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슬로 러브

도미니크 브라우닝 지음 | 푸른숲


슬로 러브

도미니크 브라우닝 지음

푸른숲 / 2011년 10월 / 326쪽 / 13,000원



Chapter 1 가을




직장을 잃고 처음 맞는 토요일

나는 거의 13년간 《하우스 앤드 가든》의 편집장으로 일해 왔다. 《하우스 앤드 가든》은 풍요로운 삶을 예찬하는 잡지다. 이 잡지를 철학적, 영적 혹은 도덕적 탐구와 거리가 먼 기업의 일부로만 보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하우스 앤드 가든》을 발행하는 콩테 나스트(Conde Nast)는 주로 《보그》, 《글래머》 같은 패션 잡지를 출간한다). 콩테 나스트의 근간이 물질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은 맞다. 따라서 비록 우리 잡지가 기사와 사진의 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가능한 한 영성과 환경, 사회적 책임에 관한 기사를 많이 실으려고 노력하긴 했어도(한편으로는 연료 소비량이 많은 자동차 광고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하우스 앤드 가든》이 추구하는 풍요로운 삶이란 전반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에 뛰어들기보다는 뒷마당을 가꾸는 삶이다.



우리 잡지의 폐간은 무자비하게 진행되었다. 《하우스 앤드 가든》의 세계는 한마디 경고도 없이 붕괴되었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회의에 참석했다가 폐간 소식을 들었고, 금요일까지 책상을 치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채 5분도 안 돼 외부 언론사 기자들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무실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폐간 소식을 전하기도 전에, 외부에서 먼저 그 소식을 접한 것이다. 짐을 싸라고 주어진 나흘의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이든 비축해둬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혀 '《하우스 앤드 가든》' 로고가 찍힌 종이봉투와 연필, 노트를 손에 잡히는 대로 상자에 쑤셔 넣었다. 이것으로 평생 사무용품이 떨어지는 일은 없겠지, 생각했다.



내게는 늘 직장이 있었고, 나는 늘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 말은 얼마든지 실존주의적 의미로 해석해도 좋다. 실제로 실존주의적 의미가 아주 많이 담겨 있으니까. 심지어 직장을 그만둘 때조차 늘 다른 직장이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직장을 옮기기 전에 며칠간 짬을 내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조용히 생각해볼 틈도 없이 곧장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에 뛰어든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강박적인 면이 있다.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겨야만 나쁜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 편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일이 없다면 과연 나는 누구란 말인가?



마지막 퇴근을 한 후 몇 시간 동안은 내 평판이나 이력서에 대한 걱정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저 참을 수 없는 식욕을 느꼈을 뿐이다. 내가 아는 직장인들에게 모두 전화해서 점심을 사달라고 했다. 어쨌거나 여기는 맨해튼 아닌가. 음식만이 지금 나를 사로잡는 분노, 격분, 절망의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 몇 주간 공포가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어떻게 이 나이를 먹도록 이 미지의 세계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걸 늘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 내가 걱정된 친구들은 "절름발이 게에게 목발을 주는 사람은 없어" 같은 선문답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수수께끼들을 재미삼아 앞뒤로 곱씹었다.



나는 폐쇄계가 된 기분이었다. 나와 함께 일했던 모든 이들의 기벽, 열정, 성품의 집합체와 함수관계에 있던 개체, 그 살아 숨 쉬던 개체 안에서의 내 역할을 잃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토요일이야. 침대에서 나와." 오늘이 토요일이라고 생각하면 나도 정상이라는 기분이 든다. 토요일은 출근하지 않는 날이다. 일찌감치 일어나 햇빛이 들어오도록 커튼을 젖혔다.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고, 앞마당에 늘어선 사사프라스의 짙은 늦가을 빛깔 사이로 햇살이 반짝였다. 한때 내가 토요일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주말이면 얼마나 아찔한 정도로 해방감을 느꼈는지 기억이 났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사람의 토요일이 월요일과 다르다는 사실만 중요했다. 그제야 떠올랐다. 오늘이 토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이라는 것이.



파자마, 인생의 괴로움을 치유해주는 안정제

실직한 지 한 달쯤 되자, 침대에서 나와야 하는 이유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의 틀이 잡혔다. 나는 매일의 용무를 정해두었다. 월요일은 우유 사러 가기, 화요일은 산책하기, 수요일은 서점 가기, 목요일은 산책하기, 금요일은 닭고기 사러 가기, 토요일도 산책하기, 일요일은 쿠키 사러 가기. 이 방법의 비결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서점 가는 날이 제일 좋다. 반스 앤드 노블에 가면 코트를 입은 채 바닥에 앉거나 벽에 기대어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독서에 동참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곳은 조용하면서도 분주하고, 도서관처럼 날 위로해준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일단 눈을 뜬 후에 직면하는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파자마를 벗는 일이다. 반면 파자마를 입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다. 며칠 전, 쿠키를 사러 나갔다가 오후 두 시에 현관에 들어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나와 소개팅을 하기로 한 사람이었다. 나는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며, 상대가 말하는 동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내가 파자마로 완벽하게 갈아입은 순간, 말을 멈췄다. 내게 무슨 질문을 한 것 같은데, 어떤 질문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맘때의 뉴욕은 늘 그렇다. 하지만 머릿속이 온통 파자마 생각뿐인데 어떻게 통화에 집중하겠는가? 내 옷장에는 콩테 나스트에서 일하던 시절에 입었던 트위드와 실크, 캐시미어 옷들이 빈둥거리고 있었다.



Chapter 2 겨울




인생의 사운드트랙이 필요한 순간

나는 무능력한 사람에서 간신히 제구실을 하는 사람으로 변하며 전진하는 중이다. 여기저기 전화해서 설득한 끝에 원고 청탁을 받았고, 두 개의 장기 프로젝트에서 컨설팅도 맡았다. 행복한 몇 주 동안은 날 기다려주는 책상도 있었고, 참석해야 할 회의도 있었다. 나는 다시 바빠졌지만, 그 일들도 이내 끝나버렸다. 《하우스 앤드 가든》이 폐간된 후로 몇 달 동안, 미국의 경제는 크게 추락했다. 곳곳에서 인원 감축과 매각이 선언됐으며, 소비가 위축되었다. 적어도 나 같은 소시민들은 그랬다. 그리고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들어 낮이 짧아지고, 추위가 기승을 부리자, 아침에 일어나기조차 싫어졌다. 나는 여전히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러 회사의 최고경영자들과 편집장들, 헤드헌터들도 만나봤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마침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결정을 미뤄왔지만, 이제는 작별할 때가 되었다. 이 집을 발견한 사람도 나요, 여러 면에서 괴상하게 방치된 이 집의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도 새댁이자 아기 엄마였던 나다. 이 집을 부활시키고, 보수 공사를 지시한 사람도 나요, 결혼 생활이 비틀거릴 때 이 집을 다시 사들인 사람도 나다. 이혼 후에는 이 집을 다시 상냥하고, 손님을 환대하는 집으로 서서히 만들며 우울증을 극복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집이 주는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 집을 버리려 하고 있다. 고백하긴 약간 부끄럽지만, 가끔 문간에 서 있을 때면 벽에 기대어 키스하기도 한다. 그런 순간이야말로 내 친구 짐이 말하는, 인생의 사운드트랙이 필요한 순간이다. 짐이 골라준 세라 맥라클란의 를 듣자마자, 나는 가구들을 끌어안았다.



내 마음의 보수 공사

실직한 후로 몇 달이 지나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더 싫어졌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페미니스트였다. 10대 시절에 입고 다니던 티셔츠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자에게 남자란, 물고기에게 자전거와 같은 존재.' 독립한 후로 남자에게 한 번도 기댄 적 없이 내 힘으로 살아왔고, 그런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런데 요즘은 직업이 없어서인지 이런 독립적인 기질이 약해지고 있다. 내 입에서 "다시 사랑에 빠진다면 좋은 일이지. 다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더 좋은 일이고."라는 말이 나와도,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사랑에 빠지는 게 좋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연애는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싶을 정도다. 설사 그로 인해 내 삶의 기본적인 가치까지 타협하게 될지라도.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 기본적인 가치란 게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14년 전, 전남편과 이혼한 후 나는 로드아일랜드 해변에 집을 한 채 사두었다. 나는 뉴욕에 있는 집만큼이나 이 집에 애착이 간다. 둘 중 하나를 팔아야 한다면, 아마 뉴욕에 있는 집을 팔았을 것이다. 로드아일랜드에 있는 집이 훨씬 작고, 세금도 훨씬 적고, 유지비도 훨씬 덜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내내 그 집을 들락거렸지만, 사실 그 집은 내 집이었다. 우리 집에서 3km 떨어진 곳에 역시 집을 사둔 동생은 그 집을 나의 '히피 오두막'이라고 불렀다. 내가 아직도 레드 제플린을 듣는 게 뭐 어때서? 나는 이혼 후에 혼자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상처를 다독이고, 초원의 새들을 바라보고, 수영하고, 독서하고, 벽난로 앞에서 음악을 들었다. 아직도 열다섯 소녀인 것처럼 대형 카세트의 반복 버튼을 눌러가면서.



이 집은 아담했고, 관리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이 집은 규정에 맞게 지어진 게 하나도 없었다. 장담하건대 허리케인이 한 번만 지나갔다가는 2층이 폭삭 내려앉을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못해 다시 짓기로 했다. 보수 공사를 위한 교훈이 생겼다. 첫 번째 교훈: 집 곳곳에서 부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무시하지 말 것. 두 번째 교훈: 설계를 대충 하지 말 것. 공사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져라. 안 그랬다가는 허둥지둥 설계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교훈: 옛집에 매달리지 말 것. 무엇도 예전과 똑같을 수는 없다. 네 번째 교훈: 끌고 다니는 짐의 무게를 줄이되, 물건을 쌓아두고 싶은 퇴화된 충동과 전면전을 선언할 것. 다섯 번째 교훈: 놀랄 가능성을 열어둘 것. 예상치 못했던 일을 즐겨라. 기뻐할 여지를 남겨두라.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은 보수 공사를 해야 할 시기가 한참 지났다.



Chapter 3 봄




책과의 연애사를 떠올리다

봄이 너무도 걷잡을 수 없이 불어 닥쳐 생소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하루 종일 사무실에 처박혀 있지 않은 덕택에 처음으로 봄을 제대로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날씨를 일기예보가 아니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삶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얻게 된 새로운 발견이다. 얼마든지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사무실에서 생활할 때는 날씨가 더운지 추운지, 비가 오는지조차 몰랐다. 요즘처럼 해가 뜰 때 일어나고, 안개 때문에 방충망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바라보고, 후텁지근한 더위로 마룻바닥과 캐비닛 문이 휘는 것을 몸소 느끼기 전에는 내가 얼마나 날씨와 담을 쌓고 살았는지 미처 몰랐다. 요새는 자연으로부터 지나치게 차단되면 왠지 찜찜해서, 오후 네 시에 황금빛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것만 봐도 즐거워진다.



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독서광이다. 어린 시절의 거의 대부분을 책에 코를 박은 채 보냈다. 책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옆에 있는 물건을 아무 생각 없이 먹어치우기도 했다. 한번은 치약 한 통을 쪽쪽 빨아먹은 적도 있다. 언젠가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을 만큼 집중력이 떨어진다면, 나는 분명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릴 것이다. 우리 집을 방문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책을 다 읽은 거야? 아니면 앞으로 읽을 거야?"라고 묻는다. 내 대답은 둘 다 아니다. 오히려 노후를 대비해서 책을 비축해왔다고 할 수 있다. 시간,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니 될까? 당연히 난 모른다. 그렇기는 해도 책을 처분하는 과정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모두 다 읽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입각한다.



족히 서른 개의 상자에 책을 담은 후, 두꺼운 테이프로 상자를 봉했다. 동네 작은 서점의 주인이 이 책들을 가져가기로 했다. 과거를 너무 버린 게 아닐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너무 많이 버린 건 아닐까? 몸이 마비되어 앞으로 30년간 꼼짝도 못 한다면? 그러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넘칠 것이다. 그러자 내 책들이 환각지(幻覺肢, 수술이나 사고로 갑자기 손발이 절단되었을 경우, 없어진 손발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환각지에 대한 책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건만, 그 자리에 손을 뻗어도 더 이상 책은 없었다. 그간의 독서 인생이 담긴 상자들은 복도에서 태연하게 앉아 날 노려보았고, 나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인생 2막으로 한 걸음

새집에 도착한 나는 어떤 물건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몸이 얼어버렸다. 이삿짐센터의 직원들은 조바심을 냈다. "이 상자들은 어디에 둬야 하는지만 말씀해주세요. 여긴 빌어먹게 끈적거리네요. 가구 위치는 우리가 떠난 뒤에 마음대로 바꾸세요." 그들은 상자를 최대한 높이 쌓아올렸다. 아무도 내가 그 상자를 어떻게 내릴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조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흠 잡을 데 없는 취향을 가진 전문가들과 오랫동안 함께 일하다 보면 자신의 감각은 어느새 삭아버린다는 게 문제다. 실내장식가는 시선을 회피하며 얼른 나를 밖으로 끌어내고는, '구제 불능의 부자 촌뜨기'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마디 했다. 개인 취향의 존중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집 안 테이블에 물건을 올려두기 시작했다. 오래된 원예 책들은 빈 선반에 꽂아두었다. 양털 담요 조각은 양말 넣어두는 서랍에 넣었다. 옷들이며 향수, 립스틱을 넣어둘 공간도 만들었다. 예전에는 그 물건들을 전부 회사 사무실 벽장에 보관했다. 저녁 행사가 있을 때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가는 것보다, 회사에서 바로 갈아입는 편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일단 집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대로 눌러앉아 버린다는 게 더 큰 이유였다. 그 후로 며칠간 내가 아끼는 물건들을 집 안 곳곳에 정리하면서 차분한 만족감이 퍼져가는 것을 느꼈다. 먼지 쌓인 책들도 깨끗이 닦아주고, 사무실에서 쓰던 찻잔도 씻었다. 책을 정리하고 책상을 닦자마자 기적적으로 다시 글이 써졌다. 이번에는 빼먹고 치는 글자도 없었다. 단어들과의 재회가 너무도 즐거웠다.



오로지 나를 위해 요리하는 즐거움

"어머, 여기 어쩐 일이에요?" 이웃에 사는 퍼키를 만났다. 우리는 식품점 한가운데 있었다. 사방이 저녁거리였다. 내 바로 뒤에는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시리얼이 있었고, 그 옆의 선반 네 개는 텔레비전 앞에서 실컷 먹을 수 있는 과자들의 무게로 신음하고 있었다. 왜 혼자 사는 여자는 제대로 챙겨 먹기가 힘들까? 나는 퍼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그것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연인이든 친구든 부모든 자식이든 누군가와 친분을 쌓는 수단으로서의 음식과 관계가 있다. 사실 새집에서 홀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나 역시 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주제를 바라보는 한 가지 방법은 주제를 바꿔보는 것이다. 혼자 사는 남자와 음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야기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내가 20대였을 때 결혼 생활을 불평하는 아버지에게 왜 그냥 나가서 혼자 살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혼자 살라고? 그럼 저녁은 어쩌고? 매일 저녁마다 혼자 먹으란 말이냐?" 그러셔야죠. 물론 아버지 말의 속뜻은 아직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결혼에는 많은 요리가 따른다. 또 육아도 따른다. 명절과 방학 때는 더 많은 요리를 해야 한다. 하루 종일 병원에서 아기를 낳다 왔어도, 요리를 해야 한다. 나로서는 그게 뭐가 문제인지 죽었다 깨나도 이해할 수 없지만, 삼시 세 끼, 그 많은 요리들이란.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