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
마샤 그래드 지음 | 뜨인돌
공주가 깨어난 곳은 따뜻한 모래사장 위였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밴조 음률이 들리더니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회색 하늘 사이로 살짝 아름다운 무지개를 봤다면 그건 저 하늘 높은 곳의 선물이라오. 공주님의 갈 길을 비춰주지요.> "박사님, 박사님이죠?" 공주는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셨나요, 공주님. 물에 빠져죽을 뻔했다는 기분이 들었다면 그건 진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는 뜻입니다." 올빼미 박사는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하고는 곧 사라졌다.
공주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공주는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기 위해 왕실가계도를 참고했다. 계속해서 걷다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공주는 자기를 부르고 있는 듯한 길을 거부하고 완만하고 곧게 쭉 뻗은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걷고 또 걸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공주는 도대체 이 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왕자님과 함께 살던 때에도 이런 느낌이 들었었지...' 안개가 짙어지면서 꼭 물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안개 속에서 올빼미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다에 빠져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처럼 모든 위기 안에는 진실에 대한 가르침을 담은 선물이 들어 있습니다. 이곳 환멸의 땅에서는 원래대로 보이는 사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코앞에 있는 것들도 제대로 보지 못하지요."
"어쩌다 이런 길을 들어서게 된 거죠?" "다른 사람의 지도를 참고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길은 그 사람의 마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공주님은 갈래길에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 지도를 참고해, 자신의 갈 길을 다른 사람의 생각에서 구했어요. 그래서 길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죠." 올빼미 박사는 이 말을 남기고 다시 사라졌다. 이제 의지할 만한 지도도 없는 탓에 공주는 약간 긴장된 상태로 환멸의 길을 따라 계속 걸었고 마침내 표지판을 보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길을 잃은 여행자들을 위한 캠프장."극장에서 공주는 왕과 왕비, 자신 그리고 왕자의 성장 과정을 연극으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자신과 부모님, 왕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공주는 왕자와 함께 지내는 동안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공주는 왕자에 대한 분노와 무기력하게 참아낸 자신에 대한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소리쳤고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공주에게 마법사는 말했다. "고통을 이겨내는 수업을 통해 아가씨는 삶을 더 풍요롭고 알차고 편안하게 하는 지혜를 얻는 거지. 어제 아가씨가 살았던 방식이 오늘의 삶을 결정하지만 내일의 삶은 바로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렸어. 매일매일이 새로운 기회가 되는 거지. 지난날의 생각들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라구. 이젠 옛 시절은 모두 지나갔으니, 마음 푹 놓고 자기 자신이 되어도 괜찮아."
극장에서 나온 마법사는 공주를 '완벽의 골짜기'로 안내했다. 공주는 좀더 가까이 다가가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면서 그 골짜기가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다 볼 때와 달리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실망했다. 그 모습을 본 마법사는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완벽함 역시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달린 문제라고 말해 주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일 때,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저절로 변화하게 되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기가 가장 독특하고 완벽한 거야." 이제까지 자신의 단점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주는 말이었다.
돌연 공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껏 어깨를 짓누르던 모든 짐들이 사라진 듯했고, 골짜기에 있는 모든 것들이 경이롭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공주의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의 감정이 솟아올랐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일인 것 같았다. 그 순간, 공주의 생각을 뚫고 작고 친숙한 목소리, 비키가 끼어들었다. "빅토리아, 네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할 때 나도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했던 거 기억나?" 비키와 빅토리아에게 기쁨의 눈물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이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진실의 사원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대로 쿵쾅대는 가슴을 안고.진실의 사원에 들어가자 하얀 돌 분수가 보였고, 사원의 본당 안에는 부드러운 우단이 드리워진 왕좌가 있었다. 그때 올빼미 박사와 마법사 아줌마가 나타나 공주를 맞았다. "지금 이 자리에 우리가 모인 것은 진실을 추구하는 데 있어 굴하지 않는 힘과 용기와 결단력을 보인 공주님을 축하하기 위해서 입니다. 공주님은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간절히 원했으므로 오늘 진실의 사원에 서게 되는 영광을 쟁취하고, 성스러운 두루마리라는 보물을 얻게 된 것입니다." 곧이어 마법사 아줌마는 제단에서 양피지를 들어올려 공주에게 건넸고 공주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성스러운 두루마리의 봉인을 열었다.우리 앞에 놓인 이 진실들은 자명한 것이리니.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대우주의 아 이로서 조물주가 만든 그대로 모든 점에서 완전하고 아름답고 완벽했노라. 그러므로 우리 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존중받고 사랑 받을 권리가 있느니라.
'약함'의 품 안에는 간절히 자유를 원하는 힘이 있고 장애물이 많은 길에는 또 다른 기회 가 숨어 있나니 고맙게도 우리는 이들 삶의 스승들에게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느니라. 우리를 부분으로 하여 이 세상은 설계되었고 우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노라. 이 세상 모 든 사람과 모든 것에는 그에 합당한 자리가 있고 존재 이유가 있나니 진실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걸어온 길이나 걸어갈 길이 아니라 지금 우리 내면에 가진 것이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보물,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대우주가 우리 안에 있느니라.마침내 공주는 선언했다. "이게 저의 새로운 왕실규범이에요. 왕자님이 없어도 이처럼 행복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아줌마가 옳았어요. 진실을 내 몸의 일부처럼 느낄 때 마술과 같은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네요." 공주는 문득 자기가 늘 꿈꾸던 동화 속 이야기를 떠올리며 물었다.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 박사님은 진실의 사원에 도착하면 내가 꿈꾸던 동화 속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잖아요?" "그건 잠자기 전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동화 속 이야기죠. 그러나 실제 이야기는 왕자가 있건 없건 그후로도 행복했노라고 나오죠." 이윽고 공주는 깨달았다. 앞으로도 여전히 자신이 살아가면서 왕자를 원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삶의 여러 요소 중의 하나일 뿐 자신의 삶 전체가 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왕자가 있건 없건 자신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이제는 또 어디로 가야 하죠?" "공주님은 진실의 길을 계속 여행할 것입니다. 이제 반대편으로 산을 내려가면 새로운 모험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박사가 말했다. 박사의 격려를 뒤로 하고 공주는 돌아서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자신의 새롭고 놀라운 삶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는 동시에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려고 뒤돌아본 공주의 눈앞에는 사원도 박사도 마법사 아줌마도 새들도 모두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순간 내면의 목소리가 말했다. "믿을지니… 믿을지니…." 그리고 희미하게 박사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동화 속 이야기는 실제로 이뤄진다네…> 처음에 공주는 당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래는 뇌성처럼 공주의 마음을 진동시켰다. 그 음률은 바로 공주의 내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입가에는 웃음을, 발걸음에는 가벼움을, 가슴에는 음악을 품은 채 공주는 수천 가지 색깔로 물드는 장엄한 노을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제1부
언젠가 왕자님이 찾아올거야옛날에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금발의 공주가 살고 있었다. 그 공주는 동화 속의 이야기가 진짜 일어나는 일로, 모든 공주들은 그 후로 행복하게 살게 된다고 믿었다. 착한 사람이 나쁜 놈들을 물리치고, 사랑만이 모든 것을 이겨낸다고 믿었다. 모든 동화 속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공주는 키가 크고 힘이 세고 용감하고 잘 생기고 인기가 좋은 왕자가 찾아올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부지런히 자기가 할 일을 연습했다.
종종 꼬마 공주는 왕비의 무도복과 굽 높은 무도화를 신고는 마치 유리구두라도 신고 다니는 듯한 흉내를 냈으며, "왕자님이 오실 줄 알고 있었어요." 라든가 "왜 아니겠어요. 왕자님의 신부가 된다면 더없는 영광이죠." 등의 말을 되뇌이며 제일 좋아하는 동화 속의 한 장면을 흉내내기도 했다. 공주는 이제 눈썹을 탁탁 치켜뜨는 일이나 새침하게 한숨을 내쉬는 일, 결혼 신청을 받아들이는 일 정도는 꽤나 숙달이 되었다.
어느 날 공주는 궁중의 장미화원에서 나무를 심은 후 지저귀는 새들과 함께 걸어나오다가 왕에게 꾸중을 들었다. 왕은 새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며 새들을 얼른 쫓아버리라고 말했고, 왕실 규범을 다시 읽어 공주로서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되새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어 언짢아진 공주는 저녁식사 시간에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왕과 왕비에게 또 다시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공주란 무릇 인내심이 강해야 하고 근엄하고 훌륭한 왕실의 귀감이 돼야 할 사람이니라. 이제까지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었으니 너도 잘 알게 아니냐! 이 철없는 애야,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만 하는지 항상 유념해 두도록 하거라!"
그날 저녁만은 밤마다 하는 거품 목욕과 동화책 읽기도 성가실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아 공주는 침실 문 앞까지 찾아온 시녀와 왕비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공주 안에서 들려오는 조그만 목소리인 비키를 옷장에 가두고 말았다. 비키가 얼마나 떠들어대던지 끔찍하게 골치가 아팠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비키의 존재 그 자체가 골칫거리였다.궁중 정원 그 너머비키가 사라진 뒤에는 왕실 규범을 따르는 일에 제법 수월해졌지만 완벽하게 규범대로 행동하는 일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슬픈 마음에 창 밖을 내다보던 빅토리아는 궁중 정원 너머 작은 언덕 꼭대기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밖으로 나와 그 나무로 다가갔다. 나무의 등걸에 몸을 기대자 청진기와 밴조를 멘 올빼미 한 마리가 내려앉아 말을 걸었다. "제 이름은 헨리 허버트 후트입니다. 마음학 박사인데 주 전공은 상처 입은 마음이죠." "그럼 박사님이 고쳐줄 수 있나요? 그러니까, 내 마음 말이에요." "고쳐드리지는 못합니다만 공주님께서 스스로 고칠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는 있습니다. 치유 과정을 통해서 말이지요. 하지만 오직 공주님만이 공주님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움직일 때면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올빼미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점점 더 나이가 들고 자라게 됨에 따라 빅토리아는 사랑스러운 젊은 여성으로 화려하게 피어났다. 왕립우수고등학교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한 빅토리아가 이룬 가장 위대한 성과는 왕실 규범이 정해 놓은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리라. 왕은 빅토리아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왕실가계도를 건네 주었다.제2부
공주를 구하러 온 멋쟁이 왕자님낄낄 박사와 하이드 씨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제3부
진실의 길환멸의 땅길을 잃은 여행자들을 위한 캠프장존재의 땅기억을 향한 길로의 여행제4부
진실의 사원어느 햇살이 화창한 봄날 오후 제국대학 도서관에서 공주는 꿈에도 그리던 왕자를 만났다. 별자리 모양을 암기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감미로운 낮은 목소리가 들려와 공주는 깜짝 놀랐다. "지금 저한테 말씀하셨나요?" "그렇습니다, 공주님." "내가 공주라는 걸 어떻게 아셨나요?" "왜냐하면 왕자는 언제 어디서라도 공주를 알아보니까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웃음은 이 세상의 모든 눈보라를 녹여 버릴 만큼 따뜻했다. 그 모습에 공주의 가슴은 두근반 세근반 뛰어올랐고 무릎의 힘이 쏙 빠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왕자와 나눴던 말과 표정을 되새기자 빅토리아는 마음속에서 두근거림이 다시 솟구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옷장 속에 가둬두었던 비키 생각이 난 공주는 옷장을 열어 비키를 나오게 한 후 그토록 기다리던 왕자님이 찾아온 것에 대해 함께 기뻐했다.
빅토리아와 왕자는 약속대로 떡갈나무 아래에서 다시 만났다. 부끄럽다는 듯이 눈썹을 내리깔고 새침하게 한숨을 내쉬는 것을 연습했던 일이 그저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빅토리아는 자기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많은 여인들이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지만 왕자는 오직 빅토리아만을 마음에 두었다. 왕자는 빅토리아의 재치를 높이 평가했고 예의바른 우아함과 섬세한 성격을 사랑했으며, 지적인 면에 자극 받았다. 왕자와 함께 있을 때 빅토리아는 자기가 더 없이 아름답고 특별하고 당당하고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왕자와 공주는 함께 놀고 소리내어 웃고 떠들면서 사랑을 나눴으며 곧 공주는 왕자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했다. 비키는 기뻐서 소리를 빽빽 질렀다. 왕궁에서 빠져나갈 날이 드디어 찾아왔다.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기다리던 왕자가 찾아왔으며 진정한 사랑이 영영 둘만의 것이 될 것이다.
결혼식은 성대했으며, 그 후 왕자와 함께한 삶은 빅토리아가 그 동안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삶 그 이상이었다. 공주에게 왕자는 삶의 빛이었으며 존재 이유였다. 빅토리아는 왕자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애정을 베풀었다. 왕자의 권유로 지방극단에서 '신데렐라' 역을 뽑는 오디션에 응모한 공주는 주연 자리를 따냈다.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공주는 평론가와 연출가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그 날 저녁의 하이라이트는 왕자의 두 눈동자에서 빛나는 빛, 그러니까 그녀를 위해 반짝이는 빛이었다. 빅토리아는 이 세상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다.공주는 평론가의 충고대로 최고왕립극장의 전문배우가 되기 위한 오디션에 응모해보려고 했으나 자기와 시간을 보낼 수 없을까봐 걱정하는 왕자의 만류 때문에 아쉽지만 그 꿈을 포기해 버렸다. 그후 아기를 가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두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고 간절히 소망했으나 점차 실망만 쌓여갈 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왕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실 왕자는 세상 모든 일이 부담스러웠다. 심지어는 공주가 궁전의 어딘가를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것마저 성가시기 시작했다. 공주는 왕자의 마음과 영혼을 모두 사랑했다. 공주는 자기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지만 왕자는 늘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왕자는 자기가 공주를 사랑하는 만큼 공주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공주가 사랑하면 할수록 왕자는 더 많은 사랑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다가 노래를 부르는 공주에게, 그리고 유명한 요리법들을 책으로 펴내기 위해 신경을 쓰는 공주에게 왕자는 번번이 화를 냈다. 공주는 왕자를 위한 자신의 노력들을 설명하려 했으나 왕자는 화를 그치지 않았다. 공주가 눈물을 흘리면 그때마다 왕자는 자신의 잘못을 빌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러면 공주는 매번 우리는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왕자의 용기를 북돋웠다.
왕자는 번번이 화를 내는 하이드 씨로 변했다. 초기만 해도 그것은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었고 지속되는 시간도 몇 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횟수가 잦아졌고 지속되는 시간 역시 몇 시간에서 며칠에 이르렀다. 하이드 씨가 사라지고 나면 공주는 마치 미친 말들에게 등짝을 밟힌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