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
마샤 그래드 지음 | 뜨인돌
제1부
언젠가 왕자님이 찾아올거야옛날에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금발의 공주가 살고 있었다. 그 공주는 동화 속의 이야기가 진짜 일어나는 일로, 모든 공주들은 그 후로 행복하게 살게 된다고 믿었다. 착한 사람이 나쁜 놈들을 물리치고, 사랑만이 모든 것을 이겨낸다고 믿었다. 모든 동화 속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공주는 키가 크고 힘이 세고 용감하고 잘 생기고 인기가 좋은 왕자가 찾아올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부지런히 자기가 할 일을 연습했다.
종종 꼬마 공주는 왕비의 무도복과 굽 높은 무도화를 신고는 마치 유리구두라도 신고 다니는 듯한 흉내를 냈으며, "왕자님이 오실 줄 알고 있었어요." 라든가 "왜 아니겠어요. 왕자님의 신부가 된다면 더없는 영광이죠." 등의 말을 되뇌이며 제일 좋아하는 동화 속의 한 장면을 흉내내기도 했다. 공주는 이제 눈썹을 탁탁 치켜뜨는 일이나 새침하게 한숨을 내쉬는 일, 결혼 신청을 받아들이는 일 정도는 꽤나 숙달이 되었다.
어느 날 공주는 궁중의 장미화원에서 나무를 심은 후 지저귀는 새들과 함께 걸어나오다가 왕에게 꾸중을 들었다. 왕은 새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며 새들을 얼른 쫓아버리라고 말했고, 왕실 규범을 다시 읽어 공주로서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되새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어 언짢아진 공주는 저녁식사 시간에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왕과 왕비에게 또 다시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공주란 무릇 인내심이 강해야 하고 근엄하고 훌륭한 왕실의 귀감이 돼야 할 사람이니라. 이제까지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었으니 너도 잘 알게 아니냐! 이 철없는 애야,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만 하는지 항상 유념해 두도록 하거라!"
그날 저녁만은 밤마다 하는 거품 목욕과 동화책 읽기도 성가실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아 공주는 침실 문 앞까지 찾아온 시녀와 왕비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공주 안에서 들려오는 조그만 목소리인 비키를 옷장에 가두고 말았다. 비키가 얼마나 떠들어대던지 끔찍하게 골치가 아팠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비키의 존재 그 자체가 골칫거리였다.
궁중 정원 그 너머비키가 사라진 뒤에는 왕실 규범을 따르는 일에 제법 수월해졌지만 완벽하게 규범대로 행동하는 일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슬픈 마음에 창 밖을 내다보던 빅토리아는 궁중 정원 너머 작은 언덕 꼭대기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밖으로 나와 그 나무로 다가갔다. 나무의 등걸에 몸을 기대자 청진기와 밴조를 멘 올빼미 한 마리가 내려앉아 말을 걸었다. "제 이름은 헨리 허버트 후트입니다. 마음학 박사인데 주 전공은 상처 입은 마음이죠." "그럼 박사님이 고쳐줄 수 있나요? 그러니까, 내 마음 말이에요." "고쳐드리지는 못합니다만 공주님께서 스스로 고칠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는 있습니다. 치유 과정을 통해서 말이지요. 하지만 오직 공주님만이 공주님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움직일 때면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올빼미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점점 더 나이가 들고 자라게 됨에 따라 빅토리아는 사랑스러운 젊은 여성으로 화려하게 피어났다. 왕립우수고등학교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한 빅토리아가 이룬 가장 위대한 성과는 왕실 규범이 정해 놓은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리라. 왕은 빅토리아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왕실가계도를 건네 주었다.
제2부
공주를 구하러 온 멋쟁이 왕자님어느 햇살이 화창한 봄날 오후 제국대학 도서관에서 공주는 꿈에도 그리던 왕자를 만났다. 별자리 모양을 암기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감미로운 낮은 목소리가 들려와 공주는 깜짝 놀랐다. "지금 저한테 말씀하셨나요?" "그렇습니다, 공주님." "내가 공주라는 걸 어떻게 아셨나요?" "왜냐하면 왕자는 언제 어디서라도 공주를 알아보니까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웃음은 이 세상의 모든 눈보라를 녹여 버릴 만큼 따뜻했다. 그 모습에 공주의 가슴은 두근반 세근반 뛰어올랐고 무릎의 힘이 쏙 빠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왕자와 나눴던 말과 표정을 되새기자 빅토리아는 마음속에서 두근거림이 다시 솟구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옷장 속에 가둬두었던 비키 생각이 난 공주는 옷장을 열어 비키를 나오게 한 후 그토록 기다리던 왕자님이 찾아온 것에 대해 함께 기뻐했다.
빅토리아와 왕자는 약속대로 떡갈나무 아래에서 다시 만났다. 부끄럽다는 듯이 눈썹을 내리깔고 새침하게 한숨을 내쉬는 것을 연습했던 일이 그저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빅토리아는 자기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많은 여인들이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지만 왕자는 오직 빅토리아만을 마음에 두었다. 왕자는 빅토리아의 재치를 높이 평가했고 예의바른 우아함과 섬세한 성격을 사랑했으며, 지적인 면에 자극 받았다. 왕자와 함께 있을 때 빅토리아는 자기가 더 없이 아름답고 특별하고 당당하고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왕자와 공주는 함께 놀고 소리내어 웃고 떠들면서 사랑을 나눴으며 곧 공주는 왕자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했다. 비키는 기뻐서 소리를 빽빽 질렀다. 왕궁에서 빠져나갈 날이 드디어 찾아왔다.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기다리던 왕자가 찾아왔으며 진정한 사랑이 영영 둘만의 것이 될 것이다.
결혼식은 성대했으며, 그 후 왕자와 함께한 삶은 빅토리아가 그 동안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삶 그 이상이었다. 공주에게 왕자는 삶의 빛이었으며 존재 이유였다. 빅토리아는 왕자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애정을 베풀었다. 왕자의 권유로 지방극단에서 '신데렐라' 역을 뽑는 오디션에 응모한 공주는 주연 자리를 따냈다.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공주는 평론가와 연출가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그 날 저녁의 하이라이트는 왕자의 두 눈동자에서 빛나는 빛, 그러니까 그녀를 위해 반짝이는 빛이었다. 빅토리아는 이 세상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다.
낄낄 박사와 하이드 씨공주는 평론가의 충고대로 최고왕립극장의 전문배우가 되기 위한 오디션에 응모해보려고 했으나 자기와 시간을 보낼 수 없을까봐 걱정하는 왕자의 만류 때문에 아쉽지만 그 꿈을 포기해 버렸다. 그후 아기를 가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두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고 간절히 소망했으나 점차 실망만 쌓여갈 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왕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실 왕자는 세상 모든 일이 부담스러웠다. 심지어는 공주가 궁전의 어딘가를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것마저 성가시기 시작했다. 공주는 왕자의 마음과 영혼을 모두 사랑했다. 공주는 자기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지만 왕자는 늘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왕자는 자기가 공주를 사랑하는 만큼 공주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공주가 사랑하면 할수록 왕자는 더 많은 사랑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다가 노래를 부르는 공주에게, 그리고 유명한 요리법들을 책으로 펴내기 위해 신경을 쓰는 공주에게 왕자는 번번이 화를 냈다. 공주는 왕자를 위한 자신의 노력들을 설명하려 했으나 왕자는 화를 그치지 않았다. 공주가 눈물을 흘리면 그때마다 왕자는 자신의 잘못을 빌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러면 공주는 매번 우리는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왕자의 용기를 북돋웠다.
왕자는 번번이 화를 내는 하이드 씨로 변했다. 초기만 해도 그것은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었고 지속되는 시간도 몇 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횟수가 잦아졌고 지속되는 시간 역시 몇 시간에서 며칠에 이르렀다. 하이드 씨가 사라지고 나면 공주는 마치 미친 말들에게 등짝을 밟힌 듯한 느낌이었다. 왕자는 불같이 화를 낸 다음에는 그토록 다정하고 미워할 수 없는 낄낄 박사(재미있는 성격의 왕자에게 공주가 붙여준 별명)로 돌아왔다. 왕자는 다시없을 정도로 극진히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을 테니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 일은 또 일어났다. 일어나고 또 일어났다. 이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마저도 엄청나게 힘들었다. 마침내 "당신이 알던 왕자는 벌써 오래 전에 죽어버렸다."며 화를 내는 왕자 앞에서 공주는 왕과 왕비가 사는 궁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아프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딸을 맞은 왕과 왕비는 공주가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자 왕자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왕자는 그 모든 일이 사실이라고 인정했으며, 자신도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젠 지쳤다고 말했다. 왕자는 눈물을 흘리며 궁을 나갔고, 왕자의 등뒤로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가 침대에 얼룰을 파묻고 울던 공주는 완전히 지친 몸으로 괴로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잠에서 깬 공주는 자신이 올빼미 박사 꿈을 꿨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작은 동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예전에 만났던 올빼미 박사가 나타나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를 두 눈을 꼭 감고 빌었다. 한참 후에야 나타난 올빼미 박사는 공주가 그간 겪은 고초를 새들에게서 들었다고 말했다. "박사님, 만약 왕자님을 그 나쁜 주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만 알 수 있다면 저는 다시 행복해질 것이고 그러면 세상에 아무런 걱정도 없을 거예요. 저를 도와주세요, 박사님. 저는 이제 지쳤어요. 이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만 남았어요." 공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것입니다, 공주님. 만약 공주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을 하신다면 그 일을 통해 왕자님을 가로막고 있는 공주님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왕자님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더 잘 보게 될 것입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경우 남의 도움은 상처로 끝나지요. 그리고 왕자님에게 주문을 거는 것은 바로 왕자님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완전히 절망이군요. 왕자님은 지쳤어요." "아닙니다. 왕자님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왕자님이 뭘 하겠다는 의지가 있건 없건 간에 공주님의 행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난 뭘 해야 하죠?" "이제부터는 적어도 왕자님이나 그 주문과 관계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을 하십시오. 하지만 공주님 자신을 위해서는 뭔가를 해도 됩니다. 사실 공주님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올빼미 박사는 공주가 겪고 있는 아픔에 도움이 될 치료약을 적어주었다. 그 처방은 "진실이 가장 좋은 약임. 될 수 있는 한 자주 많은 진실을 복용할 것"이라고 써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서』도 함께 건넸다. "이 책은 그저 시작에 불과합니다. 모든 일이 바뀌기 위해서는 먼저 공주님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옳은 것보다는 행복해지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박사님, 내가 이 책을 다 읽으면 다시 여기에 나타나시는 거죠?" 공주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저는 맹세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깁니다, 공주님." "당신이 제 삶에 나타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공주는 가슴 속에 희망을 품고 여전히 책을 꼭 끌어안은 채 부모님의 궁전으로 향했다.
궁으로 돌아온 공주는 왕자가 보낸 편지를 보자 슬픔이 물밀 듯 밀려왔다. <장미는 붉고 제비꽃은 푸르다네. 얼른 돌아오시오, 함께 헤쳐나갑시다.> 공주는 황급히 올빼미가 준 책과 처방전을 꾸려 왕자에게로 돌아왔다. 그러나 왕자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그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공주는 그때마다 그 책을 반복해서 읽었고, 비키는 박사의 충고를 따르려는 공주를 방해하며 화를 냈다. 점차로 공주 안에는 너무나 큰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엇도 그 안을 채울 수 없는 것 같았다. 가장 그럴듯한 일은 쇼핑이었다. 그러나 쇼핑에 열중할수록 내면의 공허는 더 커졌고,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이 얼마나 황폐하며 무의미한 것으로 바뀌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행복하지 않더라도 행복해질 때까지 행복한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방법서의 글을 읽고 공주는 팽개쳐뒀던 왕가의 사회활동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이젠 자기 자신의 좋지 않은 점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공주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공주에 대해 왕자는 다시 투정을 부렸다. 왕자가 예전처럼 싸움을 걸기 시작하자 악몽이 되살아난 공주는 견딜 수가 없었다. 쏜살같이 방에서 빠져나와 궁전 문을 향해 달리는데 뒤에서 왕자의 목소리가 공주를 쫓아왔다. "당신의 그 원대한 꿈 말인데... 그런 걸 갖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제3부
진실의 길공주가 마차를 부르는 동안, 비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터져나왔다. "나는 박사를 만나고 싶지 않아. 내가 말했지? 그 돌팔이 박사하고 멍청한 책 때문에 모든 게 끝장난 거야." 공주는 말다툼할 기력조차 없었다. 빅토리아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비키가 닦달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다. 마차에서 내려 동산 위 나무까지 걸어가면서 공주는 중얼거렸다. "박사님, 박사님, 어디에 계시나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세요? 그런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요. 저는 두 손 들었어요. 그 순간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박사가 말했다. "두 손 드는 것보다는 두 손으로 안는 게 더 좋을 것 같군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공주가 물었다. "절망 때문에 사람들은 두 손을 들게 됩니다. 하지만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면 두 손으로 안게 되죠." "받아들인다고요?" "그렇습니다. 결코 바뀌지 않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선택을 하죠. 하지만 타인을 변화시키는 선택을 하지는 못합니다.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을 향해 다가가는 일이죠."
공주는 한숨을 내쉬었고, 박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왕자님을 잠시 피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왕자님 곁을 떠나라는 건가요?" "그것도 할 수 있는 선택 중 하나라는 거죠." "하지만 저는 아직도 왕자님을 사랑해요. 그리고 왕자님도 저를 사랑한다는 걸 알아요. 제가 과연 떠날 수 있을까요?" "행복하다는 느낌보다 아프다는 느낌이 더 많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건 공주님을 감옥 속에 가두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공주님 앞에 환하게 펼쳐진 자유를 향한 문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왕자의 곁을 떠나기로 결정한 공주는 올빼미 박사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물었다. "공주님은 그 동안 걸어오신 대로 진실의 길을 계속 걸어가면 됩니다. 길은 어느 정도 걸어간 뒤에야 보이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려고 하는 것만 보기 때문이지요. 동화 속 이야기가 현실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공주님만의 해피엔딩은 진실의 길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을 들은 공주는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숨을 들이마시면 보이기 시작하는 길을 따라 확신은 서지 않아도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진실의 사원, 성스러운 두루마리의 거처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는 올빼미 박사의 말을 듣고 진실의 길을 따라 걷는 두려운 첫발을 내디뎠다.
공주는 구불구불 험한 길을 한참이나 걸었다. 다시 왕자에게로 돌아가자는 비키의 외침에다 폭풍우까지 몰아쳐 울면서 피할 곳을 찾고 있을 때, 나룻배 한 척이 가까이 다가왔다. 공주는 배에 올라타자마자 그대로 누워 버렸다. 하늘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배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오자 공주는 물을 퍼냈지만 배는 계속 가라앉았다. 때마침 돌고래 돌리가 다가와 수영을 못해 쩔쩔매고 서 있는 공주와 비키에게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다. 겁에 질린 공주가 이를 거부하자 돌리는 소리쳤다. "세상에는 스스로를 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물 속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죠. 공주님은 어떤 배와 함께 가라앉는 일을 피하기 위해 이 여행을 시작한 게 아닌가요? 그런데도 이제 또 이 배와 함께 가라앉겠다는 말씀이군요?" 결국 돌리의 가르침을 받으며 수없이 시도한 끝에 공주는 마침내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었다. 저 멀리 뭍이 보이기 시작하자 돌리는 공주에게 작별인사를 남기고 천천히 물 속으로 사라졌다. 바다는 고요하고 푸근했다. 갑자기 안에서 새로운 힘이 용솟음침과 동시에 평화로움이 공주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