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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문장

정혜영 지음 | 흐름출판


어린이의 문장

정혜영 지음

흐름출판 / 2023년 6월 / 228쪽 / 15,000원



1부.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대수롭지 않게



모든 것이 일시에 무너져버리는 순간에도


“공들인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구나.” 아들이 미술 학원을 다니던 초기부터 최근까지 그립던 연필 소묘 작품들을 보니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웅. 가끔 안 그럴 때도 있지만.” 엄마가 묻는 말에 “응”, “아니”로만 답하는 중2 아들의 답변이 제법 길어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맥락은 ‘응, 아니’와 다름없었지만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에겐 아이의 답변이 몇 음절만 길어져도 ‘사건’이다. 공들인 시간이 배신했던 적이 있었냐고 묻고 싶지만 답변이 길어지는 질문은 달가워하지 않는 청소년의 심리를 무시하면 안 되므로 이쯤에서 끝낸다.

아들이 소묘 연습을 하던 초기 작품은 선이 거칠고 명암이 고르지 않아 빛의 표현력이 명확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연필 선은 미세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어둠은 무조건 진하게 칠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번, 수백 번의 섬세한 선을 겹쳐야 명징하게 표현된다는 것을 알려준 건 지나한 연습 시간이었을 테다.

아침에 조금 늦은 시간 때, 나는 어린이날 비행기 대회에 참여했다. 내 종이비행기가 대회 전에는 잘 날아갔는데 대회에서는 조금 날아가서 아쉬웠다.

그럴 때가 있다. 최선을 다했는데 모든 것이 일시에 어그러져버린 것 같은 순간. 도대체 잘못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누구를 탓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순간. 별이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었나 보다. 연습할 때는 잘 날아갔던 종이비행기가 정작 대회 당일에는 조금밖에 안 날아갔다니 얼마나 속상했을꼬.

100시간을 연습했더라도 정작 성과를 드러내야 하는 시간은 20분 남짓. 나를 뽐낼 시간은 짧고 그 기회는 더 적다. 대회는 별이가 종이비행기를 만들고 날리기를 연습할 때 들인 노력은 평가해주지 않았다. 종이비행기를 얼마나 멀리 날려 보냈는지 결과만을 평가하고 상을 주는 것이 어린이날에 어린이를 위한다고 열린 대회였다니, 어른들의 성숙하지 못한 생각이 미안하다. 다음에도 이 대회가 열린다면, 그때는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를 만드는 첫 순간부터 날리기 연습을 하는 시간 모두를 격려해주는 방식이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공들인 어느 순간도 헛되지 않도록.

내가 주1회 취미 미술로 유화를 배우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1년 6개월여. 끊임없는 덧칠로 인한 소멸과 생성이 반복되는 유화를 그리며 시작은 있으되 끝은 보이지 않았던 시간들이 흘렀다. 아무리 취미 미술이라지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래도 무한반복의 덧칠을 계속 하다 보면 그림 속 대상들은 결국 온전한 형체를 드러내 주었고, 미숙함 속에서도 완성의 기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의심해야 할 것은 어떤 일에 대한 내 재능의 유무가 아니라 ‘그 일을 하는 데 내가 재미를 느끼는가’이다. 정세랑 작가도 『시선으로부터』에서 말하지 않았나,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공들인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렇게 믿으며 난 20년이 넘도록 아이들 곁에서 함께 그리고, 오리고, 악기를 연주하며 글을 쓴다.

부유하는 꿈들의 고향


어렸을 때 참 꿈이 많았다. 매일 보는 선생님은 정말 크고 멋진 어른 같아서 선생님이 되는 게 제1의 꿈이었다. 그러다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듣고 나면 작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듣고 나면 화가라는 꿈도 마음에 품었다. 돌아보니 그 시절 내 꿈들은 선생님들이 내게 해주신 칭찬에 기인한 것들이었다. 기왕에 쓰신 거 “넌 어쩜 이렇게 계산을 잘하니?” 해주셨다면 수학에 정을 더 붙여서 수학 머리 없는 내 아이가 날 닮은 탓인가, 싶은 자격지심은 안 가졌을 텐데.

가진 것만큼 꿀 수 있는 게 꿈인가, 가진 것을 넘어서 꿀 수 있어 꿈인가. 어릴 적 내 피부와 맞닿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어른이었던 ‘선생님’ 선생님은 엄마, 아빠가 모르는 것까지 다 알 것 같았고, 항상 정갈하고 예쁘게 차려입은 모습은 내 주변 어느 어른들보다 멋졌다.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사력을 다하게 되던 그때. 내게 주어진 상장 같은 보상은 항상 선생님이 선택해주셨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막연한 꿈은 그가 가진 절대권력을 갖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칭찬과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학교가, 선생님이 ‘제시한 기준’에 부합하도록 나를 맞춰야만 가능한 것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그렇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사회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내 몸을 맞추려 고군분투하던 12년간의 학창 시절. 가끔 그 기준이 체질상 맞지 않았던 친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방황은 기준을 따르지 않는 개인이 오롯이 책임져야 할 몫이었다. 그렇게 꿈을 접은 친구들, 그들은 또 다른 나였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종이를 주셨다. 거기에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이 써 있었다. 덕분에 친구들이 되고 싶은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그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경찰관이 되고 싶다던 이 문장의 주인공 그루, 친구들이 되고 싶다던 미래의 꿈은 간호사, 발레리나, 가수, 축구 선수, 수의사, 외교관, 선생님 등 다양했다. ‘아이언맨’이 되고 싶다던 한 친구의 말에 모두가 까르르 웃었지만, 그 아이는 언젠가 우주 비행사가 되어 광활한 우주를 누빌지 그 누가 알랴.

이렇게나 많고 다양한 아이들의 꿈이 실현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다채로운 모습이 될까? 어릴 적 마음에 품었던 수많았던 꿈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가짓수가 줄어들어 대학 입시를 앞두고는 어느 것 한 가지도 또렷하지 않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뭘 잘하는지도 희미해진다. 학업성적은 개개 학생의 흥미와 적성을 다 드러내주지 않으니까.

우리들의 그 많던 꿈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장래희망이란, 자신이 흥미 있고 잘하는 것에 기반해 되고 싶은 미래상을 꿈꾸는 일이어야 하지 않은가. 자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버리고 사회에서 추앙받는 일만 좇다 놓쳐버린 미래의 천문학자, 우주인, 배우, 작가들을 우린 어디에서 되찾을 수 있을까.

나는 도서관에 가면 즐겁다. 천국 같다. 책을 펴면 빠져든다.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들, 내 머릿속의 책 이야기에 빠져든다. 내 머리도 도서관! 책을 볼수록 더 보고 싶다. 결정했다! 내 꿈은 사서. 멋진 사서. 멋진 책을 보여주는 사서.

초롱이의 꿈은 ‘사서’라고 한다. 책을 좋아하고 책이 가득한 도서관을 좋아하니 그 공간을 지키고 선 사서 선생님이 얼마나 멋지고 부러웠을까. 그런데 이상하게 난 초롱이가 작가가 될 것만 같다. 맞춤법은 저 세상 일인양 개의치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 내려가는 초롱이의 재능은 분명 ‘글쓰기’에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초롱이의 글을 읽을 때마다 아이의 머릿속에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에 감탄한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초롱이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30년쯤 후에 이 꿈 많은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무척 궁금하다. 그때 혹여 소식을 알게 될 내 어린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나도 오늘을 잘 살아내야겠다. 누군가의 꿈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현재 무엇에 마음이 있는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모든 이들의 꿈이 제자리를 잘 찾기를 바란다.

2부. 지루한 매일을 찬란하게 사는 법



걱정만 하다 놓쳐버린 일들


바로 이거였다! 평범한 일상을 깨고 나와 이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놀라운 모험을 겪으며 이전과는 다른 자신과 만나는 이야기. 오래전,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좀처럼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는데 주인공 월터 미티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에게 특별한 일이란 상상에서나 가능할 일이지’, ‘나이가 들수록 빈곤해지는 상상력으로 뭘 할 수 있겠어’ 영화는 이런 정체된 생각에 갇혀 사는 나를 깨쳐주려고 만든 것 같았다. 아이슬란드 세이디스피요르드로 가는 93번 국도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바람처럼 질주하던 월터 미티가 스크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마흔 즈음부터 강박관념 같은 게 생겼다. 20년 이상 같은 일을 해오면서 네가 이룬 성과는 뭐냐고 묻는 내 안의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웠다. 그래서일까? 방구석 독서와 영화로 헛헛한 마음을 달래도 보고, 악기를 배우고 대학원을 다니며 나를 달리 증명해줄 뭔가를 찾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내 빈곤한 상상도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상상하며.

올해 할머니는 62세시다. 오늘이 할머니 생신이셔서 할머니가 어제 오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고 가셔서 같이 아침을 먹었는데 입맛도 없고 금방 배불렀다. 그래서 조금 있다가 케이크를 했다. 근데 할머니한테 (케이크가) 거꾸로 돼서 26세가 되셨다. 너무 웃겼다.

‘할머니는 62세!’라는 제목의 방울이 글이다. 방울이가 아홉 살. 셈을 해보니 방울이 할머니는 53세에 할머니가 됐겠다. 귀여운 아기의 출생에 기뻐하며 아이의 부모가 첫 아이의 엄마, 아빠 됨을 축복하던 날. 넘치는 환희 속 어느 자락에 젊은 나이에 강제로 할머니가 된 방울이 할머니를 위한 몫이 있었을까. 어느 쪽의 넘치는 행복은 다른 쪽의 행복을 끌어다 쓴 결과일지 모른다는 이놈의 기우가 또 발동하려 든다.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삶이니 방울이 할머니는 어쩌다 보니 젊은 할머니가 됐겠다. 이왕 젊으신 김에 더 젊어지면 어떠리. 26세 할머니라니, 나도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가 되고 싶어졌다.

나의 마흔여덟 살 생일날, 만류에도 불구하고 케이크를 산다며 남편과 아들이 부산을 떨었다. 고른 케이크를 포장해주며 “초를 몇 개나 드릴까요?” 하는 점원의 말에 신랑이 “큰 거 4개, 작은 거 7개요” 했다. 나름 만 나이로 한 살 줄여준 김에 작은 초들은 다 빼주는 센스는 구워삶아 드셨나,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아들이 말했다. “아빠, 그거 아니잖아” 역시 내 맘을 알아주는 건 아들 너밖에 없구나, 했는데… “엄마 48세니까 작은 초 8개라고 해야지” 내가 두 남자에게 뭘 더 기대하리. 케이크 반대편에 앉아 74세나 84세 생일을 맞는 초유의 사태만 안 겪으면 된 거지.

어린이의 발상은 신선하고 상상력에는 제한이 없다. 내 어린 시절도 그랬을 것이다. 때론 비장하게, 때론 유쾌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펼쳤을 테다. 이것저것 재느라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고 어렵지 않을까, 가능성이 없진 않을까,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주저하다 놓쳐버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고 호기롭게 결정하자.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이 말하지 않던가. 인생은 끊임없이 용기 내면서 개척하는 거라고.

일상이라는 여행


안 가본 곳과 새로운 곳. 과거 내 여행의 목적지는 이런 곳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이전에 접해보지 못했던 환경과 문화,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배움을 얻는 것. 그것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었다.

수많은 난관을 뚫고 마침내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결정했다. 그러나 정작 ‘이 남자와 평생을 함께해도 될지’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은 것은 남편이 제안한 신혼여행지 때문이었다. 남편이 제안한 곳은 ‘제주’였고, 일생에 단 한 번 가게 될 신혼여행지가 이미 수차례 다녀온 제주라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그래도 하늘이 점지한 인연이었던지 우리는 무사히 결혼했고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를 둘이나 둔 직장맘이 되고부터 내게 여행이란 ‘배움’의 옷을 가장한 탈출구였다. 교사국외연수로 다녀온 캐나다 한 달, 국외교류교사 프로그램으로 다녀온 싱가포르 3주가 그랬다. 그러니 딸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엄마만 해외여행 다니냐고 불평했던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딱히 이유를 알 수 없는 부글거리는 열정을 채우려 치열하게 얻어낸 그것들을 그저 ‘여행’이라고만 부른다면 많이 섭섭할 노릇이었다.

딸아이의 불평. 그것이 우리 모냐가 계획한 첫 해외여행의 시작점이었다. 딸은 친구들은 다 다녀왔는데 자기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이번엔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당시에 한참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져 있던 5학년 딸이 가보고 싶어 했던 나라는 이탈리아였다. 5개월간 틈틈이 준비해 딸과의 이탈리아 자유여행 계획을 세우고 2017년 겨울, 우리 둘만의 9박 10일 여행길에 올랐다.

이전에 해외를 다녀온 경험이 여러 차례였으나 그때는 기관이, 다른 사람이 세워준 계획에 몸만 실은 경우였다. 그러니 딸과 둘만 떠나는 해외여행, 그것도 온전히 혼자 계획하고 설계한 자유여행은 내게 도전이었다.

난 상태공원에서 개구리를 밟은 적이 있어서 밟은 뒤로 한 번도 생태공원을 안 갔다. 일부러 밟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용기 내어 갔다. 이번엔 개구리가 없고 귀뚜라미가 많았다. 다음엔 용감하게 도전하겠다.

반디가 개구리를 밟았던 기억이 아마 다신 생태공원을 찾고 싶지 않은 곳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쁜 기억 하나가 행복했던 모든 순간들을 덮어버리는 순간은 문득문득 찾아오니까. 이전의 생태공원은 가족들과 산책하던 곳, 처음 자전거를 배워 활주하는 자유를 누리던 곳, 온갖 풀꽃과 나무, 갖가지 철새와 곤충들을 만나던 곳이었다. 즐거운 기억이 더 많던 곳이었음을 기억에서 꺼낼 수만 있다면 용기 내어 다시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다시 찾은 그곳에서 새로운 곳을 발견하고 그 기억으로 이전의 나쁜 기억을 덮을 테니 반디가 앞으로 다시 생태공원을 찾을 일이 많아지겠다. 반디야, 너의 용기에 기립박수를 보내.

엄마와 나무 그늘에서 쉬며 하늘을 보았는데 구름들이 수다쟁이들처럼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곳이 가장 좋은 여행지다. 그런 사람과 함께여야 온 진심을 담아 스트레스 없이 자연과 오롯이 교감할 여유가 생길 테니까. 엄마, 나무 그늘, 쉼, 구름… 양지의 한 줄 문장에 여행의 요소가 그득하다.

딸과 둘만의 이탈리아 여행이 끝나던 날,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아이는 여행 내내 매일 한 개씩 먹었던 젤라또와 머물렀던 숙소에 있던 고양이라고 했다. 공들여 찾아본 수많은 여행지와 이탈리아에서만 볼 수 있는 화려한 건축물들은 사라지고 아이 마음에 든 게 고작 아이스크림과 고양이라니. 배신감에 눈을 흘기던 것도 잠시, 내게 가장 좋은 순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닮은 꼴 여자 둘이 여행 내내 화목하기만 했을 리 만무하지만, 여행 내내 서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사랑해”였다. 매일 싸우면서 또 매일 “사랑해”를 말하는 모순의 관계. 그것이 사춘기와 갱년기 초입에 들어서던 딸과 엄마의 여행이 남긴 최고의 장면이었다.

각 잡고 몇 날 며칠 계획을 세워 떠나야만 여행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미세한 차이로 달라지는 주변 환경과 매일 다른 마음 상태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그 모든 것들에 조금씩 다르게 반응하며 살아가는 내가 있는데 어찌 매일이 같을 수 있을까. 가끔 찬란하고 대부분 고단한 삶의 모든 일상들, 잘 견뎌온 딸에게 말해주고 싶다. 여기까지 잘 왔어.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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