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일찍 나를 알았더라면
휴 프레이더 지음 | 큰나무
조금만 더 일찍 나를 알았더라면
휴 프레이더 지음
큰나무 / 2012년 5월 / 320쪽 / 13,000원
어떤 징후
평탄한 길에서도 넘어질 때가 있다. 인간의 운명도 그런 것이다.
신 외에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다.
- 안톤 체호프
우주나 신성한 지침에는 정해진 계획이 있고 내가 그것을 따를 수 있다면 모든 게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건 어떤 징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아마 어쩌다 그것을 알게 될 터다. 누구도 이런 말을 듣지 못한다. “저기서 왼쪽으로 돌면 버려진 종잇조각 아래 당첨된 복권이 있다.”
물음의 답
네 믿음은 네 생각이 된다. 네 생각은 네 말이 된다. 네 말은 네 행동이 된다.
네 행동은 네 습관이 된다. 네 습관은 네 가치가 된다. 네 가치는 네 운명이 된다.
- 간디
여기 나는 A 지점에서 B로, 그곳에서 다시 C로 가고 있다. 짙은 안개 속에서 나는 신에게 묻는다.“어떻게 하면 D라는 지점으로 갈 수 있을까요?”
신이 다정하게 대답한다.
“내 손을 잡아라. 너를 안개 밖으로 이끌리라.”
그러면 나는 고집스럽게 앙탈을 부린다.
“그건 제가 원한 답이 아니에요!”
우리는 신에게 어떤 사과를 사야 하느냐고 질문하며 신성한 사랑이 다른 이에게 썩은 사과를 남겨놓으리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신이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한두 명만 살리고 나머지 사람을 불에 타서 죽게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의 육신에 가해지는 은혜가 신의 우아함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신은 어디에 가면 신발을 싸게 살 수 있는지 어떤 주식을 사면 돈벼락을 맞을 수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아예 그런 충고조차 구하지 마라. 만일 당신이 어떤 신호를 사려고 든다면 당신은 상위 자아의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진정으로 신이 내 질문을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그 대답은 내가 질문하기 전부터 내 마음속에 있다.
평화로운 우선권
신은 ‘사랑’과 ‘자유’의 광활한 하늘을 날아가도록 그대의 영혼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대 자신의 손으로 그 날개를 잘라내고 영혼이 버러지처럼 땅 위로 기어가는 괴로움을 겪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련한 일이겠는가.- 칼릴 지브란
나는 항상 평화로운 우선권을 가졌다. 하지만 충분히 평온해야만 그것을 알 수 있다. 나의 평화로운 우선권을 따르는 것이 내 자아, 혹은 ‘옹졸한 마음’이 좋아할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평화의 근원으로 이끌고 평가와 해석에서 자유롭게 한다. 내 옹졸한 마음은 무엇을 해야 할지 갈등을 겪는다. 심지어 평화 속에서 결정을 내린 후에도 내 옹졸한 마음은 여전히 그 결과에 대해 갈등한다.
내가 누군가의 요청을 받아들인 이유가 지금 내가 내 자아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가 내가 자아에게 졌기 때문이든 아니든 여전히 나는 내 진정한 마음, 내 진정한 감정, 내 진정한 주체와 연결되지 못한 채다. 옹졸한 마음이 항상 제일 먼저 말한다. 가령 아내가 뭔가를 해달라고 부탁하면 나는 즉각적으로 반감을 느낀다. 그 일 자체는 괘념치 않지만 요청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그런 반발감과 싸우지 마라. 잠깐 기다렸다가 더 깊은 감정에 초점을 맞춰라. 깊은 자아의 고동이 고적함 속에서 일어난다.
상상된 정체성
이 세상의 유일한 악마는 우리 마음에서 날뛰고 있기에 모든 전투는 마음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간디
당신이 당신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자아나 상상된 정체성은 아이들의 상상 속 친구와 매우 흡사하다. 개별적이고 자주적인 마음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곧잘 스스로를 방어한다. “새로운 동네 친구와 말하지 마.” 상상 속의 친구가 그렇게 말한다. 왜냐하면 진짜 우정이 상상의 존재를 와해시키리란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자아는 충고한다. “당신의 진정한 감정과 상의하지 마.” 왜냐하면 진실이 당신의 자아를 와해시키니까. 그러나 명심하라.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자문이 자아에 대한 비난은 아니다.
아이들이 상상 속의 친구와 다툴 때 그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더욱 강하게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진짜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상상 속 친구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 그런 식으로 자각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신에 대한 관심을 일으킨다.
해야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 무엇을 알고 있느냐, 무엇을 믿고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행동으로 실천하느냐이다.- 존 러스킨
우리는 행동하기 위해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직장을 그만두기 위해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예배당을 변화시키기 위해 집회를 비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친구들을 관계에서 뒷걸음치게 만들기 위해 그들에게 적대적인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아파서 침실 문을 닫고 몸져눕는다면 우리는 마음의 문까지 닫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적인 길을 따르는 것은 당신이 더 이상 마음의 방향을 지시하기 전에 심상(心象)을 결정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관계에서 물러나야 한다면 당신의 정신적인 사면과 더불어 전진을 멈춰라. 만일 아파야 한다면 당신의 사랑으로 가득한 생각을 식구들 주위에 머물게 하라. 그리고 죽어야 한다면, 당신의 영원한 존재로 축복받지 못한 것을 단 하나도 남기지 마라.
마음 청소
당신 자신에게 약간의 시간을 투자할 마음이 있다면 당신의 기분을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날마다 체력 훈련을 받는 선수가 인내심과 강인함을 조금씩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데이비드 번스
옹졸한 마음은 항상 뭔가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냐는 질문을 소명 받았다.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대한 게 아니라 그 대답은 내 감정을 무시하거나 부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내 감정을 더 많이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제 나는 그 인식을 빗자루로 써서 감정의 찌꺼기를 치우고 있다.
치료의 문제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절대 행복하지 않다. 만족한 인생을 보내는 비결은 다른 이에게 보다 많은 사랑과 기쁨과 행복을 나누어주는 데 있다. 자기의 일만 생각하고 있는 인간은 그 자신마저도 될 자격이 없다.- 『탈무드』 중에서
조엘 골드스미스의 말이다. “치료의 문제는 당신이 누구를 거리로 다시 내몰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이처럼 항상 마음을 치료하고 육신이 제 이야기를 하도록 하라. 만일 내가 마음속으로 누군가 의지하고 내 마음을 치료한다면 분명 육체 또한 치료될 것이다.
치료의 힘
받으려면 주어야 하고, 모으려면 뿌려야 하고, 행복해지려면 남을 행복하게 해야 하며 그리고 영적으로 강인해지려면 타인의 영적인 유익을 추구해야 한다.- 찰스 스펄전
어떤 누구도 치료받지 못한 채 내 앞을 지나가지 않도록 하라. 한 명의 노숙자도, 상처 입은 아이도, 트럭 운전수도, 분개한 점원도. 만인에게 평등한 신의 사랑이 비치지 않는다는 생각이나 상상을 고쳐줘라. 유일한 능력은 보유할 가치가 있고 모든 이들이 이미 그것을 갖고 있다. 치료를 실천하라. 그러면 당신은 치료사가 될 것이다. 육체적인 치료를 사랑의 상징으로 베푸는 것은 좋다. 닭고기 수프를 제공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신이 어떤 이를 치료하고 다른 이를 치료하지 않는다거나, 신이 닭고기 수프를 만드는데, 그것이 야채수프로 판명되리란 생각은 단 1초도 믿지 마라.
행복하게 만드는 연습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을 칭찬하고 뜨내기손님을 즐겁게 해주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생각 없이 무수히 상처를 입힌다.- 엘라 휠러 윌콕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어.” 하지만 화나게 할 수는 있다. 어떤 말과 행동에 그가 화를 낼지 직감으로 알고 있다. 화나게 하고, 질투하게 하고, 두렵게 할 수 있는데 왜 행복하게 할 수는 없을까? 그건 직감을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데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연습을 해라. 곧 전문가가 될 것이다.
진정한 이해
누구도 자기가 하는 말이 다 뜻이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뜻하는 바를 모두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H. 애덤즈
개나 갓난아이를 붙들고 “네 행실에 대해 한마디 해주고 싶어.”라고 말하지 않고도 잘 지내고 있다. 우리는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그게 바로 문제다. 내가 아는 부부는 듣거나 말할 수 없는 상황에도 자신들의 문제를 슬기롭게 이기고 사랑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의사소통 기술을 발전시켜라. 진정한 이해가 담긴 사랑에 잠겨라.
사랑의 표현
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밖에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 스탕달
우리 집 강아지는 내가 등을 쓰다듬고 배를 긁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내 아내는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그 대상이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는 언어로 사랑을 표시해야 한다.
당신을 알기 위해
야다(YADA)는 창조의 행위다. 이것 없이는 자기완성을 이룰 수 없다. ‘야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섹스라는 뜻으로, 상대를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탈무드』 중에서
당연히 두 사람 중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섹스를 더 좋아하거나 다른 유형의 섹스를 선호한다. 그 현상에서 어떤 의미도 읽지 마라. 두 사람 중에서 한쪽이 돼지고기보다 피자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섹스에 대한 불화는 모든 결혼 문제와 같은 이유를 갖는다. 두 사람에게 부부 관계보다 훨씬 중요한 뭔가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질문하라. “우리의 우정을 깊이 쌓을 수 있는, 의사소통법을 다정함과 관용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그러면 마음속에 섹스에 대한 불화를 극복할 수 있는 수백 가지 방법이 떠오를 것이다.
잃지 말아야 할 것
인생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간에 겁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이해되도록 기다리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마리 퀴리
배우자를 돕는 일에 화급을 다퉈라. 그 일에 직관을 발휘하라. 서로가 생각하는 최선의 도움은 확연히 다르다. 먼저 두 사람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배우자의 고통이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당신의 아픔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다음에는 배우자의 욕구에 부합하는 것이 당신의 즐거움이 된다. 그것이 치료의 정확한 뜻이다. 하지만 만일 당신의 배우자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혹은 불법적인 행위에 연루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물론 당신은 그 관계에서 즉각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배우자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순수의 씨앗에 대한 믿음은 절대로 잃지 마라.
인생의 초점
원만한 가정은 상호 간의 희생 없이는 절대 영위하지 못한다. 이 희생은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을 위대하게 하며 아름답게 한다.- 앙드레 지드
인생의 초점이 나의 분리된 자신이 되었을 때 나는 사랑할 수 없다. 나는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자식과 내적인 아이, 둘 중 누구를 양육할 것인가. 두 아이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기에 우리는 두 가지 목적을 한 번에 좇을 수 없다. 내가 자식을 우위에 놓을 때 내적인 아이는 일체감의 따뜻한 빛 속에서 축복을 받는다.
안 돼
문제아동이란 절대 없다. 있는 것도 문제 있는 부모뿐이다.
- 닐
“안 돼.”를 가능한 적게 하라. 하지만 몇 번은 하라. 어린아이는 아주 드물게 잘 선택된 “안 돼.”로 인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모든 어린아이가 종종 인생을 향해 비참한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는 그 시도가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마라. 당신이 지닌 아이에 대한 평온한 지식으로 행동하라. 당신이 개입해서 “안 돼.”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제 그 아이가 더 잘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은 직관과 차분한 인지력을 통해 그 아이가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배웠고, 이제는 엄격한 손으로 아이를 인도할 수 있음을 안다.
잘못된 교훈
자신이 배운 것을 모두 잊어버려야 하는 때가 올 것이다. 쓸어 모아 쌓인 쓰레기는 버려진다. 거기서는 어떤 분석도 필요 없다.- 라마나 마하리쉬
우리는 자녀에게 우리 자신에게 친절함으로써 친절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전쟁 장난감’을 없애는 것과 스포츠 경쟁이 그 대답은 아니다. 아이들이 “빵빵! 넌 죽었어!”라고 하는 말이 정말 그런 뜻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이들은 영적으로 더욱 엄밀하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풍요로움이 부적당하고, 야망이 허위이며, 모든 놀이가 약간의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고 확신시킬 때마다 우리는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세상이 무한한 약속이라고 믿는 때가 있다. 최고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때가 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누르고 성공함으로써 자신을 과시하고 충족시키려는 때가 있다. 그때가 되기 전에 앞서서 그런 생각을 소개할 때, 당신은 저항을 만들고 자식의 내적인 성장을 지연시킨다.
감정 보호막
감정을 통제하고 억제하려는 데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예속’이라고 본다. 감정에 지배받는 인간은 자기의 주체적 권리가 아니라 운명의 권리하에 놓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보다 좋은 것을 알면서도 보다 언짢은 것에 따르도록 종종 감정의 횡포에 끌려가는 정도로 운명의 힘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
통계학적으로 소심한 운전자는 태평스런 운전자보다 사고율이 적다. 그럼에도 수많은 소심한 운전자가 사고를 당한다. 어떤 육체적인 감정도 당신을 보호할 수 없다. 심지어 고적함과 평화마저 어떤 특전을 줄 수 없다. 임시방편으로 호혜적인 두려움이 당신에게 그 어떤 제의를 한다 해도 그것은 모든 것을 대신할 가치가 없다.
진실 집착증
대체로 진실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 전, 먼저 그 양면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이솝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진실이 부재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표피적인 방법을 제외하고 아무도 어떤 상황의 ‘현실’이 무엇인지, 혹은 거기에 어떤 의미와 중요성이 함축되어 있는지 동의할 수 없다. 어떤 유권자는 특정한 정치인에 대한 진실을 볼 수 있지만 또 다른 유권자에게는 그 반대가 진실이다. 어떤 도시나 국가에게 명백한 진실이 다른 도시와 국가에서는 전혀 진실이 아니다. 심지어 가족 사이에서도 가장 사소한 문제에 대한 진실이 무엇이고,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를 놓고 깊은 불화가 야기될 수 있다.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운동경기 중에 팬과 해설자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놓고 일치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모든 카메라앵글이 각기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재판 중에 한 명의 목격자는 다른 목격자와 상이한 뭔가를 봤노라고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이런 진실이 부재하는 듯한 현상이 전 세계를 진실 집착증으로 몰아가는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한 말이나 다른 사람도 들은 말에 대해서 심란한 의문을 가진다.
비교가 가져다준 의미
우리를 망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이다. 만약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모두 장님이라면 나는 굳이 고래 등 같은 번쩍이는 가구도 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충족 또는 ‘종결’이 어떤 비교를 통해 경험될 수 없는 이유는 비교에는 종결의 단계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끝났다고 느낄 때도 거기에는 여전히 뭔가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다. 키 큰 사람이 득실거리는 방 안에서 우리는 난쟁이가 된 기분을 맛본다. 젊은이들이 웅성거리는 방 안에서 우리는 늙은이의 기분을 맛본다. 우리가 오늘 어떤 성장을 쥐고 있든 간에 비교는 내일 그것을 우리의 손에서 빼앗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