들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작은 부엌은 정돈되어 있었고 시계는 거칠게 똑딱였다. 마크가 정말 저녁에 돌아온다 해도 여섯 시까지 해야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대학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거의 틀림없이 마크는 차 마실 무렵 전화해 회의가 길어져 대학에서 식사하겠다고 할 것이다. 결혼은 일과 우정과 웃음의 세계로부터 독방 감금 같은 무엇인가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는 집에 있어도 거의 말이 없었다. 친구였을 때, 또 연인이었을 때 끝없이 이어지던 그 모든 대화가 그에게는 한낱 서곡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또 아침을 멍하니 허비하기 시작하는구나.’ 존 던에 관한 논문을 미루려는 듯 신문을 뒤적이다 뒷면의 사진을 본 순간, 그녀는 자기 꿈을 기억해 냈다. 꿈은 한 얼굴에서 시작되었다. 외국인 같고 누런 매부리코의, 겁에 질려 무서운 얼굴, 그것은 흰 벽 작은 방에 웅크린 죄수였다. 잿빛 뾰족 수염의 잘생긴 방문객이 들어와 프랑스어로 무언가를 권고했다. 코안경이 빛을 받아 눈을 가렸고 완벽한 치아가 불쾌했다. 죄수는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권고된 것은 그보다 더한 공포였다. 방문객은 차가운 미소로 죄수의 머리를 잠수부 헬멧 돌리듯 홱 풀어서 가져갔다. 다음엔 흙투성이 흰 수염의 다른 머리, 그것은 사람들이 묘지에서 파내고 있는 노인의 머리였다. 송장인 줄 알았으나 그것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조심해요! 살아있어요! 당신들이 그를 깨우고 있어요!” 그녀가 외쳤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고, 묻혔던 노인이 스페인어 비슷한 말을 하기 시작하자 제인은 잠에서 깼던 것이다.

신문 뒷면에 그녀가 꿈에서 본 그 죄수의 머리가 있었다. ‘알카산 처형 ― 과학자 푸른수염, 단두대로.’ 알카산은 이웃 나라의 저명한 방사선학자로, 아랍계라 했으며 아내를 독살했다. 그러니 그것이 꿈의 기원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늘 아침 신문이었다. 그렇다면 보나 마나 이전에 나왔던 다른 사진을 보고 잊어버렸던 것이리라. 꿈에 이토록 동요한 것은 어리석었다. 5분 뒤 그녀는 책을 치우고 모자를 쓰고 나갔다. 어디든, 그 방에서, 그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2.


한편 마크는 브랙턴 대학으로 걸어 내려가며 전혀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옥스퍼드에서 자라고 케임브리지를 좋아하지만, 나는 에지스토가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해. 무엇보다 그곳은 아주 작지.’ 브랙턴은 1300년 헨리 드 브랙턴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잉글랜드 법을 연구할 학자 열 명을 위해 세워졌으나, 이제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이는 아마 없다. 사회학자 마크는 오 년 전 펠로로 선출되어 막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부학장 커리가 그와 함께 걸으며 회의 안건을 의논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데서 그 점은 확인되었다. 커리가 “우리”라 말할 때 스터독이 느끼는 강렬한 기쁨은 말투로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토록 최근까지도 그는 아웃사이더였고, “커리와 그 패거리”를 경외심과 얕은 이해심으로 지켜보았지만 이제 그들 안에 있었다. 커리는 피버스톤 경이라 부르는 예전의 딕 디바인이 올 거라며, 한 가지 알아 둘 것이 있다고 했다. “그가 자네 펠로직을 얻어 줬어.” 마크는 잠자코 있었다. 데니스턴이 경쟁자였고 많은 이가 그의 답안을 더 좋아했으나, 딕이 끝까지 마크를 필요한 부류라 주장했다는 것이다. 커리는 낮은 목소리로 피버스톤이 새 학장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정오 전에 브리스톨로 한잔하러 들어갔다.

3.


내가 브랙턴 대학의 손님으로 단 한 번 초대받았을 때, 나는 한 시간만 숲에 혼자 있게 해 달라고 청했다. 이니고 존스가 설계한 문이 유일한 입구였는데, 길에서 대학을 가로질러 들어가노라면 지성소(至聖所)로 차츰 깊이 스며드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리를 건너자 숲의 높은 담이, 그리고 그 문 너머로 햇빛 어린 초록과 깊은 그늘이 눈에 들어왔다. 담으로 둘러막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숲은 그 특유의 분위기를 얻었으리라. 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무언가에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숲 한가운데에 내가 보러 온 것이 있었다. 고대 포석의 잔해가 둘린 우물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브랙턴의 심장이어서, 모든 전설이 여기서 흘러나왔고 대학의 존재 자체가 본래 이 우물에 달려 있었으리라. 그 석조물은 앵글로색슨 침입이 코앞에 닥쳤던 무렵의 브리튼-로마 시대 작업물이었다. 14세기의 한 노래는 ‘멀린이 거기 누워 비탄을 노래하는 것을 들었노라’고 전한다. 엘리자베스 치세에는 셔블 학장이, “멀린의 우물”이라 불리던 그 샘 둘레의 이교적 미신을 없애려고 숲에 담을 둘렀다. 크롬웰의 기병들이 산당을 부수러 왔을 때에는, 성스러운 리처드 크로가 바로 그 우물 계단에서 총탄에 맞아 죽었다. 그러나 온갖 변천을 거치는 동안에도, 브랙턴의 학장들은 누구나 선출되는 날이면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보물인 큰 잔에 ‘멀린의 우물’ 물을 담아 마셨다. 우물 곁에 누워 이 모든 것을 떠올리던 나는, 사방이 어찌나 고요한지 그만 잠이 들었고, 멀리서 나를 부르는 친구의 외침에 깨어났다.

4.


회의에서 가장 논란이 된 안건은 브래그던 숲의 매각이었다. 사려는 쪽은 N.I.C.E. ― 국립 협동 실험 연구소로, 국가와 실험실이 결합해 맺은 첫 결실이었다. 그것은 “관료적 형식주의”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것이며, 엄청난 규모의 직원과 군주처럼 후한 봉급을 갖추게 될 터였다. 필요한 땅만 손에 넣으면 연구소는 에지스토로 올 것이고, 그러면 마침내 모든 일이 움직이기 시작하리라고 다들 생각했다.

진보적 분자는 일을 매끄럽게 처리했다. 펠로 대부분은 숲을 판다는 안건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커리가 숲 보존 협회와 심령술사들이 보낸 주제넘은 편지를 읽어 내려가자, 회의장에는 바깥세상더러 제 일이나 신경 쓰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피버스톤 경이 담장 상태를 묻자, 회계 담당 버스비는 담을 통째로 새로 쌓는 길밖에 없다고 답했고, 그 비용을 듣고 대학 측은 헉 소리를 냈다. 가시철망으로 대신하자는 말에는 야유가 쏟아졌으며, 늙은 주얼 신부는 숲을 철망에 가둘 바에는 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리겠다고 했다.

여섯 시가 되어서야 그날의 온갖 생각과 감정의 갈래가 비로소 숲 매각이라는 한 문제로 모였다. 버스비는 그것을 “도면에 분홍색으로 칠해 둔 구역의 매각”이라 불렀다. 우물은 N.I.C.E.가 원하는 구역 안에 들어 있었으나, 대학의 접근권은 보장되고 우물도 그대로 보존되리라고 그는 말했다. 담장 문제도, 기념물 보존 문제도, 재정 문제도, 봉급 문제도 한꺼번에 풀렸고, 게다가 브랙턴이 팔지 않으면 연구소는 영락없이 케임브리지로 가 버릴 것이라 했다. 마침내 눈멀고 늙은 주얼 신부가 몸을 떨며 거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입을 열자, 피버스톤 경이 벌떡 일어나 팔짱을 끼고 노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얼 신부께서는 침묵으로써 그 뜻을 더 잘 이루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주얼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쪽을 바라보다가, 두 손을 힘없이 펴 보이고는 움츠러들어 힘겹게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동의안은 가결되었다.

5.


그날 아침 제인도 에지스토로 내려가 모자를 하나 샀다. 자극과 위안 삼아 모자를 사는 부류의 여자를 그녀는 늘 경멸해 왔지만, 정작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옛 지도교수의 아내이자 다들 “어머니 딤블”이라 부르는 딤블 부인이 점심을 청하여, 그녀는 브래그던 숲의 담장을 끼고 달려 딤블 부부의 집에 이르렀다.

제인이 아름다운 딤블 부부의 정원을 보고 감탄을 터트리자, 딤블 박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눈에 잘 담아두는 게 좋을 게다.” 브랙턴이 임차를 갱신해 주지 않아 그들을 내쫓는다는 것이었다. “마크는 대학 일을 제게 말하지 않아요.” 제인의 말에 박사가 받았다. “좋은 남편들은 원래 다 그렇단다….” 딤블은 브랙턴이 강 이편의 땅을 죄다 팔아넘기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위층으로 올라간 제인에게 부인이 갑자기 “무슨 일 있어?” 하고 묻자, 제인은 아니라고 대답하려다 자기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순간 딤블 부인은, 무릎이 까지면 달려가 안기던 어린 시절의 크고 따뜻한 어른으로 돌아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어루만져지는 것은 그녀의 인생관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부인에게 털어놓았다. “너무 외로운 데다 악몽까지 꾸어 마음이 가라앉았을 뿐이에요.”

점심을 들며 딤블 박사는 아서왕 전설을 이야기했다. 후기 판본에서도 인물이 두 무리로 나뉘는데, 한가운데에는 궁정풍 인물들이 있고, 그 뒤편에는 모건과 모거스처럼 지극히 브리튼적이고 마법에 얽힌 어두운 사람들이 있어서, 침입 전야의 브리튼을 그린 그림과 꼭 닮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귀에 스페인어처럼 들릴 켈트화된 라틴어를 쓰는 로마적 계층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숲에 가로막힌 외진 곳에서 드루이드교를 믿는 옛 브리튼 소왕들이 있었으리라고도 했다. “스페인어처럼”이라는 말에 제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멀린이야말로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박사는 말했다. 악하지 않으면서도 마법사요, 드루이드이면서도 성배를 알며, “악마의 아들”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어쩌면 멀린은, 초자연과 맞닿은 자라고는 백색 아니면 흑색, 사제 아니면 마법사밖에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불가능해진 무언가의 마지막 흔적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덧붙였다. “멀린이라면 우리 모두 알다시피 브래그던 숲 아래 안전히 묻혀 잠들어 있잖아요.” 딤블 부인이 말하자, 박사가 바로잡았다. “이야기에 따르면 묻혔으되 죽지는 않았소. 그들이 N.I.C.E.의 기초를 놓겠다고 그곳을 파헤치면 대체 무엇이 나올까.”

응접실로 자리를 옮긴 제인은 자기 꿈 이야기를 꺼냈다. 박사는 몹시 충격을 받은 듯했다. “기이한 일이야…. 참으로 기이한 일이야. 머리가 둘. 그중 하나가 알카산의 것이라니. 이게 헛다리 짚는 걸까?” 박사는 어떤 충고도 하지 않겠다면서, 다만 그 꿈에 관해 누군가를 찾아가기로 마음먹거든 그 전에 먼저 자기들에게 알려 달라고 했다. 곧 다른 손님들이 들이닥쳐 더는 단둘이 이야기할 틈이 없었다. 제인은 그곳을 나와 포플러가 늘어선 길이 아니라 공유지를 가로지르는 오솔길을 따라, 왼편으로 에지스토의 탑과 첨탑을, 오른편 지평선 쪽으로는 낡은 풍차를 두고 집으로 걸어갔다.



2장 부학장과의 만찬



1.


“이거 큰일이군!” 뉴턴 쿼드(유서 깊은 영미권 대학에서 사각 형태의 공간)가 내려다보이는 호화로운 방, 벽난로 앞에 선 커리가 말했다. 버스비와 피버스톤 경, 그리고 마크는 만찬 전 셰리주를 마시던 중이었다. 학장이 만찬 후 보자 한 것에 커리는 짜증을 냈고, 버스비는 주얼 일파가 결의를 뒤집으려는 것이라 했다. 마크가 “늙은 주얼이 좀 안됐다”고 한 것은 동기가 복잡했다. 피버스톤의 불필요한 잔인함에 대한 역겨움과, 종일 마음을 긁던 펠로직의 빚 때문이었다. 피버스톤은 총력전이 결국 가장 인도적이라며, 자신이 즉시 입을 막은 덕에 노인이 도리어 즐기고 있다고 했다.

만찬에서 커리는 “진짜 내가 할 일”을 운운했고, 피버스톤은 그를 짓궂게 놀렸다. 포도주가 돌자 삼십 년 배교한 버스비 안의 목사가 깨어나, N.I.C.E.를 에지스토로 가져온 커리가 한 해에 주얼이 평생 한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해서 종교에 기여했다고 했다. 피버스톤이 “N.I.C.E.가 정확히 무엇이며 무엇을 하려는지 아는 사람이 있나”라고 묻자 분위기가 묘해졌다. 버스비는 응용과학을 국가적으로 진지하게 다루는 첫 시도라며 부서장 열다섯, 자체 법무·경찰을 늘어놓았고, 커리는 반 시간마다 정책이 눈앞에 형태를 갖추는 ‘프래그머토미터’를 자랑했다. 마크는 자체 법무·경찰이 핵심이라며, 과거 전쟁이 그러했듯 이번엔 과학이 국가 전체의 힘을 업고 사회 문제에 적용된다고 했다.

2.


커리와 버스비가 나가고 두 사람만 남게 되자 피버스톤은 폭소를 터뜨렸고, 마크도 어린아이처럼 그를 따라 웃었다. “프래그머토미터, 으리으리한 변소, 실천적 이상주의라니.” 그것은 마크에게 기묘한 해방의 순간이었다. 피버스톤은, 커리와 버스비란 자들은 브랙턴의 두뇌이기는커녕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기차를 모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는 마크가 쓴 글을 빠짐없이 읽었다며 “연구소로 들어오라”고 권했다. 인류는 지금 몽매주의냐 질서냐 갈림길에 서 있으며, 과학에 자유로운 손을 쥐여 주기만 하면, 인류를 통째로 접수하여 다시 손질하고 참으로 효율적인 동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세 가지라 했다. 첫째는 행성 간 문제였다. 그 일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던 웨스턴은 공습이 아니라 살해를 당했는데, 범인은 그가 우리 쪽 편이라는 이유로 그를 죽인 점잖은 케임브리지 학자라는 것이었다. 둘째는 이 행성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생명체들이었고, 셋째는 인간 그 자신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은 곧 일부가 나머지를 떠맡는다는 뜻이며, 우리는 떠맡기는 쪽이 아니라 떠맡는 쪽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부적격자의 단종, 뒤떨어진 종족의 청산, 선택 교배가 있고, “받아들이든 말든” 하는 여지 따위 없는 진짜 교육이 있으며, 끝내는 생화학적 조건화와 뇌의 직접 조작에까지 이른다는 것이었다. 마크가 맡을 일은 그 모든 것을 위장해 글로 적어 두는 것인데, ‘실험’이라는 말은 인기가 없어도 ‘실험적’이라는 말은 괜찮다는 식이었다. 연봉은 우선 천오백 파운드쯤 될 것이고, 다만 웨스턴처럼 제거당할 위험도 없지 않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내일 N.I.C.E. 부소장 존 위더를 만나러 벨버리로 가서 주말을 보내자고 했다. N.I.C.E. 소장 쥘로 말하자면 일요신문에 연구소를 그럴듯하게 파는 마스코트일 뿐, 머릿속이 다윈 언저리에 멈춰 있는 자라 했다.

3.


마지막 버스는 이미 끊긴 뒤라, 마크는 휘영청 밝은 달빛 속에 언덕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현관에 들어선 순간 그는 매우 드문 일을 겪었다. 겁에 질려 반쯤 흐느끼는, 게다가 양순해지기까지 한 제인이 “오, 마크, 너무 무서웠어요” 하며 현관 매트 위에서 그에게 안겨 온 것이다. 그런 순간은 전에도 있었으나 드물었고, 요즈음 들어 더욱 드물어진 터였다. 게다가 그의 경험으로는, 그런 날 다음에는 으레 까닭 모를 다툼이 뒤따르곤 했다. 그는 그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고, 제인 또한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그녀가 그렇게 된 까닭만큼은 단순했다.

딤블 부부의 집에서 상기된 채 돌아온 제인은, 어둠을 무서워하던 어린 시절을 너무 오래 곱씹은 탓인지 저녁이 되어서는 차츰 허물어져 갔다. 안절부절못하다가 신경이 곤두섰고, 아직 무섭지는 않으나 스스로를 다잡지 않으면 곧 몹시 무서워지리라는 것을 아는 긴 시간이 이어졌다. 절박해진 그녀는 딤블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세인트앤에 사는 아이언우드 양의 주소를 받아 냈다. “예약은 필요 없어…. 그쪽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부인의 말 중에서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라는 한마디가 어린애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붙잡은 구원의 끈이 아무런 위로도 주지 못하자, 공포는 마치 모욕이라도 당한 듯 그녀에게 되돌아왔다. 그리하여 마크는 현관 매트 위에서 그런 뜻밖의 제인과 마주친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가 너무 늦고 너무 지친 데다, 솔직히 말해 술이 말끔히 깨지도 않은 밤이었다.

4.


“오늘 아침엔 좀 괜찮아?” 마크가 물었다. 침대에 누워 차를 마시던 그의 눈이,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는 제인에게 나른한 아침의 즐거움으로 머물렀다. 둘 사이의 어긋남을 그가 거의 알아채지 못한 것은, 자기가 느끼는 것을 상대도 똑같이 느끼리라 여기는 인간의 고질적인 “투사” 습성 탓이었다. 한편 제인은, 간밤에 감상 소설 속의 “가련한 작은 여자”로 무너져 버린 자신에게 깊이 분노해 있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