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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 -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제1장



작년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세상 사람들이 똑같은 차림을 하고 일종의 도덕적인 자세를 영원히 취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무슨 특권이라도 지닌 듯이 사람의 마음속을 오만하게 들여다보는 광란의 놀이에 진저리가 난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이 책의 주인공인 개츠비만은 앞에서 말한 나의 반발에서 제외된 사람이다. 개츠비는 내가 바로 노골적으로 경멸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발견된 적도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낭만적인 민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내가 사람들의 대단치 않은 슬픔이나 숨막힐 정도로 우쭐거리는 모습에 잠시나마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은 개츠비를 통해 그의 꿈이었던 자리에 더러운 먼지를 떠돌게 한 것 때문이었다.

내가 동부로 가게 된 것은 증권업을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웨스트에그의 월 80달러인 집에서 살았었는데 한철에 1만 2천 달러에서 1만 5천 달러에 세를 주는 어마어마하게 좋은 두 채의 저택 사이에 끼여 있었다. 특히 오른쪽에 있는 저택은 어느 모로 보나 위압감을 주는 대저택이었는데, 바로 개츠비의 집이었다.

내가 탐 부캐넌 부부와 저녁 식사를 하러 바닷가를 따라 이스트에그의 하얀 저택들이 번쩍이는 곳으로 차를 몰고 간 바로 그날 저녁에 그 여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데이지는 나의 육촌 동생이었고 그녀의 남편인 탐은 대학에서 알았다. 탐은 예일 대학의 축구 선수로는 보기 드문 강력한 스크럼 선수였고 당시에도 굉장한 부자였다. 그들 부부가 왜 시카고를 떠나 동부로 왔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승마복 차림의 탐이 정면 베란다에서 두 다리를 벌린 꼿꼿한 자세로 나를 맞이했다. 그는 건장한 체격을 지닌 30대의 사나이로, 굳게 다문 입이 오만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는 천장이 높은 현관 마루를 지나 밝은 장밋빛으로 물든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정지해 있는 것이라곤 커다란 소파뿐이었는데, 그 위에는 데이지와 어떤 여자가 마치 강철로 줄을 매 놓은 기구(氣球)에 타고 있는 것처럼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다 흰옷을 입고 있었다. 나이가 좀 어려 보이는 여자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름이 베이커라고 했다. 데이지가 일어섰다.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서 몸이 굳어 버릴 지경이에요.” 그녀는 무슨 재치 있는 말이라도 한 듯 깔깔거렸다. 그러고는 엉뚱하게도 아기를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지금 정신없이 자고 있어요. 세 살이에요. 꼭 보셔야 해요. 그 애는요….” 탐은 아까부터 방 안을 불안스럽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베이커가 느닷없이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웨스트에그에 살고 계시다구요? 그곳엔 제가 아는 분이 살고 있어요. 개츠비라는 분을 아시지요?” “개츠비라고? 무슨 개츠비 말이야?” 데이지가 물었다. 그 사람이 바로 내 옆집에 살고 있다고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하인이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알려 왔다. 식사를 하는 중에 하인이 들어와서 탐의 귀에다 속삭였다. 그러자 탐은 찡그리며 말 한마디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데이지가 냅킨을 식탁에 던지고는 실례하겠다고 짧게 말한 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쪽 방에서 흥분을 억제하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베이커는 엿들으려고 몸을 안쪽으로 굽혔다. “탐은 뉴욕에 사귀는 여자가 있어요. 그녀는 식사시간에 전화를 삼가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윽고 탐과 데이지가 돌아와 식탁에 앉았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데이지가 탐을 향해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엉망이 된 그날 저녁 식탁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는 누군가 하릴없이 촛불만 다시 켰던 것뿐이었다. 내 생각에 데이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이를 안고 그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데이지는 그렇게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웨스트에그의 집에 돌아온 나는 제초기에 걸터앉아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은색 후춧가루가 뿌려진 것 같은 별들을 쳐다보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었다. 어딘지 여유 있어 보이는 몸놀림과 잔디를 밟고 서 있는 다리의 확고한 자세가 그 사람이 개츠비임을 짐작하게 했다. 그는 자기 몫의 하늘을 찾아내기 위해 나온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혼자 있는 것을 만족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쪽에는 선창의 끝부분처럼 보이는 곳에 작은 녹색 불빛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제2장



웨스트에그에서 뉴욕으로 가는 중간쯤에 재의 계곡이 있다. 잿빛 땅과 그 위를 끊임없이 떠도는, 경련적으로 일어나는 먼지 구름 너머로 살며시 T. J. 에클버그 박사의 눈이 그려진 간판이 나타났다. 그 눈은 어마어마한 노란색 안경 너머로 이쪽을 보고 있다. 분명히 어떤 뻔뻔한 안과 의사가 선전 간판을 설치해 놓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이사를 한 것이리라. 내가 탐의 정부를 만난 것도 이 재의 계곡에서였다. 탐은 자기 여자를 소개하겠다며 막무가내로 나를 끌고 왔다. 나는 그를 따라 하얗게 칠한 철로변 담을 넘었고, 에클버그 박사의 끈질긴 시선을 받으며 황무지의 자동차 수리소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각종 수리. 조지 B 윌슨. 자동차 매매’라는 팻말이 산만하게 붙어 있었다.

수리소 주인인 윌슨이 문간에 나타났다. 우리를 본 그의 연푸른 두 눈에 흐릿한 희망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주인은 탐이 의뢰한 일이 곧 마무리된다고 말하며 연신 손을 비벼 댔다. 탐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초조하게 실내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때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관능적인 몸매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미소를 띠고 남편 윌슨이 유령이기라도 한 듯 그 옆을 바짝 지나쳐 열정적인 눈으로 탐을 쳐다보며 그와 악수했다. 그녀가 남편에게 의자라도 내오라고 날카롭게 말했다. 그러자 윌슨은 황급히 조그만 사무실 쪽으로 사라졌다.

“오늘 만나고 싶으니 다음 기차를 타도록 해요.” 탐이 그녀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길 아래쪽 신문 판매점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나가자마자 윌슨이 의자 두 개를 가지고 나타났다.

이리하여 탐과 그의 정부 머틀(윌슨 부인)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은 함께 뉴욕으로 갔다. 우리는 역에서 택시를 타고 158번가의 멋진 아파트에서 멈춰 섰다. 나는 지금까지 취한 적이 딱 두 번 있었는데, 그 두 번째가 바로 이날이었다. 머틀은 전화로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했고, 손님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탐과 머틀은 마주 보고 서서 머틀이 탐의 아내인 데이지의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놓고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르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부를 거라고 악을 썼다. 탐은 빠르고 익숙하게 그 큰 손으로 그녀의 코를 후려쳤다. 이어서 욕실 바닥에 피투성이 수건들이 쌓이고 여자들의 아우성이 들렸다. 나는 샹들리에에 걸어 두었던 모자를 집어 들고 나왔다. 이윽고 펜실베니아 역의 싸늘한 플랫폼에 쪼그리고 앉은 채 《트리뷴》지 조간을 들여다보며 4시에 떠날 기차를 기다렸다.



제3장



여름밤, 개츠비의 집에서는 날마다 흥겨운 음악 소리가 났다. 주말이면 그의 롤스로이스 승용차가 아침 9시부터 한밤중까지 시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손님들을 실어 날랐다. 내가 개츠비의 저택에 처음으로 간 날 밤, 나는 초대된 몇몇 손님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그 집에 도착하자마자 개츠비를 만나보려 했다. 그러나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은 아주 놀란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모른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정원을 어슬렁거리다 대리석 계단에서 베이커를 만났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무도회는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나와 베이커는 내 나이 또래의 한 남자와 호들갑스런 아가씨가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나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어디선가 많이 본 인상이라고 말을 건네 왔다. 그가 공손하게 물었다. “혹시 전쟁 중에 제1사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네, 그래요. 제28보병 연대에서 근무했지요.” “나는 제16보병 연대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왠지 낯이 익다 했더니.” 우리는 프랑스의 축축한 작은 마을에 대하여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파티에서 주인을 만나보지 못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하자 잠시 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개츠비입니다. 난 당신이 알고 계신 걸로 생각했습니다, 친구 분. 내가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군요.” 그의 미소는 무한한 다짐이 담겨 있는, 한평생을 통해 몇 번 볼까 말까 한 아주 진기한 미소였다. 그것은 한순간이었지만 세계 전체를 대하고 있었다.



제4장



7월 말의 어느 날, 아침 9시에 개츠비의 호화 승용차가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댔다. 그전에 나는 그의 파티에 두 번이나 참석했고 그의 수상 비행기도 탔으며, 그의 간곡한 권유로 그의 소유인 해변도 이용했지만, 그가 직접 나를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그와 대여섯 번 정도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가 별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좀 실망했었다.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위대한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차츰 시들해지고 그저 인사나 하며 알고 지내는 이웃집의 주인 정도로만 보게 되었다.

그의 차에 올라 함께 식사를 하러 가는 도중 그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자신의 저택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렸던, 자신에 대한 야비한 비난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미국 중서부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으며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옥스퍼드에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모두 죽었어요. 그 이후로 나는 유럽의 여러 수도에서 인도의 젊은 왕자처럼 살아왔지요. 보석을 수집하고 사냥도 했으며 그림도 그렸는데 모두 나 혼자만의 일이었지요. 그리고 나는 어렸을 때 당했던 슬픈 일을 잊어버리려고 애썼습니다.” 나는 그의 거짓말에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바로 그 무렵 전쟁이 터졌지요. 그것은 나를 살려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으려고 많은 애를 쓰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중위로 임관되어 여러 전투를 겪고 소령으로 진급하여 훈장을 받은 것, 심지어는 작은 몬테네그로 정부에서 훈장을 받은 것까지 설명했다. 그의 미소에는 시련을 겪은 몬테네그로를 이해하고 국민의 용감한 투쟁을 동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를 믿지 못하던 마음이 점차 사라지고 나는 그의 매력에 빨려들어 갔다. 그때 그가 주머니에서 메달을 꺼냈다. 그것은 진짜였다. 훈장 뒷면에는 ‘제이 개츠비 소령’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 주었다.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싫습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나는 언제나 낯선 사람들 틈에 끼여 있지요. 그건 내가 겪은 가슴 아픈 일을 잊으려고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음 말을 망설였다. “오늘 오후에 그 얘기를 해드리지요. 난 우연히 당신이 베이커 양과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베이커 양을 사랑합니까?” “아닙니다, 친구 분. 난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베이커 양은 친절하게도 이 문제를 당신에게 얘기해 주도록 응낙했습니다.” 나는 그가 말한 ‘이 문제’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별다른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성가신 일이었다.

뉴욕에 도착한 우리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쳤다. 그 식당에서 우리는 탐을 만났다. “자네가 전화하지 않아서 데이지가 무척 화났다네.” “부캐넌, 이분은 개츠비 씨야.” 두 사람은 악수했다. 순간 개츠비는 당황했고 긴장돼 보이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이렇게 멀리까지 식사를 하러 오게 되었지?” “여기 있는 개츠비 씨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왔네.” 나는 개츠비 쪽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거기에 없었다.

***

“1917년 10월 어느 날이었어요.” 조던 베이커는 플라자 호텔 정원 다실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나에게 말했다. “데이지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열여덟 살이었는데, 루빌의 그 어떤 아가씨보다 인기가 있었어요. 그날 아침 길모퉁이에 정차한 로드스터 안에는 데이지와 어떤 중위가 나란히 앉아 있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너무나 열중해 있었어요. 그 장교는 아가씨라면 누구나 자기를 그렇게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그런 눈빛으로 데이지를 바라봤어요. 그게 내게는 정말 낭만적으로 보였죠. 난 지금도 그 일을 잊지 못해요. 그 장교의 이름은 제이 개츠비였지요. 그 후 4년이 지나도록 나는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어요.

데이지는 어느 겨울밤에 여행가방을 꾸리다가 어머니에게 들켰는데, 해외로 떠나는 어떤 군인을 전송하려고 뉴욕으로 가려고 했다는 거였어요. 그녀는 당연히 가지 못했고, 그 후 더 이상 군인과 사귀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듬해 6월 시카고의 탐 부캐넌과 느닷없이 결혼을 하더군요. 루빌에서는 전에 없던 성대한 결혼식이었지요. 그들은 남태평양으로 신혼여행길에 올랐어요. 난 돌아온 그들을 산타바바라에서 만났지요. 그런데 그때 난 데이지처럼 남편에게 푹 빠진 여자는 처음 봤어요. 그녀는 남편이 잠시라도 밖에 나가면 불안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탐은 어디 갔지?’ 하고 물었어요. 그리고 그가 보일 때까지 정신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그해 8월 어느 날의 일이었어요. 탐의 차가 마차와 충돌했고, 탐과 같이 탔던 여자의 팔 하나가 부러졌기 때문에 여러 신문에 그 기사가 실렸어요. 그 여자는 산타바바라 호텔의 침실 담당 종업원이었지요. 다음 해 4월 데이지는 여자아이를 낳았고 그들은 일 년쯤 프랑스에서 지냈어요. 그런데… 약 6주 전에 데이지는 수년 만에 처음으로 개츠비라는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거예요.” “그거 정말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이상하군요.” “아니에요. 그것은 전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어요. 개츠비 씨는 데이지가 바로 만(灣) 건너편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저택을 산 거예요. 그리고 그는 알고 싶어 해요. 당신이 데이지와 그를 당신 집으로 초대해 줄 수 있는지를 말이에요.”

그의 소망이 소박한 것에 나는 적이 감동했다. 그는 데이지를 5년이나 기다렸고 거대한 저택을 사서 많은 사람들에게 별빛을 나누어 주었으면서도 남의 집 정원으로 ‘초대받을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베이커가 내게 속삭였다. “데이지가 개츠비 씨를 만나고 싶어 할까요?” “데이지는 그 사실을 알면 안 돼요. 개츠비 씨는 데이지가 아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요. 내가 데이지를 만찬에 초대해야겠어요.”



제5장



그날 밤 웨스트에그로 돌아왔을 때, 나는 개츠비가 잔디밭을 가로질러 내게로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베이커 양과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일 데이지를 불러서 이곳에서 저녁이나 하자고 할까 합니다만.” “아, 그거 괜찮지요.” 그는 관심 없는 듯 말했다. “그럼 며칠 후로 연기할까요?” “아, 그런 게 아닙니다. 최소한.”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가 돌아가자 나는 개운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어 만찬에 초대했다. 대신 탐은 데리고 오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데이지를 초대한 날은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3시쯤 되어 개츠비가 하얀 플란넬 양복에 은빛 셔츠와 금빛 넥타이 차림으로 허겁지겁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특히 눈이 피곤해 보였다. 개츠비는 멍한 눈초리로 클레이의 『경제학』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흐릿한 시선을 창문으로 보내곤 했다. 4시가 다가오자 그는 나지막한 소리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내가 만류하자 그는 참담한 표정으로 의자에 도로 주저앉았다. 바로 그때 내 집의 오솔길로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둘은 동시에 벌떡 일어섰고, 나는 좀 걱정스런 심정으로 마당으로 나갔다. 차가 멈추자 아름다운 데이지가 황홀한 미소를 띠고 나를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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