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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

A. J. 크로닌 지음 | 고전문학


천국의 열쇠

A. J. 크로닌 지음





제1부 끝의 시작




1908년 9월, 어느 짙어가는 가을날의 늦은 오후였다. 서쪽 하늘이 짙은 주홍빛으로 물들 무렵, 프란시스 치셤 신부는 트위드사이드의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 사제관으로 향했다. 발밑으로 펼쳐진 트위드강과 어우러진 마을의 정겨운 풍경에, 그의 마음에 잠시 평화로운 만족감이 깃들었다. 세월의 무게가 굽은 허리와 절뚝이는 다리에 고스란히 실려 있었으나, 그 눈빛은 여전히 온화했고, 마을을 감싸는 트위드강의 유유한 흐름을 바라보며 그는 숨을 고르듯 발걸음을 멈추었다.

사제관의 정원에서 잘 익은 배 하나를 몰래 따 사제복에 숨기는 소박한 장난기가 발동하기도 했지만, 현관에 서 있는 자동차 한 대가 그 평화를 깨뜨렸다. 그는 로마에서 온 편지가 예고했던 불청객의 방문을 떠올렸다.

응접실에서 마주한 교구장 주교의 비서 슬리스 몬시뇰은 젊고, 야심만만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치셤의 초라한 사제관과 동양의 기념품 하나 없는 볼품없는 실내에 노골적인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처음부터 어긋났다. 슬리스가 타인캐슬 주교좌 성당의 화려한 대리석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동안, 치셤은 그저 소박한 스코틀랜드식 ‘하이 티’를 내어올 뿐이었다.

식사 자리의 냉랭함은 앤드류라는 소년의 등장으로 한층 얼어붙었다. 치셤의 보살핌을 받는 앤드류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내성적인 아이였다. 슬리스는 아이를 시험하듯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는, 그 무지에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자신이 호화로운 음식을 즐기는 동안 치셤과 앤드류는 오트밀 죽만 먹는 모습을 보자, 저 늙은 사제의 금욕은 위선일 뿐이라는 불쾌한 생각마저 스쳤다.

이윽고 식사가 끝나자 슬리스는 본론을 꺼냈다. 그는 치셤의 오랜 세월에 대한 보상이라는 미명 아래, 주교가 그의 은퇴를 원하고 있음을 분명히 전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주교님과 저는 신부님의 길고 충실했던 세월이 이제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은퇴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치셤은 단호히 대꾸했다. “하지만 나는 은퇴할 생각이 없소.”

슬리스는 치셤의 ‘동양적인 기행’과 ‘엉망이 된 본당 사무’를 들먹이며 은퇴의 정당성을 역설했지만, 치셤은 중국에서 보낸 35년의 세월로써 묵직하게 응수했다. 슬리스 몬시뇰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그는 치셤 신부의 ‘비상식적인’ 행정 처리를 문제 삼았다. 동전으로만 지불된 양초 값 청구서 같은 사소한 것부터, 교리를 왜곡하는 듯한 설교 내용까지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성령강림주일에 신자들에게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그것은 당신의 손바닥 안에 있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또 ‘무신론자라고 모두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오. 지옥은 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자들만을 위한 곳이오!’라고도 하셨지요. 맙소사, ‘그리스도는 완벽한 인간이었지만, 공자는 더 나은 유머 감각을 가졌소!’ 이건 또 무슨 말입니까.”

슬리스는 금테 두른 수첩을 넘기며 비난을 이어갔다. “뚱뚱한 신자에게 ‘낙원의 문은 좁으니 적게 먹으라’고 조언한 적도 있죠? 신부님은 영혼들을 다스리는 능력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치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대꾸했다. “나는 누구의 영혼도 다스리고 싶지 않소.”

결국 슬리스는 앤드류의 문제를 꺼내 들었다. “아이를 당장 교구의 고아원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러자 치셤은 그의 위선을 꿰뚫는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라면 어린 시절을 그 고아원에서 보내고 싶겠소?” 슬리스는 더 이상 논쟁을 이어가지 않고, 며칠간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홀로 남은 치셤 신부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힘들게 얻은 평화가 위협받는 현실에 그는 깊은 무력감에 휩싸였다. 그는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고 싶은 심정으로 층계를 올랐다. 다락방에는 앤드류가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몰래 숨겨왔던 배를 꺼내 아이의 머리맡에 가만히 놓아주었다. 창밖으로 펼쳐진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의 생각은 문득 60년 전,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그날로 아득히 날아갔다. 그의 인생에 어떤 무늬가 새겨지기 시작했다면, 그 첫 획은 바로 그날 그어졌을 터였다.



제2부 기이한 소명



제1장


그의 기억은 60년 전, 비 내리는 어느 봄날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아홉 살의 프란시스는 따스한 부엌 난롯가에서 아버지와 함께 이른 아침을 먹었다. 뜨끈한 귀리죽과 갓 구운 오트케이크의 냄새, 그리고 곧 아버지와 함께 연어잡이를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에 그는 마냥 행복했다.

그의 아버지 알렉스 치셤은 과묵했지만 다정한 사람이었고, 프란시스는 그런 아버지를 세상 누구보다 존경했다. 강가에서 아버지와 나란히 서서 그물의 움직임을 응시하던 순간들, 함께 낚시를 하고 블루베리를 따던 기억들은 그의 유년기를 수놓은 소중한 추억이었다. 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살뜰하고 현명한 여인이었고, 서로 다른 믿음을 가졌음에도 부부는 깊은 사랑으로 서로를 존중했다.

하지만 그 평온했던 아침, 식탁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어머니가 그날 저녁에 있을 ‘버제스 콘서트’에 대해 운을 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공식적인 자리를 불편해했지만, 아내를 위해 마지못해 참석을 약속했다. 어머니는 안도하며 타인캐슬에서 폴리 고모와 노라가 오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나는 에탈에 다녀와야 해.” 아버지의 조용하지만 단호한 말에 어머니는 하얗게 질렸다. 에탈은 아버지가 매달 어획량 기록을 확인하러 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그곳은 최근 들어 격렬한 종교 박해가 벌어지고 있는 위험한 장소였다. 지난달에도 아버지는 그곳에서 폭도들과 싸워야 했다. 어머니는 이번만큼은 가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아버지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내가 도망치는 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여보?”

그는 아내를 안심시키듯 따뜻하게 미소 짓고는, 실망한 프란시스에게 오늘 하루는 집에 머물며 어머니를 도우라고 말했다. 소년은 반박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문가에 잠시 서서 깊은 애정이 담긴 눈으로 가족을 바라본 뒤, 묵묵히 밖으로 나섰다.

그날 오후, 프란시스는 사촌인 노라와 폴리 고모를 맞으러 역에 나갔다. 명랑하게 재잘거리는 노라 옆에서도 그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어째서 같은 신을 다른 방식으로 섬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증오해야 하는 걸까? ‘종교’라는 단어가 그의 가슴에 차가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그날따라 유난히 들떠 있던 노라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프란시스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제2장


정원에서는 안셀름 밀리를 향한 노라의 짓궂은 장난이 시작되었다. 독실한 신앙심으로 ‘성스러운 아이’라 불리는 안셀름은 프란시스에게 묘한 수치심과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소년이었다. 그의 과시적인 신앙은 프란시스의 내면 깊은 곳을 건드렸다. 안셀름이 제안한 ‘성 율리아’ 축일 행렬 놀이는 결국 노라가 파놓은 진흙 구덩이 함정으로 끝이 났다. 새하얀 선원복 차림의 안셀름이 진흙탕에 빠져 울부짖는 동안 노라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프란시스는 웃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위험한 길을 걷고 있을 시간에 벌인 유치한 장난에 죄책감만 더해졌다.

저녁 식사 시간, 집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시계로 향하는 잦은 눈길은 그녀의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폴리 고모가 분위기를 환기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알렉스는 왜 이렇게 안 올까요. 이러다 우리 모두 늦겠어요.”

마침내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프란시스는 어둠 속에서 아버지에게 닥칠지 모를 끔찍한 일들을 상상하며 몸서리쳤다. “저도 갈게요, 어머니.” 폴리 고모의 현명한 조언에, 어머니는 결국 프란시스의 손을 잡고 쏟아지는 빗속으로 나섰다. 에탈 거리로 난 좁은 길목엔 신자들을 향한 증오가 다시 불길처럼 번지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새로 부임한 시장이 장터에서 ‘종교의 적(敵)을 몰아내라’고 선동한 탓이었다. 칼자루를 쥔 몰지각한 자들이 천막 아래 모여들었고, 카톨릭 신도들은 집을 버리고 도망쳤다.

두 사람은 질퍽한 초원을 가로질러 필사적으로 걸었다. 아버지가 늘 들르던 3번 초소는 굳게 잠겨 있었다. 마침내 5번 초소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발견하고 그곳에 다다랐을 때, 더 이상 참지 못한 프란시스가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루 종일 그를 짓눌렀던 불길한 예감은 끔찍한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아버지는 벤치에 길게 누워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으며 피가 묻어 있었다. 이마에는 커다란 보랏빛 상처가 나 있었고, 한쪽 팔은 조잡하게 붕대에 감겨 있었다.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아버지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알렉스… 알렉스… 다쳤어요?” 아버지는 흐릿한 눈으로, 상처투성이의 입술을 억지로 움직여 미소를 지어 보이려 애썼다.

제3장


아내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선 알렉스는 불어난 강물을 보고 타일공장 다리로는 건널 수 없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한시라도 빨리 그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지름길을 택했다. 위태로운 다리를 건너던 중, 폭우로 미끄러워진 판자에서 알렉스의 발이 미끄러졌다. 불어난 강물이 순식간에 그의 장화를 채우며 그를 끌어당겼다.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그를 필사적으로 붙잡았지만, 거센 물살은 두 사람을 함께 어둠 속으로 삼켜버렸다. 의사를 부르러 먼저 떠났던 프란시스는 밤새도록 부모님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강 하구 모래톱 근처에서 서로를 꼭 부둥켜안은 채 발견되었다.

폴리 고모의 집 거실엔 초가 타들고 있었고, 사촌 노라는 충혈된 눈으로 그를 껴안았다. 두 아이는 같은 침대에서 새벽까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친척들은 프란시스를 둘러싸고 낮은 목소리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의 아버지가 ‘가톨릭’이라는 이유로 마을에서 기피되었던 까닭에, 장로교도인 외가와 친가 사이에도 싸늘한 균열이 오래도록 숨 쉬고 있었다. 결국 프란시스는 폴리 고모가 기르려 했으나, 외조모 글레니 부인이 유산을 차지하려고 가로채 글레니가(家)의 돌담집으로 보내졌다.

그로부터 4년 후, 열세 살이 된 프란시스는 외가인 글레니 빵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를 학교에도 보내며 살갑게 구는 듯했지만, 그들의 선행은 금세 빛이 바랬다. 프란시스는 이제 글레니가에게 귀찮은 셋방살이 신세일 뿐이었다. 매일 밤 대로우 조선소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하지만, 그날 저녁 그의 눈은 중요한 결심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부엌은 언제나처럼 지저분했다. 법률가 지망생 외삼촌 말콤은 법률 서적을 펼쳐놓고 기름진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프란시스는 굳은살 박인 손으로 묵묵히 저녁을 먹었다. 외조모 글레니 부인은 아들 말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으면서도, 프란시스에게는 냉랭했다. 그러면서 곧 있을 남편의 길거리 설교에 동행해야 한다며 순교자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성자 댄’이라 불리는 외조부 다니엘은 선량했지만 몽상가였다. 그는 손자에게 친절했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워 아내가 프란시스를 구박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외조모는 프란시스에게 들어간 70파운드의 유산이 아깝다고 생각하며, 그의 식비와 학비까지 아까워했다. 낡아빠진 옷을 물려 입히고, 학비를 일부러 늦게 내어 망신을 주기도 했다. 프란시스는 끔찍한 고독 속에서, 가끔 외할아버지와 단둘이 난롯가에 앉아 성경을 읽는 시간에서만 유일한 위안을 찾았다.

결정적으로 프란시스가 학교 백일장에서 외사촌 말콤을 이기자, 외조모의 괴롭힘은 극에 달했다. 그녀의 등쌀에 못 이겨, 다니엘은 결국 프란시스의 학업을 중단시키고 그를 대로우 조선소의 리벳 소년으로 보냈다. 그의 나이 열두 살, 주급은 3실링 6펜스였다.

제4장


그날 저녁, 프란시스는 설거지를 마치고 급히 집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서덜랜드 털럭 의원의 약방이었다. 그곳에는 의원의 아들이자 그의 유일한 친구인 윌리 털럭이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결정했어?” 윌리의 물음에 프란시스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들은 토요일 아침에 떠나는 기차 편까지 알아봐 둔 참이었다. 윌리는 그의 오랜 친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둘의 우정은 주먹다짐으로 시작되었다. 윌리가 프란시스의 신앙을 조롱하는 말을 내뱉은 것이 발단이 되어, 두 사람은 일주일 내내 주변 아이들의 강요에 못 이겨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단둘이 마주친 순간,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며 화해했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윌리의 집으로 가는 길, 그들은 광장에서 길거리 설교를 하고 있는 프란시스의 외할아버지를 지나쳐야 했다. 그때, 술에 취한 조선소의 망나니 조 모이어가 패거리를 이끌고 나타나 행패를 부리려 했다. 프란시스의 눈에 외조모와 말콤이 토마토 세례를 맞는 장면이 스쳐 지나가며 통쾌한 상상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세상의 모든 증오에 맞서 사랑을 외치는 외할아버지의 진실된 얼굴을 보았다.

프란시스는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조 모이어의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 “이러지 마, 조! 제발! 우리 친구잖아, 응?” 조는 잠시 망설이다가, 프란시스가 ‘성자 댄’의 손자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마지못해 패거리를 이끌고 자리를 떴다. 윌리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랬어, 프란시스?” “나도 몰라… 할아버지 말씀에 뭔가 있어… 지난 4년간 증오라면 신물이 나. 사람들이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않았어도, 우리 부모님은 물에 빠져 죽지 않았을 거야….”

프란시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탈출 계획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날 밤 그는 증오의 연쇄를 끊어낸 자신의 행동에서 기묘한 위안을 느꼈다. 윌리의 집은 언제나처럼 소란스럽고 따뜻했다. 윌리의 어머니 아그네스는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프란시스를 다정하게 맞아주었다.

제5장


윌리의 집은 프란시스가 꿈에 그리던 가정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소란스러움과 부모의 따뜻한 애정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 프란시스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었다. 털럭 박사는 유쾌한 농담으로 그를 격려했고, 윌리는 문 앞에서 그의 손을 잡으며 행운을 빌어주었다. 다음 날 새벽, 프란시스는 마지막으로 조선소로 향했다. 하루 종일 뜨거운 불과 차가운 철판 사이를 오가며 고된 노동을 했지만, 그의 마음은 내일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그날 밤, 그는 고통스럽게 모아온 돈을 외조모에게 들키지 않도록 외투 안감에 꿰맸다. 외조모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느꼈지만, 그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토요일 정오, 조선소를 마지막으로 나선 그는 곧장 마을을 빠져나와 알스테드 역으로 향했다. 맨체스터의 방직 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역 매표소에서 그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가 내민 돈은 반 소버린짜리 금화가 아닌, 새 파딩 동전이었던 것이다. 외투를 뜯어보자, 어설픈 자신의 바느질 대신 꼼꼼하고 단단한 바느질 자국이 남아있었다. 외조모가 그의 돈을 훔쳐 간 것이 분명했다. 절망에 빠진 프란시스는 눈앞에서 기차가 떠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짙은 안갯속에서 홀로 길을 걷던 프란시스는 우연히 털럭 박사의 마차와 마주쳤다. 박사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를 집으로 데려가 따뜻한 수프를 먹이고, 진찰을 해주었다. 소년의 앙상한 가슴을 진찰한 박사는 분노를 터뜨렸다. “젠장! 우리는 아이들을 이용해 군함을 만들고, 탄광과 방직 공장에서 착취하지. 우리는 기독교 국가야. 허 참! 차라리 이교도인 게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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