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업데이트할 시간입니다
남궁원 지음 | 모모북스
마음을 업데이트할 시간입니다
남궁원 지음
모모북스 / 2022년 7월 / 264쪽 / 15,800원
힐링의 뜻은 온전히 내가 되는 시간
오랫동안 꽉 안아 주자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내 삶의 마지막 0.1초까지 잠시도 떨어져 있는 시간이 없다. 건강, 사람, 돈, 명예, 사랑, 행복, 희생과 같이 보기만 해도 아름답고 소중한 품목들 모두 마음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니 마음이 뒤바뀌어 버리면 모두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거나 모질게 변해 버리고 만다.
남녀노소, 직업, 상황 가릴 거 없이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았다. 입구는 물론이고 재질, 상태, 모양, 깊이가 다 달랐다. 용암처럼 뜨거운 곳, 히말라야처럼 험난하고 차가운 곳, 당장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곳, 눈물보다 더 아프고 쓰린 곳, 걱정과 사연들로 인해 매일 지진과 해일이 쏟아지는 재난 같은 곳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가장 평온하고 거리낄 게 없었던 때가 언제인가요? 앞으로도 평생 이 마음을 가지고 일생을 보내실 건가요?” 하고 물었다. 대부분은 “기억이 안 나요. 원래 이랬던 거 같아요. 노력은 해 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지치고 힘겨운 마음은 어디에나 쌓이는 먼지처럼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 먼지를 조금 털어 내고 들춰 보면 그중에는 찐득하게 달라붙어 있거나 녹이 슬었거나 굳어져 버린 마음들도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확신했다. 마음을 관리하는 게 곧 삶을 관리하는 거라고. 지금 잘 살든 혹은 그렇지 않든, 항상 마음에 기름칠을 해 주며 소중히 여겨 주는 사람이 결국에는 삶의 승리자가 될 거라고.
마음은 보이지만 않을 뿐 우주 탄생 이래 가장 위대한 힘을 가졌고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이루어 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지금까지 애썼고 힘겨웠을 거고 아팠을 거다. 이제 내가 집중해야 할 건 마음 관리이다. 당신에게 적절한 마음은 당신이 희망하는 삶을 살게 해 줄 가장 확률 높은 투자처이니 부디 소홀하지 않기를.
마음이 있어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온도가 계절을 따라가듯 나의 삶도 마음을 따라간다. 언제나 당신이 잘 살 수 있기를 응원한다.
꼭 필요한 시간화창한 날에 햇살이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네던 날, 그 잠시도 못 참고 살랑이며 질투를 쏟아 내던 바람들의 속삭임. 한껏 부풀어진 마음은 나를 산책길로 안내했어. 어느새 발걸음은 이미 동네에서 유명한 공원을 걷고 있었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자꾸자꾸 걷다 보니 풀 나무의 내음은 내 숨에 진하게 물들었고 컴퓨터 회로처럼 복잡한 마음들은 한풀 꺾여 있었어. 힘들고 지칠 때일수록 무조건 걸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무모하다고도 생각했는데 직접 겪어 보니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겠더라고.
오가는 사람들. 이어폰 밖에서도 들려오는 새들의 소리.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이곳에 있었던 순간만큼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가만히 무언의 공감을 나눈 뒤 돌아갈 때의 나는 내 마음속 사전에 ‘힐링’이라는 단어를 적을 수 있었고 뜻풀이는 ‘온전히 내가 되는 시간’이었어.
집에 와 샤워를 하며 그곳에서의 아쉬움을 닦아 낸 후 쉬기 전 체중계에 올라가 봤더니 0.5kg 정도 살이 빠졌더라고. 다이어트를 하려고 산책한 것도 아닌데 체중을 확인하는 내가 우스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어. 오늘 하루 잘 보낸 것 같다, 뿌듯함을 느끼며 침대에 누워 잠이 들 찰나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어. 몸무게는 줄었어도 바짝 말랐던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라 풍요롭게 살이 쪘다는 것을. 마음의 소리는 지금 내게 필요한 걸 알 수 있게 해 줬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야밤에 기대는 인물일까, 낮에 일어서는 사람일까. 때때로 변하는 내게 물음표를 붙인 적이 있다. 밤하늘 속 아늑한 정적에 둘러싸여 고요한 평화를 즐기기도 했지만 글썽이는 감정을 주체 못해 편지와 음악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고 반면 낮에서 오는 갖은 스트레스로 인해 피로에 절어 있기도 했지만, 때때로 오는 기쁨과 희망은 삶의 이유를 충족시키기도 했다.
어느 시절에든 그에 맞는 자세가 필요하니 혼란을 틈타 오는 변화에 예민해질 필요 없다. 내가 오래도록 정체되어 있다면 어느 날 살랑거리는 바람에 몸을 띄워 봐도 좋다. 사람은 굳어 있는 돌이 아니니 적당한 자유분방함이 필요하고 그것을 불편하게 여길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
인생은 올빼미와 참새만 있는 줄 알았더니 독수리와 비둘기도 날아다니는 드넓은 초원이었다.
이리 와서 술 한잔해요
어쩌면 나를 더 빛나게 하는이런 사람도 있다. 밤 향기를 풀풀 풍기는 사람. 적막함과 쓸쓸함이란 맞춤 정장을 입은 듯한 모습. 질식할 듯한 외로움은 일상에 스몄다. 햇살보다 달밤에 가슴이 움직이고 타인에게는 편안한 어둠이 될 수 있길. 애써 소란스러운 한낮으로 그를 끌어들이지 않는다. 반딧불이는 한밤중에 살아 숨 쉰다. 무언가를 강요하는 건 실례를 범하는 일. 그런 사람은 나의 내면의 밤을 책임져 준다.
어느 날 그에게 물었다. 나한테 바라는 거 없냐고. 그가 답했다. 새벽녘 이슬처럼 맑은 진심 하나면 충분하다고. 그리고 앞으로 너의 그림자가 홀로 서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날 나는 신부님을 찾는 대신 그 앞에서 고해성사를 했다. 흘리는 눈물을 보자 나를 토닥이며 그는 입을 열었다. 오늘 처음으로 내 하늘가에 별 하나가 떴다고. 고맙다고. 나는 그날부로 그 사람에게서 사라지는 별똥별이 아닌 영원히 찬란한 은하가 되기로 했다. 나의 낮을 밝혀 주는 사람이 있듯 나의 어둠을 고요히 감싸 줄 사람도 필요하다.
장마친구와의 술자리를 가졌다. 소주 몇 잔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제 현실만 보고 살아야지. 헤어지는 것도 별거 없더라고. 차라리 후련하기도 하고 다툴 일, 서운한 일, 귀찮은 일도 없으니까. 이별. 이 두 글자만 진작 극복했으면 지금처럼 훨씬 더 행복하고 좋았을 텐데 뭐 하러 그렇게 사랑에 매달렸는지 몰라. 이제 그 애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나.
말을 마치자 친구가 입을 열었다. 왜 네 눈물로 술잔을 채우고 그래. 그리고 거짓말이나 치니까 코 빨개지는 거 봐. 넌 이제부터 별명이 피노키오다.
친구의 말을 듣자 눈에서는 한 번 더 갑작스러운 빗물이 쏟아졌고 이윽고 빗방울은 장대비가 되었다. 그렇다. 내 삶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그 사람의 저서였고 애타는 그리움만이 안주로 허락됐다. 끙끙 앓아 가며 읽어 가는 페이지는 술보다 더 날 만취하게 했다. 이제야 알겠더라. 술잔이든 눈물이든 마음이든 한동안이나 마를 날이 없었다는 걸. 너는 잠시 내리다 그치는 소낙비가 아니었다는 걸.
우리의 모든 순간은 이처럼 사람과 연결되어 있어요언젠가 보았던 아름다운 소나무가 기억나요. 식물 전문가가 말하길 소나무는 높은 품격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자라는 건 아주 까다롭다고 하더군요. 새싹 시절부터 영양분을 뺏는 해충과 상처를 입히는 동물들에게 모진 풍파를 겪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소나무는 다른 나무들과는 조금 달랐어요. 날마다 생기는 흉터들과 좋은 기운들을 빼앗길 때 스트레스에 무너지는 것이 아닌 따사로운 햇살을 기대하고 옆에 있는 식물들과 박수를 치며 때로는 쏟아지는 빗물을 마음껏 만끽했어요.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새로운 운명을 스스로 개척했던 겁니다. 듣고 나니 이 소나무가 참 기특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왜 그렇게 상처에 연연했던 걸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으로부터 평생 등을 돌리며 살 수는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에요. 소나무처럼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아닌 가지는 여지없이 쳐 내고, 너무 깊게 잠영하지 않은 채 적당히 요령 있게 모든 걸 받아들였다면 좋을 텐데요.
그대를 봄이라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속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사이해결사를 원하는 게 아니야. 교도소에 갇힌 수용자가 한 번쯤 탈옥을 꿈꾸듯 경계 없이 날것의 나를 마음껏 꺼내도 홀딱 벗은 것 같은 부끄러움이 아닌 속 편한 해방감을 가끔은 얻고 싶은 거야.
유유히 떠다니는 것들에 나를 묻혀 각색한 대본이 아닌 자유로운 전개를 펼칠 때 NG가 나더라도 그 틈을 편집해 줄 수 있는 사람. 나 또한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그를 창피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가 있다면 우리의 영화는 천만 관객보다 찬란할 텐데. 남이야 뭐라고 하든 자유롭게 사랑하고 서로를 아껴 줄 텐데.
따스한 희생도서관에서 나와 걷던 중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우산을 펴 몸을 숨겼다. 사람들도 당황했는지 뛰어가는 사람, 건물 속으로 대피하는 사람, 도를 닦듯 평온히 비를 맞으며 가는 사람 등 다양한 반응들로 나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펼쳐진 따듯한 광경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아빠와 어린 딸로 이루어진 부녀였는데 딸의 걸음걸이에 맞춰 걸어 주며 우산을 딸에게 씌워 주고 있던 것이다. 본인은 그 폭우를 견뎌 내며 말이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가 오는 날 누군가와 함께하는데 여의치 않게 우산이 하나만 있다면, 나의 한쪽 어깨를 그를 위해 내줄 수 있거나 반대로 나를 위해 똑같이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서로에겐 그 사람이 정말 소중한 인연일 것이라고.
아이 아빠의 몸은 비록 물미역처럼 푹 젖었지만, 가슴 속은 깨끗이 빨래한 옷을 입은 것마냥 뽀송뽀송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건 내가 그를 위한다는 마음조차 잊어버릴 만큼 각별한 사랑이니까 한 번쯤은 누군가를 위해 흠뻑 젖어 보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것이 비뿐만이 아닌 눈물과 땀방울일지라도.
혼자 잘 있는 사람안정적이고 건강한 정서를 가진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집착과 소유욕이 강한 사람은 이기심이 높고 배려심 또한 낮을뿐더러 사랑이 시작되면 혼자 있는 것을 어려워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들은 때때로 더 큰 문제로 발전하는 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달콤한 솜사탕 같은 사랑도 좋지만 안전한 사랑도 추구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더욱 꿈같아질 거예요. 사랑은 언제 어느 때라도 변할 수 있듯 사람도 언제 어느 때라도 변할 수 있습니다.
이별은 또 다른 시작후회는 일기장이 아니에요. 쓰고 있던 연필을 부러뜨리세요. 그리움은 영화가 아니에요. 상영을 멈춰 주세요. 눈물은 화장품이 아니에요. 묻히지 말아 주세요. 이별은 천둥과 닮았어요. 여느 때 찾아와 가슴을 산산조각 내고 소란을 일으키죠. 경험자로서 얼마나 괴로운지 충분히 공감해요. 지금은 어떤 말도 와닿지 않을 테니 말을 아낄게요.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어느새 하늘은 개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며 푸른 나뭇잎 같은 평화가 찾아와요. 그리고 어느 날 신비로운 사랑이 내게 떨어집니다.
새로운 연필로 울림이 있는 편지를 작성하고 새로운 사람과 한 편의 영화 같은 에피소드를 만들어 가고 새로운 사랑에 감격의 눈물이 고이도록 모아 두세요. 지금은 역시 당신의 사랑을 마감하기엔 이릅니다.
소년과 소녀언젠가 그런 적이 있었어요. 학창 시절 빼빼로도 받아 보고 작은 편지도 몇 번 받아 본 게 전부인데요. 친구들이 연애하라고 부추기더라고요. 직접적인 고백도 받아 봤는데 그 당시는 아무런 감흥이 없어서 거절했어요. 그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눈치 없고 무딘 사람이었죠.
운동회 날이었을 거예요. 계주를 뛰라고 떠밀려 나왔는데 막상 하게 되니 승부욕이 생겨 열심히 달리다 아이스크림 껍질을 밟고 엎어져 버렸어요. 그것도 웃긴 모양새로요. 너무 창피해 상처에서 피가 나도 꾹 참고 끝까지 달리긴 했지만 끝나고선 참을 수 없는 허망함이 몰려왔어요. 친구들과 누군지도 잘 모르겠는 애들이 몰려와 걱정하길래 일단 돌려보낸 후 하교를 하는데 어떤 여학생이 저를 붙잡더군요.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더니 아무 말 없이 반창고를 몇 개 붙여 주고선 ‘괜찮아?’ 하고 물었어요.
얼굴이 화끈거리며 얼떨결에 ‘응’이라고 대답했는데 대답을 듣자마자 그 여학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저 멀리 뛰어갔어요. 그리고 그날 저녁 이런 메시지가 왔어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 혼자서 좋아하기만 했는데 오늘 처음 용기를 내 봤다며 연락하면서 지내고 싶다고요.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사랑이라 정의하기엔 과하지만 사랑과 매우 흡사한 것 같은 감정을 느낀 것은요.
그래서 사랑에 있어서는 사소함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한껏 꾸민 외모와 현란한 언변은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땀방울을 닦아 주고 머리칼에 묻은 먼지를 부드럽게 털어 주는 평범한 일상 속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소함이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지켜 주는 법이에요. 모두 사소함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을 했으면 해요.
고운 모래 같은 포근한 사소함 그것은 돌부처도 흔드는 신비한 마법 아닐까요.
당신은 당신의 길을 걷고 있나요
자도 자도 꿈속일 때유독 피로도가 높은 날. 커피를 한껏 들이켜도 효과가 미비한 날이 있다. 커피 기운이 온몸을 한 바퀴 돌지만 그리 쾌적하지 못한 몸 상태와 멘탈. 이러다 실수라도 할까 물렁한 경각심을 가진다. 이런 날엔 할 일을 끝내고 얼른 가서 침대 위에 기절하고 싶지만 변함없는 생활 패턴은 개운한 잠을 선물하지 못할 것이다.
마른오징어를 짜듯 없는 기력을 짜낸다. 야식과 폭식 대신 영양제와 과일을 택하고, 스마트폰 하는 시간의 3분의 1을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에 투자해 보자. 귀찮기는 하지만 신기한 건 하고 싶은 걸 줄이고 이로운 고통을 받아 내면 단순한 피로뿐만이 아닌 다이어트, 정신력, 건강 등 여러 방면의 긍정적인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내 삶은 내가 책임진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없다. 현 상태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든 것이다. 극심한 피로의 실체는 체력 부족이다. 어느 제약 회사의 ‘간 때문이야’라는 광고 문구도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건강한 관계내 멋대로만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눈치 보지도 말고요. 내 입맛대로만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간, 쓸개 빼 가면서 비위 맞추려 하지도 말아요. 뭘 얼마나 대단한 걸 얻겠다고요.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윈윈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게 중요하지 일방적인 관계는 어떠한 관계라도 한쪽의 자존감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계에서 무엇이 되었든 실적을 채우려 하니 나만 작아지고 비굴해지는 거예요. 기억하세요. 우리는 영업 사원이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산들이 다 똑같이 생겼어도 공기도 다르고 높낮이도 다르고 오는 사람들도 다르고 정상에서 보는 풍경도 다 다릅니다. 산조차도 그러는데 내가 위축되어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유행 따라갈 시간에 내 개성을 살리는 삶이 더 유익하며 똑같이 생긴 산들보다 뭐 하나라도 특징이 있는 산이 나중에는 사람들이 찾고 사진 찍는 관광지가 된다는 거 잊지 마세요.
나는 가을 단풍이 피는 붉은 산인데 괜한 조바심에 여름 푸른 산을 모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진흙 속에서 피는 꽃연필과 지우개가 필요했다. 마침 집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근처에 문구점이 있어 그곳을 찾기로 했다. 무난한 기분에 날씨까지 좋아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던 도중 초등학교 5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 둘이 눈에 띄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 애들은 뭘 하고 놀려나. 나 때처럼 술래잡기 같은 건 안 하고 스마트폰 보고 게임만 하려나. 잠시 추억에 젖어 아이들을 지나쳤다.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문구점이 가까워지려는 찰나 뒤에서 경박한 욕설이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까 지나쳤던 아이 두 명 중 한 명이 다른 아이에게 욕을 하며 ‘너는 실패자야. 왜냐하면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는 데다가 가난하잖아.’라며 실컷 비웃고 있었다. 그걸 듣고 있던 아이는 곧 울 듯한 표정으로 ‘그런 거 아니야.’ 하고 맥없는 목소리로 작은 저항을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