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이정훈 지음 | 책과강연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이정훈 지음
책과강연 / 2025년 9월 / 288쪽 / 19,000원
위로 없는 위로말에 진심이 빠지면 소리는 곧 바스러질 것처럼 건조해져서 상대의 귀에 기분 나쁘게 거슬린다. 할 말이 없으면 차라리 시선을 낮추고 침묵 안에서 가만히 상대의 말을 기다리는 게 낫다. 입은 다물고, 귀만 열어 두는 것이다. 그러면 차츰 들리고, 차츰 보이기 시작해서 상태의 윤곽을 느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위로한답시고 나서기보다 ‘그랬구나…’ 하며 가만히 고개만 끄덕여 주는 게 차라리 낫다.
서른 중반이었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 고꾸라진 목소리가 비틀대며 넘어왔다. 말끝마다, ‘후…’ 하는 추임새가 들어가는 걸 보면 벌써 어지간히 취한 듯했다. 마침 집에 가려고 나온 터라 발길을 돌려 논현동을 향했다.
실내포차에서 닭발에 소주로 시작한 술자리는 1차, 2차, 3차를 브레이크 없이 달렸다. 늦가을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가 나에게 물었다.“너, 냉장고에 한 열흘 넣어둔 밥 먹어본 적 있냐?”
“아니.”
“그래 먹지 마! 그런 건 먹으면 안 되지, 그런 건 버려야지. 내가 그 찬밥 같아. 버리긴 뭣하고, 먹을 수도 없이 말라비틀어진….”
나는 듣고만 있었다. 애초에 용건이 있어서 만나잔 게 아니라는 건 알았다. 그는 마치 망가지기 직전의 인생 앞에서 마지막 넋두리를 하려는 듯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속사정을 듣지 못해도 섣불리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 밤 그에게 필요했던 건, 그가 쏟아내는 말을 모조리 수용하고 흘려줄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 역할에 내가 생각난 것일 테고….
괘종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그를 보며, 냉장고 속 말라비틀어진 밥을 생각했다. 새벽까지 그의 찬밥 돌림노래는 계속되었다. 그러다 한순간 몸의 중심이 한쪽으로 기울면서 두 팔과 한 다리가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나는 재빨리 거리를 좁혀 그를 껴안아 앉혔다. 그때 그의 점퍼에서 숯불 냄새와 뒤섞인 습한 골방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오래전 기억 속의 나를 소환했다. 과거의 나와 오늘의 그 사이에 시차를 둔 골방 냄새의 기억이 겹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외로운 냄새였다. 익숙한 그 냄새만으로 나는 지나간 그의 시간을 설핏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날 임용 발표가 있었고, 네 번째 불합격 통지를 받은 날이었다는 것을 술자리를 파할 때쯤 알게 됐다. 도로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이따금 뭉개진 발음으로 흘리는 ‘다 끝났어. 아… 미안해….’ 하는 그를 바라봐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는 널어놓은 빨래처럼 이리저리 흐느적거렸다. 그가 그토록 미안해한 사람은, 합격자 발표 날 밤늦도록 연락을 기다린 가족들이겠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들에게는 아픈 말을 감추게 된다. 그 말들은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이다 말하지 못한 무게를 안고 혼자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만다. 그것이 외로움이다. 이 밤, 가족이 아닌 나에게 연락한 것은 아마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소식이 괜찮을 수 없는 가족에게 괜찮다는 위로를 받게 될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를 생각하다 난감했을 것이다. 대낮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민망함과 지독한 좌절감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적당한 거리에 있는 나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위로와 무관심 사이, 그 미묘한 균형점에 있는 나를.
나 또한 그의 지난 4년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우리는 세월을 뛰어넘어 한참 만에야 만났고, 이 미약한 연대감은 반나절 술 몇 잔으로 끈끈해질 게 아니었다. 그의 상처에 덧댄 반창고 같은 말이 나에겐 없었다. 슬쩍 들춰본 나의 말들은 그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않을 것이었다. ‘괜찮아’, ‘힘내’ 따위의 상투적인 말이 행여나 튀어나오지 않도록 나는 마음을 단속했다.
새벽 2시가 넘도록 그는 떠들었고 나는 들었다. 가끔 들릴 듯 말 듯 ‘그랬구나’ 하며 소심히 맞장구를 치는 게 내 말의 전부였다. 술에 취해 엉망이 된 그는 갈지자걸음으로 비틀거렸다. 의식이 없으면서도 어깨를 부축하는 내 손을 반사적으로 뿌리쳤다. 대로변에서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 비상등 깜빡이는 택시 안으로 그를 겨우 밀어 넣었다.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자.”
뒷자리에 앉자마자 쓰러지듯 창에 기댄 채 그는 잠이 들었다. 멀어지는 택시의 꼬리등이 코너를 틀며 사라질 때까지 나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천장을 응시하며 현실 앞에 낙담할 그의 절망 가득한 눈동자를 생각했다. 쓰린 속을 달래려 라면을 끓이면서 달걀을 넣을지 말지 순간 고민하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어하는 그의 표정을 생각했다. 상황 파악 안 되는 식욕에 찡그린 그의 얼굴 주름을 생각했다. 같은 밤을 보냈지만, 다른 아침을 맞이할 그를 보내며 나는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뭘 해줄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었지만,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될 밤이었다. 택시가 사라진 후, 나는 홀로 새벽길을 걸었다.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길가의 작은 돌멩이를 툭툭 차며 걸었다. 다음 날, 괜찮냐는 문자를 보냈다. 말줄임표 세 개를 찍었다가 지웠다.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고 나도 더는 묻지 않았다.
몇 달 후, 그가 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처음에는 주말특강 몇 개를 맡는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시작했지만, 곧 메인 강사로 채용되었다고 했다. 장소는 다르지만, 그는 교단에 서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 인생을 꾸려가고 있었다. 한숨 가득했던 그 밤의 넋두리는 이미 희미한 기억으로 밀려나 있었다.
몇 년이 더 흘러,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한때 무너질 것만 같았던 그의 세계에도 새로운 균형이 찾아왔다. 혼자서 외롭게 감당하던 무게를, 이제는 둘이 나란히 서서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삶이 결혼으로 더 안정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렇게 그는 젊은 시절의 실패에서 벗어났다. 절망의 밤은 어느새 방향을 틀어 완만한 인생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그새 십 년이 흘렀다. 버려야 할 옛 시간은 흘러서 폐기되었고, 무너지지 않고 기어이 밀고 나간 시간은 그의 품에 토끼 같은 아들과 딸을 안겼다. 허리는 4인치가 늘었고, 몸무게는 10kg이 불었다. 몸만큼 인생도 후덕해졌다. 1호선 한강철교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창밖으로는 한강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그의 이름이 떴다. 창가로 들어선 오후의 봄볕이 차창을 비집고 내 무릎 위에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수화기를 귀에 대자 그의 목소리가 기차의 덜컹거림과 햇살 사이로 스며들었다. 높은 데시벨의 맑고 환한 목소리였다. 좋아 보였다.
시간은 흐르고 인생은 그럭저럭 살 만하게 흘러간다. 행복을 무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웃으며 견딜 만큼의 마음이라면 살 만한 것 아닐까. 살다 보면 조금 부서지고 흠이 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주저앉을 정도로 파괴되는 것은 아니니까.
오랜만에 친구에게 문자를 썼다.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누군가 말하더라.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고. 그날 네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어쩌면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거였을지도 모르겠어.’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 ‘이 말 해주고 싶었는데, 냉장고 속 찬밥 있잖아…. 맛있어. 라면에 말아 먹으면 다 네 인생이고, 네 거야. 앞으로도 너를 너로 사랑해 주기를… 지금처럼.’ 그러고는 보내기 버튼을 누르려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어쩌면 이 문자도 보내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맑았다. 무너질 것 같던 그 밤으로부터 우리는 또 이렇게 멀리까지 흘러왔다.
그림자와 노인외근을 핑계로 사무실을 나왔다. 이유 없이 전철을 탔다. 한강이 보여 무작정 내렸고, 강변을 따라 걸었다. 물가에 던져놓은 살랑거리는 낚싯대가 눈에 들어왔다. 정지된 풍경 아래 흐느적거리는 낚싯대의 고독감이 유난히 짙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한 노인이 앉아 있다. 뭐 좀 잡혔나 싶어 힐끔 망을 들여다봤는데 텅 비었다. “잘 안 잡히나 봐요.”
“잡히면 귀찮기만 하지 먹을 것도 아니고.” 노인은 표정의 변화 없이 낚싯대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매일 오세요?” 노인의 옆에는 낡은 낚시배낭과 보온병 하나가 전부였다.
“할 일이 없으니까 시간 보내기에 낚시만 한 게 없지.” 노인의 목소리는 의외로 또렷했다.
거리를 두고 앉아 슬쩍 그의 얼굴을 살폈다. 완고해 보이는 광대뼈와 홀쭉히 들어간 볼이 꽤 고집스럽고 깐깐해 보였다. 마포대교 너머로 해가 기울어갈수록 각진 얼굴의 윤곽을 긋는 검은 선은 깊고 진해졌다. 삶을 지나온 숱한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인 얼굴이다. 미간에서 콧잔등 아래로 떨어지는 가파르고 깊은 주름골이 노인의 나이를 짐작하게 했다. 대강 여든은 되어 보였다. 사람의 얼굴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 그의 앞모습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얼굴에서 그가 걸어온 길의 뒷모습을 짐작한다. 앞을 향해 있지만, 과거를 담고 있는, 이 기묘한 역설 앞에서 나는 가끔 멈춰 서게 된다.“40년 동안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었어.” 묻지 않았지만, 말을 걸어온 내가 내심 반가웠던 모양이었다. 자기 얘기를 꺼내는 걸 보면.“가족은요?”
노인은 잠시 침묵했다. “집사람은 벌써 갔어. 아들 둘은 미국에 있고….”
외롭지 않냐는 물음을 예상이나 했다는 듯,
“인생은 말이야, 결국 혼자야.” 노인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젊을 때는 몰랐지. 일이 전부였으니까. 한때는 잘 나갔지. 돈도 꽤 벌었고, 일하다 보니 가족에게 소홀했어. 정년퇴직하고서야 알았지. 딸 방에 가족사진이 있었는데, 거기에 내가 없더군. 몰랐지 그런 것도. 가족사진 속에 내가 없는 것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았었지.”“내가 평생 배를 만들었는데 말이야. 정작 나는 배를 타본 일이 별로 없어. 만들기만 했지. 참 우습지….”
바람이 불지 않는 강변은 정지된 화면처럼 멈춰 있었다. 풍경 속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노인의 거친 얼굴은 노동자의 고된 일생을 함축해 놓은 시 같았다. 풀어내려면 끝도 없을 것 같은 긴 시간을 꾹꾹 눌러 담은 얼굴이랄까.“후회하세요?”
“후회?”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좀 더 가정적인 사람이었더라면 달라졌을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야. 균형을 잃고 산 건 확실하지. 젊은이는 어때?” 그의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혀 멈칫했다.
“인생은 선택이야. 붙들려면 다른 한쪽은 놓아주어야 하지. 어느 쪽이든 후회가 있고, 어느 쪽이든 기쁨도 있어. 그러면서 동시에 옆도 좀 봐주면서 살아야 해. 치우치면 외로워져.”
강을 마주하고 앉은 노인의 그림자가 물가에 길게 드리워져 흔들린다. 정지된 세계 안에서 오직 그림자만이 잔물결을 타 넘으며 노인에게 붙들려 있었다. 문득 노인의 시선이 붙들린 곳은 낚싯대가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그의 세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텅 빈 노인의 시선은 허망해 보였다. 그때 노인이 낚싯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잡은 게 없네요.”
“낚시하러 온 게 아니야.” 노인이 천천히 도구들을 챙기며 말했다.
“이 나이 먹어 봐. ‘오늘 뭐 하지?’ 하는 질문이 제일 괴로워. 갈 데가 마땅찮아서 온 거지. 여기까지 와서 욕심 부릴 일이 뭐 있나. 그냥 왔다 가는 거야.”잠깐 강물을 바라보던 그가 덧붙였다.
“그래야 내일도 올 이유가 있는 거고.”
몸을 일으킨 노인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더니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노인의 얼굴을 보니 시간은 흘러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겹겹이 쌓여 온몸에 고랑을 파듯 그의 몸은 늘어지고 겹친 세월의 낡은 흔적을 고스란히 입고 있었다. 젊은이는 무리에 강하고, 노인은 고독에 강하다던데…. 중년이란 딱지를 단 나는 무리에서도, 그렇다고 고독에서도 강하지 못한 것 같았다. 노인의 퀭한 윤곽은 등을 지고 한참을 걸어온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맴돌았다. 불편한 얼굴이다. 자꾸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성가신 얼굴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내가 찾아야 할 무언가가 있음을, 나는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소유나 존재냐아이가 태어났을 때다. 몸 밖으로 빠져나온 생명체와 처음 만난 순간 솔직히 난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아기가 태어난 순간 눈물이 났다는 어느 아빠의 얘기가 생각났지만, 그의 감정이 내 감정이 되지 못한 이유를 알지 못해 분만실에서 당황했다. 나는 무심한 표정을 반쯤은 숨겼다. 무심하다고는 말하지만 실상 그것이 진실로 무심함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기쁨이 아니라 이를테면 당혹감과 쓸쓸함 같은 것이었다. 마치 나 혼자만 다른 세계에 서 있는 것 같은….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느껴야 할 감정에서 멀찌감치 소외된 듯한 낯선 감정이 있었다.
아이의 첫인상은 기괴했다. 검붉은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감은 눈이 얼굴 위로 실금처럼 그어져 있었다. 물컹한 피부는 감히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는데 간호사가 안아보라 건넬 때 내심 겁이 났었다. 손바닥 두 개만 한 존재가 다리 사이로 얼굴을 내민 순간 나에게 책임을 묻는 이름 하나가 붙었다. 아이의 첫 울음소리는 나를 향했고, 동시에 눈이 마주친 간호사는 나를 ‘아버님’이라 불렀다. 어색한 순간이었다. 그때 난 왜 당황했을까. 행복에 겨워 눈물이 났다는 다른 남자들과 난 무엇이 달랐던 걸까. 어째서였을까? 이 물음은 한동안 나 자신을 불편하게 했다.
결혼식장에 들어선 그날조차 나는 결혼이 무엇인지 몰랐고, 큰 고민도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다음 역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던 것 같다. 고백하자면 결혼 후 아이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순리라고만 생각했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이를 가지는 것, ‘소유’하는 그 무엇으로 여겼던 것이다. 마치 새 차를 사거나 집을 구입하는 것처럼,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되는 것 중 하나로 여겼던 것 같다.
갓난아이는 서너 시간 단위로 깨고 자기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울고 보채고 똥오줌을 싸댔다. 아내도 엄마가 처음인지라 아이를 다루는 데 서툴렀고 몇 날 며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볼살이 눈에 띄게 수척하게 패였는데, 신생아를 다루는 것을 겁부터 냈던 나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해 기껏해야 아내의 보조를 맞춰 수건을 빨아오거나, 물을 끓이는 게 다였다. 출생 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내겐 기쁨이나 설렘이랄 게 없었다. 오히려 온몸이 세상 피로를 다 빨아들인 양 축축한 기분이었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늦은 밤 집안으로 들어설 때면 겁부터 나고는 했다.
아이가 소유라면 이렇게 힘들고 복잡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존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를 부르고, 요구하고, 나의 모든 계획을 무너뜨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이의 울음이 아이의 언어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빽빽거리며 우는 소리는 어딘가 아프거나 나쁜 꿈을 꾼 것이고, 이보다 한 톤 정도 낮지만 여전히 울음에 기세가 있고 길게 울어댈 때는 배가 고픈 것이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끙끙 앓는 울음을 낼 때는 똥을 싼 것이고, 이것을 알아채지 못해 엉덩이가 짓무르면 다시 빽빽거리며 울었다.
울음의 언어들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내 손놀림도 빨라졌다. 갓 쪄낸 백설기처럼 무르고 아슬아슬한 몸을 만지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혹여 내가 아이를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차츰 옅어져 갔다. 이 작은 생명체와의 단순 교신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때도 거룩하거나 행복하거나 벅차거나 신비로운 어떤 감정에 휩싸였다기보다는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돌발 상황에 전전긍긍했을 뿐이었다. 시시때때로 똥오줌을 싸거나 하품을 하다 어깨 위에 토를 하는 그럴 때 말이다. 아이와의 소통이 가능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기계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울음소리를 듣고 필요를 파악해서 해결해 주는, 일종의 문제해결 차원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 아이에게서 부모로서 당연히 느껴야 할 특별한 감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