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1
에밀리 브론테 지음 | 고전문학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지음
1장: 워더링 하이츠의 첫 방문 1801년, 나는 세속의 소란으로부터 완벽히 격리된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이 황량한 낙원의 유일한 이웃이자 나의 집주인인 히스클리프 씨를 찾아 워더링 하이츠의 문턱을 넘었다. 나는 그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와 굳게 닫힌 손가락에서 나와 같은 인간 혐오의 기질을 발견하고 짜릿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 얼마나 멋진 친구인가! 우리는 이 고독을 나누어 가질 더없이 완벽한 한 쌍이 될 터였다.
“들어오시지!” 닫힌 이 사이로 새어 나온 그 말은 차라리 저주에 가까웠으나, 나는 오히려 그 자신보다 더 과장되게 폐쇄적인 이 사내에게 걷잡을 수 없는 흥미를 느끼며 안으로 들어섰다. ‘워더링 하이츠’. 이름 그대로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고지대에 자리한 저택은 폭풍우의 소란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정면에는 ‘1500, 헤어턴 언쇼’라는 이름이 기괴한 조각들과 함께 새겨져 있었으나, 집주인의 퉁명스러움은 내게 질문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벽난로와 육중한 의자들, 그늘 속에 웅크린 개들로 가득한 거실이 나타났다. 그곳의 풍경은 어두운 피부의 집시 같은 용모에 신사의 몸가짐을 한 주인처럼 기이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잠시, 지난 여름 해변에서 만났던 여신에게 차마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달아났던 나의 지독한 성정을 떠올리며, 그의 무뚝뚝함 또한 나와 같은 종류의 것이리라 섣부른 짐작을 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벽난로가에서 어미 개의 털을 쓰다듬으려던 내 손길은 길고 거친 으르렁거림을 불러왔고, 히스클리프는 “그 개는 애완용이 아니니 내버려두시오”라며 발길질로 더 사나운 표현을 막아섰다. 그가 하인 조셉을 부르러 지하실로 사라진 사이, 나는 굶주린 시선으로 나를 포위한 개들에게 둘러싸였다. 내가 장난스레 얼굴을 찡그린 것이 화근이었을까. 암캐 한 마리가 분노에 차올라 내 무릎으로 뛰어들었고, 순식간에 온 집안의 개들이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동안, 히스클리프와 조셉은 태평스럽게 올라왔다. 다행히 프라이팬을 휘두르며 부엌에서 달려 나온 건장한 여인의 활약으로 소동은 마법처럼 잦아들었다.
“대체 무슨 소란이오?” 마치 내가 원흉이라는 듯 쏘아보는 그의 눈빛에 나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악령 들린 돼지 떼라도 이보다는 낫겠소! 차라리 호랑이 굴에 이방인을 던져두시지!” 그는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와인 병을 놓았다. “건드리지 않는 사람은 저들도 건드리지 않소. 와인 한잔하겠소?” “아니, 됐습니다.” “물리진 않았소?” “물렸다면, 그 이빨 자국을 남긴 놈에게 내 증표를 새겨주었을 거요.” 내 대답에 히스클리프의 표정이 비웃음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집에서의 첫 만남은 그렇게, 지독히도 불쾌하고 기이한 인상만을 남긴 채 끝이 났다.
2장: 눈보라 속의 하룻밤 어제의 음산한 방문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 날 다시 워더링 하이츠로 향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 황야에서 단단히 잠긴 문을 두드렸지만, 식초에 절은 듯한 하인 조셉은 퉁명스럽게 나를 외면할 뿐이었다. 절망하던 찰나, 외투도 걸치지 않은 채 어깨에 쇠스랑을 멘 젊은 사내가 나타나 나를 안으로 이끌었다. 거대한 난로가 뿜어내는 온기로 가득한 거실에서, 나는 어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 ‘히스클리프 부인’과 마주했다. 그녀는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표정에는 경멸과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내가 날씨를 화제 삼아 말을 건네도 그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응시할 뿐, 입 한번 열지 않았다.
나를 들여보내 준 젊은 사내는 무뚝뚝하게 “앉으시오” 한마디 던지고는, 난로 앞에 서서 나를 쏘아보았다. 남루한 옷차림과 거친 말투는 하인처럼 보였지만, 그의 태도는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굵고 거친 갈색 곱슬머리와 노동으로 다져진 손, 그러면서도 집주인 행세를 하는 그의 정체를 나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침묵 속에서 죽은 토끼가 담긴 쿠션을 고양이로 착각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히스클리프 부인은 노골적인 경멸을 담아 쏘아붙였다.
“이상한 취미로군요!” 그녀는 가냘프고 소녀티를 갓 벗어난 모습이었지만, 그 눈빛은 내 호의를 날카롭게 쳐냈다. 차를 준비하려는 그녀를 도우려 하자, 그녀는 마치 금화라도 세는 구두쇠처럼 소리쳤다. “당신 도움은 필요 없어요!” 이해할 수 없는 적대감 속에서 나는 곤혹스러웠다. 그녀는 내가 초대받지 않은 손님임을 확인하고는, 끓이던 찻잎을 다시 던져버리고 아이처럼 토라져 버렸다.
바로 그때, 히스클리프가 눈을 털며 들어섰다. 그는 눈보라 속에 찾아온 나를 어리석다는 듯 쳐다보며, 늪지에서 길을 잃을 위험을 경고했다. 그의 험악한 어조와 모두의 얼굴에 깃든 음울함 속에서, 나는 더 이상 히스클리프를 ‘멋진 친구’라 부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거운 분위기를 깨보려, 나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히스클리프 씨, 당신의 가정과 마음을 다스리는 상냥한 부인과 함께라면, 이런 고립된 삶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겠네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거의 악마적인 냉소를 머금고 되물었다. “나의 상냥한 부인이라고?” 히스클리프의 조롱 섞인 대답에 나는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한 번 더 나는 저 아름다운 ‘부인’의 남편이 촌뜨기 같은 젊은 사내일 것이라 속단했고, 그를 향해 미안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추측은 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젊은 사내는 주먹을 불끈 쥐며 내게 달려들 듯 으르렁거렸다.
“내 이름은 헤어턴 언쇼요. 존중해 주시지!” 히스클리프는 이 모든 상황이 즐겁다는 듯, 비웃음을 흘리며 진실을 밝혔다. 저 부인은 죽은 내 아들의 아내, 즉 며느리이며 헤어턴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이 저택 사람들의 모든 관계도는 뒤틀려 있었고, 나는 그들의 불행한 가족 관계 한복판에 떨어진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짙어지는 음산함은 난로의 온기마저 무력하게 만들었다.
창밖은 이미 칠흑 같은 어둠과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아비규환이었다. 길을 안내해 달라는 나의 간청은 모두에게 묵살당했다. 히스클리프는 무심했고, 젊은 부인은 엉뚱하게도 조셉을 향해 흑마술을 부리겠다며 ‘작은 마녀’처럼 굴었다. 그녀 역시 내게 “왔던 길로 돌아가세요”라는 짤막하고 무책임한 조언만을 던졌다.
“여기 묵으려거든, 헤어턴이나 조셉과 한 침대를 쓰시오.” 히스클리프의 모욕적인 제안에 인내심이 바닥난 나는 분노를 터뜨리며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출구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등불을 훔치려 한다고 오해한 조셉이 고함을 질렀고, 그 소리에 개 두 마리가 달려들어 나를 땅에 넘어뜨렸다.
“히스클리프! 이 망할 놈! 개 좀 어떻게 해봐!” 내 비명에도 그는 태연했다. 분노와 공포 속에서 코피가 터지고 온몸에 오한이 퍼졌다. 나는 그들의 발치에서 거의 의식을 잃었고, 그제야 히스클리프는 마지못해 하녀 질라에게 나를 빈방으로 안내하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나는 저주받은 듯한 워더링 하이츠에, 눈보라와 함께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3장: 과거의 유령과 악몽 하녀 질라는 나를 위층의 어느 방으로 안내하며, 주인이 이 방을 병적으로 기피하니 누구도 묵게 하지 않는다는 기묘한 경고를 속삭였다. 피곤에 지친 나는 그 이유를 캐물을 기력도 없이, 옷장과 의자, 그리고 관처럼 생긴 거대한 참나무 침대가 전부인 방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 기이한 침대 안으로 기어들어가 덧문을 닫고서야 비로소 히스클리프의 감시로부터 안전해진 기분을 느꼈다.
침대의 창틀 선반에는 곰팡내 나는 낡은 책 몇 권이 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온갖 필체로 ‘캐서린 언쇼’, ‘캐서린 히스클리프’, ‘캐서린 린튼’이라는 이름이 휘갈겨 쓰여 있었다. 그 이름들을 무심코 되뇌다 잠이 들었지만, 곧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하얀 글자들의 환영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촛불 심지가 태운 가죽 냄새에 정신을 차린 나는, ‘캐서린 언쇼의 책’이라 적힌 낡은 성경을 펼쳐 들었다.
책의 여백은 온통 어린 소녀의 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미지의 캐서린에게 즉각적인 흥미를 느끼고, 그녀의 바랜 글씨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일기는 끔찍했던 어느 일요일의 기록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폭군으로 변한 오빠 힌들리의 학대, 그리고 그에 맞서 유일한 동지인 히스클리프와 함께 저항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너희는 주인이 있다는 걸 잊었나 보구나. 감히 내 성질을 돋우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다!” 다락방에서 세 시간 동안이나 추위에 떨며 장광설을 들어야 했던 그들에게 힌들리는 폭언을 퍼부었다. 히스클리프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둘을 부엌 뒤편으로 내쫓았다. 하지만 그들은 함께였기에 절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뛰쳐나가, 쏟아지는 빗속의 황야를 함께 달렸다. 또 다른 기록에는, 힌들리가 히스클리프를 천한 놈이라 부르며 더 이상 자신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겠다고 소리쳤던 잔인한 순간들이 적혀 있었다.
희미한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내 눈은 캐서린의 일기에서 ‘일흔 번씩 일곱 번, 그리고 일흔한 번째의 첫 번째’라는 기묘한 제목의 설교문으로 옮겨갔다. 그 의미를 반쯤 의식하며 생각하는 동안, 나는 침대 속으로 깊이 가라앉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내 생애 가장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조셉과 함께 야베즈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눈 덮인 길을 가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설교는 무려 490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부분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기이한 죄악들을 다루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지루함과 분노 속에서, 마침내 ‘일흔한 번째의 첫 번째’ 죄에 이르렀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나 목사야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라 외치며 그를 규탄했다. 순식간에 예배당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모두가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대난투가 벌어졌다.
예배당의 소동은 또 다른 악몽의 서곡에 불과했다. 잠에서 깨자, 창문을 두드리는 전나무 가지 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가지를 부러뜨리려 창문을 열고 팔을 뻗는 순간, 얼음처럼 차가운 작은 손이 내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들여보내 줘! 들여보내 줘!” 창밖의 아이는 자신을 ‘캐서린 린튼’이라 밝히며, 20년 동안이나 버려진 채 황야를 헤매고 있었다며 흐느꼈다. 그 애절한 목소리에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그 작은 손목을 깨진 유리창에 대고 피가 흐를 때까지 문지르는 잔인한 짓을 저질렀다. 아이의 손이 떨어져 나가자, 나는 책을 쌓아 창문을 막고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나는 결국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내 비명 소리에 히스클리프가 촛불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벽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당황하여 끔찍한 악몽에 대해 설명하며, 무심코 꿈속의 이름 ‘캐서린 린튼’을 입에 올렸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히스클리프의 얼굴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고통, 격정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내게 당장 자기 방으로 가서 잠을 자라고 고함을 질렀다.
내가 방을 나서는 순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히스클리프는 침대 위로 올라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으로 울부짖었다. 그 절규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영혼을 찢는 듯한 처절한 고통과 갈망 그 자체였다. “들어와! 제발 들어와! 캐시, 제발. 오,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오, 내 사랑! 이번에는 제발 내 말을 들어줘, 캐서린!”
그의 광기 어린 모습에 나는 연민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부엌에서 남은 밤을 새우고 새벽이 되자, 나는 히스클리프가 그의 며느리에게 퍼붓는 잔인한 욕설을 들으며 서둘러 그 저주받은 저택에서 탈출했다. 이제 나는 사교 생활에 대한 모든 미련을 완전히 치료받았다. 현명한 인간이라면 자기 자신 안에서 충분한 동반자를 찾아야 마땅하다.
4장: 폭풍의 시작, 히스클리프의 등장 워더링 하이츠에서의 끔찍한 하룻밤 이후, 나는 사교에 대한 혐오를 다짐했건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이곳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가정부인 딘 부인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히스클리프와 그 저택의 사람들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워더링 하이츠의 과거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주기 시작했다.
“부자냐고요? 돈이 얼마나 많은지 아무도 모를걸요. 하지만 지독한 구두쇠라서요.” 딘 부인은 히스클리프의 재력과 인색함에 대해 설명하며, 젊은 미망인 캐서린 히스클리프 부인이 바로 자신의 옛 주인인 린튼 씨의 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나는 내 악몽에 나타났던 ‘캐서린’의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지만, 그녀가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복잡한 가족 관계에 대한 나의 질문이 이어지자, 딘 부인은 바느질거리를 가져와 자리를 잡고 앉아,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히스클리프에 대한 이야기는 그 애가 어디서 태어났고, 부모가 누구며, 처음엔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를 빼고는 제가 다 알죠.” 그녀는 지난밤의 사건으로 열에 들떠 있던 나를 위해, 더 이상의 권유도 기다리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회상은 자신이 언쇼 씨의 아들, 힌들리와 함께 자랐던 워더링 하이츠에서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의 화자는 ‘나’, 즉, 어린 시절의 딘 부인, 즉 넬리 엘렌의 시점으로 옮겨간다.
어느 맑은 여름 아침, 언쇼 씨는 리버풀로 긴 여행을 떠나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약속했다. 힌들리는 바이올린을, 말 타기를 좋아하는 여섯 살 캐시는 채찍을 골랐다. 그러나 사흘 후,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언쇼 씨의 품에는 약속한 선물 대신 다른 것이 들려 있었다. 게다가 북새통에 힌들리의 바이올린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으며 캐시의 채찍은 아예 어디론가 사라진 채였다.
언쇼 씨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끌어안고 있던 외투를 열어 보이자, 가족들은 경악했다. “이것 봐, 여보! 내 평생 이렇게 얻어맞은 적은 없었어. 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여 줘. 꼭 악마에게서 온 것처럼 새까맣긴 하지만.” 그의 품에는 더럽고 꾀죄죄한, 검은 머리의 아이가 있었다. 언쇼 부인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어쩌자고 저런 집시 녀석을 집에 끌어들인 거예요? 우리에겐 먹여 살려야 할 우리 애들이 있잖아요! 대체 저걸 어쩔 셈이에요, 정신이 나갔어요?”
언쇼 씨는 리버풀 거리에서 굶주린 채 버려진 아이를 차마 지나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를 씻기고 아이들과 함께 재우라고 명령했다. 그것이 바로, 히스클리프가 워더링 하이츠에 처음 발을 들인 순간이었고,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다.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선물을 기대했던 아이들의 실망은 곧 적대감으로 변했다. 힌들리는 부서진 바이올린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고, 캐시는 이방인 때문에 채찍을 잃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 그 아이에게 침을 뱉었다. 그날 밤, 아이들은 히스클리프와 한 방에 있는 것조차 거부했고, 나 또한 그 아이를 계단참에 버려두었다. 하지만 아이는 어찌 된 영문인지 언쇼 씨의 방문 앞까지 기어갔고, 그 일로 나는 도리어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며칠 뒤 돌아왔을 때, 그 아이는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을 얻어 가족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캐시는 놀랍게도 금세 그와 친해졌지만, 힌들리는 그를 증오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를 부당하게 괴롭혔지만, 히스클리프는 묵묵히 모든 것을 견뎌냈다. 그의 그런 인내는 오히려 언쇼 씨의 분노에 불을 지폈고, 그는 아들이 ‘아버지 없는 불쌍한 아이’를 박해한다고 믿으며 히스클리프를 기이할 정도로 총애하기 시작했다. 편애는 집안에 악감정을 싹트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