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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에 걸터 앉아

최진국 지음 | 작가마을


구름 위에 걸터 앉아

최진국 지음

작가마을 / 2022년 4월 / 164쪽 / 10,000원





제1부



그리움 1


반송 날인 표시

선명하게 찍힌

눈물로 썼던 편지

되돌아 왔네요

자세히 보니

눈물이 아직까지 마르지 않았어요?

둘 곳 없는 내 마음의 그리움

눈물이 다 마를 때까지

반송된 편지 속에

함께 놔둡니다



그리움 2


내게 이렇게 빨리

그리움이 찾아오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그리움이란 병 앓고부터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늘 힘없이

멍하니 있습니다



그리움 14


수년 동안 같이 살던 그리움

한마디 말도 없이

집을 무작정 나가 버렸다

수소문하여 찾았으나

결코 오지 않으려 울고 있다

당신의 포근한 가슴에 매달려

같이 지내다보니

자주 힘들어하는 당신 모습이

애처로워 갈 수 없단다



갈고리로 건진 사랑


길바닥에 돌아다니는 잡동사니

갈고리로 걸어

메고 있는 등 뒤

망태기에 휙 던져 버린다

온갖 보물 쌓인다

갈고리로 사랑도 건졌다

넝마주이

사랑 이야기



낙엽


그리움이 거리를 나선다

뒹굴고 있는 빛바랜 낙엽들

지근거리에 아직도 변하지 않는 색깔의

파란낙엽이 눈에 띈다

그대도 혼자였어?

언제 올지 모를 임 기다리며

끝까지 순정을 다하고 있구나!





제2부



사랑 접착제


헤어지려고 하는 연인들

서두르세요!

강력한 사랑 접착제 팝니다

보증기간은

백년해로까지?



불완전한 인생


인생은 정답이 없다

정답에 가깝도록 노력할 뿐

인생은 만점이 없다

만점에 근접하도록 충실할 뿐

일정한 틀이 없어

정형화 될 수 없고 또한 변수 많아

매길 점수도 없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인생 여정



무단 투기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무단 투기한 쓰레기

치우느라 여념 없는 미화원

미화원 아저씨!

남의 시선 아랑곳 않고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무단 투기한 인간쓰레기는

어디다 버리나요?



기다려지는 하루


2층 옥상 방울토마토 다섯 그루

후덥지근한 날씨로

후식 겸 샤워시켜 주러 올라가면

동글동글 빨간 방울토마토

빨리 오라 손짓하며 나를 반긴다

오늘은 친구가 더 많이 생겼구나!

후식 드시러 오셨군요?

매일 너희들과 입을 맞추니

하루하루가 ‘일각이 여삼추라!’



야속한 하루


하늘이 노랗고 땅이 솟구친다

많이 어지러워 아프긴 아픈가보다

그럼에도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지나가는 사람들 야속하게도 해맑다

어지러워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으니

지구는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거네요

아프지만 살아 숨 쉬고는 있구나!





제3부



119 소방대


불꽃은 바람을 아주 좋아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진 불꽃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불꽃이 어느 곳에서 배회할지

두 눈 부릅뜨고 응시합니다



양심이란 무기


24시간 운영되는 무인점

강력한 양심의 무기로

더불어 살아갑니다



화두(話頭)


불교에서의 ‘화두’,

나는 누구인가?

모릅니다

그럼, 너는 누구인가?

저 역시 모릅니다

너도 나도 모르는데

누가 안단 말입니까?



무관심한 해무


잔잔한 해무 위

하얀 도포자락 신선 지나갔다

보이지 않는다

정녕 지나간 걸까,

아님 빠졌을까?

조금 전 같이 있었던 해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걸까?



어려운 결정


경부선 통일호 열차 떠납니다

대구에 내리면 형님 댁

대전에 내리면 누님 댁

서울에 내리면 아우네 집

매표소에 홀어머니 노인네

몇 대의 통일호가 스쳐 지나갈 때까지

어느 자식에게 신세 질지

결정하지 못하고

여전히 서서 머뭇거립니다





제4부



성숙한 사랑


사랑은 아픔의 연속이다

아픔은 큰 사랑 먹고

치유 된다



간곡한 부탁


선거철만 되면

저승에서 조용히 자고 있는 나를

자꾸만 시끄럽게 깨우는지 모르겠다는

전직 대통령들의 하소연

제발 잠 좀 푹 자게

내버려 주세요!



괜히 해본 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실은 더 초조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애써 위안 삼으려고

괜히 해본 말이다



오늘은 인생 소풍


마지막 날

챙겨갈 준비물은 없습니다

지친 몸뚱이만

지참하고 오십시오!



연극 인생


인생은 연극이라던데

한 번도 주인공

못해 보았는데?





제5부



새싹이 날 때까지


여름 한 절기 입었던

형형색색 단풍 옷을 벗어

단풍나무 아래에 있는 옷장에다

가지런히 넣어둔다

폭신한 옷더미에다 벌렁 누워

속세 떠난 사람마냥

단풍나무 맨살에

새 옷이 입혀질 때까지

잠들고 싶다



사랑


사랑의 시작은 그믐달

보이지 않았다

막 눈뜬 사랑은 초승달

보이기 시작한다

설익은 사랑은 반달

통통하게 보인다

완전히 익은 사랑은 보름달

훤하게 보인다



코스모스


가을에 첫 출현한 잠자리가 신기한 듯

한가롭게 온 세상을 여행한다

넌 좋겠다?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고 자유로운 몸이니

따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코스모스

부러운 눈으로 서운하게 바라본다

서운한 마음도 잠시

불어주는 산들바람과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구절초


가시덤불 사이

흰 구절초 한 그루

따가운 햇살에 하얀 피부가

까맣게 탈지언정

가지런히 웃고 있다

보다 못한 신선한 바람이

인기 척 하지만

가냘픈 고개만 이리 저리

일편단심 그 자리



담쟁이 줄기


하루하루 어린아이 키 크듯

아장아장 기어오르려

몸부림치는 담쟁이 줄기 하나

힘이 부친 듯 낮은 포복 자세로

담벼락에 찰싹 달라붙어

긴 숨을 들이킨다

떨어질까 두렵다

어디까지 가려고?





제6부



무심한 세월


호수거울 본다

아부지 있네

바다거울 본다

어무이 있네

거울 속 노인

하얀 서리 맞은 채 서 있다

대체 누굴까?



호주머니


출근할 때

가족 사랑 가득 담은

호주머니

퇴근할 때 비워지고

대신 직장 내

불평 가득 담아온다

밥 줘!



기대 심리


동트기 전

가로수 사방에서

정신없이 재잘거린다

오늘이 곗날인가?

한동안 수다 중인 새무리 떼

은근히 좋은 소식 기다렸다

아무 탈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착각한 하루살이


깊고 늦은 긴 여름 밤

집안 뜰 앞 평상에 누워

별 헤면서 밤하늘 보노라면

하루살이 제 집인 줄 알고

흥얼거리는 입속으로 직진

그대로 입안 터널에서

생을 마감하네



여름


시원한 바다가 그리운 계절에

몸을 던져보고 싶다

손짓하며 들어오라 하지만

아직도 가시지 않은

삿된 마음의 묵은 때가 있어



쉬이 가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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