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초상
헨리 제임스 지음 | -
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
헨리 제임스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이사벨 아처: 작품이 그리는 ‘초상화’의 주인공. 상상력이 풍부하고 세상을 알고 싶은 지식욕이 강한 미국 처녀이며,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지닌 개성적인 인물.
랠프 터쳇: 미국의 하버드대학과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서 교육받은 청년. 섬세한 감수성과 지성을 갖추었지만 폐결핵에 걸려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불가능하다.
워버튼 경: 영국 신사의 표본 같은, 잘생기고 매력적인 귀족 남성. 랠프의 친한 벗이며, 이사벨을 사랑한다.
캐스퍼 굿우드: 하버드대학을 나온 뒤 아버지 소유의 면직 공장 경영자로 일하는 사업가. 강한 의지를 가진 전형적인 미국 청년.
서리너 멀: 이사벨에게 개인적 자유의 이상형으로 보이는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세속적 성공에 매달리다 실패한 여인.
길버트 오스먼드: 겉으로는 세련된 신사이지만, 실제는 형식과 예의범절에만 관심을 쏟는 사이비 예술가적 풍모의 딜레탕트.
호기심 많고 상상력 풍부한 미국 처녀 이사벨 아처
1871년 여름. 영국 런던에서 좀 떨어진 테임스 강변의 시골 저택인 가든코트에서는 주인인 터쳇씨와 폐결핵에 걸린 아들 랠프, 그리고 랠프의 벗인 영국 귀족 워버튼 경이 차를 마시고 있다.
세 사람의 남자 앞에 터쳇 부인이 미국에서 데려온 조카딸 이사벨 아처가 등장한다. 주인공 이사벨은 경험 없는 미국 처녀지만 활기차고 개성적인 언행으로 랠프와 워버튼 모두에게 처음부터 깊은 인상을 준다. 터쳇 역시 이사벨이 젊고 발랄했던 시절의 아내를 연상시킨다고 생각한다. 이사벨은 다소 건방진 듯한 인상을 주지만 바로 그 점이 그녀가 지닌 매력의 일부를 이룬다.
이사벨은 삶을 자기 스스로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며 상상력이 풍부한 젊은 여성이다. 비록 교육적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녀는 대단히 진취적인 기상을 지녔다. 지식에 대해 강한 욕구를 지녔고, 무엇이든지 인쇄된 지면보다는 다른 지식의 원천을 더 선호했으며, 독립적이고 강한 의지를 지닌 반면, 구체적 현실에는 둔감하거나 무관심한 면모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사벨은 친구인 헨리에타 스택폴을 젊은 여성이 따를 본보기로 삼고 있다. 헨리에타는 여기자로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인물인데, 미국 여성답게 유럽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려 들기보다는 미국의 우월한 점을 더 앞세우는 매우 미국 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외톨이로 지내던 그녀에게 이모인 터쳇 부인의 등장은 구원과도 같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모를 만날 시점에서 이사벨은 어떤 변화라도 환영할 처지였고, 과거를 뒤로 한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요구를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에게 영국의 시골저택과 그에 딸린 문화와 풍속은 정말 흥미롭고 신나는 경험이다. 대서양을 건너온 아처는 여러가지로 견문을 넓히고 성숙해가지만, 한편으로 그녀의 낭만적이고 유아적인 기질이 심해지는 면도 있었다. 워버튼 같은 지체 높은 젊은 귀족은 이사벨에게는 소설에서나 접해본 인물이었던 탓에, 둘은 곧 가까운 사이가 된다. 워버튼은 이 젊은 미국 처녀에게 영국의 삶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준다. 이사벨은 내심 그가 자신을 포크와 스푼조차 보지 못한 야만인 취급을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짓 질문을 해서 워버튼이 진지하게 답하면 “당신이 딱한 야만인에게 이처럼 친절할 줄 알았다면 내 고유 의상을 가져왔을 텐데요”라고 응수하여 그를 골리기도 한다.
워버튼은 이사벨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누이들을 소개한다. 워버튼의 누이들은 친절하고 훌륭한 여성들이지만 이사벨이 보기에는 자신들이 속한 체제와 가치관에 순응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워버튼이 자신에게 구애하고 있음을 눈치챈 이사벨은,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가 흔들릴까 두려워한다. 또 이미 미국에서 자신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한 캐스퍼 굿우드가 편지를 보내 다시 만나줄 것을 청하기도 한 터였다. 얼마 전만 해도 이사벨은 워버튼 같은 구세계 귀족의 아내가 되는 일을 상상도 못했던 것이었음을 떠올린다. 그래도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의 인생 목표와 다르다는 생각에 거절한다. 이사벨이 워버튼의 청혼을 물리친 일은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랠프도 놀랄 정도로 뜻밖의 일이다. 그만큼 워버튼은 사회적 신분과 재산, 인품에서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귀족 청년이었다. 이사벨은 워버튼의 청혼을 예감하면서 “영지(領地)를 가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거물”이 자신의 체제 안으로 그녀를 끌어들이는 듯한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다.
한편, 미국 청년 굿우드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메마른 성격에 구대륙이 지닌 문화적 풍부함과는 무관한 인물이어서 이사벨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다. 그는 심한 경쟁과 불황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번창시키는 수완이 뛰어난 사업가이며 면직기의 개량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사벨은 구애를 거부하면서도 굿우드의 존재를 자신의 운명처럼 거듭해서 느끼며, 지금은 상상력의 장애물일 뿐인 그가 언젠가는 “멋진 화강암 방파제에 둘러싸인 맑고 조용한 항구”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굿우드는 자신이 이사벨이 그토록 중시하는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남자이며 그녀 연배의 젊은 여성은 결코 혼자서는 독립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사벨은 끝끝내 자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판단하겠노라며 그의 청혼을 물리친다.
뜻밖의 유산 상속
이사벨은 이모의 친구 마담 멀을 만나 처음부터 그녀에게 끌리게 되지만, 어쩐지 그녀는 수상쩍은 구석이 있는 여자다. 이사벨이 보기에 마담 멀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독립심과 자유를 풍부한 경험을 통해 완성시킨 인물 같았다. 둘 사이에는 의미심장한 차이가 있었다. 즉 마담 멀은 한 인간의 자아는 곧 그 자아의 표현물이라고 생각하며, 집, 가구, 친구, 읽는 책과 입는 옷이 그 표현에 해당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사벨은 자신의 소유물이 자신을 표현할 수는 없다는 믿는다.
병으로 죽어가는 터쳇은 아들에게 이사벨과 결혼하라고 하지만, 랠프는 그녀를 지켜보고 싶다면서 아버지를 설득해 자기 몫의 유산 절반인 7만 파운드를 그녀에게 물려주도록 한다. 아버지는 그런 결정이 위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아들의 요청을 들어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랠프는 유산 상속이 자신이 한 일임을 밝히지 않은 채 이사벨에게 자유를 즐겨라, 자신의 날개를 펴라고 충고한다. 이사벨은 큰 부의 획득이 가져다준 자유에 따르는 책임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의 분방한 상상력은 갑자기 생긴 부를 ‘어느 정도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며, 이제 자신의 행동을 제약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에게는 순수한 삶의 선택, 지극히 자유로운 윤리적 선택의 기회와 위험이 주어진다.
플로렌스의 길버트 오스먼드 저택에서 오스먼드를 방문한 마담 멀은 이사벨을 만나 결혼하라고 조언한다. 랠프의 애매하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벨은 오스먼드라는 인물에게 이끌린다. 어쩐지 오스먼드는 이상적인 삶을 구현한 신사로 보이는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역사적인 유적과 풍물에 흠뻑 빠져 있는 이사벨 앞에 다시 워버튼이 나타나 또 청혼하지만 다시 거절당하고 그저 친구로 남기로 약속한다. 오스먼드는 워버튼 같은 대단한 귀족의 청혼을 이사벨이 거절한 사실을 알고는 이사벨에게 비상한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이 영국의 공작으로 태어나지 못한 데 대해 사무친 원한을 품고 있는 그로서는 이사벨이 진귀한 수집품과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되었으며, 또 그녀의 막대한 재산은 그의 관심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다. 오스먼드의 이기심은 매우 세련된 것이어서 그는 우둔한 아내를 결코 원하지 않았고, 이사벨처럼 지적인 여성을 얻어 마치 잘 익은 과일을 올려놓을 은접시처럼 장식물로 사용하려고 생각했다.
길버트 오스먼드와의 결혼
오스먼드는 결국 이사벨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의 구혼을 기대했던 이사벨은 오스먼드의 행동에 마음이 움직이지만, 아직 그를 잘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녀는 구혼을 정식으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마담 멀과 함께 3개월간 그리스, 터키, 이집트 등을 여행한다. 이 과정에서 이사벨은 마담 멀과 더욱 친해지지만 한편으론 그녀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자신과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사벨은 자신이 오스먼드와 약혼했다는 편지를 받고 다시 찾아온 굿우드를 만난다. 그녀는 오스먼드를 낮게 평가하는 굿우드에게 반발하면서 자신으 돈도 지위도 없지만 고귀한 인품과 이상을 지닌 사람과 결혼한다고 대꾸한다. 굿우드가 떠난 뒤 이사벨은 울음을 터뜨린다. 터쳇 부인은 워버튼의 청혼을 거절한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오스먼드와 조카딸이 약혼한다는 것에 매우 실망한다. 더불어 친구인 마담 멀이 자신을 속였다고 화를 낸다. 여행에서 돌아온 랠프는 건강이 더욱 나빠졌고, 이사벨의 약혼 소식에 깊이 낙담한다. 그는 이사벨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이제 ‘큰 새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리라 말하며, 오스먼드가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쓸모없는 딜레탕트’라고까지 말한다. 여기에 이사벨은 반발하며, 오스먼드는 매우 고독하고 세련되고 정직한 사람이라며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런 그녀에게 랠프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지만 아무런 희망 없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놓기까지 한다. 결국 오스먼드와의 약혼은 그녀를 주변의 가까운 이들과 멀어지게 만든다. 오스먼드는 터쳇 부인과 랠프가 자신이 돈 때문에 이사벨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스먼드의 어린 딸 팬지는 이사벨을 좋아하며 아버지의 약혼에 매우 기뻐한다.
불행한 결혼 생활
1876년 11월 어느날 이사벨의 어릴 적 친구인 에드워드 로지어는 마담 멀을 찾아와 팬지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한다. 마담 멀은 그를 호의적으로 대하면서, 도와주겠지만 오스먼드는 달리 생각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한다. 예상한대로 오스먼드는 로지어에게 그가 자기 딸에게 어울릴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냉혹하게 대한다.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던 랠프와 함께 로마에 갔던 워버튼이 갑자기 돌아온다. 팬지를 만나게 된 워버튼은 그녀가 매력적인 처녀라고 느끼게 된다. 반면 이사벨은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돌아온 워버튼을 바라보면서 행동이라는 강물에 자유롭게 뛰어들 수 있는 남성들의 행복에 대해 남몰래 부러워한다.
이제 이사벨은 오스먼드 부인으로서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녀는 오스먼드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를 잃었을 뿐 아니라 지적 활기나 삶에 대한 호기심을 상실한 상태이다. 겉으로는 전혀 불행한 결혼생활을 내색하지 않지만 이사벨은 자신의 참모습을 숨긴 채 오스먼드 부인으로서만 행세할 뿐이다. 랠프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사벨이 사기꾼과 결혼한 셈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오스먼드는 세속적인 가치를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사는 듯이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제스처에 불과하다. 이사벨은 오스먼드의 참모습을 꿰뚫어보지 못한 채 속아넘어가고 만 것이다. 랠프는 로마에 머물면서 이사벨을 더 관찰하기로 결심한다. 또 친구 워버튼에게 이사벨 가까이에 있으려고 팬지와 결혼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함으로써 그를 화나게 만든다.
이사벨은 마담 멀이 자신의 결혼을 유도했다는 터쳇 부인의 확신을 믿지 않고, 로마를 떠나 있는 그녀가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종종 느낀다. 어느날 팬지와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사벨은 오스먼드와 마담 멀이 매우 친숙한 사이인 것처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란다. 통상적인 예의범절을 어기고 여성인 마담 멀이 서 있고 남성인 오스먼드가 자리에 앉은 채 둘은 ‘일종의 친밀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오스먼드가 떠난 후, 마담 멀은 자신은 더이상 에드워드 로지어와 팬지의 관계에 관심이 없다면서, 이사벨이 영향력을 발휘하여 워버튼이 팬지와 결혼하도록 하라고 부추긴다. 나중에 오스먼드도 아내에게 똑같은 요구를 함으로써 이사벨을 경악하게 만든다.
이사벨은 이제 곰곰이 자신의 결혼과 현재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오스먼드와의 결혼생활은 끔찍한 것이었으며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태였다. 이사벨은 남편이 결혼 전에 자신의 참모습을 이해하지 못했고, 겉보기와 다른 면이 있음을 알았을 때에도 그 정도는 결혼 후에 바꾸어놓을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 생각이 미친다. 부부가 되기로 약속한 후 얼마간의 행복했던 기간 동안 이사벨은 자신이 남편에게 부를 가져다줌으로써 남편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모성애적 성향을 보였음을 회상하면서, 그녀는 그녀대로 남편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자신도 오스먼드를 속인 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스먼드는 결코 잔인하거나 거칠지 않았지만, 그가 손대는 것이면 무엇이든 시들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이사벨은 그가 가난하고 외롭지만 고귀한 이상을 가졌다고 믿었기에 사랑했다. 그런데 오스먼드의 이기심은 마치 독사처럼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사벨의 생각에 귀족적인 삶은 ‘탁월한 지식이 남다른 자유와 결합된 것’이지만, 남편에게 그것은 전적으로 형식의 문제였으며 의식적이고 계산된 태도에 불과했다.
랠프를 다시 자주 보게 된 것은 이사벨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랠프는 이사벨이 자신의 불행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이사벨은 팬지를 로지어와 워버튼이 다같이 참석하는 파티에 데려간다. 로지어는 이사벨이 자신을 동정하지만 도와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괴로워한다. 이 자리에서 워버튼과 잠시 의미 있는 눈길을 마주한 뒤, 이사벨은 워버튼이 자신의 곁에 있고 싶어서 팬지와 결혼하려 한다는 걸 깨닫는다.
이사벨은 자신이 랠프와 만나는 것을 남편이 싫어함을 잘 안다. 왜냐하면 랠프는 이사벨의 자유로운 정신을 북돋우기 때문이다. 오스먼드는 이사벨이 ‘정신의 자유를 갖지 않기를 바랐으며, 랠프가 자유의 사도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랠프를 방문하는 일이 자칫하면 남편과의 공개적인 불화로 이어질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이사벨은 병석의 사촌 랠프를 자주 찾는다. 그녀는 랠프에게 팬지에 관한 워버튼의 관심에 대해 묻는다. 랠프는 워버튼이 사실은 이사벨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 사실이지만, 만약 이사벨이 그가 팬지와 혼인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남편은 질투심 때문이라고 그녀를 비난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팬지는 의붓어머니에게 자신이 로지어와 결혼하고 싶지만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한다. 남편의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서 그녀는 팬지에게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팬지와 관련한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이사벨은 뼈저리게 느낀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은 오스먼드를 선택한 결정이 자기 삶의 ‘유일한 신성한 행위’였기 때문이며, 일단 오스먼드 부인인 이상,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워버튼은 건강이 나쁜 랠프를 로마에 남겨두고 홀로 영국으로 돌아가면서 인사를 온다. 그는 이사벨을 팬지의 ‘수호천사’라고 하면서 결국 팬지에게 청혼하지 않은 채 떠난다. 그날 저녁 오스먼드는 영국 귀족과 딸을 맺어줄 기회를 망침으로써 아내가 고의적으로 자신을 모욕했다고 공격한다. 이사벨은 자신이 남편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지만, 팬지는 로지어만을 사랑하지 워버튼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스먼드는 딸의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내를 노골적으로 비난한다.
이사벨의 친구 헨리에타는 옛 청혼자인 굿우드가 로마에 왔다고 알려주고, 곧 굿우드는 오스먼드 저택의 정기적인 방문객이 된다. 오스먼드는 일부러 그를 좋아하는 척해서 이사벨을 놀라게 만든다. 마담 멀은 나폴리에서 돌아와 팬지의 결혼 가능성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워버튼에게 어떻게 대했느냐고 물어 이사벨을 불편하게 만든다.
랠프는 영국으로 돌아갈 만큼 건강이 다소 호전되어 헨리에타, 굿우드와 함께 동행하게 된다. 헨리에타는 남편이 그녀의 성품마저 망치기 전에 별거하라고 이사벨을 채근하지만, 이사벨은 이를 거절한다. 헨리에타가 생각하듯이 이런 태도는 결코 남편을 배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배려하기 때문인데, 실상 이사벨은 자기 자신이 가장 두려운 상태이다. 이사벨은 랠프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그가 자신의 가장 친한 벗이었다고 말한다. 랠프는 그녀가 자신에게 목숨을 부지할 이유였지만 이제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한다. 오스먼드는 굿우드 앞에서 부부 사이가 이상적이고 화목한 것처럼 가식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면서 마치 굿우드는 이사벨에게 이처럼 해줄 수 없었을 듯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언행은 굿우드 같은 단순하고 직선적인 사람을 포함하여 주변 인물을 완전히 속이지 못한 채, 속물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품만을 드러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