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지음 | -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
찰스 디킨스 지음
소생 밤 그림자: 1775년 11월 하순경의 어느 금요일 밤, 역마차 한 대가 도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축축하고 몹시 차가운 안개가 자욱히 내리는 국도에서 마부는 말을 사정없이 채찍질했다. 역마차 안에는 손님 셋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뺨과 귀를 가리고 있어 서로가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마음을 옷가지로 덮어 숨기는 듯했다. 그 무렵의 나그네들은 한 마차에 같이 탔다고 해서 서로의 마음을 터놓지 않았다. 상대방이 강도이거나 강도와 한패인 경우가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세 명의 손님들은 역마차 안에서 저마다 꾸벅꾸벅 졸면서 각자의 환상이 낳은 환영을 보고 있었다. 손님 중의 한 사람은 런던의 텔슨 은행에 다니는 '자비스 로리' 씨였다. 예순살 가량의 이 노신사는 파리로 가는 길이었는데 도중에 도버에서 누군가를 만날 예정이었다. 로리에게도 밤새도록 떨어지지 않는 환영이 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을 무덤 속에서 파내어 가는 것이었다. 로리는 이 환영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매장되신 지 몇 해나 되십니까?" "거의 18년." "무덤을 헤치고 다시 세상에 나오실 희망은 다 포기해 버리셨습니까?" "아주 오래 전에." "그렇지만 당신께서 다시 소생하신 그 사실을 아십니까?" "모두들 그렇게 말하더군." "당신께서 생에 대한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저는 바랍니다." "난 잘 모르겠소." 환영 속에 있다가 깜짝 놀라 깬 로리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경작지 저편으로 잡목림이 있고, 타는 듯이 단풍든 잎이 나무 꼭대기에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이로 밝은 해가 조용히 떠오르고 있었다. 해를 바라보면서 로리는 중얼거렸다. "18년간이라! 18년간이나 산 채로 매장되어 있었다니!"
마음의 준비: 역마차는 차갑고 축축한 밤을 달려와 다음날 아침 무사히 도버에 도착했다. 역마차에는 손님이 한 사람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두 사람은 각자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 도중에 내렸던 것이다. 로열 조지 여관에 짐을 푼 로리는 아침 식사를 가져온 급사에게 말했다. "나중에 젊은 여인이 오시니까 방을 준비해두게."
오후가 지나고 어두워지자 급사가 나타났다. 런던으로부터 도착한 '루시 마네트'라는 아가씨가 텔슨 은행에서 오신 신사분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로리는 급사의 안내로 마네트 양의 방으로 갔다. 나이는 열일곱 쯤 되었을까? 작달막하면서도 날씬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승마복 차림의 아가씨였다. 풍성한 금발에 눈은 파랗고, 무엇을 묻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앉으시죠." 로리는 고개를 숙이고 나서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어제 은행에서 온 편지를 받았어요. 불쌍하신 제 아버지는 저를 한번 보시지도 못한 채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만 은행으로부터 얼마 안 되는 아버지 유산에 대해서…, 그 이유로 제가 파리로 가야 하며, 같은 목적을 가지고 그곳으로 향하는 은행 신사분과 의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은행에서 보낸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은행 얘기로는 그분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요."
로리는 잠시 망설이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은행원이랍니다. 내가 맡은 사무와 관련해서 어느 단골 손님 얘기를 해드리죠. 그 단골 손님은 프랑스 신사였으며 매우 박식한 의사였지요. 나는 그와 파리에서 사귀었습니다. 파리 지점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은 영국 부인과 결혼하셨습니다. 그리고 재산에 관한 것은 모두 텔슨 은행에 맡기셨습니다." "그건 저의 아버님 얘기 아닌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 만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셔서 제가 고아가 됐을 때 저를 영국에서 데려다 주신 분이 아저씨 아니신가요?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마네트 양, 맞습니다."
로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가씨, 놀라지 마세요. 아가씨의 아버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 과연 그녀는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만약에 마네트 씨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취를 감춘 것이 됩니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말입니다. 어디로 끌려갔는지 짐작할 순 없지만, 마네트 씨를 찾으러 갈 수는 없었습니다. 예컨데,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아버님의 적이었다고 합시다. 프랑스에선, 그 권력자 얘기를 할 때는 아무리 배짱이 있는 사람도 남이 들을까봐 소곤소곤 얘기한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용지에 상대 이름을 써 넣기만 하면 이름이 적힌 사람은 감옥에 갇히고 만답니다. 그런데 파리 보베 출신의 어떤 훌륭한 의사가 권력자 때문에 그런 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불운한 그분의 부인은 매우 영리한 분이기는 했지만 그 사건으로 몹시 상심하셨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은 다음에 …. 아기의 어머니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내가 겪는 고통을 맛보게 하고 싶지 않아. 아버지는 죽은 것으로 해 두자'고 말입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그 뒤에 돌아가셨는데, 그때 아가씨는 두 살이었습니다." 마네트 양의 온몸에는 전율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아가씨,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양친께서는 재산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재산이 발견된 것도 아니랍니다. 그러나 아버님이 발견됐습니다. 살아계신 겁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거기로 가려고 합니다. 나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모습이 달라지셨을 그 분을 확인하려고, 아가씨는 아버님을 맞이하려고 말입니다. 마네트 씨를 프랑스에서 얼마 동안만이라도 꼭 탈출시켜 드려야 합니다. 이 일은 완전히 극비 임무입니다." 로리가 말을 마치자 마네트 양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정신을 잃었다.
선술집: 파리 동쪽, 바스티유 감옥과 센 강 사이에 생탕투안이라고 불리는 빈민가가 있었다. 빈민가의 가게 간판은 모두가 냉혹한 궁핍의 삽화와도 같았다. 푸줏간 간판에는 비루먹은 고기 부스러기가 그려져 있었고, 빵집 간판에는 맥주 또는 묵은 포도주를 앞에 놓고 분량이 적다고 투덜대며 서로 귓속말을 하면서 겨눠 보는 사람들의 그림이 천박하게 그려져 있었다. 무기, 연장 등을 제외하고는 무엇하나 풍요로운 상태를 보이는 것이라곤 없는 곳이었다.
생탕투안의 모퉁이에 선술집이 있었다. 술집 주인은 '드파르즈'라고 하는 삼십대의 사나이였는데, 볼품없이 큰 몸집에 싸움 깨나 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독히 추운데도 웃옷 하나 안 입고, 어깨에 셔츠 하나만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열적인 체질의 소유자임에 틀림없었다. 무척 강한 결심과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가 술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의 아내 마담 드파르즈는 계산대 뒤에 앉아 있었다. 좀처럼 한눈을 팔지 않는, 방심하지 않는 눈초리, 반지를 즐비하게 낀 큼직한 손, 착실해 보이는 얼굴, 강렬한 표정, 태연자약한 태도 …. 남편과 동년배의 억척스런 여인이라는 것이 마담 드파르즈의 인상이었다. 무언가를 잊지 않기 위해 면밀히 기록하는 것처럼 뜨개질에 열중하는 것도 특이했다.
이 선술집에 로리와 마네트 양이 들어와 구석에 앉아 있다가 로리가 드파르즈에게 다가갔다. 로리의 첫마디에 드파르즈는 깜짝 놀라며 깊은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더니 채 1분도 채 못돼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밖으로 나갔다. 마네트 양 역시 그들을 따라 나갔다. 드파르즈가 안내한 곳은 가난의 시궁창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었다. 집이 빽빽이 들어선 지역에 있는 계단이나 통로는 속이 메슥메슥해질 만큼 지저분했다. 겨우 계단을 올랐으나, 다시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더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그곳에 오르자, 드파르즈는 어깨에 걸치고 있는 저고리의 호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냈다. 로리가 놀라서 물었다. "방에 자물쇠가 잠겨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왜 잠갔지요?" "왜 잠갔느냐고요? 몇십 년이나 갇혀 있던 분인데 열어 놓아 보십시오. 놀라고 미쳐서 자신의 몸을 당신 손으로 갈가리 찢고 …. 돌아가실지도, 무슨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구두 짓는 사나이: 다락방은 장작을 쌓아 두던 곳이어서 몹시 어두웠다.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백발의 사나이가 낮은 걸상에 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열심히 구두를 짓고 있었다. 드파르즈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부지런히 일하고 계시는군요," 백발 사나이가 머리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그렇소, 일을 하고 있소." 그 사나이의 목소리는 가냘픈 듯하면서도 무시무시했다. 육체가 쇠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랜 동안 고독한 감금 생활을 하여 목소리를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드파르즈가 창문을 조금 열었다. 밝은 빛이 다락방에 비쳐들자, 구두를 무릎에 놓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다지 길지 않은 턱수염, 홀쭉한 뺨, 그리고 야릇하게 번뜩이는 눈, 넝마같은 셔츠의 깃이 벌어져 있어서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몸이 들여다보였다. 로리가 가까이 다가갔다. "당신은 구두 만드는 게 본업이 아니죠? '알렉상드르 마네트' 씨,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이어서 로리는 술집 주인의 팔에 손을 가져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마네트 씨, 이 사람을, 이 사람의 얼굴을 잘 보십시오. 그 다음에 저를…. 먼 옛날에 사귀었던 은행원인 저와, 옛 하인인 드파르즈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요?"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죄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능이 약간 작용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사라져 갔다.
마네트 양이 살그머니 다가왔다. 마네트 양은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는지, 말없이 그 사람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백발의 사나이는 칼을 살그머니 놓더니 손을 내밀어 아가씨의 금발을 만지며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후 자기의 몸에 맨 검은 끈을 풀었다. 그 끈에는 접은 천 조각이 달려 있었다. 그는 천 조각을 무릎에 놓고 조심스럽게 폈다. 그 속에는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다. 한 오리 또는 두 오리의 기다란 금발을 고리처럼 둥글게 한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아가씨를 환한 쪽으로 돌려 세우고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가 관리들에게 불려 나간 밤, 아내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어. 내가 북탑의 감옥으로 끌려갔을 때, 내 옷소매에는 이 머리카락이 달려 있었지. 나는 말했어. '이건 탈옥에 필요한 연장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가지고 있을 수 있겠죠? 하긴 영혼의 탈옥에 쓸 수는 있겠지만 말이오' 하고." 그는 하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리고는 아까 그 천 조각을 접고 슬픈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냐, 틀려. 당신은 너무 젊은 아가씨야. 상냥한 아가씨, 이름이 뭐요?"
마네트 양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애소하듯이 양손을 내밀었다. "오래지 않아 반드시 아시게 될 거예요. 제 이름도, 제 아버지도." 그리고는 다가가 백발 사나이의 목을 꼭 껴안았다. "아, 당신은 그리운 분이에요! 당신의 괴로움은 이제 끝났어요! 이제부터 영국으로 가서 평화롭고 즐겁게 살아요. 저는 아버님을 생각하며 온 밤을 지새우며 울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저는 아버지의 눈물이 지금 제 얼굴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흐느낌이 제 가슴에 전해오는 것을 느껴요. 오, 하느님께 감사를!" 백발의 사나이는 아가씨의 팔에 안긴 채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날 밤, 드파르즈의 술집 앞에 마차가 섰다. 백발의 사나이와 로리, 그리고 마네트 양을 실은 마차가 별이 총총하게 반짝이는 하늘 밑을 달려갔다.
금실 구경거리: 그로부터 5년 후, 마네트의 지적인 용모와 꼿꼿한 몸맵시는 파리의 어두운 다락방 속에 있던 구두공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마네트의 마음속에는 그늘이 질 때가 있었다. 저 공포의 바스티유 감옥이 멀리 5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그림자를 지워버릴 힘을 가진 사람은 오직 그의 딸뿐이었다. 루시야말로 마네트의 참담한 처지를 넘고 넘어 '과거'까지 연결되고, 그 참담한 처지를 다시 넘고 넘어 '현재'에 연결되는 금실인 것이다.
1780년, 올드 베리 재판소(런던의 중앙 형사 재판소)에서는 5년 전, 11월의 금요일 밤과 기묘하게 얽힌 재판이 열렸다. 피고는 스물댓 가량 되어 보이는 청년 신사였다. 얼굴은 검게 그을었고 눈은 크고 몸집이 좋으며 이목구비가 반듯했다. 방청인, 곧 구경꾼들의 관심은 이 청년에게 쏠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사형될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이었다. 청년의 이름은 '찰스 다니'라고 했다. 피고는 5년 전 11월의 금요일 밤, 어떤 공범자와 함께 도버로 가는 역마차를 탔고, 밤중에 어느 곳에서 마차를 내려, 약 20킬로미터를 되돌아와서 병영과 해군 공창을 염탐했다고 신고되어 있었다. 주임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피고가 나이는 젊으나 반역 행위를 식은죽 먹듯이 하는 몹쓸 놈이며, 프랑스에 정보를 팔았고, 비밀 사명을 띄고 프랑스와 영국 사이를 수차례 왕래하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5년 전 그 역마차를 같이 탔던 로리 씨 일행을 증인으로 부른 것이다.
주임 검사가 물었다. "로리 씨, 당신은 1775년 금요일 밤 은행 일로 런던과 도버 사이를 역마차로 여행한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 역마차에 같이 탔던 손님은?" "두 사람이었습니다." "로리 씨, 피고는 그때 같이 탔던 사람의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로리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 로리 씨, 당신은 전에 피고를 본 일이 있었습니까?" "있습니다. 며칠 뒤,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였습니다." "로리 씨, 당신은 그때 혼자 여행하고 있었습니까? 아니면 동행인이 있었나요?" "두 사람의 동행인이 있었습니다. 의사 마네트 씨과 그의 딸, 루시 마네트 양과 함께였습니다." 그 다음 증인으로 마네트 일가가 불려나갔다. 5년 전, 프랑스에서 런던으로 돌아올 때 배에서 알게 된 피고인, 찰스 다니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루시 마네트는 그 당시 친절과 격려를 주었던 피고에 대한 동정, 그리고 피고에게 닥치고 있는 위험에 질려서,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긴장한 표정을 띄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네트의 표정이었다. 영국으로 망명한 프랑스 귀족인 '찰스 다니의 본명'을 법정에서 들은 후 마네트의 얼굴은 얼어붙은 것이다. 그는 무언가를 뒤늦게 깨달은 것 같았다. 찰스 다니를 응시하는 눈에서는 공포의 빛마저 떠올랐다. 이 재판에서 찰스 다니는 뜻밖에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피고를 도운 변호사들의 활약 때문이었다. 찰스 다니를 꼭 닮은 '시드니 카턴' 변호사 역시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결혼: 다시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찰스 다니는 영국에서 프랑스어의 고급 교사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 문학에도 깊은 지식이 있었으므로 번역자로서도 이름이 높았다. 일정한 날에 런던 북쪽의 교육 도시 케임브리지에 가서 대학생들에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다니에게는 루시 마네트에 대한 은밀한 사랑도 싹트고 있었다. 다니는 어느 날 정적이 감도는 마네트 씨 집으로 가서 마네트 씨에게, 자신은 루시를 사랑하며 만일 루시도 자기를 사랑한다면 장차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니의 그 말에 마네트는 공포에 가까운 표정을 짓더니 잠시 사이를 두다가 이렇게 입을 열었다. "다니 군, 만일 루시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자네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나는 기꺼이 자네와 내 딸의 결혼을 축복하겠네. 딸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불리한 조건이 있더라도, 나는 딸의 행복을 바라면서 모든 것을 잊겠네." 다니는 마네트의 얘기가 수수께끼 같아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루시를 사랑하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다니가 프랑스 첩자로 오인받아 법정에 섰을 때 그를 도와준 변호사, 시드니 카턴이었다. 카턴은 그즈음 삶에 회의를 느끼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루시를 향한 마음만은 더없이 순수했다. 루시가 다니와 결혼하기 전 카턴은 루시에게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아가씨를 알게 된 뒤, 몇 번이나 마음을 고쳐먹자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꿈이었습니다. 다만 이 말만은 기억해 두십시오. '나에게 그 꿈을 꾸게 해준 분은 아가씨'였다고요. 이런 얘기는 아가씰 난처하게 할 테니까 그만 하렵니다. 그러나 부탁합니다. 내가 한 일, 내 이름, 어리석은 나를 기억해 주신다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루시는 평소에 다니와 꼭 닮은 외모를 가진 카턴이 마음에 큰 상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남들은 할 수 없는 무언가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