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절
찰스 디킨스 지음 | -
어려운 시절(Hard Times)
찰스 디킨스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토머스 그래드그라인드: 코크타운의 학교이사장이자 국회의원으로 공리주의의 철저한 신봉자이다.
조사이어 바운더비: 코크타운을 대표하는 자본가이자 그래드그라인드의 친구인데 나중에는 그의 딸 루이자와 결혼하여 그의 사위가 된다. 루이자: 공리주의 교육을 완벽하게 받았지만 결코 만족스런 삶을 살지는 못한다.
톰: 루이자의 남동생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씨씨 주프: 냉혹하고 계산적인 공리주의 세력에 맞서서 인간적 따스함과 공감적 상상력을 대표하는 인물. 비인간적인 그래드그라인드 집안을 인간적 환경으로 재창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빗저: 공리주의의 모범생으로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는 정치경제학을 신봉한다.
파종
장식이 전혀 없는 수수하고 단조로운 교실에서 학교이사장인 그래드그라인드는 선생과 학생들에게 ‘사실’에 입각한 교육의 중요성과 효용성을 강조한다. 인간성마저도 숫자와 산술로 규정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학생들에게 말에 대해 정의해보라고 요구한다. 그래드그라인드는 모범생이자 우등생인 빗저를 통해 ‘네발짐승. 초식동물. 40개의 이빨 중 어금니 24개, 송곳니 4개, 그리고 앞니 12개’라는 식의 사전적 정의를 제시한 후, 곡마단에서 살고 있는 씨씨에게 보란 듯이 말한다.
“자, 20번 여학생. 이제 말이 어떤 동물인지 알겠지.”
그래드그라인드에겐 말이라는 동물의 유기체적 특성이나 습관보다도 자신이 강조하는 ‘사실’만이 절대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감정이나 정서말고 이성만을 교육시킬 것, 덧셈․뺄셈․곱셈․나눗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는 절대 궁금해하지 말 것, 이것이 그래드그라인드의 기본원칙이다.
학교에서 학생을 한바탕 닦달한 후 의기양양해서 스톤 로지로 돌아오던 그래드그라인드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시켜, ‘마치 새끼토끼처럼 한곳으로 몰이를 당했던’ 자기 아이들 루이자와 톰이, 슬리어리 곡마단이 들어앉은 가건물의 뚫어진 구멍을 통해 곡마단의 묘기를 엿보는 모습을 본 것이다. 곡마단이야말로 공리주의 교육이 금지하는 ‘상상’을 대표하는 집단 아닌가. 놀라서 말문이 막힌 그래드그라인드는 소리친다.
“놀랍고 한심하고 바보 같구나! 도대체 여기에서 무엇을 하는 거냐?”
그가 자식들의 뜻밖의 행동에 절망하여 소리지르던 바로 그 순간, 그의 친구이자 코크타운의 대표적 자본가인 바운더비는 스톤 로지에서 그래드그라인드 부인에게 자신의 불행했던 시절을 과장하여 떠벌리며 친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드그라인드가 돌아와 루이자와 톰이 곡마단에 천박한 호기심을 느끼고 안을 엿보더란 얘기를 꺼내고, 그와 바운더비는 그 탓을 ‘뜨내기 놀이패’의 자식인 씨씨가 아이들에게 불러일으킨 쓸데없는 상상력 때문이라고 단정하고는 씨씨를 학교에서 쫓아내기로 작정한다. 둘은 씨씨의 부친인 주프씨를 만나러 ‘페가수스의 문장’이라는 술집으로 간다. 술집은 코크타운에 있었다.
코크타운은 붉은 벽돌의 도시, 만약 공장 연기와 재가 허락했다면 붉은 색이었을 벽돌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그러나 사실은 야만인의 물감칠한 얼굴처럼 부자연스런 붉음과 검정의 도시였다. 그것은 기계와 높은 굴뚝의 도시였는데 그 높다란 굴뚝으로부터 연기의 뱀이 끊임없이 영원히 기어나와서 결코 풀어지지 않았다. 도시 안에는 검은 운하가 하나 있고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염료 때문에 자줏빛으로 흐르는 강이 하나 있었다. 창으로 꽉 찬 거대한 건물더미가 있는데 거기서는 하루 종일 덜컹거리고 덜덜 떠는 소리가 들렸고, 우울한 광증에 사로잡힌 코끼리의 머리 같은 증기기관의 피스톤이 단조롭게 상하운동을 했다. 서로 똑같이 닮은 큰 길이 몇 개 있었고 한층 더 닮은 작은 거리가 많이 있었다. 그 거리에는 마찬가지로 꼭 닮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포도에서 같은 소리를 내며,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출퇴근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매일은 어제나 내일과 똑같았고 매해는 작년이나 내년과 똑같았다.
그래드그라인드와 바운더비가 술집에 가보니 씨씨의 부친인 주프씨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애초의 결심대로 씨씨를 학교에서 퇴학시키고 나 몰라라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아이를 책임지고 모범생으로 양육할 것인가. 공리주의의 효용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그래드그라인드는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씨씨를 스톤 로지로 데려다 키울 생각을 한다. 그래드그라인드는 ‘충분히 엄격했지만 바운더비만큼 거친 사람’은 아니었으며 ‘그의 성격에 균형을 잡아준 산술에서 오래 전에 상당한 실수를 범하기만 했다면 정말로 친절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자기 몰래 곡마단을 떠났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확인한 후, 씨씨는 그래드그라인드를 따라 스톤 로지로 갈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를 기다리며 곡마단에 계속 있을지 망설인다. 이때 그래드그라인드는 부친의 희망을 대신 전해주며 스톤 로지로 따라나설 것을 권한다.
“씨씨, 네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네게 해줄 유일한 얘기는 건전하고 실제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 몹시 바람직한 일이라는 사실과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네 아버지조차도 너를 위해 그 정도는 뼈저리게 알고 느꼈던 듯하다는 거다.”
슬리어리를 포함한 모든 곡마단원들은 씨씨와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과 그래드그라인드의 ‘친절’ 둘 다를 가슴속 깊이 간직한다.
아빠의 손에 잡혀 집으로 끌려온 루이자와 톰은 또다시 이전과 같은 판에 박은 삶을 살아간다. 차이가 있다면 루이자가 난롯불을 보며 뭔가를 궁금해하는 회수가 늘었다는 점인데, 교육이 강화될수록 루이자의 공허감과 허전함은 깊어만 간다. 그래드그라인드의 선의(善意) 덕택에 스톤 로지에서 살며 교육을 받게 된 씨씨는 부친의 희망대로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만 숫자에 대한 이해나 경제학의 기초에서는 평균 이하에 그친다. 공리주의의 기계적이고 반생명적인 사고틀을 수용하기에 씨씨는 너무 감정이 풍부하고 활력이 가득했다. 루이자와 씨씨 사이에 계속되는 대화는 어느덧 이 집에서 금하는 선을 넘어 곡마단 생활과 가족간의 사랑과 위로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고, 씨씨의 존재가 루이자의 갈망과 허기를 채워주는 만큼 둘 사이의 정서적 유대와 정신적 믿음은 깊어간다.
씨씨가 이 집안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은 루이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가족들에게 베푸는 도움과 친절은 그래드그라인드가 보기에도 뚜렷한 것이어서, 씨씨의 학업결과를 불만으로 여기면서도 ‘도표로 표시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이 아이에게 존재한다는 생각’을 부정할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애초에 그래드그라인드는 씨씨를 자기 틀에 맞추어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확신했지만 정작 변화하기 시작하는 인물은 씨씨가 아니라 그래드그라인드 자신이었다.
코크타운 같은 공장도시에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이 도시의 노동자들은 가혹한 작업환경과 살인적인 저임금 탓에 사용자에 대한 불만을 억누를 길이 없었고, 따라서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 중의 한 명인 스티븐은 다른 노동자들과 조금은 다른 처지에 있다. 그의 일차적 관심사는 주정뱅이인 지금 부인과 이혼하고 레이챌과 재혼하는 것이지, 다른 노동자들처럼 작업환경이나 저임금에 대한 것이 아니다. 스티븐은 바운더비를 찾아가 이혼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우호적인 충고를 구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결혼은 신성한 것이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유지해야 한다는 판에 박힌 대답뿐이다.
스티븐에게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했던 바운더비는 코크타운을 대표하는 명가(名家)와 사돈을 맺어서 자신의 자수성가 신화를 멋지게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공리주의적 계산법에 따라서 바운더비야말로 최고의 사윗감이라고 생각하는 그래드그라인드는 어느날 루이자에게 바운더비를 신랑감으로 천거한다. 바운더비의 청혼 사실을 전달하며 그는 딸에게 결혼 문제를 ‘이성과 계산이라는 튼튼하고 공정한 토대 위에서 판단’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청혼 얘기를 들으면서도 루이자가 ‘주문’에 충실하게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자, 막상 당황하는 쪽은 그래드그라인드였다. 루이자는 결국, “살아 있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나마 제게 적합한 일을 하고 싶어요.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어요”라고 말하며 자포자기에 가까운 심정으로 청혼을 수락한다.
루이자와 바운더비가 결혼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씨씨는 이 결합이 파국으로 끝날 수밖에 없으리라고 직감한다. 씨씨는 비록 수업은 따라가지 못했지만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예지나 판단력에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아이였다.
수확
바운더비가 루이자와 결혼하고, 바운더비의 집안일을 봐주던 스파지트 부인이 바운더비 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지도 일 년이 지났다. 이 은행에서 밀정 겸 밀고자로서 상당한 역할을 하여 입지를 굳힌 빗저는, 무더운 여름 어느날 스파지트 부인에게 노동자들이 생활의 향상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자기처럼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떠벌린다. 빗저는 ‘내가 한 일은 너희들도 할 수 있다. 어째서 못하느냐?’ 면서 빈곤을 당사자가 게으른 탓으로 여기는 코크타운 유력자들의 생각과 같다.
스파지트 부인과 빗저가 대화하는 도중에 하트하우스가 은행으로 찾아온다. 귀족 출신의 하트하우스는 형의 추천으로 코크타운에서의 일자리를 얻자 심심풀이삼아 그 일을 한번 해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러나 ‘될 대로 되라’라는 좌우명이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는 그는 코크타운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곳에나 가볼까, 생각할 정도로 무책임하고 만사에 금방 싫증을 느끼는 위인이다. 런던에서부터 대단한 여성이라고 얘기를 들은 바운더비 부인이 예상보다 너무 어리다는 사실에 관심이 동하지 않았다면, 그는 실제로 코크타운을 곧바로 떠났을 것이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바운더비와 결혼해 쓸쓸하고 의미없는 나날을 살아가는 루이자에게 ‘모든 일이 공허하고 무가치한 것’이라는 하트하우스식 철학은 ‘일종의 위안 겸 변명의 구실’로 여겨진다. 그의 철학을 따르자면 루이자가 새삼 잃은 것도 새삼 희생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상이나 미덕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주위 사람들에 비해 그런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공언하는 하트하우스는 루이자가 보기에 분명 새로운 인간유형이며 또한 그런 만큼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루이자에게 한가지 불만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동생 톰에 대한 것이었다. 루이자가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톰의 희망과 부추김은 결정적인 것이었는데도 톰은 바깥으로 나돌기만 하고 자기에게는 너무나 무관심하지 않은가. 루이자의 가려운 데를 알아차린 하트하우스는 그녀가 보는 가운데 톰을 훈계하여 톰이 누나에게 사과하도록 만드는 장면을 연출하고, 그 이후 둘의 관계는 급진전된다.
한편, 코크타운에서 전개되는 적대적인 노자관계는 스티븐의 처지가 아무리 절박해도 이혼이라는 가정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에만 전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함께 투쟁하든지, 자본가 편에 서서 동료들을 배반하고 그들을 밀고하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스티븐이 끝까지 ‘노동자총연맹’에 가담하기를 거부하자 노동자들은 그와의 관계를 단절한다. 이제 그가 코크타운에서 계속 지내려면 자본가 편에 서는 길밖에 없지만, 명예심이 강한 스티븐으로서는 노동자의 대의를 저버리고 밀고자로 전락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스티븐은 결국, ‘자기가 속한 계급의 편견과 다른 계급의 편견, 둘 다에 의해 희생’된 채 코크타운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코크타운에서 노동자는 ‘사용자나 노동자 한쪽 편으로 길을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속으로는 문제가 곪아가도 겉으론 별탈이 없던 코크타운에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바운더비 은행에 밤 사이 도둑이 들어서 150파운드 남짓한 돈을 훔쳐간 것이다. 그러자 도시를 떠나기 전 며칠 동안 은행 주위를 서성이던 스티븐과 가끔씩 은행 주위에 나타나던 이상한 노파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러나 스티븐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훌륭한 평판’을 누리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은행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루이자는 기절해버리고 만다.
루이자와 하트하우스의 관계가 진전되는 모습에 은근히 쾌재를 부르며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스파지트 부인이다. 예전부터 바운더비와의 결혼을 원했던 이 부인은 이제라도 루이자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것이다. 바운더비가 집을 비운 어느날 스파지트 부인은 결정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하트하우스가 루이자를 껴안고 열정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다가 마침내는 호우가 돼 쏟아지는 가운데 루이자는 외투를 입고 얼굴을 감싼 채 어디론가 급히 떠난다. 둘이 눈이 맞아 달아나는 거라고 생각한 스파지트 부인은 결정적인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루이자의 뒤를 밟는다.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번개는 철로 위에 지그재그로 떨어지고, 상황의 긴박성에 비례해 스파지트 부인의 호흡도 가빠진다. 길가의 파이프가 터져서 하수구는 넘쳐흘렀으며 거리는 온통 물바다였다. 온몸은 비에 완전히 젖었고 움직일 때마다 신발 안에서는 절벅이는 소리가 난다. 그러나… 파지트 부인은 루이자의 자취를 놓치고 만다. 루이자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루이자는 사랑의 도피여행을 떠난 게 아니었다. 스파지트 부인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던 것이다. 루이자가 하트하우스 때문에 마음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배를 난파시키는 빙하에 비유되는 하트하우스의 본질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분별없는 여성은 아니었다. 비에 흠뻑 젖은 채 나타난 루이자를 보고 그래드그라인드는 깜짝 놀라며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한다. 그러나 루이자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바운더비와의 애당초 잘못된 결혼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성장과정 전체와 아버지의 교육철학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아버지, 저는 매순간 한편으로는 잠시도 충족된 적이 없는 굶주림이나 갈증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숫자와 정의가 절대적으로 통하진 않는 영역을 열렬히 갈망하는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며 자랐어요.”
“네가 불행한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아가.”
“아버지, 저는 항상 불행했어요. ……제가 배운 지식은 모르는 것을 의심하고 불신하고 경멸하고 한심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었어요. 인생은 곧 끝날 것이니 조금도 수고와 노력을 들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지막 수단이었으니까요. ……제가 아는 바는 그저 아버지의 철학과 교육이 저를 구하지는 못할 거라는 거죠. 자, 아버지, 저를 이 지경으로 끌고왔으니 다른 방법으로 절 구해주세요!”
그는 딸이 마룻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때맞춰 루이자를 꼭 붙잡았지만 그녀는 무서운 소리로 외쳤다.
“절 붙잡으면 죽어버리겠어요! 바닥에 고꾸라지게 내버려두세요!”
그래드그라인드는 이제까지 디디고 서 있던 땅과 의지하고 있던 버팀목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공리주의의 중요성과 효용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던 그에게 루이자의 비난은 너무나 뜻밖이었던 것이다.
저장
기절했다가 아침에 깨어난 루이자에게 그래드그라인드가 찾아오지만 말투부터가 평상시와 달리 떨려나온다. 자기도 “잘하려고 그랬다는 점을 믿어달라”고 가까스로 간청하면서도 전날밤에 루이자가 요구했던 대로 그녀를 도와주고 바로잡아줄 방도가 자기에게 있는 것인지부터 믿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이제까지는 ‘머리의 지혜’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가슴의 지혜’도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듯하다고, 오랫만에 막내 제인을 보았는데 그 아이가 씨씨 덕에 긍정적으로 바뀐 걸 보면 “머리가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던 일을 가슴이 소리없이 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