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지음 | -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다니엘 디포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로빈슨 크루소: 불굴의 모험 정신과 개척 정신을 통해 자신 삶의 지배자가 되는 인물. 청교도적 세계관과 자본주의적 세계관을 기묘하게 결합시켜 근대 자본주의 형성기의‘군중 속의 고독‘을 상징하는 이.
프라이데이: 크루소에 의해 구출된 후 크루소의 충복이 되며 크루소의 기독교를 받아들인다.
무인도에 조난되기 전까지
젊은 크루소는 부모에게 바다로 나가는 것을 가장 원한다고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자식의 이런 바람에 완강히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네가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한다면 신이 축복하지 않을 것이야. 그리고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지경을 당한 뒤에서야 내 충고를 무시한 것을 생각하게 될 게다.”
아버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젊은 크루소는 선원의 삶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첫번째 항해에 나선다. 나중에 그의 배가 맞닥뜨렸던 엄청난 폭풍우를 회상하면서 크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이 ‘침수’라고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것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그는 이런 위기를 맞아 얼마나 공포에 떨었는지, 이 자리에서 익사하는 것을 면할 수 있다면 절대 다시는 딱딱한 땅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일단 육지에 도착하자 근본적인 욕망이 다시 살아나 크루소는 에일러스라는 배에 또다시 오른다. 그러나 이 불운한 배는 출항 후 곧 터키해적에게 나포돼버린다. 여기서 사로잡히는 것을 겨우 면한 크루소는 작은 배로 탈출했다. 그와 젊은 동료는 함께 아프리카의 해변을 항해하게 되는데 이 항해 도중 그들은 야수와 원주민들에게 계속 쫓기는 고난을 당하고, 결국 포르투갈 배가 그들을 구조해주어서 브라질로 갈 수 있었다.
새로운 땅에서 크루소는 설탕농장을 일구고 번성시킨다. 그러나 다시 외로운 불만이 그를 사로잡는다.
나는 어떤 황량한 섬에,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그런 곳에 버려진 사람처럼 살았다.
즉 모험 없는 생애는 그를 스스로부터로도 소외시켜버린 것이다. 마친 이때 다른 농장주들이 아프리카로 향하는 노예선에서 노예상인으로 일할 생각이 있느냐는 제의를 해온다. 크루소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곧 아프리카로 향할 채비를 차린다.
조난 그리고 홀로서기
그러나 이 항해 역시 곧 재난을 당하게 된다. 엄청난 허리케인이 배를 파괴해버려 나머지 선원은 익사하고 크루소만 황량한 해변에 떠밀려온다. 뒤이은 폭풍 때문에 배의 잔해가 해변 근처로까지 밀려오자, 크루소는 뗏목을 만들어 그 배 안으로 찾아 들어간다. 그리고는 배 안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보급품을 끌어와서 자기가 만들어놓은 임시 텐트에 일단 저장해두었다. 며칠이 지나 답사차 언덕에 올라가본 그는 비로소 자신이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섬에 도착한 지 13일째 되는 날, 다시 또 다른 폭풍이 몰려와서 배의 잔해를 바다로 끌고 가서 침몰시켜버린다. 이것으로 그는 문명과의 마지막 연결끈을 잃어버렸다.
크루소는 곧 섬에 염소가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염소들을 길들여서 고기와 우유, 버터와 치즈를 얻는다. 그리고 배에서 구해낸 보급품을 저장해둔 동굴 입구 근처에 아주 방어가 잘된 집을 힘들여 짓는다. 또한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몇 개의 선반을 만들고 난 후, 달력을 표시하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그 다음 몇 달 동안 지진과 허리케인이 밀어닥쳐 보급품이 들어 있는 동굴을 손상시키고 만다. 크루소는 배가 지날 때를 대비해 대부분의 시간을 해변에 있는 집에서 지내지만, 내륙에 추가로 피난처를 짓기로 결심한다.
시간이 지난 후, 매우 심한 열병을 앓다가 크루소는 환영을 본다. 환영은 그에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모든 일을 당해도 회개하지 못하니 너는 죽어야겠다!”
아버지의 충고를 기억하면서 크루소는 기도를 올리고 성서를 읽기 시작한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난 뒤 그는 자신이 처한 험난한 환경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닌 죄로부터의 해방을 찾기 시작한다.
그 섬의 작은 계곡에서 크루소는 많은 야생 포도와 레몬, 라임 그리고 다른 종류의 과일과 야채를 발견한다. 그는 포도를 말려 건포도를 만드는데 이는 주요한 식품이 되었다. 또한 앵무새를 발견하여 데려다놓고 말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배에서 구해낸 푸댓자루 바닥에서 쌀과 보리 몇 톨을 발견한 그는 이를 신의 기적으로 일컬으며 이것으로 넓은 경작지를 일구어내는 데 성공한다. 여러 해에 걸쳐 크루소는 빵 만드는 것과 바구니를 짜는 실험을 한다.
다른 무엇보다 무인도 생활에서 느끼게 되는 큰 불편 중의 하나는 음식을 요리하거나 담을 항아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토기를 만드는 데에도 성공하며 심지어는 액체를 담기에 충분한 항아리를 굽기도 한다. 이렇게 섬에서 사 년을 보낸 후 그는 완전히 변모한 인간이 되었다.
나는 이제 문명세계를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그리고 거기에 대해 아무런 욕망이 없는 그런 것으로 간주한다.
크루소는 섬에서의 다섯 번째 해에 건설과 발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는 섬의 저편에 여름용 집을 건설하며 가죽으로 우산과 옷을 만들었다. 또한 섬 주위를 타고 여행할 수 있는 카누도 만들었다. 그렇게 크루소가 고독하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과 섬의 주인이 되어가면서 시간은 흘러간다.
외로움에서의 해방
어느덧 무인도에 난파한 지 15년째가 되었다. 크루소는 해변에서 인간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발자국을 발견한 순간, 그는 왠지 모를 공포에 질려버린다. 용기를 내 발자국의 크기를 재보고 나서 그는 그것이 자기 발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발견한다.
위험에 대한 두려움은 위험 자체보다 만 배는 더 공포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안전을 위하여 집 주위에 두 번째 벽을 쌓고 거기에 여섯 자루의 머스킷 총을 장착했다. 그리고는 섬 주위를 둘러보다가 해변에 인간의 뼈가 널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줄 알았던 섬이 실상은 식인종들이 출몰하던 섬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 즉시 그 지역에서 도망쳐나와 그후 2년 동안 집 근처를 벗어나지도 않고 총을 쏘지도 않으며 불을 피우는 것도 피한다.
섬에서의 생활이 24년이 지난 어느 밤, 크루소는 총소리를 듣는다. 다음날 아침에 크루소는 바위에 배의 선체가 난파돼 있는 것을 본다. 생존한 선원이 없다는 것을 안 그는 적막한 외로움에 빠진다.
어떤 말의 힘을 빌어서도 그 광경을 보고 내가 느낀 이상한 갈망을 표현할 수가 없다. ‘아 그 배에서 단 한 명이나 두 명 아니 단 한 명이라도 내게 도망쳐올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나와 대화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동료라도 있었더라면.’ 오랜 고독한 생활에서 그렇게 동료에 대한 진정하고 강렬한 갈망을 느껴본 적이 없고 동료가 없다는 사실에 그렇게 깊은 회한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이라는 말을 천 번도 더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 때문에 갈망은 더 강해져서 이 말을 할 때 나는 손을 움켜잡고 손가락은 손바닥으로 파고들어서 만일 그 순간 부드러운 것을 쥐고 있었다면 으스러졌을 정도였다.
동료가 없다는 외로움을 새삼스레 통감한 크루소는 이어 머리털이 곤두설 만한 광경을 보게 되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30여 명의 식인종들이 해변에서 식인제를 하는 모습이었다. 크루소는 그들에게 총을 쏴서 몇 명은 죽이고 나머지는 쫓아버린다. 그는 원주민 포로 중에서 한 명을 구해내고 그날 이름을 따서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준다. 드디어 홀로 사는 생활을 벗어나 동료를 얻게 된 것이다. 프라이데이에게도 식인의 풍습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크루소는 그를 완전히 믿지 않지만 그는 튼튼하고 총명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 크루소는 그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세상을 소개한다. 프라이데이는 크루소에게 그 주위의 지리와 원주민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거기에서 크루소는 그 섬이 트리니다드 근처에 있음을 추정하게 된다.
드디어 고향으로
어느날 대화를 나누다가 프라이데이는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은 17명의 백인들이 자기 고향섬에 포로로 잡혀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만일 크루소가 그들을 구해낼 수 있다면 문명세계로 탈출할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타고 살 카누를 완성하기 전에 또 다른 식인종 무리가 그 섬에 도착한다. 이번에 크루소와 프라이데이는 예정된 희생자 중 두 명을 구해내는데 한 명은 스페인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원주민이었다. 그러데 이 원주민은 놀랍게도 프라이데이의 아버지로 판명된다.
이 스페인인은 크루소에게 다른 스페인인 포로와 포르투갈인 포로들도 기꺼이 크루소의 탈출시도에 동참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와 프라이데이의 아버지는 크루소의 계획을 포로들에게 설명하고 그들로부터 충성의 맹세를 받아내기 위해 자신들이 있던 섬으로 돌아간다.스페인인과 프라이데이의 아버지가 없는 사이, 영국배가 섬 근처에 닻을 내리고 11명이 상륙한다. 그런데 그 중 선장과 그의 친구, 승객 한 명은 선상반란자의 포로였다. 크루소와 프라이데이는 반란자 중 가장 포악한 이들을 죽이는데, 나머지 반란자는 충성을 맹세하면서 그들에게 투항한다. 꿈에도 그리던 섬에서의 탈출 수단인 배를 획득한 기쁨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내 눈을 배에 돌렸다. 배는 해안에 반 마일도 안되는 곳에 있었다. 선원들은 배에 올라타자마자 닻을 올렸다.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그들은 배를 작은 시내의 어귀까지 끌고 와서 닻을 내렸다. 그리고 밀물이 되자 선장은 내가 처음에 뗏목을 타고 내렸던 그 장소에 함재정을 끌고 와서 내 문 앞에 상륙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 섬에서의 탈출을 가능하게 해준 함재정이 상륙한 위치는 그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던 난파선 물품들을 실은 뗏목의 상륙지점과 같았고, 터키 해적으로부터 탈출한 날과 이 섬을 떠난 날은 모두 19일이었다. 배를 획득하게 되자 크루소는 영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영국으로 돌아가면 반란전력으로 인해 교수형을 당할 것을 염려한 몇몇 선원들은 그 섬에 남아 있기로 한다.
스페인 선원과 프라이데이의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에 떠나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크루소는 결국 항해를 시작해 영국에 도착한다. 고국을 떠난 지 무려 35년 만인 1687년 6월 11일의 일이었다. 두 자매와 형의 두 자식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을 안 그는 브라질 농장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려고 리스본으로 향한다. 프라이데이는 이 모든 와중에 가장 충직한 하인으로 남아 있다.
리스본에 도착한 크루소는 친구들이 그동안 농장을 잘 관리해 많은 수익을 남겼음을 발견하고 놀란다. 그래서 그는 이익 중 많은 부분을 자선기관, 가족들, 그 외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이제 더 이상의 항해가 무서워진 크루소는 리스본에서 영국으로 올 때 육로로 여행할 것을 결심하고 일단의 여행단을 조직한다. 일행은 피레네 산맥에서의 고난과 여러 험난한 일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영국에 도착한다.
집에 도착한 뒤 크루소는 결혼하고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둔다. 그러나 아내가 죽은 뒤 다시 동인도로 향하는 조카의 항해에 합류한다. 그리고 이 항해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별다른 문제없이 끝난다. 무인도를 다시 방문한 크루소는 스페인 선원들과 영국인 반란자들이 원주민 아내를 거느리고 정착한 것을 발견한다. 그가 떠난 뒤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듣고 나서 그는 대장장이와 목수를 섬에 남기고 또한 그들에게 섬을 분배해준다.
그러나 그의 모험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책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다.
“이 모든 것들과 그리고 10여 년 더 지속되었던 나의 새로운 모험에서 일어났던 놀랄 만한 일들은 아마도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그후에 일어난 일: 섬을 떠난 후 배는 희망봉을 지나 중국으로 항해한다. 시베리아를 통해 영국에 육로로 돌아오면서 크루소는 많은 모험을 한다. 결국 크루소는 54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그는 다시는 바다로 나가지 않고 남은 생애를 평화롭게 보냈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로빈슨 크루소》가 왜 호소력 있는 작품으로 다가오는가를 추정하기란 어렵지 않다. 평범한 중산층 출신의 보통 사람이 온갖 장애를 영웅적인 의지로 극복해 자신에게 닥친 험난한 환경을 정복하는 이야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보통 사람의 영웅적인 변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야기의 무대가 영국이 아닌, 모험으로 점철된 미지의 세계라는 사실은 그러한 세계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과 모험 심리를 자극하게 마련이다. 더욱이 이 작품은 안전판을 갖고 있으니 주인공 크루소는 모험에 동반하는 모든 위험을 보통 사람의 인내를 가지고 극복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시행착오로 이어진 생존
크루소는 전형적 영웅이 아니다. 이는 그가 대단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혹은 초인적인 힘을 가진 사람도 아니라는 점과, 섬에서의 생존이 끊임없는 시행착오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증명된다. 독자에게 자신도 그런 환경에 처할 경우 크루소와 같은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크루소의 육체적 생존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성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즉 이 작품은 크루소가 신의 섭리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불복종에 따른 징벌과 참회의 과정을 보여준다. 청교도적 전통에 입각한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영웅적 자서전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연 아닌 우연은 결국 크루소의 삶이 신의 섭리 밑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런 점에서 아버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찾아 집을 나서는 행위는 원죄로, 그가 처한 조난은 원죄의 단죄로, 그리고 그후 어려움에 직면해 그것을 신의 경고와 단죄로 해석하고 좋은 일은 신의 은총으로 이해하는 정신적 성숙은 원죄를 극복하기 위한 기독교인의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중요한가, 아니면 개인의 노력, 즉 선행이 중요한가의 논쟁은 이 작품에서 절묘한 해답을 찾고 있는 셈이다. 즉 이 작품은 크루소가 부지런히 일해서 섬을 일구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또한 그러한 노력을 관장하고 있는 존재는 신뿐이라는 믿음에 이르는 것으로 보아,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노력이 상호보완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적 신인간의 원형
이 작품은 크루소가 섬에서 생존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종교적으로 회개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한 개인만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에 대두하던 자본주의와 청교주의의 결합에 의거한 신인간의 등장을 보여준다. 우선 크루소가 모든 인간 관계를 자신의 이익에 근거해서 이용하려는 자기중심성을 보여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터키 해적에서 탈출했을 때 탈출을 도와준 하인을, 크루소는 포르투칼 배에 구조되자 선장에게 팔아넘기고 돈을 받는다. 또한 그가 구한 프라이데이와의 관계에서도 동료보다는 자신의 종복으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기독교의 우월성을 설파하고 개종시키는 것을 영혼을 구해내는 것으로 단정한다. 또 다른 형태의 자기중심주의다.
또 섬에서 탈출하는 과정 역시 타인을 구해준 뒤 그들의 충성을 담보하는 주종관계에 근거하고 있다 할 수 있으니 이 작품에서 크루소가 맺는 인간관계는 근본적인 평등성에 근거한 관계라기보다는 서로의 이익의 합치에 의한 계약적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면모는 여러 모험에서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선의와 대비된다. 즉, 자신에게 효용가치가 있을 때만 타자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자본주의적 신인간의 원형으로 부각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