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허먼 멜빌 지음 | -
백경(Moby-Dick)
허먼 멜빌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이슈마엘: 이 소설의 화자이자 전형적인 미국청년. 퀴퀙과 우정을 나누며 에이헙의 광기와 열정에 매혹되나 이를 거부함으로써 마지막 순간 이 비극에서 벗어나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에이헙: 피쿼드 호의 선장으로, 흰고래 모비딕이 자신의 다리를 물어뜯은 것에 분노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이 고래에 복수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소유자.
퀴퀙: 폴리네시아 왕족 출신으로서 이슈마엘과 친구가 되며, 피쿼드 호에 작살잡이로 승선한다.
스타벅: 피쿼드 호의 1등 항해사로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선장인 에이헙의 광기에 항의하지만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한다.
이슈마엘과 퀴퀙의 우정과 뭍의 이야기
날 이슈마엘이라 불러다오. 몇 해 전에---정확히 얼마 전인지는 신경쓰지 마라---지갑에 돈이 거의 없는 데다 뭍에서는 특별히 흥미로운 일도 없고 해서, 잠시 배라도 타고 세상의 바다를 둘러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내가 울화(鬱火)를 몰아내고 피의 순환을 조절하는 방법이다. 입 언저리가 험악해질 때, 내 영혼 속에 11월의 축축한 이슬비가 내릴 때, 나도 모르게 장의사 앞에 멈춰서고 장례행렬을 만날 때면 뒤꽁무니에 따라붙는 자신을 발견할 때, 특히 일부러 거리로 나가 계획적으로 사람들의 모자를 벗겨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려면 강한 도덕적 원칙이 필요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에 사로잡힐 때---이럴 때면 한시 바삐 바다로 나갈 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에겐 권총과 탄알의 대용이다.
이슈마엘은 자신이 몇 년 전에 겪은 경험을 회상하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슈마엘은 육지의 일상적 삶에서 쌓인 울화를 풀기 위해 ‘권총과 탄알의 대용’으로 바다에 나갈 생각을 한 것인데, 그냥 아무 배나 타는 것이 아니라 포경선을 타고 고래잡이에 나서기로 한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뇌리에선 거대한 흰 고래의 환영이 계속 나타나 마치 새로운 세계를 약속하듯 그를 부르는 듯했다. 이리하여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황야로 추방된 이슈마엘처럼 그는 뭍의 터전을 버리고 영원히 유동하는 바다의 세계로 나간다. 이왕 고래잡이배를 타기로 한 이상, 그는 당시에 가장 유서깊은 포경지인 낸터킷에서 출항하기로 작정한다.
이슈마엘은 고독한 방랑자처럼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뉴욕에서 여행을 떠나는데, 뉴 베드포드에 토요일 밤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낸터킷 섬으로 가는 마지막 연락선을 놓치고 만다. 뉴 베드포드에서 숙박을 할 수밖에 없는 이슈마엘은 여인숙 겸 식당인 ‘스파우터 여인숙’에 들어가 방을 알아보았지만, 주인으로부터 방이 다 찼으니 어떤 작살잡이와 함께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이슈마엘은 한밤중에 돌아온 그 작살잡이의 고함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머리가죽을 벗긴 두개골을 들고, 얼굴과 온몸에 얼룩덜룩한 문신을 새긴 식인종 같은 거인이었는데, 뜻밖에도 자신의 침대에서 사람을 발견하자 깜짝 놀라 손도끼를 휘둘러댄 것이다. 그가 바로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원주민 출신의 작살잡이 퀴퀙이다.
퀴퀙은 여인숙 주인의 해명으로 이슈마엘을 놓아주고 그와 화해한다. 그리고 이슈마엘은 “술취한 기독교인보다 제정신의 식인종과 자는 편이 낫다”고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퀴퀙과 사이좋게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내 평생 이렇게 잘 잔 적은 없었다”고 할 만큼, 이 식인종 이방인간의 첫 만남에서 우정이 싹튼다. 사실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둘 사이의 관계는 신비한 우정으로 발전되는데, 이는 다인종,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서는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다음날 아침 이슈마엘과 퀴퀙은 다른 뱃사람들과 여인숙의 식탁에서 아침을 먹고는, 퀴퀙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이슈마엘은 홀로 뉴 베드포드의 거리를 산책하다가, 고래잡이의 예배당에 들어가 매플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 목사의 설교단은 마치 포경선의 앞머리처럼 생겼으며, 설교의 주제는 요나와 고래에 관한 것이었다. 이슈마엘은 뱃사람들의 친척과 유가족으로 가득 찬 예배당에서 놀랍게도 퀴퀙을 발견한다. 그러니까 퀴퀙은 다른 인종과 종교를 포용할 줄 아는 매우 관용적인 인물이었다. 스파우터 여인숙으로 되돌아온 이슈마엘은 식인종 친구인 퀴퀙의 순진성과 관대함에 매혹되어 우정의 담배를 나누어 피겠다고 자청하고, 퀴퀙은 이슈마엘을 포옹하며 자기들은 이제 결혼한 사이라고 선언하며 자신의 검은 우상에 함께 예배를 보자고 간청한다. 독실하진 않지만 기독교 문화에서 성장한 이슈마엘은 이 ‘우상숭배’의 제안에 한동안 갈등을 겪다가 이윽고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진짜 결혼한 금실 좋은 부부처럼 함께 잠든다.
다음날 아침 이슈마엘과 퀴퀙은 스파우터 여인숙을 나와 수레에 짐을 싣고 낸터킷으로 가는 연락선을 탄다. 연락선 위에서 퀴퀙은 자신을 조롱한 한 사람을 내동댕이쳤으나 그 사람이 돛대의 가로대에 부딪혀 바다에 빠지자 물에 뛰어들어 그 사람을 구해주는 아량을 베푼다. 이슈마엘은 낸터킷 섬에 관한 아메리카 인디언의 전설을 이야기하며 이 유서 깊은 포경지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낸터킷의 이런 신화적인 면모는 포경업으로 새롭게 번창한 뉴 베드포드의 현실적인 분위기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슈마엘과 퀴퀙은 ‘트라이 팟스'라는 여인숙 겸 식당에 거처를 정하고 거기서 해물잡탕 찌개를 맛있게 먹는다. 퀴퀙은 자기의 우상인 요요가 이슈마엘 혼자서 포경선을 정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고 우긴다.
다음날은 퀴퀙의 종교에서는 단식기도일이라서 이슈마엘 혼자서 포경선을 물색하러 나간다. 이슈마엘은 지금은 멸종한 매사추세츠의 인디언 종족의 이름인 ’피쿼드‘ 호를 발견하고 이 낡은 포경선의 선주가 된 펠리그 선장, 빌다드 선장과 이익배당을 놓고 실랑이를 벌인다. 순수익의 1/300의 몫을 배당받은 이슈마엘은 친구 퀴퀙 역시 포경선을 타고 싶어한다고 말하고는 피쿼드 호가 떠나기 전에 선장인 에이헙을 만나고 싶다고 했으나, 펠리그 선장은 모두들 경외심으로 대하는 “에이헙도 그 나름의 인간성은 가지고 있다!”는 묘한 대꾸만 할 뿐이었다.
‘트라이 팟스’ 여인숙으로 돌아온 이슈마엘은 매우 불편한 자세로 꼼짝 않고 금식기도를 하는 퀴퀙에게 말을 붙여보려고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다음날 이슈마엘은 퀴퀙을 데리고 피쿼드 호로 가서 선원계약을 시키려는데, 펠리그는 그가 식인종이라는 이유로 망설인다. 하지만 그는 퀴퀙의 작살던지기 솜씨에 경탄하면서 당장 1/90의 배당을 주고 계약을 체결한다. 이슈마엘과 퀴퀙은 피쿼드 호에서 돌아오는 길에 ‘엘라이자’라는 이름의 웬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를 만나는데, 그는 에이헙에 관한 소문과 곧 일어날 죽음의 항해에 관해 모호한 암시를 던진다.
3년간의 항해에 필요할 물품을 구입하는 등 분주한 출항준비 끝에 드디어 출항일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아침 일찍 이슈마엘과 퀴퀙은 피쿼드 호에 승선하러 가는데, 안개 속에서 몇몇의 선원들이 피쿼드 호로 달려가는 것을 본다. 그러자 엘라이저가 나타나 뒤에서 이 둘을 껴안으며 다시 불길한 암시를 하고, 최후의 심판일에 만나자고 하면서 사라진다. 이슈마엘과 퀴퀙은 피쿼드 호에 승선하여 앞서 달려가던 선원들을 찾으려 했으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헙은 선장실에 틀어박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빌대드 선장과 펠리그 선장이 선원들을 갑판에 소집하여 출항준비를 시키고 황혼녘에 드디어 피쿼드 호는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출항한다. 두 선장은 배에서 내려 보트로 돌아간다. 출항과 아울러 이슈마엘은 고래잡이들의 명예를 옹호하는 긴 변론을 편다. 고래잡이는 무척 힘들고 야만적이기까지 하지만 고래기름을 제공함으로써 문명의 등불을 밝히는 중대한 산업이며, 포경선은 지구상의 발견에 선구자가 되었으며, 무역과 선교활동의 개척자이기도 하다는 등의 포경 예찬론을 늘어놓는다. 이슈마엘과 퀴퀙의 뭍의 이야기는 고래잡이의 명예로운 사명을 이렇게 옹호하면서 끝난다.
피쿼드 호의 선원들과 에이헙의 광적인 흰 고래 추적 의지
피쿼드 호의 선원들은 미국에서부터 아프리카, 그리고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여러 인종들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문명과 야만이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먼저 1등 항해사인 스타벅은 낸터킷 출신으로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노련한 뱃사람으로서 가정적이고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용기가 있으나 만용을 부리지는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한가지 흠은 미신을 믿는 것인데, 그것이 이성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더욱 취약한 구석이 있다. 그의 작살잡이는 퀴퀙이다. 피쿼드 호의 2등 항해사 스텁은 케이프 코드 출신의 태평스럽고 유머러스한 인물이지만 고래와의 싸움에서는 더없이 용감무쌍하다. 그의 지휘를 받는 작살잡이는 아메리카 인디언인 타쉬테고다. 3등 항해사 플래스크는 마사즈 비냐드 출신의 융통성 없는 성마른 뱃사람인데, 고래를 재미로 잡는 듯 행동하는 만용을 부린다. 그의 지휘를 받는 작살잡이는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거인 대구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는 소개되지 않지만 에이헙이 피쿼드호에 몰래 태운 악마와 같은 페달라를 비롯한 말레이 선원들도 보이지 않는 피쿼드 호의 일원들이다. 멜빌은 이들 간부선원들과 평선원들을 차례대로 소개하면서 피쿼드호에 탄 선원들 모두가 ‘인간의 공동의 대지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하나가 자신의 독립된 대지에 사는… 고립자들’임을 직시한다. 그럼에도 ‘위대한 민주주의의 신’에게 이들 ‘가장 비천한 수부와 배교자와 버림받은 자’들 속에 잠재한 ‘저 흠잡을 데 없는 남자다움’을 기반으로 ‘공정한 평등정신’과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원한다.
그러나 이런 기원은 카리스마적인 인물 에이헙의 등장으로 위협받는다. 피쿼드호의 선장인 에이헙은 외모--마치 번개에 맞은 듯 얼굴과 목에 섬뜩하게 새겨진 하얀 상흔과 잘려나간 다리 대신에 박아놓은 상아 의족, 그리고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눈--에서부터 사람을 압도하고 남음이 있다. 이슈마엘이 에이헙을 처음 보고 이렇게 느낀다.
그는 화형 말뚝에서 풀려나온 사람 같았는데, 불길이 온 사지를 유린하듯 황폐하게 만들어버렸건만 사지를 태우지는 않고 탄탄한 노장의 굳건함을 한치도 손상시키지 않은 듯했다. 키가 크고 널찍한 형체 전체가 단단한 청동으로 만들어지고 첼리니의 퍼시어스 상처럼 변형시킬 수 없는 주형으로 빚어진 것 같았다. 한가닥 납빛처럼 허연 가느다란 막대 모양의 상흔이 잿빛 머리칼 사이에서 실처럼 흘러내려 황갈색으로 그을린 얼굴과 목의 한쪽 가를 똑바로 내려가 마침내 옷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우뚝 솟아오른 거목의 줄기에 번갯불이 위에서 아래로 달려가면서 새겨놓은 수직의 상처와 비슷했다. 번갯불은 맨꼭대기에서 밑둥까지 가지 하나 비틀지 않고 나무껍질을 벗겨 홈을 내고는 땅 속으로 달려갔는데, 낙인이 찍혔건만 나무는 여전히 푸르게 살아있는 듯했다.
에이헙은 이렇게 범접하기조차 겁나는 존재다. 에이헙이 피쿼드호에서 얼마나 절대적인 존재인가를 일러주는 일화가 있다. 스텁은 에이헙 선장이 긴긴 밤 내내 갑판 위를 서성이며 신경에 거슬리는 의족 소리를 내는 것에 항의하여 상아의족을 삼 부스러기로 감싸면 그 소리를 줄일 수 있다고 넌지시 충고하는데, 에이헙은 대뜸 화를 내면서 물러가지 않으면 궁둥이를 걷어차버리겠다고 반응한다. 그후 스텁은 에이헙이 상아의족으로 그를 걷어차는 꿈까지 꾸었다.
그런데 에이헙 선장은 피쿼드 호 항해의 제일의 목적을 흰 고래의 추적에 두고 있었다. 뒷갑판에서 에이헙은 선원들 모두를 소집한 가운데서 중간돛대에다 큼직한 스페인 금화를 박아놓고 흰 고래 모비딕을 처음 발견한 사람에게 이 금화를 주겠다고 공언하면서 자신은 죽을 때까지 이 고래를 추적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흰 고래 추적에 동참할 것을 청하는 에이헙의 요구에 대해 스타벅은 선원들의 열광적인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나는 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지 내 사령관의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은 아닙니다. 에이헙 선장, 설령 당신이 복수를 한다 해도 그 복수로 대체 몇 통의 기름을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낸터킷 시장에서 그다지 많은 값을 받지 못할 겁니다”라고 정면으로 반발한다. 그리고 “맹목적인 본능에서 당신을 내려쳤을 뿐인 말 못하는 짐승에게 복수라니!… 미친 짓이요! 에이헙 선장, 말 못하는 짐승에게 한을 품는 것은 신성모독과 같소”하면서 에이헙의 복수를 비난한다. 그러나 스타벅은 에이헙의 화려한 수사와 강렬한 카리스마, 그리고 불굴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 오히려 스타벅 자신이 흰 고래 속에 깃들어 있는 불가해한 것을 보지 못하고 시장가격으로만 판단하는 신성모독을 저지르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에이헙은 이렇게 반론한다.
다시 한번 잘 들어보라--좀더 깊은 층을. 이봐, 눈에 보이는 모든 물체들은 마분지로 만든 가면에 지나지 않는 거야. 그러나 하나 하나의 사건에 있어서는--살아있는 행동, 의심할 바 없는 행위에 있어서는--그 사유할 줄 모르는 가면 배후로부터 뭔지 알 수 없으나, 사유하는 무엇이 그 형상의 틀을 내미는 법이야. 남자가 한번 치려면 가면을 부수도록 치란 말이야! 갇힌 자가 벽을 깨뜨리지 않고 어떻게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겠어? 내겐 흰 고래가 바로 그 벽, 내게 바싹 다가온 벽이다. 가끔은 그 벽 너머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지.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해. 그놈이 나를 괴롭히고, 내게 덤벼들고, 나는 그놈에게서 알 수 없는 악의로 짜여진 포악한 힘을 보고 있어. 그 불가해한 것을 나는 가장 증오한다. 흰 고래가 대리자건 흰 고래가 본체건 그놈에게 그 증오를 풀어야겠어. 이봐, 내게 신성모독이라는 말은 하지 마. 태양이라도 날 모욕하면 칠 거야. . . 내 위에 누가 있어? 진리는 어떤 한계도 없는 거야. 눈을 치워! 멍청하게 쳐다보는 건 악마들이 노려보는 것보다 더 참을 수 없어!
에이헙은 스타벅의 반발을 이런 고도의 철학적 사유와 화려한 수사로 억눌러버린다. 스타벅은 더 이상 에이헙의 장대한 목적에 간섭하지 못하게 되었다.
에이헙은 독백을 통해 담배 맛을 잃어버린다든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낮은 차원에서, 향유하는 힘’을 상실하고 ‘높은 지각’만 발전되어 있는 자신의 존재상태를 저주하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리고 흰 고래와의 대결을 앞둔 시점에서 흑인 소년 핍에게 각별한 인간적 애정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이 반박한 스타벅에게 의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망설임과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에이헙은 흰 고래 모비딕의 추적을 중단할 수 없다. 흰 고래를 죽이고 말겠다는 의지를 자신마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느낀다.
이슈마엘의 사유의 모험과 ‘고래학장’들
이 고전적인 작품에서 독자가 부딪히는 가장 어려운 부분들이 시작된다. 32장 ‘고래학’(Cetology)으로부터 시작되는 고래에 관한 온갖 철학적․종교적․정치적 수상(隨想)과 해석들이다. 멜빌 학자들로부터 ‘고래학장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부분은 책의 1/3 이상을 차지하는데, 고래에 관한 백과사전식 지식의 나열(32장)에서부터 고래와 모비딕에 얽힌 설화들(41장 ‘모비딕’), 고래의 흰색에서 느끼는 모호함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철학적인 사색(42장 ‘고래의 흰색’), 역대의 고래 그림을 놓고 무엇이 가장 고래를 제대로 그려냈는가를 품평하는 에세이들(55-57장), 참고래와 향유고래를 칸트(Kant)와 흄(Hume)의 철학과 비교하여 품평하는 대목(74-75장), 포경의 명예와 영광을 기리는 찬양(82-83장), 고래의 물뿜이 현상에 대한 분석과 고래꼬리의 강력한 힘에 대한 칭송(85-86장), 포경에 얽힌 법적인 문제들(89-90장), 고래의 크기, 두개골 측정, 고래 화석, 그리고 미래의 고래형태에 대한 사색(102-105장) 등 다양한 스타일과 관점에서 고래에 관한 명상들이 그것이다. 게다가 이 고래학장들은 이 작품에서 매우 사실적인 어조로 상술되어 있는 고래와 포경, 포경장비에 관한 지식과 설명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어, 언뜻 지루하고 산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