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새 2
콜린 맥컬로우 지음 | 현대문학
가시나무새
콜린 맥컬로우 지음
제5부 1938-1953년 - 사랑과 소망, 전쟁의 발발
1.해 질 녘, 롭의 차가 오두막 앞에서 멈췄다. “오닐 씨, 잘 쉬세요!” 그는 손을 흔들고 떠났다. 그러나 메기는 알아보았다. 루크가 아니었다. 랄프 드 브리카사르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그녀를 찾아왔다. 마음은 얼어붙었고, 혀는 딱딱해졌다. “들어와요. 차라도 마셔요.” 전기 주전자가 끓고, 비스킷 깡통이 달그락거렸다. 서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 그들은 서로 다른 베란다 쪽을 보았다. 바닷바람이 미닫이문을 스쳤고, 레몬잎 냄새가 찻물 위로 올라왔다. 그는 컵을 내려놓고,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왜 왔어요, 랄프?” 그녀가 물었다. “보고 싶어서.” “누굴? 소녀를? 여자를?” 그의 눈썹이 떨렸다. “무슨 일이지, 메기?” 그의 물음에 그녀의 심장이 옛날처럼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여전히 소녀에게 묻듯이 물었다.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그는 여자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아이였던 메기를 확인하러 온 것이다. 분노가 번졌다. 그녀의 눈이 그의 눈을 찔렀다. 그의 표정이 무너졌다.
마침내 그는 깨달았다. 드로게다 묘지의 어느 해 질 녘, 그때부터 그녀는 여자가 되었는데, 그는 여전히 소녀를 붙잡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를 아이로 둔 채 품속에 숨기려 했던 오랜 세월, 그리고 여자가 된 그녀 앞에서의 두려움. “우리는 엇갈린 사랑을 했어.” 그의 눈빛이 말했다. 그녀의 수치와 분노가 그의 연민과 부서져, 그녀는 도망치려 했고, 그는 그녀를 붙들었다. 억눌러온 의지와 욕망의 얇은 껍질이 터졌다. 입술이 서로를 찾았고, 팔이 서로의 등을 죄었다.
키스는 해방이었다. 침실에 어떻게 이르렀는지, 그가 안아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시간은 시곗바늘을 버리고, 밀물처럼 흘렀다. 그는 생각했다. “오, 나의 메기! 어떻게 내게 너를 신성모독이라고 가르쳤던가.” 그는 자신이 남자임을, 결코 신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였다. “오, 주여, 저는 사람입니다.” 그의 기도는 탄식이었고, 그녀의 팔과 다리는 실처럼 그를 감아 매었다. 황홀은 짧았고, 그 짧음이 오히려 더 깊은 허기를 남겼다. 그는 표류자가 나무토막을 그러쥐듯 그녀를 그러쥐었다.
그녀는 그가 만든 존재였고, 그가 버렸던 장미였다. 이제 그는 기억에서 그 사실을 지웠다. 다른 누가 그녀와 관계를 완성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밤, 그녀는 그에게로 돌아왔다. 파도가 산호초를 부서뜨리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렸다. 그들은 말 대신 숨으로 대답했고, 오래 묶여 있던 매듭 하나가 풀렸다.
그는 처음으로 그녀와 같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 아침의 염기 냄새, 햇살에 젖은 바람, 그녀의 피부. 항복의 감미로움이 전쟁의 영광보다 달았다. ‘겸손을 이제야 알겠구나.’ 그는 생각했다. 그녀의 머리칼을 쓸며 그가 말했다. “수영하고 올까?” 그들은 벌거벗은 채 따뜻한 바람을 걸쳤다. 라군의 물결은 낮게 잔물결을 세웠다. 그녀는 속삭였다. “이건 세상의 풍경이 아니에요. 우리의 풍경이에요, 잠시뿐일지라도.”
아침 식탁에서 그는 물었다. “루크는 어떤 사람이지?” 그녀는 고개를 기울였다. “여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점이, 당신과 닮았어요. 욕망이 아니라, 진짜 ‘필요’ 말이에요.”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도 넌 우리를 원하나?” “난 원하고 필요해요. 그러니 당신들을 움직일 약한 고리를 찾아 이용할 거예요. 바보처럼 없애려 애쓰지 않을 거예요.”
날이 가고, 밤이 갔다. 뜨거운 비는 지붕을 어루만졌다. 해가 나면 그들은 모래 위를 걷고, 수영을 배웠다. 그녀는 때때로 그의 얼굴을 외워두듯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의 은빛 날개, 길쭉한 몸, 눈 밑의 피로감. 그는 반드시 떠나야 하는 사람의 눈을 가졌다. 해가 바다를 피로 물들일 때, 그가 말했다. “이만큼 행복하고, 이만큼 불행한 적이 없어.” “알아요.” “내일 떠나야 해. 제노바로. 아마 아주 오랫동안.” “걱정 마요. 난 소란 피우지 않아요. 나도 떠날 거예요. 루크를 떠나 드로게다로 돌아갈 거예요.” “내 탓은 아니지?” “아니에요.” 그녀는 거짓말했다. “편지는 쓰지 말아요. 글자는 흔적을 남겨요. 당신이 호주에 오면 드로게다에 와요. 하지만 생각하고 오세요. 당신이 하느님보다 먼저 내 것이 되는 곳은 이 섬과 드로게다뿐이니까.” 그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메기, 내내 사랑했어. 아마 평생 그럴 거야.”
2.다음 날, 롭의 차가 다시 왔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유리 너머로 눈을 곧게 두고, 숲을 지나, 배로 향했다. 롭은 생각했다. ‘저 눈처럼 인간적인 눈을 본 적이 없다.’ 메기가 히멜호흐로 돌아왔을 때, 앤은 곧 깨달았다. 이젠 떠날 시간이라는 것을. 그녀는 저스틴을 꽉 껴안았다. “고마워요, 앤.” 그녀의 눈은 빛으로 가득 찼다. 앤이 물었다. “루크에게는?” 그녀가 낮게 답했다. “가야 해요. 그리고… 함께 자야 해요.” “뭐라고?” “두 주가 지났어요. 생리가 한 번도 제날짜에서 늦지 않았는데. 저스틴도 그랬고. 난 알아요, 앤. 임신했어요.”
환희가 번쩍이며 사라졌다. “아닐 수도….” “아니에요. 어떤 일은, 그냥 알 수 있죠.” 그녀는 떨리는 숨을 고르고 속삭였다. “랄프는 가질 수 없지만, 그의 아이는, 그의 이어짐은 내 것이 될 거예요. 하느님이 거두지 못한 부분이에요. 아들을 낳을 거예요. 세대를 건너 이어질 그의 일부를.” 앤은 슬픈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스인들은 말해. 이성을 넘는 사랑은 신을 노하게 한다고.” 메기는 저스틴을 요람에 눕히며 고개를 저었다. “난 모독하지 않을 거예요. 순결로 사랑할 거예요. 무엇이 오든, 이 아이를 지킬 거예요.”
그녀는 인검으로 향하는 작은 기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은 하나였다. 아이의 미래를 지키는 것. 인검의 허름한 여관. 그녀는 루크가 있는 브라운 농장에 전화를 걸어 메시지를 남겼다. 방으로 돌아오자 다리가 풀렸다. 그녀는 손을 떨구고, 몸을 침대에 눕혔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빨리, 빨리.” 마음이 외쳤다. 목적은 하나였다. 아이의 미래를 지키는 일. 밤 아홉 시, 술로 흐릿해진 복도 끝에서 발자국이 다가왔다. “누구죠?” “루크.” 그는 밀고 들어와 그녀를 들어 침대로 옮겼다. 그의 입술은 급했고, 그의 손은 익숙했다. 그녀는 말을 삼켰다. 밤은 지나갔다.
새벽빛에서, 그는 하품을 하고 물었다. “메그, 인검엔 왜 온 거지?”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드로게다로 돌아간다고 말하러 왔어요.” 그는 놀랐다. “왜? 내가 시드니는 못 데려가도 아더턴엔 데려갔잖아!” “그게 언제 얘긴데! 당신은 그 뒤로도 두 번이나 시드니에 갔죠. 나 없이. 난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이십만 천 파운드. 내 돈이 당신 계좌에 쌓였는데. 한 번도 쓰지 않았죠. 황금송아지처럼 숭배할 뿐. 난 구역질나요.” 그는 더듬거렸다. “한 푼도 안 썼어. 전부 있어.” “그렇겠죠. 거기 있을 뿐이니까. 당신은 인색하고, 어리석고, 자기만 아는 사람이에요. 아내와 딸을 개만도 못하게 대했죠.”
그는 억울함에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난 널 학대한 적 없어! 먹을 것, 지붕, 따뜻함….” “맞아요. 내 인생에서 가장 더웠죠.” 그녀는 웃었다. “하지만 벽이랑 대화하는 기분이네요.”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팬티를 끌어올렸다. “난 이혼 안 해요. 두 번째 혼인은 원하지 않아요. 당신이 하려면, 드로게다에서 날 찾아요. 난 떠나요. 내 연금은 저스틴과… 어쩌면 또 한 아이를 위해 쓸 거예요.” 그의 눈이 번쩍였다. “그게 노림수였군! 또 애나 얻어간다고? 난 그릇일 뿐이었어?”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죠.”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당신은 내 안의 최악을 끌어내요. 그래도 기운 내세요. 지난 3년 반 동안, 내가 당신을 위해 준 돈이 사탕수수로 번 것보다 많았으니까. 그리고 만약 또 한 아이가 생겨도, 당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부터, 끝이에요.”
문고리를 잡은 채, 그녀는 마지막 말을 얹었다. “충고 하나. 입을 너무 크게 벌려요. 여자를 통째로 삼키는 뱀처럼. 침은 적당해야 해요. 당신은 날 메스껍게 해요. 루크 오닐,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가 나갔다. 그는 한동안 문을 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반바지를 집어 들었다. “아르네한테나 가자.” 바깥엔 여전히 설탕 냄새와 뜨거운 바람이 감돌았다. 그에게는 사탕수수가, 그녀에게는 드로게다가 남았다.
3.4년의 세월이 흐른 뒤, 메기는 늙은 블루이 윌리엄스가 모는 우편 트럭을 타고 드로게다로 돌아왔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귀향이었다. 옆자리 바구니에는 딸 저스틴이 잠들어 있었다. 갈색과 은색, 먼지, 그리고 노스 퀸즐랜드의 번잡함과 달리 정화된 듯한 고요함. 캥거루, 에뮤, 장밋빛으로 날아오르는 갈라 앵무새 떼. 모든 것이 그리웠던 고향의 풍경이었다. 마침내 드로게다의 유령 검나무와 후추나무가 보이자 심장이 뛰었다.
스미스 부인과 미니, 캣이 울고 웃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드로게다, 이곳이 바로 그녀의 심장이 머무는 곳이었다. 소란을 듣고 나온 어머니 피오나에게 메기는 담담히 말했다. “엄마, 저 집에 왔어요.” “루크를 떠났니?” 피오나는 하녀들이 듣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네. 다신 그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그는 가정도, 아이들도, 저도 원하지 않았어요.” “아이들?” “네. 저 또 아이를 가졌어요.”
그녀의 옛 방은 그대로였고, 그 옆에는 저스틴과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한 방이 마련되었다. 모든 것이 평온했다. 오빠 밥과 남동생 잭과 휴이도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가뭄과 토끼 떼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메기는 말을 타고 목초지를 돌며 일손을 돕겠다고 자처했다.
새로 얻은 말에 오르자, 랄프의 부재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메마른 땅을 달리고, 양떼의 먼지를 마시고, 하늘과 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임신으로 더 이상 말을 탈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집안에 머물며 태어날 아기를 위한 옷을 만들었다. 저스틴을 가졌을 때와 달리, 뱃속의 아이는 온전히 그녀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저스틴은 총명했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였다. 애정을 갈구하는 메기를 밀어내는 차가운 딸이었다.
10월 1일,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빨리 아들이 태어났다. 진통은 짧았고, 순식간에 세상에 나온 아기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마빛 머리카락, 푸른 눈, 작은 손과 발. 모든 것이 랄프를 빼닮았다. 메기는 루크와 랄프의 외모가 비슷한 것에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름은 정했니?” 아기를 안은 피오나가 물었다. 그녀는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데인이라고 부를 거예요.” “특이한 이름이구나. 오닐 가문 이름이니?” “아니요, 루크와는 아무 상관없어요. 그냥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메기는 젖을 물리며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황금빛 속눈썹, 보드라운 뺨, 작은 입술. 사랑으로 너무 벅차서 심장이 아팠다. 이 아이만으로 충분해. 하지만 랄프 드 브리카사르, 당신이 나보다 더 사랑하는 그 신에게 맹세컨대, 당신은 내가 당신과 그에게서 무엇을 훔쳤는지 영원히 모를 거야. 데인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을 테니. 오, 내 아가! 넌 온전히 내 아들이야. 그녀는 아들을 팔에 더 깊이 안았다. 네 아버지는 신부이기에 널 인정할 수 없어. 그러니 넌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거야. 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4.같은 해 봄, 랄프 대주교는 제노아에 도착해 로마행 기차에 올랐다. 그는 교회가 자신을 옥죄어 오는 순간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영원의 도시 로마에 도착한 그는 택시를 타고 바티칸으로 향했다. 그를 맞이한 것은 비토리오 스카르반차 디 콘티니-베르케제 추기경이었다. 상아와 황금으로 꾸며진 방, 태피스트리와 그림이 가득한 화려한 공간 속에서 추기경은 루비 반지가 빛나는 손을 내밀었다. 랄프는 그의 앞에 무릎 꿇고 반지에 입을 맞추며 뺨을 기댔다. 거짓말을 하려던 결심은 그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비토리오는 랄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의 변화를 감지했다. 고통을 알게 된 입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면서도 연민이 담겨 있던 푸른 눈은 완전히 다른 빛을 띠고 있었다. “추기경님, 고해성사를 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하게! 먼저 이야기를 나누세. 영어로. 요즘은 어디에나 귀가 있지만, 다행히 영어를 하는 귀는 없지.” 비토리오는 따뜻하게 그를 맞았다. “자네를 다시 보니 정말 좋군! 자네의 현명한 조언과 합리성, 완벽한 동료애가 그리웠네.”
추기경의 따스함에도 불구하고 랄프는 죄책감에 짓눌려 있었다. 그는 자신을 믿어준 사람을 실망시켰고, 더럽혀진 몸으로 이 순수한 존재 앞에 섰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비토리오는 그의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랄프, 우리는 사제이기 이전에 인간이야. 인간의 약점과 실패를 지닌 존재지. 자네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자네에 대한 내 생각은 변치 않을 걸세. 나는 자네가 언젠가 우리 본연의 나약함, 즉 인간성을 깨닫게 될 줄 알았네.”
“저는 제 서약을 어겼습니다, 추기경님. 용서받기 힘든 신성모독입니다.” “가난의 서약은 메리 카슨 부인의 유산을 받았을 때 이미 깨졌지. 그럼 정결과 순종이 남았나?” “세 가지 모두 어겼습니다.” 비토리오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랄프의 교만을 꺾고 스스로가 한낱 인간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주님의 뜻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랄프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괴로워했지만, 비토리오는 용서는 신의 영역이며, 진정한 겸손을 배우기 전까지는 신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타일렀다.
랄프는 마침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녀, 메기를 사랑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그녀의 운명이 자신의 운명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그녀를 자신의 피조물처럼 여기며 삶을 마음대로 조종하려 했던 교만까지 모두 고백했다. “그 장미였군.” “다른 사람이었을 리가요. 그녀는 제 유일한 피조물이니까요.”
그는 메기와 함께했던 시간이 얼마나 깊은 기쁨이었는지, 그녀의 몸뿐만 아니라 그녀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사랑했노라고 고백했다. “저는 평생 그녀를 그리워할 겁니다.” 그는 메기에 대해 후회하는 것은 그녀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그녀는 자신에게 성사와도 같은 성스러운 존재라고 말했다. 비토리오는 그의 말을 이해하며, 그 마음이 주님 보시기에 큰 죄를 감경해 줄 것이라 위로했다. 그는 랄프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해 줄 만한 신부에게 고해할 것을 조언하며, 차를 따랐다.
그는 차를 마시면서 거리에서 본 검은 셔츠의 무리들을 언급하며, 교회가 앞으로 마주할 험난한 정치적 상황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랄프에게 그의 외교적 수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교회는 불편부당한 입장을 지켜야 하며, 그로 인해 모두의 비난을 받게 되더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뒤스(무솔리니)와 총통(히틀러)의 조속한 몰락을 위해 우리가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막을 순 없지 않겠나?” 추기경의 미소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5.드로게다에는 무선 라디오라는 문명의 이기가 들어왔다. 그들은 매일 아침 길란본 지역 뉴스와 날씨를, 저녁에는 ABC 전국 뉴스를 들으며 세상과 연결되었다. 1939년 9월 3일 저녁, 응접실의 모든 이들은 로버트 고든 멘지스 총리의 목소리를 들었다.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그 결과 호주 역시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는 비통한 선언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잭과 휴이, 쌍둥이 짐스와 팻시의 눈이 빛났다. 모두가 참전을 원했다. 그러나 드로게다의 실질적 가장인 밥은 단호했다. “우리는 분별력을 가져야 해.” 그는 전쟁에서 양모와 소고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3년째 이어진 가뭄과 토끼 재앙 속에서 드로게다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설명했다. “지금 우리의 임무는 드로게다에 있어. 전투에 나서는 것만큼 흥분되진 않겠지만, 그만큼이나 필요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