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 너 홀로 서라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 씽크뱅크
세상의 중심에 너 홀로 서라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씽크뱅크 / 2009년 8월 / 184쪽 / 17,000원
제1장 나를 찾아서
“내 안에서 모든 것을 구하라.”
어린아이를 바위에 버려라
그에게 늑대의 젖을 물려라
매와 여우와 함께 겨울을 나게 하라
그는 강하고 민첩해질 것이다.
한 저명한 화가가 쓴 시를 읽는다. 틀에 박히지 않은 독창적인 시다. 이와 같은 시구는 언제나 내 영혼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서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곧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진실이다. 이것이 재능이다.”
우리는 시인과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삶의 지침을 따르기 전에 우리 자신의 마음에 번개처럼 스치는 섬광을 발견하고 관찰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섬광처럼 찾아오는 그 직관을 미처 주목해보지도 않고, 습관처럼 지워버렸던가!
가끔 우리는 천재들의 작품 속에서 자신이 내버린 생각들을 알아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미 낯선 위엄으로 무장한 채 우리에게 되돌아와 있는 것이다.
그때 이 가르침을 들어라!
“반대편에서 어떤 요란한 외침이 들리더라도 온화하고도 단호하게 자신의 자발적인 신념과 직관을 따르라. 그렇지 않으면 내일은 어떤 낯선 이가 다가와 따져 물을 것이다. 그대는 항상 무엇을 생각해왔고 무엇을 느껴왔는가?”
나에게 번개처럼 스치는 섬광을 발견하고 관찰하지 않은 이유 때문에 한없이 초라한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처지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우리 안에 존재하는 힘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또한 자기 자신도 스스로 도전해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우리가 다양한 얼굴, 성격, 사실 중에서도 제각기 하나의 얼굴, 하나의 성격, 하나의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러한 기억의 형태는 예정조화 때문이다. 우리의 눈은 마땅히 시선이 가야 할 곳으로 향하고, 또한 그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의 신성한 생각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러나 신은 겁쟁이를 통해서는 결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사람은 자신의 일에 마음을 쏟고 최선을 다했을 때 안도하고 즐거울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 말하고 행한 것들이 자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구원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의 재능을 내버려두는 한 우리 곁에는 그 어떤 영감도, 창조도, 희망도 없다.
자신을 믿어라. 우리의 마음은 강철과 같은 진리에 진동한다. 신의 섭리가 당신에게 마련해준 자리를, 당신과 동시대의 사회를, 모든 일의 연결 고리를 받아들여라. 위대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해왔다. 그들은 자신의 절대적인 확신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책임을 다해 일하며 자기 자신을 다스렸고,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시대의 정신에 안착시켰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가장 고귀한 마음으로 초월적인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안전한 구석에 숨은 나약한 사람들, 무력한 사람들, 혁명 직전에 도망치는 겁쟁이가 아닌 길잡이와 구원자 그리고 그 후원자들만이 혼돈과 어둠을 헤치고 나아간다.
제2장 나의 길
“자기 자신을 믿는 힘이 클수록 모든 직무와 인간관계에서 혁신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들의 종교, 교육, 일, 삶의 방식, 삶의 관계, 재산, 사색적인 관점, 이 모든 면에서 말이다.”
자신을 고집하라! 결코 모방하지 말라! 그러면 전 생애를 거쳐 닦아온 축적된 힘으로 매 순간 당신의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남의 재능을 빌린다면 당신은 일시적으로 반쪽만 소유할 뿐이다.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의 ‘창조자’만이 가르쳐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드러내 보이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할 수도 없다.
셰익스피어를 가르쳤다는 스승이 어디 있는가? 프랭클린이나 워싱턴, 베이컨 또는 뉴턴을 가르쳤다는 스승은 또 어디에 있는가? 모든 위대한 인간은 독특하다. 셰익스피어는 절대로 셰익스피어를 연구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거나 너무 많은 것에 도전할 수는 없으니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라. 당신에게도 마치 페이디아스의 훌륭한 끌이나 이집트인들의 흙손 또는 모세나 단테의 펜처럼 용감하고 웅장한 하지만 이 모든 것과 전혀 다른 표현을 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 있다. “당신 인생의 단순하고 고귀한 영역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의 마음에 복종하라. 그러면 당신은 앞선 세상을 다시 창조하게 될 것이다.”
사회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에서 하나를 얻으면 그만큼 빨리 무언가는 퇴보한다.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야만적이었다가, 문명화되었다가, 종교적이었다가, 과학적인 세상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개선이 아니다. 무언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기 마련이다. 사회는 새로운 기술을 얻는 대신 오래된 본능을 잃는다. 문명화된 인간은 마차를 만들었지만 대신 발의 용도를 잃었다. 그는 훌륭한 스위스제 시계를 가지고 있지만, 태양의 위치에 따라 시간을 보는 법은 잊어버렸다.
오늘날 사람들이 과거보다 더 위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류가 진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각 시대의 기술과 발견은 오로지 그 시대의 의상일 뿐 인간을 고무시키지는 않는다. 기계의 발달은 그 이익만큼이나 피해도 있기 때문이다. 오직 위대한 재능은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 되돌아온다.
사람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신이 아닌 외부로 시선을 돌려 물질에만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재산에 대한 보호책으로 종교와 학교, 정부 기관만 추앙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식 있는 사람은 자신의 본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재산을 부끄러워한다. 특히 그 재물이 어떤 우연에 의해, 즉 상속이나 선물 또는 범죄에 의해 그의 손에 들어왔다면 그는 가진 것을 더더욱 경멸할 것이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언제나 당신의 필요에 따라 획득하고, 그렇게 얻어진 것은 살아 있는 재산이다. 그것들은 지배자, 군중, 혁명, 화재, 폭풍 또는 파산에 구애받지 않으며, 당신이 숨 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끊임없이 새로워진다.
힘과 재능을 타고난 것임을 알고 그동안 자기 아닌 다른 곳에서 선을 찾아왔기에 약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깨닫는 순간 주저 없이 자신의 생각에 몸을 내던질 것이다. 즉시 자신을 바로잡을 것이고, 똑바로 서서 자신의 손발에 명령을 내리고 기적을 행할 것이다. 두 발로 서 있는 사람이 머리로 서 있는 사람보다 더 강한 것처럼!
제3장 나의 사랑
“나는 숨겨진 보석과 같았으나 내 안의 불타는 빛이 나를 드러냈다.”
하나의 기쁨이 무르익으면 또 다른 결핍이 생겨나지만 영혼의 모든 약속은 끝없이 채워진다. 그처럼 경사스런 일은 우리 삶의 마법과도 같은 사적이고 부드러운 일대일의 관계에서 싹튼다. 그것은 마치 성스런 열의와 열정처럼 어느 순간 인간을 사로잡고, 그의 몸과 마음에 혁명을 일으키며, 그의 종족과 하나 되게 만들고, 가족과 사회관계에 충실하게 만들고, 자연에 대해서도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하고, 감각과 자각의 힘을 향상시키며, 상상력을 열리고 하고, 그의 성격에 영웅적이고 신성한 특질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사랑이 성립되고, 그럼으로써 인간 사회에 영속성을 부여한다.
한 개인의 어두운 가슴 한 구석에서 최초로 발화된 사랑이란 불씨가 다른 한 개인의 심장에서 나온 방황하던 불씨에 스파크를 일으키고, 이 불씨는 점점 더 불타오르고 커져서 다수의 남자와 여자를, 더 나아가 모든 이의 보편적인 마음을 비추고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이 자비로운 불꽃은 전 세계와 모든 자연을 밝힌다.
모든 인간은 연인을 사랑한다. 누군가에게 최초로 호의와 정중함을 드러내는 그 순간은 자연의 가장 매력적인 광경이다. 그것은 거칠고 조악함 속에서 문명과 품위가 움트는 순간이다. 대중 강연을 하다 보면 나는 지성만을 존중한 나머지 인간의 사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냉정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비난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움츠러들곤 한다. 왜냐하면 각 개인은 사랑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무심함은 우주에 대한 배신이며, 사회적 본능에 대한 경멸이다.
어떤 인간도 그의 마음과 두뇌에 찾아온 사랑의 힘을 잊지 못한다. 그 힘은 모든 사물을 다시 새롭게 창조한다. 그것은 음악과 시와 예술을 싹트게 만들며, 자연의 얼굴을 보라색의 여명으로 빛나게 만들고, 낮과 밤에 다채로운 매력을 부여한다. 그때에는 하나의 음성이 심장을 뛰게 만들고, 가장 사소한 주변 환경들도 하나의 인물과 결합하면 기억의 보석이 된다. 사랑하는 상대의 모습과 동작, 말들은 물로 쓴 이미지들과는 다르다. 그것들은 플루타크가 말했듯 ‘불로 구워진’ 이미지이며, 한밤중의 연구과제가 된다.
우리 인생의 장년기와 노년기에도 우리는 여전히 행복만으로는 충분히 행복하지 않고, 반드시 고통과 두려움이 가미되어야만 행복에 취할 수 있었던 그런 날들을 추억한다. 왜냐하면 그는 누군가 말했던 다음과 같은 사랑의 비밀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모든 즐거움 중에서도 오직 사랑만이 그에 수반되는 고통을 겪을 만한 가치가 있다.”
부드럽고 따스한 감정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섬세한 감정이, 이 방황하는 빛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기존의 질서에 대입해보려는 순간 파괴되고 만다. 또한 이것은 사회에 알려져 있거나 이야기되는 어떤 우정이나 사랑의 관계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것은 적어도 내 생각에는, 도달하기 어려운 어떤 다른 영역, 초월적인 섬세함과 사랑스러움이 있는 관계, 장미와 제비꽃이 암시하고 예견하는 그런 것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우리는 아름다움에 다가설 수 없다. 그것의 본성은 마치 사라질 듯 깜박거리는 영롱한 진주빛 등불 같다. 무지개는 소유와 쓰임새를 모색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사랑의 아름다움은 무지개의 성질을 지닌 가장 뛰어난 모든 것들과 닮았다.
이런 말이 떠오른다. “만약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광채며 영광이다. 그것은 당신 자신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결코 모를 것이다.
신은 영혼에게 젊음의 영광을 내려보낸다. 그리하여 천국의 미덕과 행운을 얻는 데 아름다운 육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한 여성을 발견한 남자는 그녀에게로 달려가고 그녀의 자태와 움직임, 지성을 생각해보면서 최상의 기쁨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존재는 진정으로 아름답고 또 아름다움의 근원이기도 한 무언가가 눈앞에 실재함을 그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인들은 그들이 나눈 대화와 행위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될 것이며, 그때 그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의 궁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더욱 불타오르고 이러한 사랑의 불길로 인해 속된 감정은 소멸하게 될 것이다. 그 자체로서 탁월하고 관대하고 겸손하고 정당한 무엇과의 친교를 통해 연인은 이 고귀하고 따뜻한 사랑에 도달하게 되고, 보다 더 빨리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때에 그는 하나만 사랑하는 것에서 전체를 사랑하는 단계로 옮겨가게 되고,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영혼이라는 그 문을 통해서만 진실되고 순수한 영혼들의 사회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짝’이라는 그 특정한 사회 속에서 그는 보다 분명한 관점을 얻게 된다. 그 관점을 가지고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위축시켜온 어떤 오명과 얼룩도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그것을 지적할 수 있게 되며, 어떠한 저항도 없이 이제 그들은 서로에게 즐겁게 허점과 장애물을 지적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도움과 위안을 준다. 또한 수많은 영혼의 신성한 아름다움의 특징을 알아보고, 각각의 영혼에게서 신성한 면과 세상살이에 물든 얼룩을 구별해 냄으로써 연인은 지고의 미, 사랑 그리고 신격에 대한 지식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 창조적인 영혼들이 놓아준 사다리를 타고서 말이다.
그러나 개인에게 신성시되는 사랑조차도 날이 갈수록 객관화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애정을 시험해보고 재어본다. 애정은 변하고, 신호는 사라지고, 대신 그 실체에 애착을 갖게 된다. 이것이 상처난 애정을 치유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때 불타올랐던 그들의 호의는 서로의 가슴에서 차분히 가라앉고, 격렬함이 줄어드는 대신 범위가 넓어지면서 그들은 철저하고도 훌륭한 이해가 된다. 그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때가 되면 각자 남자와 여자로서 서로 맡기로 되어 있는 훌륭한 의무에 복종한다. 그리고 서로의 계획에 맞는 쾌활하고도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서 열정을 나눈다. 점차로 결혼이란 서로가 가진 모든 자원을 도입하고 또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습득하기 위해서, 서로의 모든 가능한 위치를 바꿔보고 조합하는 게임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자연이고 이 관계의 결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각자의 인류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교묘하게도 남자와 여자의 기질을 향해 작동한다.
마침내 그들은 최초에 그들을 서로 끌어당겼던 모든 것들, 즉 한때 성스럽게 느껴졌던 생김새, 마법과도 같았던 매력들이 덧없는 낙엽과도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치 집을 지을 때 임시로 필요한 비계처럼 결국은 필요 없어질 날이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지성과 마음의 정화야말로 처음부터 예견되었고 준비된 것이며, 그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진정한 결혼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성과 사람의 차별을 모르는 사랑, 어디를 가든 덕과 지혜를 촉구하는 사랑을 훈련해야 한다. 우리는 본래 관찰자이며 따라서 학습자이다. 우리는 영원한 학생이다. 살다보면 분명 사랑이 최고이며, 거기에 열중하다 보면 그의 모든 행복이 한 사람, 또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마음이 건강하다면 머지않아 무수히 영원한 빛으로 반짝이는 은하수가 있는 둥근 하늘을 그리고 마치 그 자신의 완벽함에 도달하기 위해 일시적인 형질을 잃고 신과 함께 섞이는 구름처럼 우리를 휩쓸고 지나가는 따스한 사랑과 두려움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영혼이 전진함에 따라 무언가 잃지는 않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영혼은 궁극적으로 신뢰할 만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이러한 관계들은 오로지 보다 더 아름다운 것에 의해서만 계승되고 대체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