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
전소현, 이선우 지음 | 현대지성
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
전소현, 이선우 지음
현대지성 / 2022년 4월 / 308쪽 / 15,000원
1 바다가 나를 불렀다
의대 사관 학교 상산고에서 뜬금없이 해양대로?소현은 어려서부터 똑똑했다. 또래보다 말을 빨리 시작했고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한글을 혼자서 다 떼 버렸다. 능력은 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옛말처럼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였다. 특히 수학을 잘했다. 수학이 본격적으로 성적을 좌우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전교 1등을 도맡아 했다.
타고난 머리만 믿고 게으름 피우는 일도 없었다. 성실함이 최고의 장점이라고 부모님도 인정할 만큼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는 법 없는 모범생이었다. 재능과 노력으로 무장한 소현에게 적수는 없었다. 이름보다 ‘전교 1등’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수학은 가장 자신 있었다.
그러니 수재들의 집합소인 상산고에 원서를 넣은 건 당연했다. 상산고는 대치동에서 세 살부터 사교육에 둘러싸여 준비한 아이들도 족족 떨어진다는 자타 공인 최고의 명문이었다. 강남 한복판이 아닌 경기도 외곽 출신에 고액 과외 한 번 받아 본 적 없었지만 높은 성적으로 당당하게 상산고에 합격했다. 상산고는 ‘의대 사관 학교’로 불릴 정도로 졸업생 대부분이 의대로 진학한다. 부모님은 딸이 벌써 의사라도 된 것처럼 기뻐했다. 자신감이 충만한 소현도 그대로 졸업해 의사가 될 줄 알았더랬다.
그런데 인생이 항상 그렇게 장밋빛일 리는 없었다. 1학년 첫 학기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첫 시험부터 전교 꼴찌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다. 충격이었다. 몇 번이나 성적표를 다시 봤지만 세 자릿수는 그대로였다. 이럴 리가 없는데. 원래도 열심히 했지만 더는 열심히 할 수 없을 만큼 이를 악물었다. 기숙사 자습실 문은 제일 먼저 열고 들어가 제일 늦게 닫고 나왔다. 잠은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만 잤다. 그런데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자신 있었던 수학 점수가 달랑 50점이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존심이 상했다. 잠 안 오는 약까지 먹어 가면서 공부했지만 바로 어제까지 옆에서 게임하다가 시험 본 친구는 100점, 자기는 50점이었다. 이쯤 되자 자기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의심은 학교생활이 계속되면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어려서부터 머리 좋다, 똑똑하다, 수재다, 천재다 소리만 듣고 자라 자기가 정말 그런 사람인 줄 착각했었다. 결국 머리가 좋은 게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은 제자리였다.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타고난 머리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인정하자 학교생활은 지옥으로 변했다. 중학교 때 수재로 이름을 날리던 언니가 특목고에 진학했다가 낮은 성적에 충격을 받고 한 학기 만에 자퇴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도 혹시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극도의 스트레스와 떨어진 자존감으로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곧 의대에 진학할 딸의 모습을 그리며 열심히 뒷바라지하고 계신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과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 사이에 잠 못 드는 나날이 계속됐다.
항상 1등이었다가 전교 꼴찌가 된 심정이란.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속속들이 털어놓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그렇다는 사실이 더욱 비참했다. 자존감은 끝없이 추락했고 시험 때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매번 쾌감과 희열을 선사해 마음 깊이 애정했던 공부에게 완전히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단 한 번도 놓아 본 적 없었던 공부가 싫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험을 앞두고는 밥이 아예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빈속인데 시험만 보면 토하고 양호실로 가기 일쑤였다. 시험 시간에는 손이 덜덜 떨리고 앞이 하얘져 글씨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청심환을 달고 살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우울증, 자퇴, 검정고시 같은 단어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결국 고등학교 3년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만두지도 못하고 잘하지도 못한 채. 전교생 대다수가 SKY와 의대, 치대, 한의대에 진학하는 분위기 속에서 다른 학교를 선택할 자유조차 없었다. 안 될 걸 알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성균관대 의대를 목표로 준비했다. 하지만 스스로 알고 있었다. 의사는 멀어진 꿈이란 걸.
너무나 예상 가능하게 수능을 망쳤지만, 그럼에도 절망했다. 학창 시절 내내 공부 말고는 한 게 없었다. 특히 고등학교 3년 동안은 공부만 죽어라 했다. 노력하면 답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그 끝은 의대 원서조차 내지 못할 초라한 수능 성적이었다.
돌이켜 보면 간절함은 부족했다. 투철한 사명감이나 대단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공부 잘하니까 당연히 의대를 목표로 했다. 의사가 적성에 맞을지, 의대에 진학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의사가 되기 전에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래서 더 절망스러웠다.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의사만 목표로 했는데 의대를 못 가게 되니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 전교생이 다 가는 의대에 못 간 소현은 낙오자, 루저였다. 대입이라는 거대한 전쟁터에서 만신창이가 된 패잔병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그때 아빠가 한 가지 카드를 내밀었다. 듣도 보도 못한 한국해양대학교였다. 의아해하는 소현에게 아빠는 논리적 근거를 들어 그곳에 진학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첫째, 소현의 멘탈이 재수의 중압감을 이겨낼 만큼 강하지 못했다. 둘째, 기약 없는 재수 생활을 뒷받침하기엔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 셋째, 한국해양대학교는 본인만 잘하면 졸업 후 취업이 비교적 보장돼 있었다. 넷째, 이과적인 성향과 잘 맞았다.
학원을 운영하는 아빠가 입시 정보를 알아보다 딸에게 딱 맞는다고 판단해 제안한 학교였다. 기대가 컸던 아빠를 실망시켜 죄송한 마음에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대학인지, 무슨 공부를 배우는 곳인지, 나와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전혀 모른 채로. 그리고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2 바다의 심장을 만지다
선박 기관사가 대체 뭐 하는 직업이야?선박 기관사가 여러 면에서 의사와 닮았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했지만 그래도 무슨 일을 하는지 여전히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선박 기관사는 이런 일을 합니다: 선박 기관사의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운영(Operating)과 유지 보수(Maintenance). ‘운영’은 자신의 담당 기기를 기동하고 정상적인 기동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소현은 발전기와 조수기 담당이라서 이 기기를 돌릴 일이 있으면 켜고 꺼야 할 때 끄는 역할을 한다.
기기 하나를 켜고 끄는 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겠지만 선박 내 기기 대부분은 컴퓨터처럼 전원만 틱 켠다고 켜지는 게 아니다. 시동 절차라는 게 있어서 관련 밸브들을 라인업 해 주는 등의 전문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해수를 담수로 만드는 조수기는 물을 생산할 수 있는 완벽한 상태에 오르기까지 약 2시간이 걸린다. 해수 공급, 진공 형성을 위한 스팀 공급, 해수를 가열하기 위한 스팀 공급 등 세 가지의 라인을 살려야 하는데 조수기 온도를 올려 실제로 쓸 수 있는 물을 만들기 위한 컨디션을 맞추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또한 ‘유지 보수’가 있다. 기기도 사람처럼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 줘야 한다. 주기적으로 내부를 소제한다든지, 분해해서 검사한다든지, 구성 부품을 갈아 주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사람이 주기적으로 정기 검진을 받고 그에 따라 치료할 일이 생기면 치료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지 보수는 자체 시스템에 필요한 부분이 뜨기 때문에 이 리스트를 중심으로 작업을 짜서 한다. 리스트에 뜬 것만 관리하는 건 아니다. 그 외에도 수시로 기기의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어딘가 누설부가 생겼다든지, 갑자기 이상한 소음이 들린다든지, 평소와 온도나 압력이 달라지는 부분을 항상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조치가 가능하다.
입출항 때는 더욱 바빠진다. 선박은 입항 시가 가장 위험하다. 항구에 들어가면서 배의 속도가 점점 줄어드는데 기기 상태가 항해 중과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기관부 전원이 기기의 컨디션을 주의해서 살펴야 한다.
배가 완전히 정박하면 화물 하역 작업이 이루어지고 그사이 기관부는 항해 중에 하지 못하는 정박 작업을 하고 돌아가면서 당직을 선다. 또 화물 하역에 필요한 기기 운영도 해 줘야 한다. 지금 타고 있는 배는 2주마다 한국과 호주에 입항하기 때문에 이 작업을 2주마다 반복한다.
만 2년 동안 승선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선박은 경험치가 중요하다는 것. 물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업무 능력이 올라가는 건 다른 직업군도 마찬가지겠지만 배는 특히 그렇다. 배에서는 체계적인 인수인계나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심한 경우에는 전임자 얼굴도 못 보고 교대되는 경우가 있고, 다들 자기 할 일이 바쁘기 때문에 후임을 교육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일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기기를 만든 회사에서 배부한 지침서나 과거 자료를 참고해 혼자 맨땅에 헤딩하듯 익혀 나가야 한다.
그래서인지 배 타는 사람들 사이에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어도 그냥 얼마간 타기만 하면 다 일할 수 있다는 것.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가끔 담당자가 맡은 기기에 대해 OJT(On Board Job Training)를 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승선해서 일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교육해 주는 것이다. 동료 사관이나 선임의 OJT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어느 정도나마 보충할 수 있다.
선박 기관사는 어디에나 있는 엔지니어의 일종이지만 선박에 필요한 기계들을 만진다는 점에서 전문성이 돋보이는 직업이다.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는 건 제법 뿌듯한 기분이다. 그런 점에서 선박 기관사의 자부심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바다 위에선 타이타닉 보지 맙시다마침 주말이라 다 같이 모여 영화를 관람했다. 오랜만에 로맨스 영화 좀 보자면서 누군가 《타이타닉》을 틀었다. 바다 위에서 관람하는 《타이타닉》은 더욱 낭만적이었다. 잇몸 만개를 유발하는 달달한 장면들이 지나가고 얼마 후 타이타닉호는 빙산에 부딪히며 좌초 위기를 맞았다. 화기애애했던 방 안의 공기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이미 봤던 영화지만 처음 보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었다.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그때 갑자기 고막을 찢는 소리가 들렸다. 화재 경보였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은 기관실이었다. 사람들은 당황했다. 기관실에 문제가 생기면 선박은 물론 승선한 모두의 안전이 위태로워진다.
기관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관실 쪽으로 몰려갔다. 입구에서부터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정신없이 내려가 ESCR의 문을 열었다. 뿌연 연기가 가득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ESCR은 전기를 비롯한 선박을 컨트롤하는 시설이 집합돼 있는 곳이기 때문에 불이 나면 정말 큰일이었다.
6개월간의 항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날을 딱 3일 남기고 있을 때였다. 말년 병장처럼 달력에 날짜를 하나씩 지워 가면서 손꼽아 기다렸는데, 여기서 꼼짝없이 죽는 건가 하는 성급한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뉴스와 영화에서 봐 왔던 온갖 해상 사고 영상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눈길은 자기도 모르게 구명조끼 보관함을 향했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엄마 아빠가 너무 슬퍼하실 텐데.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얼른 구명조끼부터 걸친 다음 갑판으로 올라가서….
곧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감히 ESCR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사관들이 거침없이 뛰어 들어갔다. 조금의 고민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연기 속으로 사라지고 한참을 나타나지 않았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몇 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관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연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사이렌은 쉴 새 없이 울려 댔으며, 점점 짙어지는 타는 냄새 때문에 어떤 기계든 곧 폭발할 것만 같았다.
문득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기관장님에게 연락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는데 기관장님은 의외로 침착했다. 알겠다, 내려가 볼게. 이 두 마디가 전부였다. 그 차분한 목소리는 듣는 사람까지 진정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다.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가 기관장님과 통화한 뒤부터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기관장님은 그로부터 딱 3분 뒤 전혀 동요 없는 얼굴로 기관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긴급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는 건 신발뿐이었다. 양쪽이 짝짝이였다. 그 상태로 기관장님도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연기가 서서히 옅어지는 게 느껴졌다. 기관장님의 등장으로 마음이 안정된 덕분인지 타는 냄새도 줄어든 기분이었다.
결국 발화원을 찾아내 진화에 성공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동요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존경심이 생겼다.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위태로운 순간이었지만, 위급 상황에서 상급자의 침착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올라오니 《타이타닉》은 클라이맥스를 지나 끝부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얼음장 같은 차가운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조난자들의 모습이 화면 가득 보였다. 누군가 조용히 리모컨을 들어 영화를 껐다. 더 보겠다는 원성은 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타이타닉》이 사랑 영화가 아닌 ‘조난 영화’였던 것이다. 앞으로 《타이타닉》은 육지에서만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3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법
해적이 나타났다! 험상궂은 얼굴, 살벌한 흉터, 거친 몸놀림, 현란한 칼 솜씨, 하얀 해골이 그려진 검은 깃발이 달린 해적선. 해적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대개 무시무시하다. 책이나 영화 속 해적은 무법자답게 거친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약탈도 수준급이라 그 어떤 배도 적수가 되지 못한다.
배를 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해적을 걱정하셨다. 다른 부모님은 딸이 밤늦은 퇴근길에 치한을 만나지 않을까 신경 쓰는데 소현의 부모님은 딸이 밤바다에서 해적을 만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먼 바다로 나가니 왠지 해적의 소굴로 딸을 들여보내는 기분이셨던 것 같다. 다행히 배가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구간을 지나가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한시름 놓으셨다.
하지만 바다에 울타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적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항해 중에는 갑판 위 라이트를 켜지 않는다. 해적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입항을 했을 때나 라이트를 켠다.
다행히 이 정도만 신경 쓰면 대부분 안전하지만 해적 구간을 지나는 배는 위험할 수 있다. 밤에는 불빛이 절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마치 나치를 피해 다락방에 숨은 안네의 가족처럼 숨죽인 채 조용히, 아무도 없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용병을 태우는 경우도 있다. 해적선의 공격을 받았을 때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적 수당’을 따로 주는 배도 있다. 생명 수당인 셈이다.
그런데 이 해적의 면면을 알고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일단 그들을 과연 해적이라고 불러도 될지가 의문이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처럼 무섭지만 멋질 거라는 상상은 말 그대로 환상에 불과하다. 주로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 한 푼이라도 뜯어내려고 덤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장비부터 시원찮다. 변변한 무기는커녕 타고 나온 배조차 저런 걸 위험해서 어떻게 타고 나왔나 싶을 정도로 폐선 직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