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기쁨
박창희 지음 | 산지니
걷기의 기쁨
박창희 지음
산지니 / 2021년 11월 / 288쪽 / 18,000원
1부 길 속의 길 - 걸으면 보이는 인문풍경
위대한 ‘한 걸음’과 걸음마의 비밀
노모의 유모차: 시골에 계시는 노모의 무릎 관절이 계속 안 좋아지는가 보다. 얼마 전 전화에서는 그 심각성이 와락 다가왔다. 전화기 저편에서 노모의 아픔과 한숨이 교차하고 있었다. “인자 걸음도 못 걷겠네. 무릎 연골이 다 닳았다 카네. 유모차도 소용없어. 쪼매마 걸어도 무릎뼈가 저거끼리 슥슥 부딪혀 아프니…. 여태껏 마이 써먹었지 뭐…. 약도 없다고 하고 죽어야 낫는 병이라….”
노모의 나이 올해 구십다섯. 오래도록 건강하게 잘 버티셨다. 팔순 고개 오르며 지팡이를 짚으셨고, 계속 허리가 굽으시더니 유모차(보행 보조기)를 끌기 시작했다. 증손자가 타던 유모차다. 조금 불편해도 증손자 녀석들 똥 냄새, 젖 냄새, 땀 냄새가 배어 있어 정이 간다고 했다. 짐도 싣고 지팡이 역할도 하니 유모차가 효자라면서.
유모차를 끌 때만 해도 어머니의 일상은 평온하게 돌아갔다. 유모차를 끌고 사부작사부작 마을 회관에 다니시고 집 주변 텃밭에서 가지나 고추도 따셨다. 연예인 송해가 사회자로 나오는
이 방송되면, “저 송해가 내랑 갑장이다. 저 영감은 뭘 먹었길래 저리 팔팔할꼬?”라며 농담까지 던지셨다.
그러던 어머니가 무릎이 아파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처지가 돼 버렸다. 어머니의 무릎 상태는 의학용어로 무릎연골연화증. 무릎뼈의 관절 연골(물렁뼈)이 닳아서 생기는 병증이다. 인터넷 지식 백과에 보니, 가장 흔한 증상은 무릎 앞쪽이 뻐근하게 아픈 것이다. 무릎을 꿇거나 쪼그리고 앉으면 통증이 가중된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나 체중이 실리는 활동을 하면 통증이 더 심해진다. 무릎 운동 시 관절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나고, 때론 무릎이 붓기도 한다. 이게 심해지면 걷기가 불가능해진다.
‘걷기 힘들다’는 어머니에게 내가 해드린 말은 “무릎 달래 가며 조금만 걸으소~”였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말이었다. 어머니에게 곧 걸을 수 없는 사태가 닥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마음대로 걸을 수 없게 되면서 어머니는 날로 무기력해졌다. 유일한 안방 친구 TV를 보면서도 문밖의 유모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되 가지 못하고, 가되 닿지 못하는 답답함과 낭패감을 누가 알까. TV에 송해가 나와도 웃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집에 외조카가 갓난아기(증손녀)를 업고 노모를 뵈러 찾아왔다. 아이는 갓 걸음마를 배우는 중이었다. 뒤뚱거리며 걷는 아이를 보며 시골집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어났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기꺼워하며 어머니가 말했다. “내 대신 니가 걷는구나, 아이고 우리 아가 장하대이!”
아기의 첫걸음마: 아기 키우는 재미 중 으뜸은 아기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을 때’와 일어서서 ‘첫걸음을 뗐을 때’라고 한다. 아이들의 걸음마는 첫걸음의 첫걸음이다. 신선하고 경이롭다. 국가, 지역, 인종에 관계없이 똑같다.
한 생명이 태어나 약 6개월이 지나면 옹알이를 시작한다. ‘마~’ ‘바~’ 하며 옹알거리는 소리는, 태초에 인류가 태어나 세상과 나누는 밀어다. 옹알이를 시작하며 아이는 눈을 맞추고, 누운 자세가 지겨울세라 몸을 비튼다. 몸부림은 뒤집기로 이어지고 기는 동작으로 발전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척추를 세워 앉고 가까스로 일어서서 발만발만(발길이 가는 대로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가는 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아이 귀한 시대, 집안 처조카가 낳은 아이를 통해 아기의 걸음마 과정을 유심히 살필 기회가 있었다. 토실토실 살찐 장딴지에 힘이 들어가 바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걸음마 보조기를 붙잡고 발걸음을 떼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이즈음의 아기는 머리털에서 발끝까지 전부 이쁘다. 아기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성장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처조카의 설명에 따르면, 갓난아기의 걸음마에서 걷기까지는 대략 여섯 단계를 거친다. 그 순서는 혼자 앉기 → 기기(배밀이, 사족 보행) → (소파 등을) 잡고 서기 → 잡고 서서 옆으로 걷기 → 기구를 이용해 앞으로 걷기 → 혼자 걷기 순이다.
뭔가를 잡고 발을 떼려는 본격적인 걸음마 단계에 들어가면, 걸음마 보조기가 활용된다. 이때 점퍼루, 어라운드 위고 같은 기구가 쓰인다. 점퍼루는 아기가 발을 굴러 뛰면 통통 튀어 오르는 그네 같은 기구로, 아기의 허리 힘과 다리 힘을 키워 준다. 어라운드 위고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놀이 테이블이다.
그다음은 걸음마 보조기 활용 단계다. 이때 아이는 새 세상을 만난 듯 많이 나부댄다. 앞으로 밀고 가는 보조기는 보통 바퀴 마찰력을 조절할 수 있어서 앞으로 쉽게 넘어지진 않는다. 보통 처음에는 아가들이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기구를 밀면서 걷고, 바닥에 발바닥이 닿는 느낌이 낯설어 발뒤꿈치를 들고 발레하듯이 걷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점차 자세를 곧게 세우고 발바닥을 온전히 바닥에 붙이면 이족 보행 준비가 된 것이다. 일어서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어느 순간, 아기가 멈칫 서고 휘청거리다 첫 발걸음을 뗀다. 아이는 걷다가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행동 심리학에서는 걸음마를 뇌와 신체의 종합적인 발달이 이뤄 낸 결과로 본다. 걸음마와 함께 신체 변화가 시작되고 뇌가 발달한다. 신체에서 가장 큰 근육은 허벅지의 대퇴근이다. 이 부분은 뇌관과 연결되어 있어 대뇌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걸음을 시작할 때 근육에서 나오는 신호가 뇌에 전달되어 뇌간이 자극되고 각성 작용이 일어나면서 뇌를 발달시킨다는 것이다.
아기의 내장 기관도 이즈음 설정되어 정상 기능을 하게 된다. 아기가 누워 있거나 기어다닐 때와 달리, 걸음마를 시작하면 중력의 영향을 받아서 내장 기관들이 제 위치를 찾는다. 아직 말은 못한다 해도, 무의식 속에서 인지ㆍ인식 기능도 생긴다. 걸음마가 가져다주는 놀라운 변화다.
걸음마 단계를 지나면 아기는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한다. 두 발로 움직이면 두 손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으므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진다. 이동 능력이 커지면 행동반경이 더욱 넓어진다. 걸음마가 원활해지면 아이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탐색하고 놀이 대상으로 여긴다. 닥치는 대로 만지고 던지기도 한다. 이때 아기는 호기심과 자발성을 기르고 신체적으로 부쩍 성숙한다.
직립 보행의 의미: 걸음마를 뗀 아이는 이제부터 걷는 존재가 된다. 직립(直立)! 똑바로 선다는 것은 세상을 바로 본다는 의미요, 세상을 읽는다는 뜻이다. 걷는 것은 자기 눈으로 세상을 읽고 쓴다는 의미다. 읽고 쓰기, 학습하는 인간은 걸음으로써 비로소 목표에 한걸음 다가간다.
방에서 걸음마를 익힌 아기는 곧 바깥나들이를 준비한다.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주는 생애 최초의 선물은 신발이다. 아기용 신발은 흔히 보행기화로 불리는 양말신발이 있다. 아기 신발도 아기만큼 이쁘다. 신발은 보통 할아버지나 할머니, 친지들이 선물한다.
새 신을 신고 처음으로 땅을 밟는 아이의 표정은 천진무구 그 자체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하는 동요 속의 달뜬 기분이랄까.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니, 어찌 설레고 벅차지 않을쏜가. 신발을 신기면 아기는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 나부댄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험하다 해도 아기에겐 모든 게 새로운 도전이다.
한번 걷기 시작하면 걷기는 곧장 일상이 된다. 걷기는 숨쉬기와 마찬가지로 본능적 생명 현상이다. 이 걷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달렸던가? 삶의 진리와 지혜를 찾아 석가, 예수, 공자, 마호메트, 소크라테스가 도(道)를 갈구하며 길을 걸었다. 동서양의 사상가, 정치가, 철학자, 작가 아니 인류 전체가 길에 매달려 길을 찾았다. 쉼 없이, 한량없이 걷다가 걷지 못할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직립의 최후는 무립(無立), 무위(無爲)지만 그것이 세상의 순환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야외 나들이 땐 유모차가 빠지지 않는다. 신생아부터 서너 살 아기까지 유모차를 탄다. 유모차는 아기에겐 세상 구경하는 무개차이고 어른들에겐 아이의 짐을 드는 편리한 수레다. 요즘은 휴대용 유모차가 인기다.
유모차의 쓰임새는 세대를 초월한다. 아이가 탔던 유모차를 나이 든 할머니들이 끌고 다닌다. 유모차라도 끌 수 있으면 다행이다. 시골의 노모처럼, 관절이 다 닳아 걸을 수 없게 되면 유모차도 그림의 떡이다. 물끄러미 바라만 봐야 하는 세상이 야속하지만, 노모는 그마저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걷지 못하는 노모를 유모차에 태워 꽃구경 시켜 주고 싶다. 아직 걸을 수 있음에 무한히 감사하면서.
유정천리/무정만리
아버지의 막걸리: 트로트 가수 영탁이 부르는 <막걸리 한잔>은 시골 고향의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영탁의 목소리는 시원한 막걸리로 갈증을 씻는 듯한 통쾌함이 있다.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가슴에 대못을 박던/못난 아들을 달래 주시며/따라주던 막걸리 한잔…’이라는 대목에선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문득 아버지가 보고 싶어진다. 아버지는 산천이 되신지 오래다.
아버지가 영탁의 노래를 들었다면, ‘어허 좋다. 막걸리 한 되 받아 오너라’고 했을 것 같다. 술도가에서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 오며 몰래 홀짝거리며 맛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무지 좋아하셨다. 바깥에서 한잔 걸치시는 날엔 알 듯 모를 듯한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유정천리>란 유행가였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못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눈물 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가사가 쉬우면서도 토속적 정서를 담고 있다. 못살아도, 외로워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애절함이 흐른다.
어릴 적, 시골집 토방에서 가끔씩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자형이나 친척들이 찾아오면 어머니는 집에서 담근 농주를 내놓았다. 농주 원액은 막걸리보다 진하지만, 어머니는 거기에 물을 타서 들여놓곤 했다. 농주와 물의 비율은 어머니가 결정했다. 그 비율은 술꾼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매번 달랐다. 우리는 그것을 ‘인생 비율’이라고 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어머니가 어떻게 짧게 맛만 보고 인생 비율을 찾아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술꾼들은 물 탄 농주를 마시면서도 왜 물을 탔느냐고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술자리가 시들해진다고 생각되면 다시 물의 비율을 낮춘 걸쭉한 농주를 내놓았다.
농주가 몇 순배 돌고 좌중이 불콰해지면 상다리 장단에 유행가가 흘러나왔는데, 노래 중에는 <유정천리>가 빠지지 않았다. 교자상 모서리가 하얗게 벗겨지도록 쇠젓가락을 두드려 가며 밤 깊도록 놀던 풍경이 아련하다.
<유정천리>의 2절은 끝이 없는 인생길을 노래한다. “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누이동생 혜숙이야 행복하게 살아다오/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몇 구비냐/유정천리 꽃이 피네 무정천리 눈이 오네.”
가사의 마지막 ‘유정천리 꽃이 피네 무정천리 눈이 오네’라는 부분이 특히 시적이다. 유정천리는 정이 있는 고향, 무정천리는 정이 없는 고향을 뜻한다. 유정(有情)과 무정(無情) 사이의 인생살이, 꽃 피는 날과 눈 오는 날의 행복과 시련이 가사에 담겨 있다. 민초들이 겪는 삶의 애환일 것이다.
4ㆍ19 혁명의 불쏘시개: 유행가인 <유정천리>는 원래 1959년에 제작된 남홍일의 영화 <유정천리>의 주제가였다. 반야월이 작사하고 김부해가 작곡하여 박재홍이 불러 크게 히트쳤으나, 한때 시국 상황에 휩쓸려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영화 <유정천리>의 줄거리는, 주인공이 감옥을 간 사이에 아내는 정부와 달아나 버렸고, 교도소에서 출옥한 주인공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들을 만나 시골로 낙향한다는 평이한 내용이다. 모두가 화려하고 멋지게 살려고 서울로 향하던 시절, 주인공은 힘들고 무정한 서울을 버리고 아들과 시골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때 이른 귀촌으로 볼 수 있다.
<유정천리>는 야당 지도자였던 유석 조병옥의 추모곡(개사)으로 불려지면서 금지곡으로 찍히기도 했다. 때는 자유당 말기인 1960년대 초, 이승만 대통령에 맞설 사실상 유일한 후보였던 조병옥은 1960년 1월, 지병 치료차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돌연 사망했다.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를 갈망한 사람들은 절망하거나 심한 충격에 빠졌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야당 유력 후보가 사망했으니, 이승만의 당선은 따논 당상이었다.
그러나 “이럴 수는 없다”는 기류가 번지면서, 조병옥을 추모하는 움직임이 점화되었다. 교회에서 추도 예배가 열리고 일부 상점들은 철시하고 추도에 동참했다. 조병옥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음모설도 돌았다. 그동안 짓밟혀 왔던 민초들의 울분이 조병옥 돌연 사망을 기화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구에서 <유정천리>의 가사를 바꾼 개사곡이 만들어져 입소문을 타고 급속히 퍼져 나갔다.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면서 개사곡은 때 아닌 인기곡으로 둔갑했다. <유정천리> 개사 버전은 다음과 같다.
(1절)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뒤를 따라/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 박사도 떠나갔다/못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눈이 오네//(2절)세상을 원망하랴 자유당을 원망하랴/춘삼월 십오일 조기선거 웬 말인가/천리만리 박사 죽음 웬 말인가/설움 어린 신문 들고 백성들이 울고 있네.
가사 속의 해공은 1956년 대통령 선거 직전 급사한 야당 대통령 후보 신익희이며, 장면은 조병옥과 함께 출마한 야당 부통령 후보였고, 조 박사는 조병옥을 가리킨다.
<유정천리>의 유행으로 인해 민심은 반(反) 이승만 기류로 흘러갔다. 이 와중에 자유당의 3ㆍ15 부정 선거가 터졌다. 대중의 분노는 4ㆍ19 혁명으로 이어져 결국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았다. <유정천리>가 4ㆍ19 혁명의 발발에 기여한 셈이다.
혁명의 성공으로 <유정천리>의 개사곡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자 신세기레코드는 이를 상업적으로 이어 가기 위해 정식 개사곡 음반을 제작했다. 박재홍이 노래한 <4ㆍ19와 유정천리>가 그것으로, 대중이 만든 개작 가사 두 절에 새로 한 절을 덧붙인 형태였다. 그러나 음반사의 기대와는 달리 이 음반은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 혁명 분위기에 편승한 상업 기획이란 점이 오히려 거부감을 낳았던 것이다.
파란만장의 사연을 겪은 <유정천리>는 요즘도 TV 가요 무대 같은 데서 단골 흘러간 노래로 불린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노래의 정신과 힘은 유정하다.
2부 길 위의 길 - 그곳이 걷고 싶다
낙동강 하구길들
말갈기 파도: 남해의 말떼가 달려온다. 쏴아아~ 백마떼다. 가야의 후예들이다. 낙동강 하구를 향해 일제히 달려오는 백마떼. 파도와 함께 몰아치는 휘모리장단. 누가 채찍을 휘둘러 주오. 더 세게, 더 힘차게! 바다가 일어서 강을 부른다. 목마른 자 목을 적시고, 답답한 자 말을 타라. 움츠린 자 일어서라!
석양 무렵,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서 본 허연 말갈기가 뇌리에 생생하다. 강과 바다의 내밀한 조우. 낙동강 하굿둑이 열리는 시간과 썰물때가 만나 이루는 장엄한 풍경이다. 이른바 낙동강 하구의 말갈기 파도다.
눈앞에 펼쳐진 말갈기 파도를 보고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과 바다가 만나 생성-융합-창조되는 이 장면이야말로, 세계 어디에도 없을, 낙동강 하구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 텐가. 이 장면을 본 이후, 나는 낙동강 하구를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