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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조지 오웰 지음 | -


1984년

조지 오웰 지음





일기를 쓰다


윈스턴 스미드는 방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 흐릿한 거울 같은 장방형의 금속판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줄였다. 텁텁한 목소리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또렷했다. 텔레스크린의 소리는 줄일 수는 있어도 꺼버릴 수는 없다. 창밖은 추워 보였다. 층계참마다 붙어있는 커다란 포스터와 똑같은 포스터가 골목 곳곳마다 붙어 있었다. 포스터에는 덥수룩한 검은 수염의 마흔 다섯쯤 돼 보이는 멋진 남자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얼굴 아래에는 “대형(大兄)이 감시하고 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길 아래 한 구석에서 또 다른 포스터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영사(영국사회주의)“라는 글자가 보였다. 멀리서 헬리콥터가 지붕 사이로 선회 비행했다. 사람들을 감시하는 경찰기였다. 그러나 이런 순찰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문제는 사상경찰이었다. 텔레스크린은 방송을 송신하는 동시에 이쪽 것을 전송하기도 한다. 이 금속판의 시계 안에 있는 한, 윈스턴의 행동은 다 보이고 다 들린다. 그러나 사상경찰의 감시는 은밀해서 어떤 방법으로 감시하는지 추측밖에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모든 동작은 감시되고 있다는 전제에서 살아가고 또 이러한 상황에 본능적으로 습관화되어가고 있었다.

런던은 제1공대(第1空帶)의 중심이며, 오세아니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그는 창 밖을 바라보며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어릴 적 런던은 지금처럼 황량한 폐허가 아니었다. 진리성(眞理省) 건물 전면에 신어(新語 : 오세아니아의 공용어)로 슬로건이 걸려져 있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그의 직장인 진리성은 보도, 연예, 교육 및 예술을 관장하고, 전쟁은 평화성, 법과 질서는 애정성, 그리고 경제 문제는 풍부성이 각각 다루었다. 특히 애정성은 대단한 곳이었다. 그곳엔 창문이 없고 가시철망이 둘러쳐져 있으며, 기관총으로 무장된 검은 제복의 고릴라처럼 무시무시한 위병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방안을 향하여 돌아서며 미소지었다. 텔레스크린에 얼굴이 보일 때 유리한 표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텔레스크린 왼쪽에 있는 작은 책상 앞에 앉았다. 이곳은 움푹 들어간 곳이고 책장을 놓았던 곳인 듯 했다. 이 구석에 앉아 움츠리면 텔레스크린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었다. 그가 며칠 전 당원은 못 가도록 되어 있는 일반 상가에서 40년 전에 제조된 듯한 노트와 펜대를 구입하여 일기를 쓰기로 작정한 것도 이 방의 독특한 구조가 부분적인 동기가 되었다. 발각되면 적어도 사형이나 강제노동 25년형이었다.

그는 작고 서투른 글씨로 썼다. 자동 구술기는 텔레스크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다. 1984년 4월 4일 그는 무력감 때문에 뒤로 제껴 앉았다. 올해가 1984년인지, 그의 나이가 39인지, 정확한지 알 수 없었다. 누구를 위해서 일기를 쓰는가? 미래를 위해서? 미래와 소통할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미래가 현재와 비슷하다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요, 다르다면 수난의 기록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는 몇 줄 쓰다가 경련 때문에 멈추고 오늘 일기를 쓰게 된 사건을 떠올렸다.

그가 일하는 기록국에서 커다란 텔레스크린을 설치하고 <2분간 증오>를 준비했다. 그는 창작국에서 일하는 검은 머리에 스물 예닐곱쯤 되는 행동이 민첩하고 대담해 보이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청년반성동맹’의 휘장인 좁은 진홍색 띠를 허리에 여러 겹 감아 엉덩이가 아주 맵시 있어 보였다. 그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싫어했으므로 그 여자도 싫었다. 아마추어 스파이나 이단의 냄새를 맡는 부류는 거의가 젊은 여자였다. 게다가 그는 몇 차례나 그녀의 공포스러운 눈초리를 복도에서 경험한 적도 있었다. 또 한 사람은 중요한 직위에 있는 오브라이언이란 내부 당원이었다. 그는 오브라이언에게 상당히 마음이 끌렸다. 그의 도회인다운 풍모와 싸움패 두목같은 몸집의 기묘한 대조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그보다 그의 정치적 교조가 불완전하리라는 내밀한 희망 때문이었다. 텔레스크린이 없는 곳에서 그와 단 둘이 만날 수 있다면 말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소름끼치는 굉음과 함께 <증오>가 시작되었다. 인민의 적인 임마누엘 골드슈타인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그녀는 오래 전 ‘대형’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으나 반혁명운동에 가담해 사형을 언도 받고 탈출해 종적을 감춘 변절자요, 반동이었다. 그녀는 대형을 비난하며 언론, 집회,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고, 혁명은 배반당했다고 신경질적으로 외치기도 했다. 곧바로 관중들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신기한 일은 그녀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증오와 경멸을 받고, 하루에 수천 번씩이나 공박되고 부정되고 조소되는데도 그녀의 영향력이 결코 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줄곧 그녀에게 유혹되어 넘어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녀는 거대한 비밀군대뿐 아니라 지하조직의 사령관이었다. 그들의 조직은 ‘형제’라고 불렸다.

2분 째로 넘어가자 <증오>는 광적이 되었다. 오브라이언의 넓적한 얼굴도 빨개졌다. 까만 머리 여자는 “돼지새끼!, 돼지새끼!”하며 신어사전을 집어던졌다. 윈스턴은 불현듯 자신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 <2분간의 증오>가 끔찍한 것은 의무적으로 이에 가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거기에 합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때때로 인간은 의식적으로 그 증오의 대상을 바꿀 수 있다. 윈스턴은 이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격렬하게 증오의 대상을 까만 머리의 여자에게 돌렸다. 그녀를 고무 방망이로 죽도록 때려주고 싶은 환각이 스쳤다. 그녀를 발가벗겨 말뚝에 묶고 화살로 맞혀 죽이고 싶었다. 그녀를 능욕하여 절정의 순간에 목을 조르고 싶었다. 그녀를 미워하는 것은 그녀가 젊고 아름다운 데다 섹스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그녀와 동침하고 싶지만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팔로 안아달라는 듯 날씬하고 매혹적인 허리 둘레에는 순결의 절대 상징인 저 역겨운 진홍 띠만 감겨 있기 때문이었다. 스크린에서 <증오>는 절정에 올랐다. 골드슈타인의 염소같은 얼굴이 흐물거리더니 유라시아 군인으로 바뀌었다. 곧 적개심을 일으키는 장면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화면엔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 커다란 대문자로 나타났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이때 모든 사람들이 “대형!, 대형!, 대형!”하고 외쳤다. 그도 다른 사람처럼 외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기 감정을 속이고 얼굴을 위장하는 것은 하나의 본능적인 반사작용이다. 그러나 눈에 나타난 표정이 자기 위장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순간에 그게 사건이라면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오브라이언의 눈과 마주친 것이었다. 윈스턴은 순간 그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브라이언은 ‘자네 편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그의 지성적인 눈빛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처럼 불가사의한 표정이 돼 버렸다. 이게 사건이 전모였다.

그는 노트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무기력하게 생각에 잠겨 있으면서도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형을 타도하라, 대형을 타도하라, 대형을 타도하라, 대형을 타도하라” 같은 문장을 되풀이해서 반 페이지를 채웠다. 그는 숨막히는 공포로 아찔해졌다. 일기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글자를 지운다고 해도 이미 쓰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범죄였다. 그게 바로 사상죄였다. 영원히 은폐할 수 없는, 그리고 조만간 반드시 발각되고 마는 사상죄였다. 사상범 체포는 밤에 이루어진다. 잠에서 깨었을 때 어깨를 거칠게 휘어잡는 손, 눈에 갖다대는 눈부신 불빛, 그리고 침대를 둘러싼 험상궂은 얼굴들, 대부분 재판도 체포 보고서도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호적 등 모든 기록이 말소된다. 망각 속에 파묻히고 완전히 소멸한다. 이런 경우를 흔히들 ‘증발’이라고 불렀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는 오싹했다. 하지만 그 소리의 주인공은 옆집에 살고 있는 파슨스 부인이었다.(부인이란 말은 사용이 금지되어있다. 동무라고 불러야 한다.) 파슨스는 윈스턴과 함께 진리성에 근무하는 동료였다. 그는 맹목적인 열성 덩어리었다. 그녀가 하수구를 고치기 위해 스패너를 빌리러 왔다. 윈스턴은 그녀를 도와 하수구를 고쳐 주었다.

7년쯤 전이었다. 깜깜한 방안을 걷는 꿈을 꾸었다. 누군가 그에게 “우린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것이오.”라고 속삭였다. 그가 오브라이언을 만나기 전이었는지 후인지는 정확히 기억에 없지만 그는 오브라이언이었다. 그는 조만간 그 말이 사실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일기를 썼다. 사상죄는 죽음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죽음, 그 자체다. 오른손 손가락에 잉크가 묻었다. 그는 목욕탕에서 비누로 잉크를 지웠다.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은 이런 사소한 실수다. 충견들(저 검은 머리 여자 따위들)은 왜 그가 글을 썼는가, 무엇을 썼는가 일러바칠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은 미래를 지배한다


꿈을 꾸었다. 그는 푹신한 잔디밭에 서 있었다. 그 검은 머리의 여자가 들판을 가로질러 그에게 달려오더니 단 한 번의 동작으로 옷을 벗어 휙 던져버렸다. 그녀의 몸은 아름다웠지만 욕정이 일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옷을 훌렁 벗어버리는 것에 감탄했을 뿐이다. 그 동작은 우아하면서 거리낌없이 마치 모든 문화와 사고체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 같았고 대형이나 당, 또는 사상경찰마저도 단 한 번의 화려한 팔 움직임으로 무시해 버리는 것 같았다. 이것은 옛 시대에 속하는 것이다. 그는 잠에서 깨면서 “셰익스피어!”라고 중얼거렸다.

1984년에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와 전쟁을 하고, 동아시아와 동맹을 맺고 있다. 이들 3대 강국은 언제나 같은 관계였다. 그러나 그가 몰래 알아낸 바에 의하면 4년 전만 해도 오세아니아는 동아시아와 전쟁을 했고 유라시아와 동맹관계였다. 공식적으로 동맹국이 바뀌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오세아니아는 현재 유라시아와 전쟁 중이다. 그러므로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와 언제나 전쟁 중이다. 현재의 적은 언제나 절대악이며, 미래에나 과거에 있어서나 그와 타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당이 과거란 그릇에 손을 넣고 이것저것을 가리키며 이런 것은 절대로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단순한 고문이나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일일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은 과거를 지배한다.”고 당의 슬로건은 말한다. 그러나 과거는 한 번도 변경되지 않았다. 과거는 단순히 변경된 게 아니고 파괴되었다. 기억 외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는데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1960년 이전에 ‘영사’란 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었다. 당에서 주장하듯이 당이 비행기를 발명하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어린 시절 비행기를 보았다. 그러나 그걸 증명할 수는 없다. 아무런 증거물이 없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꼭 한 번, 역사적 사실을 위조한 틀림없는 증거 문서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수정할 필요가 있는 논문이나 기사에 관련된 것이다. 예를 들면 「타임즈」 3월 17일자는 대형이 전날 연설에서 남인도 전선은 안전하고, 유라시아 군대가 북아프리카를 공격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을 보도했다. 그러나 유라시아는 남인도 공격을 개시했고 북아프리카는 내버려두었다. 이처럼 실제 일어났던 것을 예언했던 것처럼 고쳐 쓰는 따위의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날이 과거는 현재의 것이 돼버린다. 모든 역사란 필요에 의해 깨끗이 지워버리고 다시 고쳐 쓰는 양피지 위의 글씨와 같았다.

그는 「타임즈」지 1983년 12월 3일자에 대형의 명령이 존재하지 않는 자에 대해 언급되어 있으므로 완전히 수정하여 고위 당국에 보고하라는 메시지를 펼쳤다. 윈스턴은 그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대형이 위더스 동무에게 2등 특별훈장을 수여했다는 기록이었다. 위더스의 소속 단체가 해체된 것이 며칠 전이었다. 메시지의 내용으로 미루어 봐 위더스는 증발된 것이다. 하긴 윈스턴 개인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도 자신의 부모를 빼고도 슬며시 사라진 사람은 30명도 넘었다. 진리성 내의 기록국에는 윈스턴과 같은 일을 하는 직원이 50명도 넘었고 그들은 언제나 바쁘게 일했다. 그는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위더스의 이름 대신 오길비라는 이름을 지어냈다. 그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몇 줄의 글과 두어 장의 위조 사진이면 얼마든지 그를 존재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윈스턴은 오길비 동무에게 특별훈장을 줄까 구상했다. 그러나 번거러울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이제 오길비 동무는 그 날조 행위를 잊기만 하면 샤를마뉴 대제나 줄리우스 시저처럼 확실한 증거 위에 분명히 존재한 것이다.



검은 머리의 여자


윈스턴은 식당에서 사임을 만났다. 그는 조사국에서 일하는 언어학자로 신어 전문가였다. 그는 언어를 창안하는 것이 아니고 수백 마디의 어휘를 없애 뼈만 남도록 잘라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신어만이 어휘가 매년 줄어드는 유일한 언어였다. 신어의 목적은 사고의 범위를 줄이는 것이고 그렇다면 표현할 어휘가 없어지므로 필요한 개념은 단 한 마디의 말로 표현되며 그 낱말은 정확히 정의된다. 혁명은 언어가 완성될 때 이룩돼, 신어는 영사고 영사는 신어였다. 그 모든 것이 대형의 아이디어였다. 윈스턴은 조만간 사임이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너무 지적이고 예리했다. 당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임은 신어에 있는 말 하나를 소개했다. “'오리 소리(duckspeak)'란 오리가 꽥꽥거린다는 뜻이지. 두 가지 의미를 가진 재미난 말인데 반대편에 대해서 사용될 때는 비난의 뜻이고, 이편에 대해 쓸 때는 칭찬이란 뜻이지.” 윈스턴은 사임이 곧 증발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잠시 후 파슨스가 나타났다. 그는 윈스턴에게 아들 녀석이 고무총을 쏘았던 것을 사과했지만 진실성은 없어 보였다. 그는 신이 나서 그의 일곱 살 짜리 딸이 행군 중에 적의 정보원을 찾아내 신고한 사실을 자랑했다. 윈스턴은 파슨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순간, 검은머리의 여자가 옆눈으로 찌를 듯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여자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곧 시선을 돌렸다. 윈스턴의 등줄기에서 한 줄기 땀이 흘렀다. 그녀는 사상경찰이 아니라 아마추어 정보원임이 틀림없었다. 공공의 장소나 텔레스크린이 볼 수 있는 곳에서 혼자 생각에 잠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표정죄’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파슨스가 다시 떠벌렸다. 그의 자식들은 스파이 단원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의 딸에게 새로 지급된 나팔귀는 열쇠 구멍으로 방 안 얘기를 들을 수 있는 도구였다. 어느 날 딸애가 그 나팔귀로 그의 방을 엳듣고 나더니 그냥 귀를 대는 것 보다 두 배는 크게 들린다고 뽐냈다. 파슨스는 스파이 훈련을 철저히 시키는 것에 매우 만족해했다. 그 때 찢어질 듯한 나팔 소리가 들렸다. 일과 개시 신호였다. 셋은 일어나 승강기로 향했다.

윈스턴은 일기를 쓰고 있었다. 3년 전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 골목길에 화장한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거리에는 아무도 텔레스크린도 없었다. 그녀는 2달러를 불렀다. “나는….” 그는 계속하기가 거북했다. 욕설을 퍼붓고 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싶었다. 어떻게든 그 기억을 없애고 싶었다. 가장 무서운 적이 신경조직이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여자를 따라 지하실 부엌으로 갔다. 등잔의 심지는 아주 낮추어져 있었다. “그녀는….” 윈스턴은 그의 처 캐더린을 생각했다. 그의 아내가 죽지 않았으므로 그는 아직은 결혼 중이었다. 그것이 여자와의 2년만의 관계였다. 창녀와의 교접은 물론 금지이지만 생사가 달린 범죄는 아니었다. 노동자에게는 엄격하지 않지만 당원 간에는 엄격했다.

결혼은 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며 만일 서로의 육체에 끌리고 있다면 절대로 허락되지 않았다. 당의 목적은 성행위로부터 모든 쾌락을 제거시키는 것이었다. 오직 당에 봉사할 아이를 낳는 것이었다. 성교는 마치 관장과 같았다. 헤어진 지 11년이 되는 캐더린과의 관계는 15개월의 동거기간이 전부다. 그녀는 키가 크고 금발에다 날씬하고 몸가짐이 세련됐다.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전에는 고상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 그녀의 머리 속에 오로지 슬로건만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몸에 손만 대면 뻣뻣해지고 ‘마음대로 하라’는 식이었다. 그는 너무 실망하여 육체관계 없이 살기로 합의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육체관계를 요구한 것은 놀랍게도 그녀였다. 그녀는 정확히 1주일에 한 번씩 요구했다. 아이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아이 만드는 일’은 당에 대한 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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