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전사
댄 밀맨 지음 | 갤리온
댄 밀맨 지음
갤리온 / 2007년 7월 / 270쪽 / 10,000원
0 레인보우 가 끝의 주유소"나는 내 삶을 자연스럽게 창조해가지만 자네는 자네의 생각, 감정, 과거로 이미 결정돼 있어."
아흔여섯 살의 기이한 노인'이제 시작이다.' UC버클리의 캠퍼스 기숙사를 찾아들어가 짐을 풀고 나서 창밖에 보이는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의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자정이 넘도록 캠퍼스 주변의 아름답게 구획된 길들을 따라 걸어 다녔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직후 곧바로 하몬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은 흥분과 도전 그리고 만족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나의 성역, 최상의 장소였다. 대학 2년이 다 가기 전에 나는 세계 트램펄린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기숙사 방 한구석에는 각종 우승컵이 쌓여 갔다. 나는 세상을 얻은 듯했다. 그러나 3학년이 되던 1966년 초가을, 뭔가 실체를 알 수 없는 암울함이 엄습해 왔다. 바로 그즈음, 악몽이 시작됐다. 거의 언제나, 꿈 내용은 동일했다.
캄캄한 도시의 거리를 혼자 걷고 있다. 검정 망토를 뒤집어쓴 거대한 물체가 나를 향해 성큼 다가온다. 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그 순간 백발의 남자가 사방에 깔린 공포의 저편에서 나타난다. 그의 얼굴은 평화롭고 주름이 없다. 나는 그가 내 유일한 희망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나는 그를 부를 수가 없다. 이런 내 마음을 비웃듯이 검정 망토의 저승사자는 휙 돌아 백발의 남자와 마주 선다. 격노한 저승사자가 남자를 향해 돌진한다. 다음 순간, 죽음의 유령은 내 쪽으로 내던져졌다. 갑자기 사신(死神)이 사라진다. 빛나는 백발의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환영의 손을 내민다. 나는 그가 있는 쪽으로 걷다가 바로 그 남자의 몸을 통과해 그의 몸속에서 용해된다. 내 몸을 들어보자 표백한 듯 허연 뼈마디들이 합장 자세로 모아진다.
가쁜 숨을 내쉬며 나는 꿈에서 깨어나곤 했다. 12월초의 어느 날 밤 새벽 3시 5분, 잠을 청할 수가 없어 과자와 탄산음료를 사기 위해 24시간 영업하는 주유소로 향했다. "저, 소다 팝(Soda Pop) 있나요?" "여긴 과일 주스뿐이라네. 그리고 나를 팝(Pop; 아버지를 뜻함)이라고 부르지 말게나." 그리고 그가 웃었다. 바로 저 웃음소리! 나는 꼼짝 않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바로 꿈속의 나이든 그 남자였다! 당황한 나머지 '사무실'이라 표시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문은 마치 또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느껴졌다. 나는 낡은 소파에 걸려 넘어졌고, 온 몸에 소름이 돋은 채 그 문을 통해 뭔가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나의 평온한 일상을 파고들어올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가정집 같은 분위기가 놀라웠다. 바로 이곳에서 예측할 수 없는 모험, 불가사의, 공포 그리고 낭만이 전개되리라고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문득 현실로 되돌아와 길가 모퉁이에 이르러 힐끗 뒤돌아보았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지붕 위에 서서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지붕 위로 올라가신 거죠?" "나는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 문제는, '자넨 자네가 무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하는 거야." 캄캄한 가운데 뭔가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휙 돌렸고 내 어깨 위에 놓인 그의 손을 보았다. 그가 지붕에서 내려와 내 쪽으로 소리 없이 다가온 것이다. 나는 이 남자의 무례함에 기가 찼다. 나는 서둘러 그를 따라잡았다. 그는 차고 안으로 들어가 낡은 초록색 포드 픽업트럭의 보닛을 열어 카뷰레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붙임성 있게 굴기로 작정했다. "제 이름은 댄이에요. 당신 이름은?" "내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 자네 이름도 그렇고, 정말 중요한 건 이름이나 질문 너머의 것들이지. 난 전사(戰士)라네. 내가 누군지는 내가 누구이기를 희망하는 자네의 마음에 달렸지. 자네를 다시 만나서 반갑네." "'다시'라뇨?" 말을 시작하다가 스스로 멈췄다. "안녕히 계세요, 소크라테스." 나는 그가 이 이름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오후 체조 연습 시간이 되어서야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공중에서 날고 또 날면서, 소크라테스라 이름 붙인 그 남자의 신기한 묘기를 떠올렸다. 뒤죽박죽인 내 마음은 그를 피하는 쪽으로 몰아댔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수수께끼 같은 면모를 제대로 파악하고도 싶었다. 저녁 식사 후, 역사와 심리학 과제를 서둘러 해치우고 아파트 밖으로 뛰어나갔다. 밤 11시였다. 주유소 입구에 서 있던 그는 사무실 안으로 안내했다.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면서 말했다. "있죠, 소크라테스. 난 예전에 당신을 본 것 같아요." "그랬지." 또다시 꿈과 현실이 합치되는 마음속의 문이 열렸다. 여러 사람이 내 꿈을 꿔 왔지. 자네가 그런 것처럼. 자네가 꾼 꿈에 대해 말해 보게나." 그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세세한 면을 곁들여 꿈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마치자, 그가 말했다. "아주 좋은 꿈이군."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전에 주유소의 벨소리가 연거푸 울렸다.
자정이 지나자, 손님이 뜸해졌다. "소크라테스, 물어볼게 몇 가지 있어요." "뭔가?" 그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러니까, 그 지붕 사건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 또 당신이 날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건지 알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 나이도 알고 싶고요." "가장 쉬운 것부터 대답하지. 나는 아흔여섯이야. 자네 시간으로 따지면." 그는 틀림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왜? "난 아직도 우리가 서로에게 무얼 해줄 수 있는지 궁금해요." 우리는 불 켜진 상점 거리와 그 너머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이 보이는 길모퉁이로 걸어 나갔다. "여기 이 세상은 학교야, 댄. 유일한 진짜 스승은 삶이지. 나는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보다 명료하게 인식하는 법을 알려 줄 수 있고, 지금 자네에게 필요한 건 바로 명료함이야."
반짝거리는 빨간 도요타가 주유소에 들어서자 그는 휘발유 펌프를 주유구에 고정시켰다. "이 차와 마찬가지로, 자네는 휘발유를 사듯이 지식을 사들이는 거야." 연료 탱크가 가득 찼지만, 소크라테스는 바닥에 휘발유가 넘쳐흐르도록 주유기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댄, 이 휘발유 탱크처럼 자네는 쓸모없는 지식으로 가득 찬 편견으로 넘쳐 나고 있어. 자네는 배우기 전에 자네 탱크부터 비워야 하네." 우리는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은 이미 자네 안에 다 있네. 우주의 비밀은 자네의 몸 세포마다 새겨져 있지. 하지만 자네는 몸의 지혜를 어떻게 판독하는지 배우지 않았어." 이 주유소 직원은 우리 대학 교수들이 무지하고, 나의 대학 교육이 소용없음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해는 일차원적인 인식 방법이야. 그건 지식을 가져다주지. 그러나 깨달음은 삼차원적이야. 머리, 가슴 그리고 감각으로 동시에 인식하는 거야. 그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지. 처음 운전대를 잡았던 때를 기억하나? 그 이전에 자네는 탔기만 했고 차가 무언지 이해만 할 수 있었지. 하지만 처음 운전을 했을 때, 자네는 비로소 차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어. 인생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 거야."
1 눈과 귀를 가진 바람"생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걸 멈추는 그 순간, 세상의 소란스러움에서 자유로워질거야."
인생을 통틀어 나는 항상 혼자였다자정 무렵이었다. 이른 봄의 싸늘한 밤공기를 마시며 주유소로 천천히 걸었다. 갑자기 오싹해져서 고개를 드니, 소크라테스가 입구에 서서 늑대마냥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 몸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저승사자의 기억이 돌아왔다. 그가 다정하게 말을 꺼내자 두려움이 사그라졌다. "자네가 돌아와서 기쁘네."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그가 말했다. "이봐, 이게 느껴지나?" "뭐가요?" "느껴봐!" "바람 말인가요, 소크?" "그래, 자네에게 전환점이란 뜻이야. 지금 바람이 바뀌고 있어." 나는 그를 따라가 낯익은 소파에 앉았다. 소크라테스는 꼼짝 않고 시선을 내게 고정했다.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네. 겁먹지 말게. 댄, 자네가 전사의 길을 보기 전에 우리가 자네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 걸 기억하나?" 이 말과 함께 그는 손을 내밀어 내 관자놀이에 양손을 부드럽게, 그러나 단단히 고정했다. 갑자기 머리 가운데에서부터 무언가 점차 압박해 오는 듯이 느껴졌다. 머릿속 가득, 윙윙거리는 듯하다 파도가 기슭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종소리가 울리고, 머리가 폭발하는 듯했다. 바로 그때 나는 빛을 보았고, 그 눈부심 속에서 마음이 폭발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죽어 갔고 무언가 다른 것이 탄생하는 중이었다! 그러고는 빛이 모든 것을 완전히 감싸 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내가 자네의 에너지를 조종해서 몇 개의 새로운 회로를 열었다고 말해 두지. 이제부터 일반적인 지식은 더 이상 자네를 만족시키지 못할 거야."
소크가 예언한 대로 무언가 분명히 일어났지만, 나는 그것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내 짐작보다도 더 똑똑하거나, 아니면 더 사악한 그 무엇일 수도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여행갈 준비 됐나?" 그는 나를 처음 보는 작은 창고로 안내했는데, 그곳은 각종 도구가 놓인 차고의 뒤에 가려져 있었다. 그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내 머리를 잡더니 두 엄지손가락을 내 눈두덩 바로 위의 뼈에 갖다 댔다. 이가 덜덜 부딪쳤다. 소변을 누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나는 모든 것을 깡그리 잊었다. 형형색색의 빛이 번쩍였다. 무슨 소리가 나는 것도 같았으나 너무 멀리서 들려와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 여행은 진짜야. 자네가 평상시에 잠자다 깨는 꿈보다 더 진짜라고. 주의를 기울여 봐!" 이제 저 아래쪽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경기장 한가운데, 각종 체조 기구가 둘러싸고 있는 낯익은 푸른색 매트의 마루 체조 바닥을 발견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침착해야 돼...준비...!" 나는 여자 선수가 머릿속으로 동작을 되새기는 것을 시사회를 보듯 눈으로 보았다. 나는 말소리를 듣기보다는 그 뜻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때로는 크고도 분명하게. 이런 식으로 러시어어, 독일어 또는 무슨 언어가 됐건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또 다른 것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가장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은 궁극의 순간에 가장 고요한 마음을 지녔다. 처음으로 나는 내가 왜 체조를 그토록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소란스런 내 마음에 은총과도 같은 휴식을 주었다. 스윙을 하고 공중에서 회전하는 동안에는 모든 일을 잊을 수 있었다. 내 몸이 움직이고 있을 때면, 내 마음은 침묵의 순간 속에서 쉴 수 있었다.
다시 나는 눈과 귀를 가진 바람이 되었다. 나는 멀고도 넓게 보고 들었다. 벵골 만 근처의 인도 동쪽 해안을 지났고, 거리에서 청소하는 여자를 지나쳤다. 홍콩에서 고급 천 장수가 쇼핑객과 큰소리로 흥정하는 주변을 소용돌이쳤다. 상파울루 거리를 휘몰며 열대 날씨에 배구를 즐기는 독일 관광객들의 땀을 씻어 냈다. 나는 모든 나라를 거쳤다. 나는 모든 종류의 감정을 경험하고, 모든 고뇌의 외침과 웃음의 메아리를 들었다. 인간의 모든 상황이 내게 열렸다. 나는 그 모두를 느끼고 이해했다. 어디든 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고통스런 탐색을 펼쳤다. 나는 세상의 고뇌와 인간 마음의 한계를 보았고, 어찌할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인생을 통틀어 나는 늘 혼자였다. 소크가 아주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자네는 선택을 할 수 있고, 현재의 상황을 바꿀 수도 있네. 자네는 자네의 미래를 바꿀 수 있어."
분노는 두려움보다 강하고 슬픔보다 강하다그의 가르침은 내가 영화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시작됐다. "재미있는 영화 같군. 댄, 자네도 탈출이 필요하잖나. 자네는 스스로 만든 환상의 포로 아닌가.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면 그 어떤 영화 속 영웅보다 더 많은 용기와 힘이 필요할거야." 그날 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 소크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는 감옥에 있는 것 같진 않은데요." "자네는 원하는 걸 갖지 못하면 고통을 느끼지. 원하지 않은 걸 가져도 고통을 느껴. 자네의 마음이 자네의 곤경이라네. 마음은 변화로부터, 고통으로부터, 삶과 죽음이라는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지. 그러나 변화는 법칙이고, 그 무엇도 이 사실을 바꿀 수는 없네." "그럼, 마음의 긍정적인 요소는 뭔가요?" "'마음'이란 안절부절 못하는 정신의 가짜 투영이야. 잠재의식에서 표면으로 떠오르는. 닥치는 대로의 모든 생각을 포함하고 있네. 마음은 아무 쓸모가 없어." "소크라테스, 난 언제나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요." 그러자 그가 불길한 어조로 말했다. " 선택을 하게나. 그러나 그 전에 자네가 감옥에 있다는 걸 깨달아야만 해. 그래야 자네의 탈출을 계획할 수 있지."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댄, 이쪽은 조이(Joy)야." 조이가 반짝이는 큰 눈으로, 사랑스럽고도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나를 올려다보자, 내 눈은 게슴츠레해졌다. "우리 늙은 부처가 당신을 탈수기에 집어넣고 있었죠, 그죠? 그렇게 짜내는 건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어서에요. 내가 당해봐서 알아요." 그녀가 소크라테스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이번 토요일 아침 10시에 여기서 만나 틸든 공원으로 다 같이 소풍 가는 게 어때요?" 마침내 토요일이 되자, 나는 알몸 상체 바람으로 버스 정거장에 나갔다. 봄 햇살에 좀 그을려 근육질의 내 몸매를 조이에게 과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고 없이 구름이 몰려들었다. 나는 셔츠를 집어 들고, 악담을 퍼부으며 갈아입었다. 소크라테스는 그저 웃기만 했다. "이게 그렇게 재미있나요!" 내가 역정을 냈다. 형편없이 쪼그라든 내 등 뒤에 앉아서 조이가 내 어깨를 털어 주자, 소크라테스가 말문을 열었다. "댄, 이젠 자네가 삶의 경험에 대해 배워야 할 때가 됐네." "첫째, 자네가 실망하거나 화가 난 건 비 때문이 아니었어. 결국 자네 마음이 자네 기분을 좌지우지한다는 걸 알 수 있지. 두 번째 교훈은, 내가 전혀 속상해 하지 않은 걸 보고 자네가 더더욱 화를 낸 걸 보면 알 수 있지. 자네는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어. 자신과 전사를." 소크라테스는 나를 보고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더니 젖은 낙엽 더미 위에 배를 깔고 사지를 흔들며 수영하는 체했다. 나도 젖은 잔디 위로 몸을 뒹굴며 조이와 한바탕 몸 씨름을 벌였다. 조이는 놀기 좋아하는 강아지처럼 뛰어놀았는데, 여전사의 면모는 그대로 살아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급속도로 빠져 들었다.
일요일은 주체할 수 없는 우울증 속에서 지나갔다. 어느 날 오후, 교정 아래쪽 근처의 삼나무 숲에 앉아,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며 적당한 자살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어떤 고통도, 그 밖의 무엇도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힘겹게 주유소로 향했다. 조이는 없었다. 또다시 일대일의 관계, 소크와 나뿐이었다. "자네, 피곤하고 우울해 보이는군." 그의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았다. 눈물이 고였다. "그래요. 우울해요. 작별 인사하려고 왔어요. 이젠 목구멍까지 찼고 더는 못 견디겠어요. 살고싶지 않아요." "댄, 자네는 두 가지 점에서 틀렸네. 첫째, 자네는 아직 목구멍까지 도달하지도 않았어. 하지만 터널 끝에는 매우 가까이 와 있지. 그리고 둘째는…." 그가 내 관자놀이로 손을 뻗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