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새 1
콜린 맥컬로우 지음 | 현대문학
가시나무새
콜린 맥컬로우 지음
제1부 1915-1917년 - 메기의 어린 시절과 가족의 호주 정착기
1.메기가 네 살이 된 1915년 12월, 집 안의 고요와 바깥의 노란 고스 덤불 사이로 그녀의 첫 기적이 나타났다고 했다. 얇은 종이 속에서 드러난 금빛 머리칼과 분홍 크리놀린의 인형, ‘애그니스’는 메기의 세계를 한 번에 밝히는 별처럼 와 닿았다. 메기는 그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 “애그니스!”그녀의 손끝은 조심스러웠고, 인형의 생생한 속눈썹과 눈동자, 칠흑 같은 점, 작게 벌어진 입술과 그 사이의 치아 같은 디테일에 넋을 잃었다.
그러나 형제들은 그 기쁨의 조각을 거칠게 뒤틀었다. 잭과 휴이는 인형의 관절을 꺾어보며 소녀의 가슴을 죄었고, 메기는 두 팔로 애그니스를 끌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안 돼, 그건 내 인형이야! 생일 선물 받은 거란 말이야!” 그녀의 항변은 흙 묻은 손과 억지웃음에 밀려났다. 인형의 스커트는 흙에 절었고, 진주 구슬은 풀잎 사이로 흩어졌다. 울음이 커질 때, 프랭크가 나타나 말보다 먼저 분노로 소년들을 쫓고, 메기의 어깨를 가만히 붙잡아 숨을 고르게 했다. 그의 팔에서 메기는 아직 낯선 위안의 냄새, 말과 땀과 쇠의 온기를 맡았다.
프랭크는 풀밭을 기어 진주를 찾았다. “봐, 첫 번째다. 다 찾을 수 있어. 기다려 봐.” 메기는 오빠의 손놀림을 반짝이는 눈으로 쫓았다.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회복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머리칼을 빗어주려던 순간 인형의 금빛 가발이 통째로 뽑히며, 머리 없는 공허가 드러났다. 소녀의 비명은 가늘고 예리했다. 프랭크는 메기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내 자신의 목 언저리에 포개어 안고, 천천히 그 공포의 내부를 설명해 주었다. 눈이 어떻게 축을 따라 움직이는지, 그 정밀함이 어떤 식으로 살아 있는 듯 보이게 하는지를. “괜찮아. 인형의 내부일 뿐이야.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아.”
한참의 설득 끝에 메기는 다시 애그니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물은 오빠의 손등에 떨어져 번지고, 그는 그것을 그냥 닦아냈다. 메기의 마음은 아직 약했고, 세상은 잔혹했지만, 두 사람 사이로 작은 결속이 맺혀갔다. 프랭크는 메기를 번쩍 안아 부엌으로 데려가며 말했다. 옷을 씻고 말리고, 머리칼을 다시 붙이고, 진주로 머리핀을 만들어주겠다고. 그 약속은 가난한 집의 날것 같은 삶 속에 적힌 한 줄의 온기였고, 메기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그 말 위에 조용히 기댔다.
2.부엌의 엄마 피오나는 침착했다. 인형의 옷은 내일 빨고, 오늘 밤 머리칼을 다시 붙이자고 했다. 위로의 말은 없었지만, 절차는 약속이었다. 메기는 그 무심한 손길 속에서도 불을 지피고 빨래를 널고 다시 불로 돌아오는 엄마의 삶을 보았다. 그녀의 발은 쉬지 않았고, 눈빛은 피곤을 넘어 굳어 있었다. 여섯 아이 중 딱 하나뿐인 딸이 빨리 자라 자신의 손이 되기를, 그녀는 묵묵히 기다렸다.
그날은 아버지 파드릭도 집에 있었다. 양털 깎는 철 따라 흘러다니는 계절노동자, 말 다루는 팔과 양털 냄새, 불쑥불쑥 솟는 불같은 성미. 그는 문간에서 장난치던 아들들의 엉덩이를 툭 차고, 부엌에서는 메기를 무릎에 올려 수염을 투과하는 불빛 놀이를 받아주었다. 애정은 과장되지 않았고, 오히려 결핍으로 증명되었다. 빵이 모자라면 그가 굶었고, 옷이 모자라면 그가 포기했다. 선명한 머리칼처럼 그의 기질은 단단했으나, 메기에게는 늘 미소를 남겼다.
“기분은 어떠냐, 메기?” “아주 좋아요, 아빠.” 피오나는 잭과 휴이가 인형을 망가뜨렸다고 덤덤히 말했다. 파드릭은 “사내아이야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겼지만, 프랭크에겐 엄했다. 피오나는 프랭크를 감쌌다. “방금 공구 가지러 내려왔을 뿐이에요.” 그 짧은 변호 안에 맏아들의 자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엿보였다. 메기는 속삭였다. “프랭크는 최고의 오빠예요. 애그니스를 살렸고, 오늘 밤 머리도 붙여 줄 거예요.”
식사 준비의 시간, 부엌은 가정의 심장처럼 뛰었다. 파드릭은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담배를 빨며 잠깐의 선잠에 들었고, 프랭크는 장작을 옮겼다. 식탁의 자리는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고, 메기는 아버지 옆 나무 상자 위에서 발을 흔들었다. 그들 곁으로 저녁의 열기와 그림자가 출렁였고, 집은 가난했으나 질서가 있었다. 그리고 그 질서 한가운데, 인형의 머리칼을 다시 붙이겠다는 소년의 약속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저녁은 넉넉하고도 고단했다. 스튜 냄비는 오래 끓여 단단해진 하루를 풀었고, 접시는 산처럼 쌓인 감자와 콩, 양고기로 채워졌다. 메기는 생일이라서 더 달콤해진 입맛으로 커스터드 위 잼 줄무늬를 만들며 숟가락을 흔들었다. 파드릭은 웃었고, 피오나는 식탁과 화덕, 물 끓는 주전자와 작업대 사이를 지휘자처럼 오갔다. 먹는 일은 노동의 연장이었고, 달콤한 푸딩은 피로 위에 얹는 얇은 담요였다.
차가 건네지고 말이 흐르며, 여름방학의 계획이 아이들 입에서 피어났다. 책 속으로 고개를 묻은 파드릭과 밥, 그리고 찻잔으로 입을 적시는 프랭크. 피오나는 마침내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아, 이때만큼은 천천히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밤은 곧 다시 일을 불러냈다. 메기의 머리는 밤마다 천을 말아 감아야 했고, 잭과 밥은 개에게 먹이를 주러 나갔으며, 프랭크는 애그니스의 머리칼을 하나하나 붙였다. 잠시 후 파드릭이 방으로 들어가자 부엌의 규율은 조용히 흔들렸다. 남자의 손이 설거지에 닿아서는 안 된다는 법칙을 어기듯, 프랭크는 수건을 들어 접시를 말렸다. 피오나는 일부러 늦게 싱크대를 채우고, 둘은 눈짓만으로 역할을 나눴다.
“네가 없으면 어쩔 뻔했니, 프랭크. 그래도 이러지 말아라. 내일 피곤해질 테니.” “괜찮아요, 엄마. 이 정도로 엄마 삶이 조금은 가벼워지잖아요.” 소망은 부엌등 아래서 더 선명했다. 프랭크는 “부자가 되면 엄마에게 하녀를 대줄 게요”라고 말했고, 피오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꿈이란다. 우린 노동으로 살아. 굳은살 박힌 손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정직의 표야.” 말끝에 뼈처럼 남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견디게 하는 모자의 공모. 프랭크는 말없이 인형을 안전한 곳에 감추어 두었다.
피오나는 등을 돌려 집안을 돌며 잠든 아이들의 숨을 살폈다. 한 방에서는 밥이 개처럼 몸을 꿈틀거렸고, 다른 방에서는 잭과 휴이가 포개진 채 얽혀 잤다. 스튜어트는 땀으로 베개를 적셨고, 메기는 엄지손가락을 문 채 머리수건을 둥글게 말고 잠들어 있었다. “아들들”은 그녀의 자부심이자 사회의 추천서였고, “딸”은 예정된 삶을 향해 말없이 굴러가는 별 같았다. 피오나는 머리핀을 풀고, 다시 머리카락을 단단히 땋았다. 침대 쪽으로 돌아서며 숨을 멈추었다가, 파드릭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더 많은 아이는 어렵다고, 그녀의 몸은 말해주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마다 메기는 문앞 고스 덤불 옆에 홀로 남았다. 작디작은 아이는 아직 성당에 갈 수 없었고, 대신 형제 중 하나가 곁을 지키며 미사를 빼먹는 기쁨을 누렸다. 파드릭에게 신앙은 삶의 일부였고, 피오나는 영국국교회의 기억을 남겨둔 채, 남편의 신앙을 받아들였으나 넘어가지는 않았다. 두 집안의 오래된 내력은 메기의 현재와 조용히 엮였다. ‘개척자 암스트롱’의 자취와, ‘가난한 이민자 클리어리’의 발자취가 한 식탁 위에서 부딪히며, 작은 소녀의 세계는 땀과 빵, 불빛과 기도로 조금씩 넓어지고 규율과 애정 사이에서 결을 잡아갔다. 뉴질랜드의 하늘 아래, 이 가족의 가난과 자부심은 한 문장 안에서 쉼표로 이어졌다.
3.첫 등교날 아침, 메기는 설렘에 아침을 토하고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목이 죄는 갈색 원피스가 답답했으나, 그녀는 오빠들의 붉은 머리 사이를 따라 길을 나섰다. 붉은 흙길, 푸른 풀의 띠, 울타리 위를 걷는 밥과 잭, 그리고 뒤에서 헐떡이는 작은 다리. 언덕의 꼭대기에서 다섯 개의 머리는 구름을 배경으로 부풀었고, 내리막은 아이들의 놀이가 되었다. 끝내 다리가 풀린 메기는 밥의 등에 올라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와히네는 조촐했다. 현수막처럼 드리운 호텔의 처마, 물건이 뒤섞인 잡화점의 유리창, 프리메이슨 회관의 낡은 깃발, 말 먹이통 옆에 서 있는 휘발유 펌프. 진짜 눈을 잡아끄는 건 유일하게 파란색으로 칠한 가게였다. 공립학교와 영국국교회는 나란히 서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가톨릭 성당과 수녀원의 학교가 있었다. 종소리가 연달아 울리고, 아이들의 발소리가 자갈 마당을 갈랐다.
메기는 처음 보는 수녀 앞에서 숨을 삼켰다. 칼날 같은 윔플의 모서리, 붉게 달아오른 피부, 철테 안경이 남긴 자국, 허리띠에 매달린 나무 묵주. 수녀는 거칠어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 늦었니, 로버트 클리어리?” 밥은 눈길을 휘청이는 회초리 끝에 고정한 채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죄송합니다, 수녀님.” 대답은 같았고, 목소리는 점점 말라갔다.
학교라는 질서의 첫 장은 이렇게 열렸고, 메기의 세계는 또 다른 규칙과 두려움을 배워야 했다. 첫 수업 시간, 매질의 냄새가 교실 공기를 바꿨다. 수녀의 푸른 눈빛은 차갑게 떨렸고, 메기가 죄를 자진 고백한 순간 회초리는 더 정확해졌다. 손바닥 한가운데, 손가락과 손바닥의 경계, 손끝. 살갗이 가장 예민한 곳을 골라 내려찍는 소리와 함께 붉은 선이 올라왔다. 메기는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았고, 억울함은 교훈보다 먼저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점심이 되어서야 통증이 가셨다. 뒷자리의 작은 책상, 맞은편에 앉은 까만 눈의 소녀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메기는 처음 보는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창백한 피부와 주근깨의 세계에서, 그녀는 낯선 빛이었다. 그러나 다시 울린 이름, 다시 내려오는 지시. “왜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메기는 벌떡 일어서서 손을 내밀라는 명령을 받았다. 회초리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그 순간, 몸은 먼저 반응했다. 그녀의 입에서 토가 쏟아져 수녀의 검은 옷 앞자락을 적셨다. 정적 다음에는 분노였다. 회초리는 무작위로 떨어졌고, 메기는 팔로 얼굴을 가린 채 구석으로 몰렸다. “집으로 가.” 문이 닫히는 소리까지가 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닿은 뒷마당에서 피오나는 젖은 빨래 바구니를 든 채 한숨을 쉬고는 담담히 말했다. “아버지 말씀을 들어봐야겠구나.” 위로는 없었으나, 삶은 계속되는 법이었다. 대장간에서 프랭크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메기는 마른 울음으로 오빠의 목을 끌어안았다. 말로는 닿지 않는 상처 앞에서, 두 사람은 마굿간의 건초 더미에 나란히 앉았다. 말의 숨결이 건초를 뒤집고, 메기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왜 우리를 때렸을까, 프랭크? 내가 잘못했다고 말했는데.” 프랭크는 말의 코를 쓰다듬으며 낮게 답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규칙이 더 냉혹하다고, 부자 아이들이 타고 오는 마차와 교회의 기증품이 매질의 강도를 바꾸어 놓는다고. 교실의 정의는 신의 집 앞에서조차 흔들린다고. 메기는 그 말의 의미를 다 알지 못했으나, 오빠의 체온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4.프랭크의 목소리는 낮았고, 말의 숨결은 따뜻했다. 그리고 클리어리의 법칙 하나, “절대 울지 마라.”라는 말에 메기는 하품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고, 건초 더미 위에서 잠이 들었다. 해 질 녘 외양간으로 들어온 파드릭은, 더러운 팔과 젖은 머리로 딸을 보았다. 그가 딸을 번쩍 안아 올렸을 때, 우유와 토의 냄새가 훅 끼쳤지만 그는 등을 두드렸다. “오늘 나 매 맞았어요, 아빠.” 메기의 말에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수녀님을 알지만,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게야.”
그날 이후, 회초리는 여전히 그녀를 찾았다. 다만 거리를 뒀다. 수녀는 소녀의 위장을 기억했고, 그만큼 힘은 빠졌다. 교실 뒤편, 메기의 곁엔 검은 눈동자의 소녀가 앉았다. 와히네의 파란 가게를 가진 이탈리아 집안의 막내딸, 테레사 안눈치오. 그녀의 어둠은 메기에게 낯선 아름다움이었고, 곧 둘은 팔을 걸고 운동장을 걸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파란 가게 안에서 기름 향이 소리처럼 끓었다. 굵은 감자칩과 바삭한 생선살, 뜨거운 양고기 기름의 번들거림. 메기는 그날의 맛을 오래오래 혀에 간직했다. 집에 돌아와선 “테레사가 그러는데”로 문장을 시작했다가, 아버지의 인상을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나 질투 많은 오빠도, 속 좁은 마을의 편견도 그 우정을 꺾진 못했다.
수업의 기호들은 점차 의미를 얻었다. 더하기는 모으는 일이었고, 빼기는 덜어내는 일이었다. 읽기는 세계의 문이었다. 그러나 질문이 날아오면 메기의 혀는 굳어버렸다. 결정적인 전쟁은 왼손에서 시작되었다.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왼팔은 끈으로 묶였다. 아침 조회부터 종례까지, 점심에도 놀 때에도, 왼쪽은 봉인되었다. 세 달이 지나 글자는 오른손으로 억지로 그려졌고, 두 달을 더 묶인 끝에 전교생은 묵주기도를 올렸다. “하느님의 지혜로 메기가 올바른 손을 찾았다.” 수녀의 말은 승전보처럼 울렸다. 그러나 메기의 손끝에는 여전히 억울함이 떨렸다.
그해, 메기는 살이 빠지고 키는 크게 자라지 않았다. 그녀는 손톱 살점까지 물어뜯었고, 수녀는 그녀의 손을 아이들 앞에 돌려보게 했다. 쓴 알로에가 발라진 손가락, 씁쓸한 맛을 지우려 문질러 벌겋게 벗겨진 피부. 훈육을 위한 파드릭의 채찍은 다리만을 스쳤다. “손, 얼굴, 엉덩이는 안 된다.” 집의 규칙은 그나마 자비로웠다. 그럼에도 메기는 여전히 손톱을 물어뜯었다. 오직 테레사와 함께 걷는 시간만이 그 모든 것을 잊게 했다.
5.테레사와의 우정은 메기가 학교를 버티게 해주었다. 큰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 서로의 허리를 끌어안고 앉아 하루의 조각들을 늘어놓았다. 메기가 진짜로 부러워한 것은 포옹이 아니라 파란 버들무늬 찻잔 세트였다. 얇고 반투명한 잔과 접시, 장난감 같은 포크와 나이프가 반짝였고, 소녀는 성체의 빛 대신 푸른 잔의 개수를 세며 기도했다.
생일을 코앞에 둔 아침, 피오나의 손이 헝겊을 풀자 메기의 머리칼이 소시지처럼 말려 내려왔다. 그런데 그 순간 피오나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오, 맙소사….” 햇빛 속에서 황금 머리카락 사이로 하얗게 붙은 알과 잽싼 벌레들이 움직였다. “이가 들었구나.” 파드릭의 얼굴이 굳었고, 소년들은 의자째 뒤로 물러났다. 피오나는 분노와 연민 사이에서 가위를 들었다. 반짝이던 곱슬머리카락이 바닥 위에 우수수 쌓여 갔다. 순식간에 부엌은 작은 병원이 되었다. 뜨거운 물이 김을 뿜고, 등유와 가성 소다 비누 냄새가 매캐했다. 머리는 불붙은 듯 쓰라렸고, 얼굴엔 물집이 맺혔다. 시트와 담요가 삶아져 펜스에 걸렸고, 프랭크와 피오나는 매트리스와 바닥까지 집을 통째로 씻어냈다.
메기는 헛간 뒤 그늘에서 웅크리고 울었다. 수치심은 화상보다 깊었고, 머리칼이 사라진 자리에서 바람이 불었다. 더 가혹한 것은 분노의 향배였다. 파드릭은 곧장 와히네로 달려가 테레사네 가게를 향해 소리쳤고, 수녀원으로 가서는 교실의 아이들 머리를 뒤지게 했다. 수녀들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자기 머리까지 긁적였다.
저녁 무렵, 파드릭이 돌아왔다. 잘려나간 머리를 본 그는 의자에 털썩 앉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메기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젠 형제들하고만 지내라. 그 외엔 안 된다.” 메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얇은 접시가 금 가는 소리가 났다. 테레사의 어둡고 따뜻한 세계가 문밖에 남겨진 채, 집 안의 질서는 다시 굳게 닫혔다.
그날 밤, 메기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오래도록 깨어 있었다. 등유 냄새가 머리맡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손끝에는 버들무늬 잔의 가장자리가 만져지는 듯했다.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테레사, 내일도 무화과나무 아래로 와 줘.” 대답은 오지 않았지만, 소녀는 알았다. 다음 날도 학교는 열릴 것이고, 회초리는 조금 비껴서 떨어질 것이며, 테레사의 팔은 다시 그녀의 허리를 감쌀 것이라고. 그리고 버들무늬 찻잔의 푸른빛은, 당분간은 꿈속에서만 반짝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