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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집

우동준 지음 | 호밀밭


기억의 집


우동준 지음

호밀밭 / 2021년 12월 / 240쪽 / 14,000원



오래된 나의 집



우리 할머니는 잠이 많아요


유달리 꾀가 좋던 우리 할머니는 나이 팔순을 넘긴 해부터 치매를 앓았다. 앓았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할머니는 마치 친구처럼 우연히 찾아온 치매와 함께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치매는 다른 질병처럼 허리가 아프거나 심한 두통이 오듯, 뜻 모를 통증을 유발하지 않는다.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는 내가 치매라는 걸 인지했을 때가 가장 큰 두려움이지, 정작 치매 당사자에게 찾아오는 육체적 고통은 그리 강하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평안해지고, 나를 사랑했던 사람은 힘들어지는 아이러니한 질병 치매. 그렇게 어느 날 홀로 두 딸과 한 명의 아들을 키운 나의 할머니는 치매 환자가 되었다. 노년이 되고 할머니는 자식들의 여유에 따라 감정에 따라 이모 집에서 우리 집으로, 우리 집에서 삼촌 집으로 몇 년씩 거처를 옮기며 생활하셨다.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며 아이들을 키웠던 그는 같은 시절을 통과하는 여느 노인이 그렇듯 살아남기 위해 뾰족하고 날카로운 성격을 가져야만 했다. 우리 집에서 보내는 6년 동안 툭툭 던지는 언어와 날카로운 고함, 일상적인 안부에도 별다른 응답이 없는 무뚝뚝함 때문에 성장기의 나와 동생은 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내게 할머니는 늘 화가 나 있는 사람, 그뿐이었다. 할머니는 내게 먼저 건네는 말은 언제나 두 가지였다. ‘밥은 먹었느냐’는 질문과 ‘엄마는 언제 오냐’는 질문, 서로를 향해 별다른 질문을 잃자 관계는 느슨해졌고, 할머니도 우리도 서로를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나이가 될 때까지 홀로 살아가겠다 고집을 부리셨다. 다들 차갑고 습진 골방에 계시지 말고 함께 살자고 했지만, 할머니는 기어코 고집을 부리셨다. 그러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돌아온 건 미끄러워 넘어져 꼬리뼈를 심하게 다친 이후, 급격하게 의미해진 기억 때문이었다.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진단, 그날이 시작되었다.

어제와 별다른 것 없는 하루였지만, 기억이 희미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는 많은 일에 불안해했다. ‘이 나이 되면 가물가물한 게 당연하지!’라며 호통을 치던 당당한 할머니는 사라지고, 리모컨을 어디 두었는지 모르겠다면 불안해하는 할머니, 내가 아까 가스레인지 불을 껐냐며 불안해하는 할머니의 모습만이 남았다. 치매보다 앞서 찾아온 불안, 자연스럽던 일상의 모든 여유가 이젠 불안한 기업의 빈틈이 되었다. 치매는 늘 다른 가족의 아프고 불행한 이야기였지만, 이젠 나와 가족의 구체적인 도전이 되었다. 치매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할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치매의 가장 큰 아픔은 나를 계속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자연스럽게 행하던 모든 움직임과 하루의 습관에 더는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주는 상실감 말이다. ‘의심’은 일상을 두렵게 만들었고, 모두를 위해 이것이 안전하다는 빈약한 근거로 할머니는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우리도 할머니의 하루를 긍정하지 못했고, 할머니 당신조차도 자신의 일상을 더는 신뢰할 수 없었다. 결국 누구나 그렇듯 일상을 단조롭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하고야 만 것이다.

요양병원에 등록한 할머니는 씩씩했다. 여기서 밥도 주고 간식도 때마다 챙겨준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할머니는 고스톱 하나를 챙겨 들고 매일 병상에 앉아 색색이 꽃 모양을 맞추는 일만 하셨다. 나도 시간이 날 때마다 할머니에게 찾아가 함께 고스톱을 쳤다. 동전을 한 가득 벌어도 당장 쓸 곳이 없던 할머니였지만, 망설임 없이 패를 맞추고 기뻐하는 얼굴이 좋았다. 손에 쥐여 드리는 동전이 할머니를 향한 격려이자 곁에 늘 함께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대한 보속이었다.

보호사 선생님께 들은 할머니는 내가 없어도 늘 고스톱의 패를 맞추는 놀이를 홀로 하셨다고 한다. 아마 당신 스스로 나의 기억을 짐작하는 지표로 꽃의 모양으로 삼지 않았나 싶다. 매일 그리고 매주 고스톱을 치며 불안을 잠재우셨겠지만, 할머니의 활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갈수록 할머니의 눈꺼풀은 무거워지기만 했다. 그렇게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던 짧은 고스톱 시간마저 사라지고, 할머니는 낮엔 낮대로 꿈을, 어두운 밤이 되면 밤대로 꿈을 꾸었다.

혹여나 오늘은 피로가 풀리셨을까 찾아가 보아도 할머니는 주무시기만 했다. 할머니 곁에 있는 다른 입원 환자도 깨어나지 않았고, 그 옆에 있는 할머니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 너무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똑같이 수많은 침대가 있는 산부인과는 아기의 울음소리로 가득했지만, 수많은 노년이 누워있는 요양병원은 그 어떤 소리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배도 고프지 않으신지 점심시간에 찾아간 할머니도, 주말 저녁 시간에 찾아간 할머니도 눈을 감고 계셨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할머니 곁에서 가져간 책을 읽는 사이 할머니가 불현듯 깊은 잠에서 깨 나를 보고 반갑게 불렀다. ‘오랜만이네, 우 서방.’ 할머니는 더 이상 나를 보며 ‘동준아’라고 부르지 않았다. 밥은 먹었느냐고 살갑게 묻지도 않았다. 남은 기억 속 아버지를 찾아 나를 부르거나, 오늘 아침에 만난 무서운 복지사 선생님으로 부를 뿐 나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나도 할머니에게 나를 알아보겠는지,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미소와 함께 오늘도 만나서 반갑다는 표시만 할 뿐, 할머니 앞에선 나도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기억의 집을 시작하다


많은 이가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걸 보았다. 그리고 요양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많은 치매 환자를 기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것도 똑똑히 보았다. 적당한 약물에 의해서, 깊은 수면에 의해서 누구도 불편하지 않도록 어르신을 천천히 수동적 존재로 만드는 곳임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아흔을 넘긴 나의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자존을 잃지 않고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마지막 표정을 기억할수록 그가 보냈던 시간이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했는지를 되새긴다. 치매 진단 이후에도 머리의 기억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기억까지 함께 사용하던 할머니.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며 이따금 재생되는 기억을 통해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고 뒤늦게 자녀와 화해를 시도했던 할머니였다.

우리가 마주한 기적 같은 시간을 단순히 한 사람만의 특별한 경험으로 남길 순 없었다. 나는 할머니와 같은 침상을 사용했던 어르신의 이야기도 궁금했고 매주 면회로 찾아오던 가족들의 고민도 궁금했다. 모두 각자가 통과한 시대에 맞는 고유한 이야기와 추억이 있을텐데, 우린 그저 속수무책으로 너무 많은 기억을 잃어가고만 있다.

우리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치매로 고통 받는 다른 가족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 더 많은 기억의 나눔이 치유와 공감, 상처받은 정서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도시 부산에서 기억이란 단어를 꺼내길 너무 어렵다. 더 이상 골목을 기억하지 않는 이곳은 서둘러 어제를 지우고 오래된 것을 거리에서 치운다. 조금도 새롭지 않은 모습의 건물들이 하늘 높이 오르고 또 오르는 도시에서 기억은 값비싼 사치품일 뿐이다.

가난한 이들의 공간은 위협받고, 부유한 이들의 공간은 넓어진다. 누군가의 기억이 위협받는 동안, 누군가의 기억은 보존되는 것이다. 육중한 포크레인이 부수고 있는 지금 저 주택 낡은 베이지색의 2층짜리 주택은 누구의 보금자리였을까? 저 공간엔 어떤 기억이 담겨 있을까? 눈부신 미래를 만든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골목과 집이 사라지지만, 저 공간엔 누가 살았고, 어떤 기업이 담겨 있을지 고민하는 이들의 숫자는 너무나 적다.

하나의 공간엔 하나의 기억이 있기 마련일 테니 오늘도 수십의 기억이 무너지고 있다. 구체적인 과거는 사라지고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만 남은 도시, 기억을 떠올려줄 골목, 지난 추억이 담긴 숲길, 어린 시절의 그리움이 담긴 강변이 사라지는 나의 도시에서 우린 모두 저마다의 기억을 하나씩 잃어간다.

기억에 집중한 탓이었을까. 나는 자연스레 주변의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동세대 청년의 고민부터 세대 간 격차까지 내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의 언어를 하나씩 기록해갔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록한다면 언젠가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매일을 기록으로 채워가던 내게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 시간 이어온 지난 고민을 함께 해결해보자는 제안이었고, 나는 급히 차 시동을 켜고 부산문화재단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난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다섯 명의 문화예술인을 만났다.

우리를 한 곳에 불러 모은 부산문화재단 문화공유팀 김연진 주임. 그는 고령화된 도시 부산에서 이웃이 마주한 ‘치매’를 함께 고민해보자 했다. 문화예술로 치매를 바라보고,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어르신만의 집을 지어 서로를 유지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해보자 했다. 오랜 시간 고민해왔던 주제 ‘치매와 기억’. 이들과 함께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시간. 앞으로 우리의 1년을 가득 채울 프로젝트의 이름은 바로 ‘기억의 집’이었다.

조금씩 지어지는 기억의 집



어르신과 함께 하는 것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치매 당사자를 향한 예술적 접근’이 고민의 시작이었지만, 우리의 대상이 치매 초기 증세를 겪는 한 사람만을 의미하진 않았다. 치매 당사자는 ‘치매 진단을 받은 이’와 ‘스스로가 의심스러운 이’, 나의 어머니와 이모처럼 ‘혹시 나도 치매이지 않을까’ 염려하는 모든 사람이기도 했다.우리가 초대할 프로젝트 대상은 분명했지만, 폭넓은 예술 접근을 위해 그보다 넓은 범위의 어르신을 만나보기로 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할 때 가장 기본적인 문법부터 꺼내듯 전반적인 프로그램 흐름을 잡기 위해선 노년 세대와 함께 하는 작업의 의미부터 하나씩 되짚을 필요가 있었다.

시야를 넓히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을 모셔 이야기를 청해 듣기로 한 후, 가장 먼저 섭외한 분은 반달 님이다. 반달은 다양한 지역 축제를 진행하며 청년예술가와 어르신의 교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예술을 통해 어르신 내면에 담긴 고유한 이야기를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는 분이었다.

저도 지금 여러분의 고민하시는 것처럼 음악의 힘으로 이야기를 꺼내본 경험이 있어요. 어르신과 그림책 하나를 꺼내 들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내게 익숙한 음에 담아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보는 것이죠. 그런 차원에서 여러분도 어르신과 함께 그림책을 봐도 좋겠어요. 부산분들 특유의 거칠고 투박한 언어 속에서도 그림책이 보여주는 부드러운 색채가 내 과거의 기억을 하나둘 떠오르게 하거든요. 그때 할머니들은 자신이 잊고 있던 지난 기억과 이야기를 되찾기 시작하면서 삶이 새로 시작하는 것 같다고, 새로 살아가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특히 제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가벼운 치매 초기 증상이 있던 어머니였는데, 약간 삐딱하게 걸으셔서 바로 알 수 있었죠. 매번 수업 시간이 마칠 때마다 따님이 모시러 왔어요. 그런데 하루는 따님이 어머니가 훨씬 젊어지셨다고, 전과 다르게 총기가 생겼다고 하시더라고요. 알게 모르게 함께 시도했던 예술적인 접근과 체험이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닐까 싶어요. 한 번에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지속해서 반복한다면 개인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다양한 신체 감각도 되살아난다고 생각해요.

2015년도에 탱고가 파킨슨병과 뇌졸중에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다른 춤도 효과는 있었지만, 압도적으로 탱고의 치매 예방 효과가 높았던 이유는 도파민이 나오기 때문이었어요. 탱고는 마주한 사람과 포옹하고 가까이 눈을 맞대고 있으니 설레는 마음, 즉 도파민이 나온다는 거죠. 탱고 춤을 보면 서로 몸을 맞댄 상태로 진행하는 여러 동작이 있잖아요. 타인과의 밀접한 교류와 긴장감이 뇌를 계속 쓰게 한다는 여러 연구 결과도 있으니 여러분들은 예술을 통해 어르신들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초대했으면 좋겠어요.

반달은 예술적 접근이 완벽한 치료법이 될 순 없겠지만,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감각과 기억을 다시 꺼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그림책을 같이 읽고, 어느 때엔 나만의 그림책을 함께 만들기도 하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과거의 정면과 기억을 마주하는 것이다. 거칠게 끌어낸 기억이지만, 함께 하는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해 미술로, 시로, 또 음악으로 아름다움을 덧붙여 나의 기억을 긍정하는 것. 예술의 힘은 이처럼 나의 오늘과 어제를 긍정하게 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예술이 긍정하는 또 다른 하나는 ‘나도 쓸모 있는 존재’라는 감각이다. 어르신을 향한 문화 예술적 시도가 경험의 질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해 사회적 소속감을 높여주는 데 기여한다. 일상의 만족감이 높아지는 만큼 줄어드는 건 우울함이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어제와 다를 때 찾아오는 ‘우울함’과 ‘늙으면 죽어야지’로 대표되는 노년 세대의 거부 반응이 예술을 통해 작은 성취를 맛보 며 완화된다.

많은 이가 예술은 언제나 문제를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는다며 비난한다. 하지만 예술의 본질적 가치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세대를 떠나 누구나 타인에게 애정을 쏟고, 또 되돌려 받으며 나의 존재 이유를 확인받는 것. 예술을 통해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주관적 판단을 넘어 내면의 성취감을 맛보게 하는 것. 이것이 어르신에게 예술적 시도가 필요한 궁극적 이유이자 우리가 어르신과 함께 하는 것의 의미였다.

어떤 태도로 어르신을 대해야 할까요?


노년 세대를 향한 예술 시도의 필요를 정립한 우리는 ‘실버문화’를 주제로 활동하는 예술인과 만나 치매 어르신과의 교육 경험을 물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숱한 경험을 쌓은 그가 기억하는 어르신은 이제 막 치매 증세가 시작된 74세의 할아버지였다.

저는 맞춤형 실버문화복지 사업에 참여했어요. 18년도부터 어르신과 활동을 했고요. 제가 지금까지 많은 홀몸 어르신을 만났는데, 돌이켜보니 초기 치매 증상이 아니었나 하는 분들이 있어요. 70대 할아버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늘 댁에 찾아뵈면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어요.

하루는 어르신과 ‘건강 팔찌 만들기 체험’을 하려고 재료를 준비해서 댁으로 방문했는데 진짜 몇 년 만에 만난 가족처럼 저를 반가워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딱 15분 뒤 ‘어디서 무당같이 구슬 들고 왔냐’면서 막 화를 내시고, 반가워해 주셨던 것도 잊으신 채 너는 누구냐며 무섭게 다그치시더라고요. 그러다 잠시 후 조금 진정되시고 나니 ‘우리 마누라에게 예쁜 거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다시 저를 칭찬해주시는데 그때 짐작했었죠. 함께 체험했던 할머니도 처음 팔찌를 보고는 좋아하셨지만 두 번째 수업부터는 저를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았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아픈 모습이 누군가에게 보이고 평가받는 것이 민망하니까 할머니도 같이 숨으시더라고요.

많은 이가 치매를 떠올리면 서서히 ‘과거의 기억’을 상실해 가는 걸 상상한다. 하지만 치매 당사자의 아픔은 단순한 기억의 상실만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규범의 상실에서도, 특정한 상황에 대한 예의의 상실에서도 비롯된다.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거나, 불편하다고 옷을 벗는 등의 행위가 사회인으로서 지켜온 나의 자존감을 갉아 먹는다.

세상에 드러나는 대상자는 치매 증세의 할아버지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외감과 외로움을 감당해야 했던 건 가족이다. 과거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매사에 무척 공격적이고 집에 오는 걸 반가워하지 않으셨던 분. 그리고 그와 평생을 함께 살아온 할머니에겐 문화도 예술도 모두 어려운 단어였지만, 그저 우리 집에 다른 사람이 찾아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반가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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