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보수동 책방골목

정해송 지음 | 세종출판사
보수동 책방골목

정해송 지음

세종출판사 / 2021년 1월 / 136쪽 / 10,000원




제1부



안개비 내리는 날



오늘은 수양버들이 사념들을 내려놓고입김 같은 얇은 천을 휘장으로 드리우니실바람 건듯 불어와 일렁이는 정감 한 필

이 계절 행간에서 너의 맘을 두드리면연둣빛 머리칼은 그리움에 젖어 있고내 영혼 닦은 창으로 네 가슴이 열려온다

내가 든 그대 숲은 하늘 숨이 드나들어시간도 비껴가는 비경 한 점 그려낼 즘너와 나 안개비 속에 이 둘인가, 하나인가

정물화, 사과



식탁 위 흰 접시에 사과 한 알 붉게 타고저만치 파란 날 선 과도가 놓인 것을창에 든 가을 햇살이 극사실로 그려준다

사과와 칼날 빛이 긴장하는 거리 사이내 안에 또 내가 있어 이 국면을 응시할 제자장이 서린 시간 딛고 과도를 집어 든다

존재를 싸고 있는 껍질을 깎아들면사각사각 과육 말은 씨앗으로 돌아가고극사실 해체가 되고 추상으로 뜨는 시원

난초꽃, 가을



벽공무한 맑은 경을네 숨결로 필사해서



봉인해 두었다가오늘에사 뜯는 건가



은하계이전 소식이문향 피는 가을 행간



12월, 시간 유희



풀어둔 손목시계를 서랍에서 꺼내 찬다세월이 초침처럼 가는 것이 보이는 달한해를 되감아보며 이 바늘을 응시한다

다이빙 선수들이 아주 짧은 낙하 동안여러 가지 동작들을 보여주는 순간 늘임그 늘임 응용학습에 이 바늘을 얹어보자

운동화 끈을 매고 러닝머신 밟고 달려몸과 맘이 한 숨으로 닫는 그 정점에서동그란 숫자판 위에 휘어지는 의식의 침

오고 감이 실재하는 시간의 흐름 속을앞으로 달려가도 이동 없는 중심축에순간은 뫼비우스 띠같이 엇바뀌는 영겁 회로

초록언어를 꿈꾸며



우린 한때 혁명 같은 철의 말에 탐닉하여메질과 담금질로 쇠똥 떨 듯 연단한 것숫돌에 칼날 세우듯 율을 벼린 적이 있지

그 겨울 대장간은 달빛마저 길들이며풀무와 화로 곁에 자장처럼 서린 혼불푸른 검 하늘에 묻고 봄이 오는 길을 가자

아주 여린 말씀으로 피어나는 새순 바라그 순에 내려앉는 부드러운 실비 바라계절의 빗장이 풀린 초록숨결 들로 가자

제2부



가을 교실 ―시간 여행 1



을숙도가 보이는 국어시간 교실에는방과 후 수업으로 예상 문제 가려내어입시에 맞춘 답안 따라 해체되는 시 한 편

살은 죄다 발라내고 뼈만 그린 칠판에는오수에 바랜 생선마냥 생기 잃은 표정들이이 가을 지침서 행간을 강물처럼 흘러간다

머리칼 푼 바람이 갈대밭을 지나갈 때은빛 시간들이 손 흔드는 원경 한 폭석양이 창에 물들자 시가 숨을 찾아 쉰다

바닷가 언덕 ―시간 여행 2



어디서든 수평선은 눈높이로 걸려 있다바람은 열 손가락 길게 뽑아 선을 당겨시간이 휘는 공간을 풍경으로 여는 한때

해안선 단선열차 물빛 젖어 돌아오고라일락 피는 계절 차창 가에 앉은 그대화첩에 영원이 물든 사연 한 필 풀어낸다

구름송이 피고 지는 경계 밖은 어디던가레일은 사다린 양 하늘가로 이어지고기차가 떠난 세월 뒤편에 여운처럼 남은 낮달

다시 오월에 ―시간 여행 3



빛바랜 앨범 열고 물감 푸는 손길 앞에맘은 다시 초록으로 새 피 돌아 설레느니청순한 시절이 돌아와 기억 한 등 밝힌다

검은 스커트에 흰 블라우스가 환한 오월손에 든 책갈피는 아카시아 향기 나고그 하얀 바람길 따라 사진 속을 나선 너는…

신간 표지 색상같이 감성 맑은 네 미소는내가 맺은 시간 끈의 아퀴들을 이냥 풀어계절의 푸른 문장이 숨결 속에 피고 있다

초량동, 시절 ―시간 여행 4



중앙극장 뒷길 따라 명절 같은 장을 가면골목 안 우물가에 대추나무 서 있는 집내 친구 눈 맑은 누이가 그린 듯이 살고 있지

별이 필 녘 돌아올 때 건네주던 봉지 안에잘 영근 대추알은 뺨이 달은 너랑 닮아봉긋한 수줍음 안고 달빛 속을 걸어온 길

입영 통지 날아온 날 우리 셋은 극장에서무기여 잘 있거라, 그 시간에 젖었다가손으로 햇살 가리고 가을 속을 걸어간 너…

초로에 든 옛 친구와 대추차를 하던 여일누이는 전방부대 아들 면회 갔다 와선비로소 그 가을을 딛고, 무기는 잘 있더라네

종이학 접기 ―시간 여행 5



종이학 천 마리를 유리상자 고이 담아내 가슴에 안겨주던 여학생이 걸어온다초승달 그린 눈썹 아래 샛별 돋은 눈망울로…

그날 나는 제자 앞에 대쪽 깎은 말을 듣고수공 시간 펼친 위에 입시 전황 비춰주자천 마리 학이 되어서 세월 속을 날아간 꿈

빈 상자에 영원처럼 내 맘 속에 남은 얼굴일천 번 손을 모아 첫정 빗던 푸른 밤들내 오늘 노을 진 하늘에 그 순수로 시를 접다

제3부



백목련



우한폐렴 재앙에도 산과 물은 몸을 푼다봄이 오는 기척을 가슴으로 먼저 듣고겹겹이 여문 믿음에 눈시울이 환한 여인

철 이른 꽃바람이 시샘하여 스치던 밤부대껴 흔들리며 사무치던 정염이사아침 해 빛살을 받고 씻은 혼이 투명하다

전염병이 온 세상을 휩쓰는 난리 딛고시원의 숨결 따라 하늘물레 짓더니만이 시절 하얀 마스크 맑은 실로 짜고 있다

해일 예감



귀 막고색깔대로파도 타고 노는 이들



이 한철을 지켜보며머릿속이 하얘질 녘



해안선멀어져간다접은 날개가다듬자



출근길에서



꽃눈이 몽우리 진 도심지 가로수길유리창 진열대에 신상품이 나와 있다산뜻한 색상과 디자인, 봄을 걸어 놓았다

그러나 봄은 아직 길목에서 서성이고바람 냄새 맵싸하여 코끝이 빨간 아침행인들 곤비한 삶에 좋은 소식 피어날까

온 나라가 코로나로 긴장을 증폭하고이념으로 갈등 빚어 골이 깊은 정국인데큰 그림 그린 치세로 봄옷 새로 입을 날은…

강변화랑



강촌 벌 신도시는 고층들로 조경되어미루나무 강변길을 자전거가 달려가고이 봄날 맑은 태양이 찌든 맘을 걷어주네

살진 강물 산을 품어 복사꽃잎 흐르는데기차는 시간들이 휘는 경계 들어선 듯시오리 화랑에 걸린 설화 속을 가고 있네

누가 이런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는 걸까인위와 무위가 한 화실에 동거하여계절이 붓질한 문명도 초록 물로 생기 도네

다시 구월에



외로운 늑대 같이 독이 오른 나날에도구월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다가와서달 뜨는 맑은 밤이면 둥근 사랑 품자하네

너와 내가 선을 긋고 양립해서 날을 세워분노 서린 흰 이빨을 드러낸 야성들이적의를 뿜는 그 현장 달빛으로 물들이며…

물소리 시린 대밭 피리 하나 다듬어서신명 든 구멍 뚫어 세상바람 갈앉히고가을강 쪽빛 긴 한도 이 성률로 풀자하네

제4부



가을, 난제



꽃을 가만 두고 보며 향기를 읽어내듯집착을 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기까진얼마나 영혼을 맑혀야 그런 마음 경계 들까

오늘도 생각 하나 산마루에 안고 서면수평선 돛배 가듯 멀어가는 세월 곁에흰 낮달 가녀린 미소가 손톱 밑에 아리누나

순례 길을 걸어가며 영성을 닦는 그대도라지 꽃빛 같은 청초한 삶이지만뒤태엔 보랏빛 슬픔이 묻어나는 이 가을

난향, 다시 읽기 ―코로나19 봄날



봄을 잃은 빈자리에난을 두고 피워낸 봄



내 마음 담뿍 주면향기 풀어 정을 뿜네



유리잔알칼리 이온수머금은 듯 맑은 말로…



난향, 읽기



느리게 숨을 쉬며가을 난이 피고 있다



숨과 숨 행간으로고요 속에 갈앉으면



저 은하새벽 물소리향낭 풀고 일어선다



풀꽃, 가을



밤마다 싸락별이그리움을 떨군 걸까



방울종 소리 피는색깔 맑은 풀꽃들이



해상도높은 들녘에고향처럼 손짓한다



홈커밍데이



가을 익자 연어처럼 그들이 돌아왔다하늘은 층층 높아 물소리 서는 산협그 배경 기운이 서린 요람으로 돌아왔다

희끗해진 세월 이고 추억 속을 찾은 오늘중후한 풍모 속에 피어나는 동안들이그날의 은어를 풀어 바랜 정을 색칠한다

생가지 회초리를 심어 가꾼 꿈나무들성목으로 청청 자라 열매를 단 교정에는갈바람 푸른 손질로 붉은 광택 뿜고 있다

제5부



향수



하늘에 뜬 별들도 저마다 외로워서깊은 밤엔 그리움을 남 몰래 떨구더니그 눈물 씨앗이 되어 풀꽃들이 피어났다

풀꽃이 갈바람에 저리 마냥 흔들림은제가 온 고향 하늘 그리운 몸짓이지외로운 영혼들이 빚는 그리움의 빛과 향기

별꽃



눈물로도, 기도로도회향할 수 없는 길목



그대로 순명해야달빛 드는 생이 되어



너 가고남은 이름이내 맘 속에 별로 핀 것



상강 무렵



꽁지 긴 새 한 마리 감나무 가지 앉아



운수승 영혼인 양 송경하고 날아간 뒤



늦가을 잎 진 후원에 우물 빛이 깊어졌다



가을밤



고전 있는 서가에서 목월을 뽑아든 밤



기러기 울어 예는 달빛 물든 행간에는



자수정 맑은 슬픔이 영원처럼 서려 있다



가을 한 컷



우물처럼 눈빛 깊은 가을 여인 긴 머리채



소슬바람 불어들어 우수의 올을 날리며



가로수 낙엽 진 길로 액자 속을 걸어간다



그냥 보기 연습 2 ―A는 본체, B는 현상일 때



A와 B 사이에 A´가 들어 있다A´는 분명히 A가 아닌데도자기가 주인 노릇하며 B를 보고 덧칠한다

그래서 B는 항시 제 모습이 굴절된다예를 들면 생화가 가화되는 순간이다



이 모든 허상을 만드는 A´는 범인이다



B를 바로 보는 방편은 안에 있어A를 가로막은 A´를 제하는 일만유는 A와 B가 독대할 때 선명하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