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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 고전문학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제1부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여든 날 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

처음 40일 동안은 소년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84일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그에게 이제 노인이 누가 뭐래도 틀림없이 ‘살라오’가 되었다고 말했다. ‘살라오’란 스페인 말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년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다른 배로 옮겨 타게 되었는데, 그 배는 첫 주에 큼직한 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다. 소년은 날마다 노인이 빈 배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노인은 마을 외곽의 오두막에 홀로 살았다. 사람들은 노인이 행운을 잃었다고들 말했지만, 그는 좀처럼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노인은 바다가 다시 자신을 받아줄 거라 믿었고,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인내와 확신을 시험받는 시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소년은 노인을 깊이 따르고 존경했으며, 어릴 때부터 노인과 함께 바다로 나갔다. 소년은 노인의 작은 배 위에서 그가 사용하는 낚싯줄과 도구들을 익혔고, 그가 단단히 묶어두는 매듭에 깃든 의미까지 이해했다. 소년은 틈틈이 노인을 찾아와 도구를 옮기는 것부터 미끼를 준비하는 일까지 손수 도왔다. 노인은 이미 늙었고, 팔과 어깨에는 깊게 새겨진 주름이 있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온기가 있었다.

노인은 마을의 좁은 골목을 지나 한동안 조용히 바다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곧 낚싯바늘을 다시 점검하고 낚싯줄 매듭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실패는 많은 경험을 가져다줬고, 그 경험으로 노인은 스스로를 다잡는다. 몇몇 젊은 어부들은 노인을 비웃으면서도 동시에 미안함을 느낀다. 노인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대놓고 지적하지 않는다. 대신 커다란 해를 등에 지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배는 작고 낡았지만, 노인은 배의 틈새마다 손때를 남겨가며 고쳤다. “배가 떠 있기만 하면 나는 다시 나갈 수 있어.” 바다는 가혹하면서도 관대했다. 노인은 그것을 잘 알았다. 바다는 기회를 주고, 또 순식간에 모든 것을 빼앗기도 했다. 그렇기에 노인은 바다를 사랑했다. 바다는 노인에게 언제나 스승이었고, 때로는 친구였으며, 때로는 거대한 적수이기도 했다.

소년이 저녁 무렵 노인을 찾아왔다. 집 안은 허름한 침대와 테이블, 벽엔 낚시에 관련된 그림 몇 장이 전부였다. 소년은 물었다. “내일도 바다에 나갈 거예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반드시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낙담이 아니라 소박한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소년은 그런 노인을 믿었다.

둘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변변치 않은 식사였지만, 둘이 함께 웃으며 맛을 음미했다. 노인은 소년을 바라보며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스스로 가장 용맹했던 시절, 먼 바다에서 커다란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던 시간, 손바닥이 찢어졌어도 낚싯줄을 놓지 않았던 고집, 그리고 결국은 조수와 날씨가 도와서 그 물고기를 잡았던 무용담이 이어졌다. 소년은 눈을 반짝이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지금 자기 앞에 앉은 노인의 고단함을 느꼈다. 그 기나긴 싸움이 남긴 것은 칭송이나 부나 명예가 아니라, 한숨과 고요의 지혜라는 것을 소년은 조금씩 깨달아 갔다.

식사가 끝났고, 노인은 커다란 신문 조각을 들춰 메이저리그 야구 소식을 훑었다. 소년과 함께 디마지오의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며, 그의 강인함을 떠올렸다. 노인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생각했다. “내 팔과 어깨가 아직 건재했더라면, 바다 위에서도 누구보다 오래 견뎠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찾아온 육체적 쇠퇴를 노인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노인은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은 밤이 깊어 갈 때쯤 자리를 떴다. 노인은 배의 노와 밧줄을 재점검했다.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몸을 눕혔지만, 머릿속은 이미 바다 위로 나가 있었다. 내일은 85일째였다. 노인은 종종 손에 감각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어깨는 무겁고 허리는 욱신거렸지만, 낚싯줄을 던질 자신은 있었다. 그는 잠들기 전, 다시 한 번 속삭였다. “내일이면 잡을 거야. 확실히.”

바람은 집의 빈 틈새를 스쳤고, 먼 하늘 어딘가엔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노인은 길고 얇은 호흡을 내쉬었다. 바닷물 냄새를 떠올리며, 파도 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바다는 아직 잠들지 않았고, 그 역시 완전히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 그는 서서히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젊은 시절 아프리카 해안에서 봤던 사자들과 맑게 빛나던 해변의 환영이 머릿속을 채웠다. 아득해지려는 의식 속에서도 노인은 다시금 낚싯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았다. 언젠가 반드시 올 그 한 번의 기회를 기다리듯, 그의 손가락은 공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새벽이 오면, 노인은 또다시 배를 밀어 바다로 나갔다. 사람들은 별 관심 없이 자기 일에 몰두했다. 소년은 왠지 불안한 표정으로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노인은 강한 의지로 그 시선을 등 뒤에 지고, 바람과 물결을 친구 삼아 서서히 항구를 벗어났다. 먼 바다로 갈수록 파도는 거칠어질 수도 있었고, 하늘이 뒤집힐지도 몰랐다. 그러나 노인은 두려움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에게 바다는 오랜 인연이자, 마지막까지 함께할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노인은 출항을 하면서 자신의 주름진 손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그 손으로 낚싯대를 붙들었고, 작살을 쥐었으며, 때로는 아픈 상처를 안고 버텨냈다. 이제 다시 한 번 큰 물고기를 찾아 나섰다. 어쩌면 그날은 행운이 찾아올지도 몰랐다. 아니, 운이 아니더라도 괜찮았다. 노인은 바다에 나설 때마다 자신의 심장을 깨우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용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노인은 배를 이끌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물결을 헤쳐 나갔다. 소년은 그 뒤에서 속으로 응원했다. 노인은 팔의 떨림을 느끼며 노를 저었다. 땀이 이마를 적실 때쯤,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엔 꼭 잡을 거다.” 파도는 말을 대신해 노인을 다독였다. 그 부딪히는 물소리는 오래전부터 그래 왔듯, 어떤 거대한 예감과도 같았다.

세상 사람들에게 노인은 ‘불운한 노인’으로 보일지 몰라도, 정작 그는 운과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갔다. 어쩌면 그 길은 가장 외로운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다가 길을 허락하는 한, 그는 매일 배를 밀고 나갈 것이었다. 노인은 이미 삶의 무게를 져 본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다를 두려움이나 원망이 아닌, 경외와 믿음으로 대하는 사람이었다. 비록 약해 보일 수 있으나, 마음만큼은 바다의 깊이와 맞설 만큼 강했다.

노인은 생각했다. 바다는 때로 무심하지만, 결코 나를 속이지 않았다. 파도와 갈매기가 소리를 지르든, 태양이 기세 좋게 내리쬐든,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낚싯줄을 던지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때로는 물고기가 잡혔고, 때로는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 이상의 무언가가 바다엔 있었다. 영혼을 시험하고, 한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무대가 바로 바다였다.

어둑해질 무렵에도, 노인은 여전히 배 위에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운 없는 노인”이라고 말했겠지만, 소년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에게 노인은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서도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마치 언젠가 빛을 꽃피울 씨앗 같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곧 이 노인이 지닌 운명이었고, 다시 맞닥뜨릴 역경의 시작이었다. 노인은 배 위에서 살며, 바다의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고독하긴 해도, 외롭지 않아. 바다는 내 편이야.”

그런 믿음 하나로, 노인은 다시 준비를 마쳤다. 매듭을 단단히 묶고, 낡은 돛에 남아 있는 구멍을 메우며, 낚싯줄의 길이를 재차 확인했다. 혹독한 풍파가 닥쳐도, 이 배와 함께라면 갈 수 있었다. 그의 굳은살 박힌 손이 떨림을 멈출 때까지, 노인은 바다를 향해 나아갈 것이었다. 그날도, 그다음 날도, 85일이건 185일이건 상관없었다. 이 노인은 이미 마음을 정했고, 설령 그 물고기가 오지 않더라도, 그는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다와 함께하는 그 자체가 그의 삶이자 신념이었으니까.

그렇게 밤과 낮이 교차하는 시각, 노인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깊은 파도 밑 어딘가에서는 물고기들이 움직였고, 갈매기들은 해안을 순회했다. 노인은 고요히 숨을 고르고, 뱃머리에서 떠오르는 햇살을 바라봤다. 그 햇살이 바로 노인의 눈빛을 다시 한 번 빛내줄 것이라는 듯. 그는 두 손을 꼭 잡고, 다시금 희망을 안았다. “오늘도 나아가리라, 바다를 향해.” 노인의 다짐은 파도에 파문이 되어,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제2부


노인은 이른 새벽, 바다를 향해 떠났다. 항구를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오래간만에 희망의 기운을 느꼈다. 며칠간 간간이 불던 바람과 조수의 흐름까지도 자신을 돕고 있는 듯했다. 아직 달빛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바다 위에서, 그는 거칠어진 손으로 노를 젓고, 속으로는 이렇게 다짐한다. “오늘은 내가 기다리던 날일지도 몰라.”

노인에게 식량이라 해 봐야 물과 약간의 빵부스러기뿐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오랫동안 갈고닦은 낚시 기술과 믿음이라고 여겼다. 광활한 수면을 바라보며 낚싯줄을 준비하던 그는, 어느 순간 묵직한 긴장감을 감지했다. 눈빛이 번쩍 뜨이는 동시에, 노인은 낚싯줄의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손끝으로 느껴 보았다. 잡았다. 크기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된 대어가 걸린 느낌이었다.

노인은 조심스럽게 줄을 고정한 뒤, 부드럽지만 큰 소리로 말했다. “물고기야, 난 죽을 때까지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낚싯줄이 당겨지는 힘이 상당했다. 노인은 무리하게 줄을 끌어올리기보다, 고기가 지칠 때까지 스스로를 버티게 만들기로 했다. 이 순간 그는 고통과 기쁨 사이에 있었다. 늙은 어깨와 등이 쑤셨고, 손바닥에 살갗이 벗겨질 듯 아렸지만, 노인은 물고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 이제는 항력에 대해 생각해야 돼. 물론 거기엔 위험도 따르지만 좋은 점도 있지. 만약 저놈이 안간힘을 쓰고 노를 묶어 만든 항력이 제대로 작동해 배가 가벼움을 잃으면, 나는 줄을 너무 풀어 줘야 해서 저놈을 놓치게 될지도 몰라. 또 배가 가벼워지면 저놈이나 나나 고통을 연장하는 꼴이 되고 말 거야. 하지만 저놈이 전에 없이 굉장한 속력을 내고 있는 이상, 나로서는 오히려 안전한 셈이지.’

한편으로 이 물고기가 자기와 같은 운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소년 마놀린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지금은 이 고독한 싸움을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배는 먼 바다로 더욱 끌려갔지만, 노인은 마음 한구석에 꺾이지 않는 불씨를 지닌 채 자신을 다잡았다. 바닷물이 튀어 얼굴을 적시고, 햇살이 점차 수평선을 넘어오는데도, 노인은 줄을 놓지 않았다. 땀과 소금기로 눈이 따가웠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는 단지 스스로에게 속삭이듯 의지를 북돋아주었다. “시간은 많아. 저 물고기가 먼저 지칠 거야.”

고기는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듯, 쉽게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노인은 배 한쪽에 기대어 허리를 지탱하고, 낚싯줄에 걸린 힘을 최대한 분산시키려 애썼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이 싸움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노인은 예전부터 배워 왔었다. 젊었을 때의 기백도 그리울 법했지만, 그 순간에는 묵묵히 시간을 버텨 내는 인내심이 그의 가장 큰 무기였다.

얼마 후, 노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난 그 어느 때보다도 지쳤어.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끝까지 낚싯줄을 당길 거야.” 몸은 지쳐 갔지만, 마음만은 포기할 줄 몰랐다. 그는 줄을 조금씩 들어 올리면서, 물고기의 움직임을 살폈다. 때론 물고기가 줄을 강하게 당겨 순식간에 노인의 손바닥이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팔에 힘을 주어 다시 버텼다. 갈매기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맴돌며 노인의 노력을 바라보는 듯했다.

노인은 생각했다. ‘사람이 해나 달이나 별을 죽이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건 정말로 다행이지 뭐야. 날마다 사람이 달을 죽이려 해야 한다고 상상해 봐. 아마 달은 달아나 버리고 말 거야. 인간이 날마다 해를 죽이려 해야 한다고 상상해 봐. 우리는 운 좋게 태어난 거야. 바닷가에서 살아가면서 우리의 진정한 형제들을 죽이는 것만으로 충분해.’

그렇게 생각하니 노인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 큰 물고기가 왠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비록 연민을 느꼈다 해도 물고기를 죽이겠다는 결심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저놈을 잡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배를 채울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에게 저 고기를 먹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 아냐, 그럴 자격이 없어. 저렇게도 당당한 거동, 저런 위엄을 보면 저놈을 먹을 자격이 있는 인간이란 단 한 사람도 없어.’

한낮이 되자, 태양은 수직으로 내리쬐었고, 배 위는 무더운 열기로 가득 찼지만, 물고기는 아직도 사력을 다해 도망치려 했다. 노인은 크게 숨을 고른 다음,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줄을 조금씩 감아댔다. 언젠가 이 물고기도 지칠 것이라고 믿으며, 그는 고통을 견뎠다. 그 사이 바닷물에 배가 조금씩 끌려가, 육안으로는 해안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노인은 물고기의 힘과 크기를 가늠했다. 어쩌면 평생 보지 못한 거대한 청새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 사실이 그를 더욱 고무시켰다. 여전히 주린 배와 갈라진 입술, 녹초가 된 허리 등이 그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에서 노인의 정신은 오히려 맑아졌다. 삶과 죽음이 얽힌 사투 속에서, 노인은 거대한 적 앞에서도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는 소년과 야구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순간을 떠올렸다. 디마지오 선수가 부상 투혼을 발휘해 활약하던 모습 말이다. 그때 노인은 “언젠가 나도 저렇게 상처를 이겨내리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 커다란 물고기를 놓치지 않는다면, 그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이겨낸 것이 될 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해가 기울어 갈 즈음, 물고기는 이제 조금씩 노인과의 끈질긴 싸움에 지쳤는지, 궤적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으로 줄의 장력을 느끼고, 팔에 남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낚싯줄을 끌어당겼다. 등줄기에선 식었던 땀이 다시 흘러내렸다. 몸은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으나, 그의 정신만큼은 선명했다. “난 아직 할 수 있어.”

노인은 고래나 상어가 나타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계속해서 끈질기게 낚싯줄을 당겼다. 물고기가 조금만 더 힘을 썼다면, 배가 기울거나 줄이 끊어졌을지도 몰랐다. 그는 잠깐씩 한 손을 쉬게 했다가, 다른 손으로 줄을 바꿔 잡는 식으로 버텼다. 때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기도 했다. “괜찮아, 아직 괜찮아.”

어느덧 노을이 지고, 바다는 붉은빛으로 물들어 갔다. 멀리 갈매기 몇 마리가 떠돌다가 날아갔다. 물고기는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더 이상 날렵하게 줄을 당기지는 못했다. 노인은 마음속으로 말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바로 그때, 고기의 힘이 이전보다 확연히 줄었다는 신호를 감지했다. 이 싸움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한 것이다.

노인은 천천히, 그리고 아주 신중하게 줄을 감아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 마치 사냥꾼과 사냥감이 아닌, 같은 운명을 공유하는 두 존재가 함께 고통을 견디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둘 다 지쳐 있었고, 둘 다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노인의 선택은 마지막 일격을 감행하는 것뿐이었다. 무심하게 흔들리는 배 안에서 작살을 집어 드는 손이 떨렸다. 심장은 두근거렸고, 이 순간조차도 노인은 소년을 떠올렸다. “그 아이가 여기 있었다면, 나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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